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션F는 세 공간으로 나뉜다. 스타트업의 업무 공간인 크리에이트 존(Create Zone),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쉐어 존(Share Zone), 식당과 펍(pub)이 있는 휴게 공간 칠 존(Chill Zone)이다. 크리에이트 존은 스타트업의 업무 환경을 보장하기 위해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한다. 쉐어 존 또한 입주 기업이 방문 등록을 해야 출입할 수 있다. 라 펠리시타(La Felicita)라 불리는 칠 존은 누구에게나 개방돼, 피자와 수제 맥주를 즐길 수 있는 파리의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2019년에는 창업자 6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아파트 3개 동 규모의 숙소 ‘플랫메이트(Flatmates)’와 24시간 레스토랑이 완공된다. 스테이션F는 외국인 창업자가 파리를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창업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스타트업 생태계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모두 갖춘 스테이션F의 서비스는 스타트업 지원의 총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테이션F의 운영을 총괄하는 록산느 바르자(Roxanne Varza) 디렉터는 플랫메이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외국인 창업자의 다수가 프랑스에서 살 집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프랑스 정부는 외국인 창업자를 경제 활동 인구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안정적인 소득이 없는 경우로 분류되면 주택을 구하기 매우 어렵다. 그래서 창업에만 집중해도 부족할 때에 시간을 허비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스테이션F는 창업자가 주거에 대한 걱정을 덜고, 사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살 집을 제공하려 한다.”
스테이션F는 입주 기간에도 여유를 둔다. 스테이션F의 자체 엑셀러레이션 프로그램인 ‘파운더스 프로그램(Founders Program)’에 선발되면 무기한 입주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월 195유로(24만 8000원)의 참가비를 내면 크리에이트 존의 데스크 한 개와 스테이션F의 모든 시설을 24시간 이용할 수 있다. 파트너사의 인큐베이팅·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3~6개월 동안 진행되지만, 기업이 원하면 1년 이상 혜택을 준다. 다수의 스타트업 육성 기관이 1~3개월의 기간 제한을 두고 성장에만 집중할 때, 스테이션F는 창업자가 프랑스, 유럽에 안착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단기적인 성장이 아닌, “제대로 된 육성”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 스테이션F 관계자의 설명이다.
1년에 한 번 진행되는 파이터스 프로그램(Fighters Program)은 난민, 저소득층 출신 창업자에게 투자 유치와 컨설팅을 무료로 제공한다. 파운더스 프로그램과 입주 지원 전형만 다를 뿐, 제공되는 교육 내용은 동일하다. 훌륭한 기업가들은 대개 화려한 졸업장과 특권을 누리며 성장한다. 파이터스 프로그램은 소외 계층 창업가들이 기업가 정신에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돕는다는 점에서 스테이션F가 추구하는 톨레랑스의 가치를 잘 보여 준다. 설립자 자비에르 니엘은 스테이션F 구상 단계부터 잡화점 청소부 아르바이트를 했던 얀 쿰(Jan Koum) 페이스북 왓츠앱 사업 부문 책임자, 관광객을 대상으로 통역 돈벌이를 했던 마윈(馬雲) 알리바바 그룹 회장과 같은 사례를 만들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스테이션F는 웹사이트의 지원하기(apply) 코너에 자유와 예외의 가치를 명시하고 있다. 창업가들이 입주 지원서를 쓰기에 앞서 스테이션F의 문화를 미리 파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스테이션F가 웹사이트에 명시한 원칙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기업가의 독립심을 믿는다. 정해진 멘토도 없고 의무적인 미팅도 없다.”, “이노베이션은 정형적이지 않다. 당신의 스케줄에 따라서 프로그램을 짜라.”
