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멸종의 이유
완결

대멸종의 이유

네안데르탈인은 우리 인류보다 강했다. 그러나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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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보다 강했던 그들


우리 현생 인류의 초기 조상들이 약 4만 5000년 전에 유럽으로 이주했을 당시에 네안데르탈인은 이미 멸종 위기에 처해 있었다. 5000년이 조금 더 지나자, 단 한 명의 네안데르탈인도 남아있지 않았다. 우리 인류의 가장 가까운 사촌이 멸종한 것에 대하여 혹시 우리가 직접적으로 책임이 있는지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의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는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다.

네안데르탈인의 유골은 1856년 독일 뒤셀도르프 인근의 네안데르(Neander) 계곡에서 발견되었다. 이후 우리는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이미지를 그려 왔는데, 전통적으로 그들이 고등한 유인원 이상으로 묘사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지금은 인류의 가장 가까운 사촌인 그들에게 생각보다 우리와 많은 공통점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발굴에 의해 네안데르탈인이 도구와 장신구를 만들 수 있을 만큼 지적이었으며 고도로 진화한 수렵인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실제로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의 유전체는 99.7퍼센트 일치한다. 우리가 불과 50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공통의 조상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는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 그리고 진화론의 관점에서도 그 정도는 순식간이다.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갈라진 이후, 호모 사피엔스 계통은 비교적 최근까지 아프리카에 남아 있었다. 반면 네안데르탈인은 훨씬 더 일찍 유라시아로 이주하였다. 두 종은 4만 5000년 전에 마침내 유럽에서 재회하는데, 당시 네안데르탈인들은 새로운 이웃을 과소평가했을 것이다. 연약한 유인원이었던 호모 사피엔스는 그들보다 키가 크긴 했지만 더 말랐으며,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재잘거리고 있었다.

네안데르탈인은 우리 호모 사피엔스보다 훨씬 더 강했다. 그들의 근육 조직은 매우 고도로 발달해 있어서, 때로는 그들의 유골이 근육의 무게에 눌려 굽은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그들의 두드러진 코는 얼굴을 앞으로 끌어당기는 효과가 있었다. 이는 들이쉰 공기를 따뜻하게 데워서 추운 기후에서의 생존력을 높이기 위한 진화적 적응이라고 여겨진다. 그들의 다부진 몸통과 짧은 팔다리는 북극권의 고위도 지역에 거주하는 현대 인류의 체격과 비슷하다. 둘 다 신체의 표면적을 줄이고 추운 환경에서 열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적응했을 가능성이 크다.

네안데르탈인들은 현대의 북유럽 사람들보다 다섯 배나 더 긴 시간 동안 북위도 지역에 살면서 푸른색 또는 초록색 눈, 그리고 흰 피부와 밝은 머리카락의 적응 형질을 발달시켰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리고 그들은 채집보다는 수렵 활동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소비했을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의 유골을 화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탄소와 질소의 동위원소 함량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게 나타났는데, 이는 최상위권의 육식성 포식자에게서 보이는 전형적인 특징이다. 그리고 네안데르탈인 유적지의 인근에는 동물의 뼈들이 대량으로 쌓여 있는 경향이 발견된다.

네안데르탈인은 매복해서 공격하는 완성형의 포식자였는데, 그들은 털로 뒤덮인 매머드를 쓰러트리기 위해 서로 협업을 하고 전략적으로 사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발성 통로(vocal tract)를 재구성하기 위한 연구에 의하면 그들은 현생 인류가 가진 발성 능력의 최소한 25퍼센트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이는 효과적인 원생 언어(protolanguage)[1]를 충분히 만들어내고도 남는 수준이다.

두터운 눈썹 돌출부나 커다란 비강(鼻腔)도 특이하지만, 그들의 가장 확실하면서도 두드러지는 특징은 두개골 뒤쪽의 독특한 함몰 부위이다. 네안데르탈인은 수십만 년 동안 북웨일스부터 유라시아를 가로질러 시베리아까지 뻗어 나갔다. 심지어 현대의 중국 국경에까지도 이르렀다.



