매년 취약 국가 지수(Fragile States Index)를 발표하는 워싱턴 소재의 비정부 기구인 평화 기금(Fund for Peace)은 취약 국가의 기준을 열거하고 있다. 나는 영국이 그중 두 가지 기준 ― 빈곤 계층에게 공공 서비스를 제공할 능력 없음, 국제 사회의 완전한 구성원으로서 다른 국가들과 교류할 능력 없음 ― 에 부합하는 데 위험할 정도로 근접해졌다고 생각한다.
지난 몇 달 동안 웃음거리가 될 만한 전개 ― 비상사태 과학 자문 그룹(SAGE·Scientific Advisory Group for Emergencies)의 독립성에 대한 의문, 개인 보호 장비에 대한 유럽 연합(EU)과의 커뮤니케이션 누락 의혹, EU와 협력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결정, 회신 봉투 없이 배송된 자가 검사 키트, 유효 기간이 만료된 개인 보호 장비 ― 는 정부가 ‘폴티 타워즈(Fawlty Towers, 무능한 호텔 경영인을 풍자하는 영국 시트콤)’의 영역에 있음을 보여 준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상세히 보도했던, 새로운 인공호흡기를 제작하려던 영국 기업들의 계획은 무산되었다. 영국 정부는 허가를 받은 기존 계획으로 제작하기보다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어째서?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브렉시트(Brexit) 자만심일까?
나는 영국과 EU의 대응을 비교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EU는 판데믹 동안 영광으로 스스로를 감싸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협력의 윤리와 투명성과 정직의 윤리는 지난 몇 달 동안 강력하게 시험되어 왔다. 아마도 이제 우리는 글로벌 헬스케어 시스템(global healthcare systems)을 강화하기 위한 유럽 투자 은행(European Investment Banks)과 세계보건기구(WHO)의 공동 프로젝트로부터 힘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에 영국 정부가 기여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현재 상황을 진전시키는 것은 많은 부분이 시민들의 행동에 달려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새로운 독립 전문가 패널, 즉 SAGE의 ‘경쟁자’가 등장하는 것을 보는 것은 고무적이다. 이는 전 영국 정부 수석 과학 고문 데이비드 킹(David King)이 이끄는 것으로, 유튜브에서 그 논의 내용을 볼 수 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정부의 실패를 어떻게 특징지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는 부분적으로 공익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모집했던 NHS 자원 봉사에 75만 명이 신청했지만, 그중 10만 명 미만이 배치되었다. 시민으로서 우리는 기여하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의 관용을 허비하는 것은 매우 불편하지만, 다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계속 나서고 있다. NHS를 돕기 위해 퇴역 대위 톰 무어는 모금 활동을 벌였고, 바느질과 3D 프린터로 마스크와 의료 용품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 레스토랑 체인 레온(Leon)과 요리사들이 환자, 의사, 간호사, 환자 이동 요원, 구급차 요원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인 피드 NHS(Feed NHS)는 활동 준비를 갖췄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하는 이런 탁월한 활동은, 자원 봉사 희망자들을 제대로 운용조차 하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력과 대조된다.
빌게이츠 재단(The Gates Foundation)의 7개 백신 프로그램 지원과 트위터의 CEO 잭 도시(Jack Dorsey)의 10억 달러(1조 1700억 원) 기부는 인상적이다. 지난 3월 24억 파운드(3조 6000억 원)를 챙긴 투자 회사 러퍼(Ruffer)나 코로나를 ‘한 세대에 한두 번 있을’ 투자 기회로 보는 제이콥 리스-모그(Jacob Rees Mogg, 영국 보수당 소속 정치인)가 운영하던 서머셋 캐피털(Somerset Capital)과 같은 영국 헤지 펀드들도 기여하는 바가 있을까?
영국계 헤지펀드 수십 개가 10억 파운드(1조 5000억 원) 이상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헤지펀드 투자자와 경영자들이 자신들의 터무니없는 수익의 일부를 코로나 대응에 기부하거나, 취업 허가에 요구되는 소득인 3만 파운드(4500만 원)를 벌지 못하는, 영국에서 청소부, 간병인, 운전사로 일하고 있는 유럽 밖 출신 이민자들을 후원하도록 설득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대규모 실업에 대한 심각한 경고와 더불어, 원격 근무의 영향, 가정과 일 사이의 균형 유지에 대한 필요성은 일을 더 공정하게 분배하는 사회 계약을 다시 작성할 기회를 제공한다.