네이버는 스테이션F 개관과 동시에 파트너십을 맺고, 스타트업 육성 공간 ‘스페이스 그린(Space Green)’을 열었다. 네이버는 이곳을 컨슈머 인터넷 스페이스(Consumer Internet Space)로 정의한다. 소비자를 위한 인터넷(IT) 기술로 분류되는 가상현실(VR), 이커머스(e-commerce), 사용자 제작 콘텐츠(UGC·User Generated Content), 메시징 등에 특화된 스타트업이 이곳에서 활동한다. 네이버는 최소 6개월 입주를 보장한다. 입주 스타트업이 원하면 그 이상 체류할 수 있고, 중도 탈락은 없다. 스페이스 그린에서 활동 중인 뷰티 기업 마이 홀리(My Holy)는 스테이션F 선정 ‘최고의 초기 단계 스타트업(Best Early Stage Startup)’으로 뽑혔고, e스포츠 기업 팀 바이털리티(Team Vitality)는 펀딩 금액 2000만 유로(250억 원)를 돌파해 스테이션F의 투자 유치 기록을 경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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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데이는 스타트업 육성의 종착역이 아니다
스테이션F 캠퍼스를 둘러보던 중 마스터 스테이지(Master Stage)를 발견했다. 쉐어 존 한복판 광장에 위치한 공간이다. 안내를 맡은 직원 마에바(Maeva)는 데모데이가 열리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투자자를 초청해 사업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투자를 유치하는 데모데이는 스타트업 육성의 최종 단계로 꼽힌다. 스테이션F가 스타트업의 데모데이를 어떻게 지원하는지 물었다. 그런데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는다”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데모데이는 필수가 아닌 선택이며, 스테이션F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데모데이를 지원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록산느 바르자 디렉터는 “모두가 원하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한다. “많은 창업자가 데모데이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솔직히 우리도 같은 생각이다. 스타트업 멤버들은 데모데이를 단지 피치
[4] 훈련 과정으로 여길 뿐, 유용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데모데이가 펀딩으로 직결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투자자들 역시 데모데이 한 번으로 유니콘을 발견할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데모데이를 반드시 열어야 할까? 스테이션F는 어떠한 데모데이도 주최하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알아서 조직할 것을 권한다. 데모데이 대신 스타트업이 진정 집중해야 할 것에 힘을 쏟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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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기업에 투자하는 빌리지 캐피털(Village Capital)의 로스 베어드(Ross Baird) 공동 창업자는 바르자 디렉터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의 기고문은 참고할 만하다.
[6] “빌리지 캐피털은 지난 7년간 75회의 데모데이를 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데모데이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데모데이는 창업자들이 투자자들을 만나고 자금을 유치하는 것을 돕는 활동이다. 그런데 우리 기업들에게 투자자들을 어디에서 만났느냐고 물었더니, 데모데이라고 답한 기업이 거의 없었다. 데모데이는 창업자들이 필요로 하는 자금을 얻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투자자와 스타트업 생태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데모데이라는 시스템은 투자자의 시야를 좁힌다. 데모데이는 피치를 잘하는 기업을 돋보이게 할 뿐, 진짜 잠재력이 있는 기업을 선별하기에 좋은 방법이 아니다. 정말 좋은 투자는 피치가 아닌 관계(relationship)에 집중할 때 발생한다.”
창업자가 직접 짜는 성장 커리큘럼
스테이션F 입주 스타트업은
육성 프로그램을 골라 듣는다. 캠퍼스 입주 후 커리큘럼을 짜는 게 아니라, 지원 단계부터 자신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선택한다. 대학교의 수강 신청처럼 사업 분야, 성장 단계, 타깃 고객 등 세부 항목을 꼼꼼히 따져 필요한 프로그램을 고르면 된다.
육성 프로그램은 스테이션F가 자체 운영하는 파운더스 프로그램과 파이터스 프로그램, 파트너사가 운영하는 프로그램까지 30여 개가 있다. 성장 단계에 따라서도 20여 개 선택지가 주어진다. 스테이션F 스태프, 파트너 기업 관계자, VC와의 미팅도 자유롭게 잡을 수 있다. 스타트업이 원하는 VC가 캠퍼스 내에 없다면 스태프가 VC 커뮤니티를 통해 모임을 주선한다.
창업자에게 프로그램 선택의 자유를 주는 이유에 대해 록산느 바르자 디렉터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창업자들은 프로그램을 직접 고르는 것에 만족한다. 저마다 다른 30여 개의 프로그램 중 어떤 프로그램이 자신의 기업에 적합할지 고심한다. 프로그램을 배치해 준다면 오히려 반응이 좋지 않을 것이다. 창업자가 자신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툴도 개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