2. 네안데르탈인의 대멸종


그렇다면 네안데르탈인들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걸까? 그들이 거주지로 삼았던 동굴 유적지는 뼈가 보존되기에 아주 적합한 장소였다. 따라서 고고학 발굴이 새로 이뤄질 때마다 새로운 단서들이 나온다. 지금까지 1000명이 넘는 네안데르탈인의 유해로부터 확보한 화석 기록은 우리에게 네안데르탈인의 종말을 초래한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한 힌트를 제시해 준다.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은 단독적인 사건일 가능성이 적다. 오히려 수천 년에 걸쳐서 펼쳐진 다양한 요인들이 연관된 복잡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은 유럽의 다양한 지점에서 서로 다른 시기에, 각 장소마다 서로 다른 지역적인 이유로 죽어갔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기후 변화였을 가능성이 크다. 약 5만 년 전에 발생한 지구의 갑작스러운 냉각은 생태계를 교란시켰을 것이고, 그들이 사냥하던 중대형 포유류들의 생존을 압박했을 것이다. 그 시점부터 이후 약 1000년 동안 지속된 극적인 한파는 그들이 서서히 멸종해 가던 시기와 일치한다.

네안데르탈인의 인구는 줄어들었으며, 그들은 생존을 위해 점점 더 멀리 떨어진 중점 지역으로 퇴각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의 종으로서 네안데르탈인은 육식성 식단에 과도하게 의존했던 것으로 여겨지는데, 기존의 사냥 기법을 기후 변화에 맞게 적응시키지 못하면서 결국 도태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우리 현생 인류의 초기 조상들이 생존하는 방법을 찾아냈다면, 네안데르탈인은 왜 그러지 못하고 새로운 환경 변화에 적응할 수 없었던 것일까? 네안데르탈인은 돌을 다루는 재주가 분명히 뛰어났다. 하지만 수십만 년에 걸친 유적지에서 발견된 석기들에서는 기술적 발전의 징후를 거의 볼 수 없다. 이는 네안데르탈인이 위대한 혁신가는 아니었을 것이라는 이론에 힘을 실어준다.

이와 동일한 정체와 침체의 시기가 약 10만 년 전까지 아프리카에 있었던 우리의 호모 사피엔스 선조들에게도 있었던 것은 명백하다. 그러다 호모 사피엔스는 ‘인지 혁명(cognitive revolution)’ 또는 지적인 ‘대약진(great leap forward)’이라고 불리우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아마도 언어 및 개념화 능력이 갑작스럽게 발달했기 때문일 것이다.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의 고고학자인 스티븐 셰넌(Stephen Shennan)은 우리 현생 인류의 초기 조상들이 더욱 커다란 집단으로 살기 시작하면서 발전된 사교 기술과 인지 능력이 요구되었고, 이로 인해 문화 혁신의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가속화되었다고 설명한다. 옥스퍼드대학교의 인류학자인 로빈 던바(Robin Dunbar)의 연구는 그의 이론을 뒷받침한다.

던바의 연구는 다양한 종의 영장류들이 구성원의 규모에 있어서 최적의 수치에 도달하고 나면 기존의 계층 체계와 관계가 와해되면서 경쟁 집단으로 갈라지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던바는 현대의 인류가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인간관계의 규모가 150명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것으로 유명하다. 효율적인 기업과 시골 마을, 효율적인 부대 단위와 개인적인 소셜 미디어 네트워크의 최적화된 규모가 150명인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150명의 사람들로 구성된 공동체는 우리 현생 인류의 초기 조상들을 강력한 세력으로 만들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던바의 말에 의하면, 우리의 진정한 힘은 언어가 우리의 친구들이나 경쟁자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모으고 서로 공유하기 위해 발전한 방식에서부터 나온다고 한다. 그의 ‘뒷담화 이론(gossip theory)’은 인간 언어의 발달을 스토리텔링을 위한 진화적 적응으로 바라본다. 뒷담화는 더욱 커다란 집단의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데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꾸며낸 이야기와 예술적 창작물을 태동시켰다. 무엇보다도 당장 우리의 눈앞에 있지 않은 것에 대하여 논의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주었다.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의 베스트셀러인 〈사피엔스(Sapiens)〉에서는 던바의 뒷담화 이론을 활용하여 우리가 지구를 물려받을 수 있었던 진정한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우리 인간은 이야기를 말할 수 있고, 추상적인 용어로 생각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 덕분에 지구를 점유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꾸며낸 이야기와 신화는 던바가 말하는 150명의 한계를 넘어서서 각자 분산되어 있었던 인류의 공동체들을 부족 간의 혁신과 귀중한 교역 네트워크 및 종교를 공유하는 하나의 복잡한 문화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결국에는 수백만, 심지어 수십억 명의 인구를 가진 국민국가를 형성할 수 있었던 사상의 핵심적인 토대가 되었다.

하라리는 책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사람들이 지어내서 서로 들려주는 이야기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류 공동의 상상력 바깥에서는 우주의 신도, 국가도, 돈도, 인권도, 법률도, 정의도 존재하지 않는다.”

