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카페인 위험 경보
그렇다면 커피는, 좀 더 일반적으로 카페인은 정확히 어떻게 해서 우리를 더욱 활기 넘치고 능률적이며 더욱 빠르게 만들어주는 것일까? 칼로리도 없는 작은 분자에 불과한 카페인은 대체 어떻게 해서 인간의 신체에 에너지를 공급해줄 수 있는 것일까? 카페인이 과연 속담 속의 공짜 점심
[4]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각성 효과, 집중력, 활력 등 카페인이 제공하는 정신적 에너지와 신체적 에너지에 대가를 지불해야 할까?
세상에 공짜 점심이란 없다. 사실은 카페인이 우리에게 에너지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카페인은 아데노신(adenosine)이라는 분자의 작용을 차단한다. 아데노신은 하루가 가는 동안 두뇌에 조금씩 축적되면서 우리의 신체가 휴식을 취하도록 준비한다. 카페인 분자는 이 과정에 간섭하여 아데노신이 제 할 일을 못 하도록 방해하고, 우리를 깨어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그러나 아데노신의 수치가 꾸준히 증가하고 카페인이 신진대사에 의해 분해되고 나면, 인체의 수용체(receptor)에 아데노신이 흘러들면서 다시 피로감이 찾아온다. 그렇기 때문에 카페인이 제공하는 에너지는 사실상 빌려온 것이며, 결국엔 우리가 되갚아야 할 빚인 것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오랫동안 커피와 차를 마셔오는 동안, 보건 당국은 카페인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해 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카페인은 자신에게 제기되어 온 심각한 혐의들을 대부분 벗었다. 현재까지 과학적으로 합의된 내용을 보면 안심하고도 남을 만한 수준이다. 실제로 관련 연구를 살펴보면, 커피와 차는 우리의 건강에 해로운 것과는 거리가 멀고, 과도하게 섭취하지 않는 한 나름의 중요한 혜택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기적인 커피 섭취는 유방암, 전립선암, 결장암, 자궁암 등의 여러 암은 물론이고 심혈관계 질병, 제2형 당뇨, 파킨슨병, 치매의 발병률 감소와 관련이 있으며, 우울증과 자살률을 줄여 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량 섭취 시에는 신경 과민과 불안감을 유발하고, 하루에 여덟 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에게는 자살률을 높일 수 있다.
커피와 차에 대한 의학 문헌들을 살피다 보니, 카페인을 절제하는 것이 오히려 정신적 기능만이 아니라 신체적 건강에도 위태로운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맷 워커(Matt Walker)와 이야기를 나눈 후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영국 출신으로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UC 버클리)의 신경 과학 교수이자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Why We Sleep)》라는 책의 저자인 워커에게는 필생의 사명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보이지 않는 공중 보건의 위기에 대해 전 세계에 경각심을 울리는 것인데, 그 위기란 우리가 잠을 너무 적게 자고 있으며 그렇게 자는 수면의 질조차도 형편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신체와 정신을 상대로 저지르는 이러한 범죄의 유력한 범인은 바로 카페인이다. 카페인 그 자체만으로는 우리에게 해롭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우리에게서 빼앗아 가는 잠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를 수도 있다. 워커 교수에 의하면 수면 부족이 알츠하이머병, 동맥경화증, 뇌졸중, 심부전, 우울증, 불안감, 자살, 비만을 일으키는 주요한 요인일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가 있다고 한다. 그의 결론은 단호하다. “잠이 줄어들수록 수명도 줄어듭니다.”
워커는 아침이건 낮이건 밤이건 엄청난 양의 홍차를 마시는 영국에서 자랐다. 하지만 그는 가끔 마시는 디카페인 음료에 조금씩 포함돼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카페인을 섭취하지 않는다. 실제로 내가 이번 글을 쓰기 위해 인터뷰했던 수면 연구자나 생체 리듬 전문가들 중에서 카페인을 섭취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워커의 설명은 이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카페인의 ‘사반감기(quarter life)
[5]’는 일반적으로 약 12시간인데, 이는 만약 정오에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면 자정에 잠자리에 들 때도 뇌 속에는 낮에 마셨던 카페인의 25퍼센트가 돌아다니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 정도면 숙면을 완전히 망가뜨리기에 충분한 양이다.
워커를 만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상당히 잠을 잘 자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점심 식사 자리에서 그는 나의 수면 습관에 대해 물었다. 나는 일반적으로 내가 일곱 시간 동안 연속해서 잠을 자고, 쉽게 잠이 들며, 대부분의 밤마다 꿈을 꾼다고 말했다.
그가 이렇게 물었다. “하룻밤에 몇 번이나 잠에서 깨나요?” 나는 하룻밤에 서너 번 잠에서 깨는데(대개는 소변을 보기 위해서다), 그럴 때도 거의 언제나 곧바로 다시 잠들곤 한다.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잠이 중단된다는 건 전혀 좋은 게 아닙니다. 수면 시간만큼이나 수면의 질도 중요합니다.” 그렇게 중간에 잠을 깨면 렘(REM) 수면보다 더 깊이 잠드는 상태인 ‘숙면(deep sleep)’이나 ‘서파수면(slow wave sleep)’에 빠져드는 시간이 줄어든다. 참고로 나는 늘 렘수면을 질 좋은 잠자리의 척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의 건강에 있어서는 렘수면만큼이나 숙면도 중요해 보이는데, 숙면 시간은 나이가 들면서 점차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
수면 위기를 초래하는 유일한 원인이 카페인은 아니다. 각종 스크린, (카페인이 숙면을 방해하는 것처럼 렘수면을 어렵게 만드는) 알코올, 의약품, 업무 스케줄, 소음과 빛 공해, 불안감 등이 수면의 지속성과 품질 모두를 떨어뜨리는 데에 나름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카페인에는 독특하게 음흉한 측면이 존재한다. 카페인은 수면 부족을 일으키는 주요한 원인이지만, 동시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존하는 주요한 도구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가 섭취하는 카페인의 대부분은 바로 그 카페인이 유발한 질 나쁜 수면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카페인이 일으키는 문제점을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도록 카페인이 도와주고 있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