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운동장
6화

새로운 생각이 필요할 때

모두를 위한 라커룸


리아 토머스가 미디어의 지면을 달군 또 하나의 사건은 라커룸 문제였다. 여자 라커룸에서 동료 선수들에게 남성 성기를 보여줬다는 내부 고발이 제기된 것이다. 토머스와 같은 펜실베니아대학교 소속 동료 선수는 영국 《데일리메일》과의 인터뷰에서 “토머스가 남성의 성기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여성에 반응해 너무 불편하다”고 호소했다. 토머스가 여성과 데이트를 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닌다는 점도 함께 지적됐다. 또 다른 동료 역시 선수단이 토머스의 편의만 신경 쓴다며 불평했는데, 기사에 따르면 35명의 선수단 중 토머스를 지지하는 것은 2~3명에 불과했다. 공용 공간이자 사적 공간인 라커룸 문제는 토머스와 동료 선수들 간 갈등의 불씨가 됐다.

트랜스젠더 선수의 라커룸 문제는 비단 엘리트 선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2015년, 미국 시카고의 윌리엄프렘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한 트랜스젠더 학생은 자신이 선택한 성별에 따라 화장실과 라커룸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학교에 요청했으나 학교 측에서 이를 거절했다. 그렇다면 성중립 화장실이나 라커룸은 해답이 될 수 있을까? 당시 학교 측은 별도의 개인 탈의실을 제공하는 방안을 제의했으나 학생과 인권 단체 등은 이를 거부했다. 왜 이들은 개인 공간의 제공을 거부했을까?

트랜스젠더 운동선수의 라커룸과 개인 공간에 관한 한 연구는 트랜스젠더 선수들에게 라커룸 공유가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한다.[1] 과거 인종 분리 시대와 같은 차별과 고립, 낙인 효과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 영역에서 보더라도 라커룸의 분리는 트랜스젠더 선수로 하여금 동료애, 팀워크 등에 악영향을 줄 수 있고, 팀 내 문화에서 격리시킨다. 이 문제는 학교 체육에서 더 커진다. 아이들과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매우 길고 동류 집단 압박(peer pressure)이 강하다. 또래 간의 문화에 민감하다는 의미다. 거기에 교우들과의 놀이와 역할은 개인의 발달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국 웨스트버지니아대학교의 디아나 모로(Deana Morrrow) 교수에 따르면 학교는 아이들이 첫 사회 집단을 형성하고 사회생활을 배우며 자기 효능감을 발달시키는 곳이다. 어릴수록 차별과 편견에 특히 더 취약하다. 따라서 개별 공간의 배정은 올바른 선택지가 아닐 수 있다.

다만 인권과 별개로 공간의 공유는 또 다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미국 UCL A의 앤드류 플로레스(Andrew Flores) 교수와 연구진이 2015년부터 미국 성인 약 102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일반 여론의 양가적 인식을 엿볼 수 있는데, 응답자 대부분은 트랜스젠더를 위한 공공 정책이나 노동에 대한 차별금지법에 동의했다.[2] 하지만 스포츠에서는 달랐다. 스포츠 제도는 타고난 성에 의해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 중 하나로 시스젠더와 트랜스젠더가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는 점이 거론됐는데 해당 연구에서는 이것이 전통적인 성 개념에서 유래된 결과로 보인다는 견해를 냈다. 관념적으로는 트랜스젠더 인권에 동의할 수 있지만 자신의 영역과 접점이 생기는 순간 곧 ‘나’의 문제가 된다. 라커룸·화장실 논의는 이 지점에서 후퇴한다.

미국 미시간주 그랜드벨리주립대학교의 로렐 웨스트브룩(Laurel Westbrook) 교수에 따르면 사람들은 보통 화장실이나 라커룸 등 성별로 나눠진 공간에선 타고난 성에 따라 이용하기를 원했다. 이는 ‘젠더 패닉(gender panic)’에 기인한다.[3] 젠더 패닉은 다른 성별에 대한 위협 인식이나 공포감을 의미한다. 성별로 나뉜 공간에서 여성은 남성을 위협으로 느낄 가능성이 높은데 트랜스 여성과 여성 전용 공간을 사용할 경우 그 연장선에서 젠더 패닉이 온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굳이 연구를 인용하지 않아도 관련 보도가 많아 보편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문제다. 한국에서도 2021년 초 경기도 고양시에서 여장을 한 어떤 크로스드레서가 한 상가 여자 화장실을 이용하려다 신고를 당한 일도 있었다. 여성들에게 남녀 공용 화장실 혹은 성별 표기가 없는 성 중립 화장실은 젠더 패닉의 대상일 수 있다. 문제는 이 젠더 패닉을 본능의 영역에 둘 것인지, 성 소수자 혐오의 영역에 둘 것인지다.