초기의 현생 인류가 이미 장거리 교역 네트워크를 만들었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도 있다. 이는 예기치 못한 갑작스러운 식량 부족이 그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경우, 그들을 기근으로부터 보호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반면 초기 현생 인류가 유럽에 당도하기 전에 유럽에서는 네안데르탈인 공동체들이 드문드문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서로 분산되어 고립된 매우 작은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었는데, 이는 그들의 기술적 발전이 지연된 이유를 설명해 준다.

최근에 더욱 발전한 네안데르탈인 유골에 대한 DNA 분석 역시 흥미로운 결과들을 내놓고 있다. 1980년대에 크로아티아의 어느 동굴에서 발견된 뼈들은 5만 2000년 전에 살았던 또 다른 네안데르탈인 여성의 것이었다. 놀랍게도 이는 유전적으로는 12만 2000년 전에 시베리아에 살았던 또 다른 네안데르탈인의 것과 비슷했다. 두 명의 네안데르탈인은 지리적으로는 거의 6400킬로미터, 시간적으로는 7만 년이나 동떨어져 살았지만 유골에 있어서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적인 다양성이 낮은 것이 그들의 멸종에 기여했다는 이론을 뒷받침한다.

반면 덴마크대학교가 수행한 최근의 연구는 동시대의 초기 현생 인류가 유전적으로 훨씬 더 다양했음을 발견했다. 이는 고대 인류가 훨씬 더 거대한 네트워크 공동체 속에 살았으며, 이런 특성이 그들의 성적 파트너, 유전자, 아이디어를 더욱 규칙적으로 교환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이론을 뒷받침한다.

유전적 다양성이 높다는 것은 또한 감염성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더욱 키워주었을 것이며, 전체적으로 그들을 더욱 성공적인 종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현생 인류의 초기 문화에서는 근친상간이 금기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체에서는 근친 교배의 비율이 훨씬 더 높게 나타난다. 이는 고립된 공동체에서 사는 경향 때문이었을 것이다.[2]

대부분의 인류 고고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이 상당히 정교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을 거라고 본다. 하지만 그들은 문화적으로 편협했기에 다른 네안데르탈인 집단을 만나더라도 언어적 장벽으로 인해 교류를 확산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의 조상들이 네안데르탈인에 비해서 우위를 점했던 것은 교류에 대한 성향만은 아니었다. 아프리카에서의 ‘인지 혁명’ 기간에 우리 선조들의 두뇌에서는 양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이것은 그들이 적대적인 환경에서도 더욱 잘 생존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반면 네안데르탈인은 유럽에서 따로따로 살아갔고 그들의 두뇌에서는 두정엽(頭頂葉)과 소뇌가 덜 발달되었다. 이는 도구의 사용, 창의성, 문제 해결, 고차원의 개념화를 담당하는 부위이다. 우리 선조들이 기후 변화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결국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더욱 풍부한 지력을 가진 혁신자였기 때문이다.

바느질 자체는 혁명적인 기술로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천 짜기와 같은 관련 기술들 덕분에 우리는 그물과 올가미와 덫을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이용하여 초기의 현생 인류 공동체에서는 나이가 어리거나 많은 사람들도 좀 더 작은 포유류들을 사냥해서 단백질이 풍부한 다양한 먹거리들을 가져왔을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계속해서 발사하는 무기를 사용하여 먼 거리에서 동물을 사냥하는 지능적인 방식을 개발했으며, 나중에는 화살과 활도 만들어냈다. 반면에 네안데르탈인은 가까이 매복하여 공격하는 사냥에 여전히 지나치게 집착했는데, 이는 상당한 위험이 따르는 방식이었다.



3. 경쟁, 혹은 공존


이후에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적지에서도 더욱 정교한 기술들에 대한 증거들이 보이기는 한다. 그런데 이는 그들이 멸종하기 직전이었다.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선사시대 분야 명예교수인 폴 멜라스(Paul Mellars)가 제시한 이론에 따르면, 그들은 새로운 이웃인 우리 인류를 모방하기 시작했던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혁신의 측면에서 보자면 그것은 사례도 너무 적고 시기도 너무 늦었을 것이다. 프랑스 남부에 있는 인류의 유적지와 네안데르탈인 유적지의 인구 밀도를 비교한 멜라스의 연구는 상당히 흥미롭다. 겨우 수천 명의 현생 인류가 유럽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그들의 인구가 네안데르탈인보다 10대1의 비율로 더 많았다는 것이다.

