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3. 각 나라의 지역별 전기차 충전 수요, 단위: 퍼센트/ 버건디-민간·공용, 연한 민트-도시, 진한 민트-고속도로, 네이비-교외/ 미국/ 유럽/ 중국/ *2030년은 예상 수치/ ©보스턴컨설팅그룹
그런데도 현재까지는 집이나 일터에서만 충전할 수 있다. 부유한 가정은 물론 충전기를 설치하기 쉽지 않은 아파트나 일반 주택에 사는 사람들에게까지 전기차가 널리 보급되려면 공용 충전 네트워크가 꼭 필요하다. 미국, 유럽, 중국에서는 공용 충전소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표3 참조) 공용 충전소는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일반적인 유형은 도로변에 있는 것으로, 차량을 밤새 주차해 놓아도 괜찮은 구역에 기존의 가로등을 개조하거나 전용 충전기를 설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쇼핑센터, 레스토랑, 영화관처럼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의 주차장에 설치해서 좀 더 폭넓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데스티네이션(destination)’ 방식도 있다. 두 가지 모두 2레벨 충전기이며, 설치 비용은 일반적으로 충전기 1개당 2000달러에서 1만 달러가 소요된다.
급속 충전기로는 일반적으로 20분에 100~130킬로미터의 주행 거리를 충전할 수 있는데, 이는 장거리를 운전하는 차량을 위해서 도시를 연결하는 주요 도로에 꼭 설치해야 하며, 도심 내에서도 비상 충전 용도로 설치해야 한다. 택시처럼 오랜 시간을 운행하는 영업용 차량도 빠르게 충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급속 충전기의 대당 설치 비용은 10만 달러 이상으로 상당히 고가이기에, 급속 충전기의 이용 요금도 더욱 비싸지게 된다. 테슬라는 고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장거리를 운행하는 차량에 충전소 위치를 지도 소프트웨어를 통해 안내하며, 또한 테슬라 전용 충전소인 ‘슈퍼차저(Supercharger)’가 있는 곳으로 가는 최적의 경로를 찾아 준다. 최근에는 다른 신형 전기차 모델들도 비슷한 기능을 제공한다.
충전 업계 관계자들은 전기차를 소유하는 문화나 충전하는 것 모두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지난 몇 년의 짧은 시기만으로 미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말한다. 물론 현재로서는 전 세계 도로 위를 달리는 차량 중 전기차 비율이 1퍼센트에 불과한 것이 사실이다. 세계 최대 충전 기업 중 하나인 차지포인트(ChargePoint)의 팻 로마노(Pat Romano)는 “앞으로 20년을 밝힐 불꽃”이 이제 막 점화된 것이라고 말한다.
충분히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미래의 충전 수요가 어느 정도 규모일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 수 없다. 일부에서는 그 수요가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에버코어ISI(Evercore ISI) 은행의 제임스 웨스트(James West)는 각국 정부가 전기를 선호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추세는 물론이고, 전 세계의 수많은 차량을 충전하는 사업으로 돈을 벌 기회가 점점 더 커지는 것을 보면 지금은 ‘초고속 성장(hyperbolic growth)’의 추세에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도로 위에 전기차 한 대가 늘어날 때마다 정확히 얼마나 많은 공용 충전소가 필요한지에 대한 부분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독일 기업 지멘스(Siemens) 계열사인 유넥스트래픽(Yunex Traffic)은 충전용 하드웨어를 만드는데, 이곳의 스콧 비숍(Scott Bishop)은 내부 관계자들에게 완속 충전기와 급속 충전기의 비율이 어떻게 될지를 물어보면 각기 다른 수많은 답변들이 돌아온다고 말한다.
또 다른 문제는 산업 구조다.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자동차 부문을 담당하는 아아카시 아로라(Aakash Arora)는 충전 산업 내에서 복잡하게 얽혀 이는 수많은 층위들이 최악의 문제라고 말한다. 여러 이해 당사자들과 협업을 해야 하고 그들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전소의 확산이 더딘 이유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첫 번째 이해 당사자는 충전 시설을 만드는 기업들이다. 그다음으로 운영사들이 있다. 운영사들은 충전소를 보유함으로써 직접 이익을 거두는 기업일 수도, 아니면 해당 부지에 설치된 충전기들을 유지 관리하면서 수수료를 받는 업체일 수도 있다. 땅을 소유한 기업이나 개인, 또는 공공 기관은 충전소 부지를 빌려주고 운영사로부터 임대료를 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실제 충전이 이루어지는 경우, 앱이나 카드를 이용해서 충전기를 작동시키고 결제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 제공 업체들도 존재할 것이다.