코로나는 슬픈 이야기다. 또한 회복 탄력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국가의 몸은 우리를 실패하게 했다. 우리는 성장하고 이를 인정해야 한다. 코로나는 용납할 수 없는 시스템의 실패를 드러냈다. 이렇게 되기까지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공무원과 의료인의 지위가 격하되는 현상을 지켜봐 왔다. 교사, 의사, 학자는 경영과 경제에 가려져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현 상황을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적어도 병원에서는 마이크로매니지먼트가 일시적으로 사라진 것 같다.
우리의 몸 ― 살아 있고, 촉각과 시선이 결여됐으며, 오랜 고립에 직면해 있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몸 ― 으로 돌아가서, 나는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어쩌면 어떤 결론도 내릴 수 없다. 우리는 이 위기의 끝으로부터 아직 멀리에 있다. 심리 치료는 몸과 정신을 다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트라우마라는 단어가 너무 많이 쓰이고 있어서 좋아하진 않지만, 우리 사회는 현재 트라우마에 빠져 있다. 사회적 트라우마는 우리가 경험한 것을 묻어 두거나 가볍게 여기지 않는 한, 우리가 혼자 고통을 받기보다는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코로나로 생겨난 사회 공포를 극복하려면 우리는 두려움과 불편함, 우리가 타인의 몸에 투영하는 것, 우리 자신의 취약한 부분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살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애착과 존중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우리 자신의 몸과 서로의 몸들에 대한 관계를 재정립하는 데 가능한 한 모든 도움을 얻어야 한다.
‘개인의 몸’ 비물질화로 시작된 것이 이제 ‘국가의 몸’ 비물질화가 되었다.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는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미국 대통령과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 영국 총리의 작은 정부를 겪으며 우리가 역량을 잃었다고 주장한다. 이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어떻게 더 공평한 경제를 만들 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경제학자들 사이에 활발한 논쟁이 있다. 《머니위크(Moneyweek)》의 편집장 메린 서머셋 웹(Merryn Somerset Webb)은 구제 금융을 받은 기업의 지분을 정부가 소유해 국부 펀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 경제학자 윌 허튼(Will Hutton)의 영국 기업은행(British Business Bank)과 미래펀드(Future Fund) 확대 구상안도 흥미롭다. UCL의 경제학과 교수 마리아나 마주카토(Mariana Mazzucato)는 국가가 혁신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다른 종류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 노력을 다시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영국의 소수자 집단과 노동자들의 기여와 손실을 인식해야 한다. 영국 정부는, 특히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 집권 시기(2010년 5월~2016년 7월) 긴축 정책을 시행하면서 부끄럽게도 사회 분열을 초래했다. 지금 우리는 브렉시트가 불러온 분열의 여파를 바로잡을 뜻밖의 기회를 얻게 됐다.
대규모 실업에 대한 심각한 경고와 더불어, 원격 근무의 영향, 가정과 일 사이의 균형 유지에 대한 필요성은 일을 더 공정하게 분배하는 사회 계약을 다시 작성할 기회를 제공한다. 적게 받는 사람, 많이 받는 사람 모두 과로하고 있다. 일과 가정 사이에서 보다 균형 잡힌 관계가 필요하다.
코로나 위기가 시작된 이후 각계각층의 예술가, 음악가, 프로그래머, 문화, 과학 종사자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재능, 의지, 열망이 세상을 다시 만든다. 시급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글로벌리즘은 단순히 ‘적시 공급’의 장이 아니다. 전쟁 지역에서 봉쇄령을 겪은 이들까지 포함해 서로가 서로에게 배울 수 있는 상호 관계, 지역과 세계의 상호 관계로 재편되어야 한다.
기관들은 진심을 가지고 투명하게, 관리자와 소유자가 아니라 그들이 고용해 온 사람들로부터 배우며 재건되어야 한다. 의사, 간호사, 간병인, 환자 이동 요원들은 그들의 기관이 어떻게 더 잘 운영될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해 줄 수 있다. 우리 세상을 이루는 정치 공동체(body politic)와 몸들의 정치(politics of the bodies)는 반드시 재구성되어야 하고, 지금부터 우리는 이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프로이트(Freud)로 끝을 맺는다. "정신분석의 목적은 히스테리를 인간의 평범한 불행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과 사회를 위한 성취다. 우리는 불행을 피할 수 없다. 불행은 창의력, 용기, 야망, 애착, 사랑과 같이 인간을 이루는 필수 요소다. 이 슬픔의 시대에 인간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복잡성을 받아들이고, 더 현명하고 더 겸손하고 더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