인류학자인 패트 쉬프먼(Pat Shipman)은 해부학적인 측면에서 이를 바라본다. 초기의 인류는 키가 크고 날씬했으며 신진대사가 낮았던 덕분에 험난한 환경에서 생존하는 데 필요한 열량이 더 적은 에너지 효율적인 수렵채집인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장거리 오래 달리기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우월성 역시 경쟁자인 네안데르탈인을 능가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이 능력은 늑대를 길들여서 사냥감을 더욱 효과적으로 추적하고 다른 포식자들로부터 귀중한 고기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최근에 더욱 발전된 방사성탄소 연대 측정법에 의하면, 약 4만 5000년 전에 유럽에서 현생 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이 2600년 내지 5400년 동안 서로 공존하고 있었으며, 그 신뢰도는 95퍼센트라고 한다. 우리의 선조가 유럽에 도착한 이후 그들이 그토록 빠르게 사라졌다는 사실은 우리가 어쩌면 그들의 멸종을 재촉했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네안데르탈인의 소멸은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이며, 우리에게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믿는 이들도 있다.

매우 유사한 두 개의 포식종이 같은 공간에서 무한히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생활 공간과 동굴 주거지, 사냥감 등을 놓고 경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개체수가 매우 작았던 데다 원시 인류의 수가 100제곱킬로미터당 한 명에 불과했을 것이라는 추정을 고려하면, 그들이 공존을 하거나 지속적으로 경쟁하거나 심지어 서로 만났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했을 것이다.

적어도 잠시나마 겹치는 시기는 있었다.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네안데르탈인과 초기 현생 인류는 완전히 별개의 존재로 살았다고 여겨졌지만, 2014년에 진화 유전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이 완전히 멸종한 것은 아니라고 발표함으로써 과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현생 인류의 유전체 분석에 의하면, 현재 살고 있는 인류 가운데 사하라 사막 남쪽의 아프리카 혈통이 아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유전자에 네안데르탈인의 DNA를 조금씩은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서로 얽히고설킨 역사에서 초기 인류가 네안데르탈인과 교류할 때마다 분명히 이종 교배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 세계의 우리들 가운데 상당수의 몸 속에는 약간의 네안데르탈인이 존재하는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의 작품으로 분석되는 스페인 중서부 말트라비에소 동굴 벽화 ©Adobe Stock

새로운 고고학적 발견들은 네안데르탈인의 문화가 수준이 높았음을 보여주는 희미한 힌트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언어와 지적 발달의 측면에서 보자면 상징적 표현이 중요하다. 막스플랑크진화인류학연구소(MPIEVA)가 우라늄-토륨 연대 측정법을 사용하여 수행한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네안데르탈인은 현생 인류가 처음으로 유럽에 도착하기 2만 년 전에 이미 스페인에서만 세 군데의 다른 장소에 동굴 벽화를 만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네안데르탈인이 정말로 상징적인 생각을 서로 공유하고 있었다면, 그들의 새로운 이웃인 현생 인류와는 인지적으로 거의 구분할 수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즉, 인지적인 교류가 일어날 수 있고 이종 교배도 가능했을 것이다. 아마도 진화에 있어서 네안데르탈인들은 우리보다 불과 3만년 정도 뒤쳐져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들은 우리의 아프리카 선조들이 10만 년 전에 이뤄냈던 것과 같은 인지적 대도약을 완성하기 전에 사멸했을 것이다.

건장하고 두터운 눈썹을 가졌던 우리의 사촌 네안데르탈인은 그들의 신체적인 우락부락함 때문인지 원시적인 동물로 오해되어 왔다. 하지만 그들 역시 마음 따뜻한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네안데르탈인 유해에서는 사냥하다 입은 끔찍한 부상이 죽음을 맞이하기 아주 오래 전에 치료된 흔적들을 볼 수 있다. 이는 그들이 다친 사람들을 보살폈으며, 그렇게 치료 받은 이들은 오랫동안 집단 생존에 기여했음을 의미한다. 초기의 현생 인류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땅에 묻었다. 이는 사후 세계를 위해 그 시체를 보존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3] 나중의 네안데르탈인 매장지에는 확실하게 부장품이 들어 있었고, 이라크의 매장지 한 곳에는 심지어 고급 꽃가루가 발견되었다. 이는 그들이 꽃과 함께 묻혔다는 것을 의미한다.
[1]
영어사전에 의하면 ‘protolanguage’의 뜻이 ‘공통 기어(基語)’ 또는 ‘조어(祖語)’라고 나오는데, 여기에서는 ‘원생 언어’ 또는 ‘원시 언어’라고 번역하는 게 더 정확하다. – 역주
[2]
근친 교배는 유전적 다양성을 낮추는 요인이다.
[3]
사후 세계에 대한 추상적 형태의 믿음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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