한편으로 이런 종류의 패닉이 성 소수자에 가해진 폭력을 변호하기 위한 수단 (panic defense)으로 악용된 사례도 있었다. 2008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고작 14살의 소년이 성 소수자인 동급생을 살해했다. 가해자 브랜든(Brandon McInerney)의 변호인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성적으로 유혹하려 해 트랜스 패닉(trans panic)이 유발됐다”라는 논지를 폈다. 이 살인 사건 이후 캘리포니아주는 게이 혹은 트랜스 패닉을 재판에서 변호 논리로 이용할 수 없게 하는 법안을 제정했다. 젠더 패닉은 시스젠더와 트랜스젠더의 공간 공유에 관해 있어 중요한 쟁점이지만 이처럼 개념의 확장이나 악용에는 유의해야 한다.

라커룸 또는 화장실 공유는 트랜스젠더의 경기 참여 권리를 위해 꼭 넘어야 할 산 중 하나다. 다만 신체를 모두 노출하는 곳이기에 안전함이 요구되고 이에 따라 이미 전통적 성 관념이 굳게 자리 잡은 상태다. 트랜스젠더의 미디어 노출 빈도나 인권의 신장에 비해 이 문제가 더딘 변화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 최초 트랜스젠더 법조인인 박한희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학술 저널 《여/성이론》에 기고한 〈모두를 위한 화장실, 화장실의 평등〉에서 성 중립 화장실을 두고 일어나는 여성과 트랜스젠더의 갈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화장실에서 성별 구분을 없앴을 때 여성들이 느낄 불안은 성차별적 구조에서 계속 발생하는 성폭력의 문제에 국가와 사회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결과이다. 이런 점에서 여성들의 불안감은 개인이 극복해야 할 문제만은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별 구분된 화장실 앞에서 트랜스젠더들이 느끼는 불안감과 사용 시 겪는 차별 역시 트랜스젠더 개인의 문제는 아니다.”

즉, 사회 구조적 변화가 수반되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앞서 《데일리메일》이 보도한 토머스의 사례에서는 토머스가 일방적인 가해자로 그려진다. 하지만 많은 트랜스젠더가 여전히 정체성에 따라 라커룸·화장실 등의 공용 공간을 이용할 때 편견 어린 시선에 의해 폭력을 경험한다. 2021년 2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트랜스젠더 혐오 차별 실태 조사〉에 따르면 트랜스젠더의 40.9퍼센트가 ‘부당한 대우를 받을까 봐 자신의 성별 정체성과 다른 성별의 시설을 이용했다’고 밝힌다. 개인마다 편하게 느끼는 지점이 다르겠지만 이 책에서 논하는 것은 스포츠다. 팀 중심의 스포츠라면 라커룸에서도 동료 선수들과 함께하고 싶은 선수가 대다수일 것이다. 때로는 은밀한 편견과 고립을 견디는 것보다 차별에 맞서는 것이 나을 수 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모든 선수에게 개별 탈의 공간, 개별 화장실이 제공되는 것이다. 다만 이를 구현하기에는 경제적·공간적 한계가 있다. 대회에 출전하는 트랜스젠더 선수는 늘어나고 있고 이 문제의 포괄적 해결을 위해 사회 구조의 변화만을 기다리기엔 너무 늦다. 선수 당사자 간의 조율과 합의를 위해 더 많은 레퍼런스가 필요하다.



여론의 다이내믹


앞서 언급한 플로레스의 연구는 라커룸 문제 이외에도 눈여겨볼 구석이 많다. 예상을 비껴가는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보통 트랜스 여성 선수의 여성부 경기 참여를 떠올리면 여성이 이해 당사자기 때문에 반대 목소리가 높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연구는 반대의 결과를 보여 준다. 트랜스젠더 선수가 전환한 성별의 경기에 참여하는 것을 두고 35.6퍼센트의 여성 응답자가 긍정했고 23.2퍼센트의 남성이 긍정했다. 반대 입장은 남성 38.8퍼센트, 여성 28.5퍼센트였다. 여성의 경우 스포츠에 관심이 많을수록 트랜스젠더 선수가 바꾼 성의 경기에 참여하는 것에 부정적이었는데 그 수치는 남성 응답자의 양상과 비슷했다. 또 트랜스젠더와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트랜스젠더의 경기 참여에 호감을 표했다. 여기까지는 사회 일반의 진보적 인식과 공정성에 대한 관념이 반씩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반 여론에서 이 쟁점의 변수는 ‘스포츠에 대한 관심도’가 된다.

