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잠시만 당신의 엄지손가락을 자세히 살펴봐 주면 좋겠다. 엄지손가락이 앞뒤로 어떻게 구부러지는지 보라. 엄지의 피부가 얼마나 민감하며 점착성은 어느 정도인지 느껴보라. 사람의 엄지는 단지 엄지척(thumbs-up) 신호를 보내거나 바닥에 떨어진 열쇠를 줍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우리의 엄지손가락은 과일의 숙성도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현존하는 가장 효율적이며 민감한 도구 가운데 하나이다.
인간에겐 대표적인 특징이 하나 있는데, 바로 엄지가 다른 손가락들을 마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훨씬 더 튼튼하고 길고 유연하다. 반면 거미원숭이는 엄지손가락이 없고, 마모셋원숭이는 엄지손가락이 있어도 다른 손가락들을 마주 볼 수 없다. 이렇게 마주 보는 엄지손가락은 우리 인간을 비롯하여 침팬지와 같은 영장류 사촌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그런데 우리의 엄지손가락이 애초에 이렇게 진화한 이유가 과일이 익었는지 아닌지를 판별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16년에 생물학자인 너새니얼 도미니(Nathaniel Dominy)는 침팬지가 무화과를 따는 방식을 연구했다. 침팬지는 손을 다재다능하게 잘 쓰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들은 무화과가 어느 정도 익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그 손으로 무화과를 빠르게 쥐어보곤 했다.[1] 이는 원숭이들이 사용하는 방식보다 평균적으로 4배나 더 빠른 기술이었다. (참고로 원숭이들이 무화과가 익었는지를 알아보는 방법은 무작위로 과일을 따낸 다음 그것을 직접 깨물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익지 않은 과일은 뱉어 버린다.)
인간 역시 이처럼 놀라운 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한 번만 만져 봐도 가장 잘 익은 과일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인류의 대부분은 손을 더 이상 그런 용도로 사용하지 않는다. 잘 익은 과일이 먹고 싶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손의 감촉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 그냥 가장 가까운 슈퍼마켓으로 가서 이미 손질되어 있는 패키지를 구입하면 된다. ‘잘 익은 간편 과일’이라든지 ‘잘 익은 달콤 과일’ 같은 라벨이 붙어있는 그 과일들은 이미 껍질이 벗겨져 조각 나 있기 때문에, 우리는 포크로 찍어서 먹기만 하면 된다.
현대의 인류가 무언가를 먹는 행위에 있어서 가장 놀라운 사실 가운데 하나는, 바로 우리가 마치 감각이 없는 존재들처럼 음식을 섭취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겉모습은 수렵 채집을 하던 선사시대의 조상과 기본적으로는 동일하지만, 무엇을 먹을지 선택할 때의 우리는 거의 항상 감각을 꺼버린다. 우리는 신선한 우유와 상한 우유를 구별할 수 있는 코를 가졌음에도, 직접 냄새를 맡아 보기보다는 유통기한을 확인하는 걸 선호한다. 인류학자 잭 구디(Jack Goody)는 인간의 감각을 가리켜서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이라고 불렀다. 주변 환경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사용하는 중요한 도구라는 것이다. 감각은 즐거움을 줄 뿐만 아니라 생존을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스스로가 가진 많은 감각 기능을 현대의 식품 산업에 넘겨주었다. 식품 산업에게는 잘된 일이다. 하지만 우리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먹을거리와 관련한 건강상의 문제점이 만연하지 않던가.
코로나19 판데믹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얼마나 무감각한지 드러냈다. 특히 후각이 그렇다. 이제껏 우리 인간은 코로나19가 유발한 후각상실증(anosmia)만큼 빠르고 동시다발적인 감각의 상실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런 집단적 후각 상실이라는 현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을 꼽자면, 많은 이에게 그 필요성조차 잊혀 있었던 감각이 상실됐다는 사실이었다. 개와 같은 동물들이 후각에 크게 의존하여 살아가는 것과 달리, 인간에게 있어 후각은 오랫동안 뭔가 사소한 것으로, 심지어 반드시 필수적이지는 않은 감각으로 여겨져 왔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후각이 (시각이나 청각에 비해) 인간에게 “극미하게 기여”할 뿐이라고 주장하는 과학자 및 철학자 중 하나였다. 2011년에 7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는 대부분의 응답자들이 노트북이나 휴대 전화를 계속해서 사용할 수만 있다면 후각을 포기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실에서 후각 없이 산다는 건 쉽지 않다. 피프스센스(Fifth Sense)는 후각 및 미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지원하는 단체인데, 이곳에서 실시한 설문 조사에 의하면 후각을 상실한 사람 중 거의 모두에게서 음식이나 음료를 섭취할 때의 즐거움이 줄어들었고, 외로움과 우울함을 느끼는 경우가 늘어났으며, 관계의 단절로 이어지는 사례도 일부 있었다. 피프스센스가 후각상실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 약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는 음식이나 음료를 섭취할 때의 즐거움이 냄새를 맡을 수 있었을 때보다 줄어들었다고 답변한 응답자가 전체의 92퍼센트였다. 절반 이상은 예전보다 외식을 적게 한다고 답했으며, 심지어 요리를 하는 것조차도 스트레스와 불안감의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더 이상 새로운 레시피를 시도하는 기쁨을 즐길 수도 없고, 혹시 재료가 탈 때도 그 냄새를 쉽게 맡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피프스센스의 한 회원은 그들이 음식의 다양한 냄새를 맡으며 누릴 수 있는 기쁨만이 아니라 위험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 모두를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나는 2021년 9월에 코로나19에 걸리면서 냄새를 맡을 수 없게 되었는데, 어느 날 아침 매일 마시던 커피에서 아무런 향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 사실을 믿을 수 없어서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에 맛과 향이 느껴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카페인의 각성 효과와 함께 혀에서 느껴지는 씁쓸함뿐이었다.
지금까지의 데이터에 의하면, 코로나19로 인해 후각을 상실한 사람의 대다수는 몇 주 안에 그 감각을 완전히 회복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도 이렇게 운 좋은 다수 가운데 하나였다. 어느 날 레몬의 껍질을 벗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공기 중에서 선명한 시트러스 향기가 느껴졌다. 감사한 마음에 하마터면 눈물을 터트릴 뻔했다. 그러나 소수의 몇몇은 완치 이후에도 다시는 후각을 되찾지 못할 것이다. 어느 페이스북 그룹에서 코로나19의 장기 후유증을 겪었다고 밝힌 사람들에 관한 2020년의 연구 논문을 보면, 냄새를 맡을 수 없게 된 사람들이 잃어버린 먹을 때의 즐거움이 어떤 것인지를 엿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입맛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는데,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잃어버린 즐거움을 만회하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더욱 많이 먹었다고 대답했다. 그중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먹어서 느껴지는 만족감이 없으니, 오직 그 만족을 느끼기 위해서 더 많이 먹게 된다. (중략) 절대 충족될 수 없는 만족감을 얻으려는 지속적인 충동 때문에 체중이 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이 코로나19에 걸렸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영구적인 후각 상실증이나 고무가 타는 것 같은 끔찍한 냄새가 난다고 느끼는 이상 후각(parosmia) 증세를 가진 채 살게 되는 사람들은 수만 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불과 2020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anosmia(후각 상실)’라는 단어를 알고 있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후각이 삶의 질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아예 생각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