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을 꿈꿨던 때가 있었다. 대학원 바깥에서 공부를 이어나가는 것이 상상되지 않았고,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서는 대학원이 가장 좋은 공간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대학원을 택하지 않았다. 이유는 다양했다. 생계에 대한 불안감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이 나를 덮쳤다. 인문학 공부는 ‘재미있는’ 일이었지만 ‘좋은’ 선택지는 아니었다. 재미있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믿었던 나에게 대학원 진학을 포기했던 시기는 하나의 변곡점으로 남았다.
미국의 유명 구직 앱 ‘집리쿠르터(ZipRecruiter)’가 1500명 이상의 대졸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졸 구직자 44퍼센트가 저널리즘, 사회학, 교육학, 자율전공 등의 전공 선택을 후회했다. 이들은 다시 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면 컴퓨터 공학과 경영학을 선택할 것이라 답했다. 요컨대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학계와 직장, 그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불청객이 됐다.
이 인식의 핵에는 인문과 사회과학에 대한 합의가 요원해진 시대가 위치한다. 지식인이자 인텔리로서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물음을 던지던 학생 운동 시기 인문학의 무게감은 이제 없다. 공적인 논의와 새로운 질문을 자신의 책무처럼 느끼고 대중과 만나던 공공 지식인도 어딘가로 숨은 것처럼 보인다. 덩치 큰 유령처럼 ‘인문학의 위기’는 매번 불려 나왔지만 그 빈번함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지난한 증거로만 남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을 노릇이다. 학계의 위기는 순식간의 산업의 위기가 되고, 얽히고설킨 위기는 미래를 위협한다. 우리는 스러지려는 미래를 구하기 위해 지금 여기의 학계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연구자의 입을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한 학계의 모습에는 어딘가 기시감이 들었다. 여성 연구자의 불가피한 커리어 중단, 수직적인 위계질서 속에서 대물림되는 답 없음의 감각, 설득 과정에서 나타나는 효율성을 위시한 비효율까지. 모든 대학원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문제와 닮아있었다. 오히려 사회 전체의 문제가 학계라는 좁은 공간에 응축된 형태로 남아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쩌면 학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 출발할 수 있겠다는, 작은 희망이 보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암울함의 구조를 생각하고, 문제를 언어화하고, 언어를 통해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파편으로 산재했던 다양한 문제들이 하나의 형태를 갖춘다면, 후속 세대의 플레이어들은 이 문제를 테이블 위에 올려 두고 그 다음의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한국에서 박사하기: 젊은 연구자 8인이 말하는 대학원의 현실》은 그 역할을 위해 쓰인 책이다. 대학원의 문턱 앞에서 고민하는 이, 대학원의 연구실 속에서 고전하는 이, 대학원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는 이, 심지어는 대학원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 모두에게 학계의 고민은 읽힐 가치가 있다. 학계의 문제는 사회의 이곳과 저곳, 모든 곳에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필자들은 이 작업이 잘 돼야지만 다음 세대도 문제를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다음 세대를 위해 쓰였다. 에디터인 나에게도 필자의 한 마디는 계속해서 남았다. 글도, 기술도, 연구도, 정치도, 그 어떤 것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동력을 가지고 있다. 그 소중한 힘이 낡은 제도와 인식으로 인해 가로막혀 있다면 우리는 그 장벽을 조금씩 닳게 하는 것에서 세상을 바꿀 힘을 기를 수 있다. 어떤 공간이 잘못됐다면, 그건 ‘그냥 그런 공간이라서’가 아니다. 암울한 이야기가 가득한 책이지만 어딘지 희망이 읽히는 건 그런 지점에서가 아닐까.
김혜림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