그런데 운동선수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변수로서 ‘응답자의 성별’이 두드러진다. 호주 모내시대학교의 연구자들은 호주 축구, 크리켓 등 약 12개의 스포츠 클럽 선수를 무작위로 설문 조사했는데 트랜스 여성 선수가 여성부 경기에서 불공정한 이득을 취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약 24퍼센트의 여성 응답자와 46퍼센트의 남성 응답자가 그럴 것이라고 답했다.[4] 이 같은 양상은 다른 설문에서도 확인된다. 23개 종목의 팀 스포츠와 투기 스포츠 클럽 선수에 대한 설문에서도, 위와 같은 질문에 39퍼센트의 여성 응답자와 65퍼센트의 남성 응답자가 트랜스 여성 선수에게 불공정한 이득이 있다고 답했다. 매우 그렇다고 답한 극단적 답변도 여성은 9퍼센트 남성은 27퍼센트였다. 언론에서는 트랜스 여성 선수와 여성 선수의 갈등이 주로 부각되지만 실제로는 남성 선수가 훨씬 부정적인 것이다.

여론의 역동성은 비단 모집단이 일반인이냐 선수냐에 따라서만 변하는 게 아니다. 스포츠 경기의 성질에 따라서도 나뉜다. 일본 나고야대학교의 치카코 타니모토(Chikako Tanimoto)와 연구진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대중들은 트랜스젠더의 생활체육 참여에는 관대하지만 엘리트 스포츠 참가에는 반대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응답자의 운동의 성취도가 높을수록, 트랜스 여성의 참여가 불공정하다는 관념적 믿음이 강할수록 뚜렷하게 나타난다.[5] 일본뿐 아니라 젠더 개념이 일찍 시작되고 널리 받아들여진 영미권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난다. 미국, 호주에서 발표된 다양한 연구에서 트랜스 여성의 엘리트 스포츠 참여 반대 비율은 성별을 불문하고 높은 편이다.

종합하자면 ‘리그 규모가 클수록’, ‘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거나 숙련도가 높을수록’, ‘남성일수록’ 반대 비율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성별에 따른 반응의 차이는 비단 남성이 더 스포츠 접근성이 크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남성은 주로 생리학에 대한 관념적 믿음을 합리화하기 위해, 여성은 사회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트랜스 여성의 여성부 경기 참여를 반대하는 것일 수 있다. 정치권이 트랜스젠더 이슈를 정쟁화하고 미디어 역시 자극적 보도가 많지만 사회 일반의 여론은 나름의 상식적 근거를 기반으로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포괄적으로 다양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다고 하여 트랜스젠더 선수의 스포츠 참여 권리가 제고될 것이라 기대하긴 어렵다. 결국 이들의 스포츠 참여를 가로막는 주요한 장벽은 사회 일반에 다방면으로 혼재된 ‘스포츠에 대한 관념적 믿음’이다. 이는 단순히 ‘남성이 여성보다 경기력이 좋을 것이라는 믿음’이라기 보다 ‘적어도 엘리트 스포츠는 공정성의 담보를 위해 어떻게든 선수의 조건을 분류해야 한다는 믿음’에 가깝다.



독립 리그 논쟁


논의는 여전히 표류 중이다. 아직 트랜스젠더 선수가 대대적으로 등장하지 않은 한국에서도, 성에 있어 진보적이라 할 수 있는 영미권에서도 각계각층이 통일된 답을 내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논쟁적인 사안임은 자명하지만 풀어나가야 할 문제는 명확하다. 이 논의가 서로를 향한 반목과 비난으로 치닫는 것이 문제다. 접근법이 다양함에도 논의가 주로 고질적인 스포츠계의 성 인식에서 출발하거나, 성 소수자에 대한 포괄적인 수용과 배제의 문법을 띠는 것이 문제다. 비단 엘리트 선수의 참여뿐 아니라 포괄적인 스포츠 접근권이 담보하는 성 소수자의 건강이 문제다. 이 쟁점에서 차별과 혐오가 쉽게 공정의 가면을 쓸 수 있는 점이 문제다.