왓(Watt) 어 비즈니스
전기차 충전 분야의 기업들은 크게 세 가지의 유형으로 분류된다. 하나는 거대 자동차 회사가 전기차 충전 부문을 수직 계열화해서 통합한 형태다. 전 세계 3만 곳에 설치된 테슬라의 슈퍼차저가 대표적인데, 테슬라는 이러한 네트워크 구축에 들인 비용이 얼마인지를 여전히 공개하지 않고 있다. 아마 수십억 달러일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자동차 회사들도 어느 정도는 이러한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BMW, 포드, 현대, 다임러(Daimler)가 폭스바겐과 함께 아이오니티에 투자한 사례가 있다. 아이오니티의 급속 충전 네트워크는 현재의 1500개에서 2025년에는 7000개로 늘어날 전망이다. 폭스바겐이 미국에서 배출량 조작 사건을 일으킨 뒤 규제 당국과 합의해 2016년에 설립한 일렉트리파이아메리카(Electrify America)는 현재 미국에서 2200개의 급속 충전기를 보유하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는 전기차 충전 분야에 7500만 달러를 지출할 예정이며, 가장 먼저 자동차 판매점에 4만 개의 충전기를 설치할 계획이다.
두 번째는 충전 분야의 전문 기업들로, 이들도 점차 세력을 키우고 있다. 그중 몇몇 기업은 지난해 상장도 했다. 아직은 수익성이 낮고 매출액도 미미한 수준이지만, 그들의 시장 가치는 상승하고 있다. 시장 가치를 약 70억 달러로 가장 높게 평가받는 회사는 차지포인트인데, 그들은 미국의 공용 충전 시장의 44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으며 유럽에서도 확장해 나가고 있다. 네덜란드의 이브이박스(EVBox)는 전 세계에 30만 개의 충전기를 보유하고 있는데, 유럽에 설치된 2레벨의 공용 충전기들 가운데 4분의 1과 급속 충전기 3분의 1이 그들의 것이다. 이브이고(EVgo)는 테슬라를 포함한 미국 급속 충전기 시장의 절반을 차지한다. 그러나 블룸버그NEF의 라이언 피셔(Ryan Fisher)가 지적하듯, 충전 기업들은 앞으로 10년 안에 정부의 보조금이 삭감되더라도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세 번째 유형은 에너지 기업들이다. 주유소 사업의 위기를 감지한 그들은 야심 찬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영국계 네덜란드 석유 대기업인 로열더치셸(Royal Dutch Shell)은 지난 2월 유럽의 노상 충전 대기업인 유비트리시티(Ubitricity)를 인수했고, 8월에는 도로변 충전기와 급속 충전기를 포함해 2025년까지 전 세계에 충전기 50만 개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BP와 토탈(Total) 역시 충전 기업들을 인수하고 있다. 공공 기업들도 힘차게 나서고 있다. 스페인의 국영 전기회사 이베르드롤라(Iberdrola)가 지분을 일부 소유하고 있는 월박스(Wallbox)는 가정과 일터에 설치할 수 있는 충전기를 판매하고 있다. 미국 내 17개의 전력 기업들이 모여서 구성한 전기고속도로연합(Electric Highway Coalition)은 도시를 연결하는 주요 노선을 따라 급속 충전기를 설치할 계획이다.
각국 정부 역시 행동에 나설 것이다. 미국의 새로운 기반 시설 관련 법률에서는 2030년까지 50만 개의 공용 충전기를 설치하기 위해 75억 달러의 예산을 책정해두고 있다. 영국이 최근에 발표한 법안을 보면 주택이나 회사, 가게 등을 새로 지을 때 충전기의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매년 14만 5000개의 충전기가 늘어날 전망이다. 이러한 의무 규정은 앞으로 더욱 보편화할 것이다. 여기에 충전 사업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는 한 가지 이유는 배터리의 성능이 개선되면 좀 더 긴 거리를 주행할 수 있게 되고, 빈번하게 충전해야 할 필요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새로운 배터리는 지금보다 더욱 빨리 충전될 것이며, 충전소들은 더욱 빠르게 전기를 공급해줄 것이다.
그러나 무난하게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을 두고 의구심은 지속될 것이다. 전 세계가 필요로 하는 방대한 규모에 비해 충전소 수는 여전히 모자라다. 새로운 전력 수요가 될 충전소들에 전기를 원활하게 공급하려면 자금을 투입해서 기존의 송전 설비를 개선해야 할 것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전 세계 전기차의 대부분이 운행되고 있는 미국, 유럽, 중국에서 2030년까지 확보될 공용 충전소는 고작 650만 개에 불과할 것으로 예측한다. 국제에너지기구가 필요하다고 하는 4000만 개에는 한참이나 모자란 수준이다. 부족한 충전기에 더욱 많은 전기차가 몰려들어 경쟁을 벌일 것이다. 어쩌면 운전자들은 전기차에 대하여 열광하는 것만큼이나 인내심을 길러야 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