2009년을 기준으로 미국의 트랜스젠더의 수는 인구 10만 명 당 38~147명이었고 2016년 그 수는 동 단위당 390명으로 늘었다.[6] 이를 기반으로 추정하면 2016년 미국의 트랜스젠더 인구는 약 100만 명으로 추정된다. 커밍아웃이 쉽지 않은 점, 다양성에 대한 논의가 몇 년 새 더 활발해진 점을 고려하면 현재는 훨씬 더 많은 인구가 있을 것이다. 비율은 적을지 몰라도 결코 적은 절댓값이 아니다. 이 많은 인구가 언제까지 전통적 성 구분에 따른 양성 리그에 의해 스포츠 접근권을 박탈당하게 둘 수 없는 노릇이다.

정의로운 마음은 누구라도 가질 수 있다. 다만 정의의 문법으로는 그 공고한 스포츠계의 패러다임과 맞물려 논의가 쉽게 공회전한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선언적 구호를 잠시 내려두고 트랜스젠더 선수가 스포츠 경기에 참여하기 위해 논의되어야 할 구체적인 제도, 의학적 쟁점, 미디어의 역할을 파고들었다. 정치권이나 시민 사회의 노력은 트랜스젠더의 포괄적 차별 금지를 향하고 있지만 선수의 실제 경기 참여를 위해서 IOC나 NCAA, FINA 등에서 논의되는 것은 호르몬 규정이기 때문이다. 앞부분은 대부분 기준에 관한 논의였다. 그렇다면 논의의 주제를 대안으로 바꿔보자. 이 연장선에서 논해볼 수 있는 것은 ‘트랜스젠더 독립 리그’다.

여성의 인권 신장과 함께 여성 리그가 탄생할 수 있었듯 트랜스젠더 인구의 증가와 젠더 개념의 폭넓은 인정은 독립 리그 창설의 근거가 될 수 있다. 다만 앞서 소개한 BBC 스포츠 데스크에서 조안나 하퍼와 로스 터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독립 리그가 필요하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하퍼는 기본적으로 제3의 리그가 유효할 수 있음을 긍정했다. 그러나 역시 인구 비율을 문제 삼았다. 남성 49.5퍼센트, 여성 49.5퍼센트가 존재한다면 트랜스젠더 인구는 1퍼센트 미만인데 이 숫자로 단독 리그를 구성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그는 국가별 차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트랜스젠더 팀을 구성할 수 있는 국가는 한정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마다 트랜스젠더의 수도 다르고 문화적 차이도 있다.

터커의 논지도 비슷하다. 트랜스젠더 독립 리그 창설이 곧 지향점이 되어야 하며 미래에는 가능할 것이라 말하지만 역시 인구 비율을 문제 삼는다. 특히 이것이 또 하나의 차별 근거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아직도 어떤 국가에서 트랜스젠더 자체를 범죄화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세계가 아직 독립 리그에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퍼는 엘리트 스포츠에서 의미 있는 경쟁을 즐길 수 있도록 리그 구성의 범주를 재설정한다는 점에서는 긍정했다. 가령 스포츠를 갑자기 성 구분 없이 치르게 되면 현시점에서 많은 여성 선수의 보호가 어려워진다. 현재 여성, 남성 리그로 각 리그의 범주를 축소한 것은 해당 범주 내 어떤 선수와도 의미 있는 경쟁을 즐길 수 있도록 합의가 이뤄진 결과다. 그것이 남성이 여성 리그에서 메달을 획득하거나 프로 스포츠 계약을 따내는 것이 불가한 이유다. 지금의 양성 리그가 적절한 범주의 설정으로 여겨져 왔기에 트랜스 여성 선수가 어떤 리그에서 뛰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주로 ‘불공정한 이득’을 상쇄하는 방향으로 논의돼왔다. 즉, 하퍼의 말은 성별 이분법을 뛰어넘는 새로운 범주의 논의가 있다면 유의미하다는 의미다.

뉴질랜드 오타고대학교의 린리 앤더슨 교수는 색다른 대안을 제시했다. 바로 패럴림픽대회에서 차용한 다면적 알고리즘 방식이다.[7] 이 방식은 사람 간의 차이를 구분하여 공정하고 모든 운동선수에게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패럴림픽은 장애인 급수나 의학적 상태 대신 선수 기능에 의한 알고리즘 즉 활동 제한 범위를 다룬다. 페럴림픽은 크게 세 가지 순차적인 과정을 통해 특정 스포츠 참가를 결정하는데, 첫째는 영구 장애 여부다. 패럴림픽 참가를 결정하는 첫 관문이다. 시각 장애, 지적 장애, 근육 장애 등 10가지 장애등급으로 나눈다. 둘째로는 종목 참가를 위해 손상 기준을 판단하여 특정 스포츠 기초 수행 능력을 판단한다. 예를 들면 팔다리의 절단 정도에 따른 기능 저하 측정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손상 기준을 통해 참여 등급을 결정한다. 장애 등급에 따라 특정 스포츠 참여 등급을 결정하는 과정이다.

간단하게 페럴림픽의 알파인 스키를 예로 들어 보자. 우선 알파인 스키 참가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고 장애 종류 즉 상체, 하체, 시각 등으로 분류한다. 둘째 장애 종류에 따라 선수의 기초수행능력을 평가한다. 셋째, 상체 장애 정도(한쪽 또는 양쪽 절단) 하체 장애정도(한쪽 또는 양쪽 절단) 상체 하체 절단 등의 기준을 참여등급을 결정한다. 패럴림픽 모델을 기준으로 한 앤더슨 교수의 알고리즘은 타고난 신체 능력은 배제하고 기술, 파워, 심리, 지구력 등의 요소를 고려한다. 또 운동 수행 능력에 요구되는 생리적 사회적 요소를 첨가한다. 스포츠 과학에서 논의되었던 테스토스테론 수치와 선수가 거주했던 지역의 환경 및 사회 경제적인 요소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분류 체계가 매우 꼼꼼하기 때문에 후천적 노력에 의한 경기 구성이 가능해진다. 앤더슨 교수는 트랜스젠더 선수들의 참여를 논하기 위해서는 기존 시스템에 합류시키는 것보다 더 나은 환경을 조성하고 합류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성별 이분법을 벗어난 일련의 대안이 시사하는 바는 ‘새로운 범주화’의 가능성이다. 다만 현재 가장 많은 언급이 이뤄지고 있는 독립 리그조차 풀어야 할 문제가 산적해있다. 무엇보다 독립 리그가 차별 리그로 변질하면 안 된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차별 정서인 ‘원 드롭 룰(One Drop Rule)’의 폐해가 반복될 수 있다. 인종 차별이 존재하던 미국에선 흑인과 라틴계로 구성된 별도 리그가 존재했다. 선수들은 경기장을 빌리는 동안에도 라커룸과 샤워실 사용이 금지되었다. 지금 트랜스젠더 선수들이 겪는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독립 리그에 비해 더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 앤더슨 교수의 대책은 스포츠를 이분법적 사고가 아닌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바꾸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특이점(Singularity)’이라 할 수 있지만 과연 세계가 남성과 여성조차 구분 없이 경기하는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1]
George B. Cunningham, Erin Buzuvis and Chris Mosier, 〈Inclusive Spaces and Locker Rooms for Transgender Athletes〉, 《Kinesiology Review》, 7(4), 2018.
[2]
Flores, A.R. et al., 〈Public Attitudes about Transgender Participation in Sports: The Roles of Gender, Gender Identity Conformity, and Sports Fandom.〉, 《Sex Roles》, 83, 2020., pp. 382–398.
[3]
Westbrook, L., Schilt, K., 〈Doing Gender, Determining Gender: Transgender People, Gender Panics, and the Maintenance of the Sex/Gender/Sexuality System.〉《Gender & Society》, 28(1), 2014., pp. 32–57.
[4]
Erik Denison and Richard Pringle, 〈Majority of female athletes support the inclusion of transgender women〉, 《The Sydney Morning Herald》, 2022.04.19.
[5]
Chikako Tanimoto and Koji Miwa, 〈Factors influencing acceptance of transgender athletes〉, 《Sport Management Review》, 24(3), 2021., pp. 452-474.
[6]
Meerwijk EL and Sevelius JM., 〈Transgender Population Size in the United States: a Meta-Regression of Population-Based Probability Samples〉, 《Am J Public Health》, 107(2), 2017.
[7]
Anderson L, Knox T and Heather A., 〈Trans-athletes in elite sport: inclusion and fairness〉, 《Emerg Top Life Sci》, 3(6), 2019., pp.759-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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