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는 대단했다. 다른 지역 교수와 대학생들까지도 이 게임을 플레이해 보기 위해 MIT에 방문했다. 이는 미국의 IT 산업을 바꿀 혁명의 시초였지만, 게임이 상용화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가장 시급한 것은 비용이었다. 시장에는 비싼 공학용 컴퓨터가 아닌 저렴한 보급형 제품이 필요했다. 〈스페이스워!〉를 개발했던 컴퓨터 ‘PDP-1’은 ‘덱(DEC)’에서 1959년 선보인 천공 테이프 기반의 미니컴퓨터다. 730킬로그램의 육중한 무게에도 ‘미니’로 불린 이 컴퓨터는 당시 가격은 12만 달러, 한화 약 1억 5000만 원의 가격을 자랑했다.
1971년 9월 개발자 빌 핏츠(Bill Pitts)와 휴 턱(Hugh Tuck)은 ‘PDP-11/20’ 용 게임을 선보인다. 이 기기는 가격과 기체 크기 등을 줄인 새로운 형태의 미니컴퓨터였다. 비행기 레버와 흡사한 레버 두 개와 여섯 개의 옵션 버튼, 그리고 동전 투입구가 디스플레이 양쪽에 마련돼 있었다. 이 게임이 바로 최초의 동전 투입식 게임기 〈갤럭시 게임(Galaxy Game)〉이다. 〈스페이스워!〉와 흡사하지만, 게임적 요소가 더욱 강했다. 단순 공격뿐 아니라 유도탄과 같은 요소가 있어 승리하기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했다. 둘 다 상용화는 이뤄지지 못했지만, 게임이 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빌과 휴는 자신들이 다니던 미국 스탠퍼드대학교(Stanford University)의 학생들을 상대로 홍보했고 1979년 5월, 기기를 완전히 철수하기까지 제법 많은 수익을 냈다. 공식적인 수익은 집계되지 않았다.
1971년 11월에는 놀런 부시넬(Nolan Bushnell)과 테드 댑니(Ted Dabney)가 만든 상업용 비디오 게임기, ‘컴퓨터 스페이스’를 통해 〈스페이스워!〉 리메이크 버전이 출시됐다. 컴퓨터 스페이스는 흔히 오락실 등의 특정 장소에서 화폐를 지급하고 플레이하는, ‘아케이드 게임’으로 불리는 기기의 최초 버전이었다. 테드가 동전을 넣고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을 기획했고, 놀런은 동전 투입 시 ‘1 Coin’을 확인하는 코드와 기기를 만들어 반영했다. 비싼 가격 때문에 많이 팔리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놀런은 성공 가능성을 엿봤고, 본격적인 창업에 들어섰다.
그렇게 탄생한 업체가 ‘아타리(Atari)’였다.
미국을 삼킨 본격 상업화 게임 〈퐁〉
놀런 부시넬은 유타대학교(University of Utah) 전기공학과 재학 시절 〈스페이스워!〉를 보고 게임 산업의 미래를 내다봤다. 1972년 6월 27일, 놀런은 학업을 중단하고 테드 댑니와 함께 500달러로 아타리를 설립한다. 그들이 선보인 〈스페이스워!〉 리메이크 버전은 1500대를 판매해 3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그런데도 적자를 봤다. 놀런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더 많이 팔릴 제품이 필요했다. 두 명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는 서둘러 인재 모집에 나섰다. UC버클리(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전자공학과 출신의 앨런 알콘(Allan Alcorn)은 그렇게 아타리에 합류했다. 놀런과 앨런의 만남은 향후 게임 산업의 태동이자 경쟁의 시작으로 평가받는 게임, 〈퐁〉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1972년 11월 29일 출시된 〈퐁〉은 앨런이 만든 스포츠 게임이다. 두 개의 컨트롤러를 가진 이 게임은 탁구처럼 공을 튕겨내며 겨루는 대전 방식을 띄고 있었다. 둥근 형태의 다이얼인 노브의 회전 속도에 따라 게임 속 바가 움직였고, 공이 바 뒤로 넘어가면 점수를 획득할 수 있었다. 초기에는 몇몇 상가나 술집에서만 구매 의뢰가 왔다. 놀런과 임직원들은 직접 전단을 뿌리며 게임을 홍보했지만 큰 수확은 없었다. 놀런은 낙심했지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개발이 완료된 후 본격적인 생산과 납품이 이뤄지자 분위기는 반전됐다. 이전에 게임을 구매했던 술집과 상가, 그 주변의 가게에서 구매 문의가 쏟아졌다. 입소문을 탄 것이다. 기기 판매량은 수직으로 상승했고, 납품은 구매 문의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놀런은 흥분하는 대신 다음 수를 준비했다. 바로 〈퐁〉의 가정용 게임기 개발이었다.
아타리는 엔지니어 헤럴드 리(Herald Lee)를 영입했다. 헤럴드는 난해한 문제였던 〈퐁〉의 보드 크기를 줄이고, 게임이 칩 하나로 구동될 수 있게끔 했다. 헤럴드 리가 기기를 발전시키는 동안 외판 경험이 풍부한 진 립킨(Gene Lipkin)도 합류했다.
1974년 말, 가정용 〈퐁〉의 시제품이 모습을 드러냈다. 게임은 아케이드 〈퐁〉과 같았다. 하지만 크기는 10분의 1로 줄었고 조작은 좀 더 쾌적했다. 브라운관 TV와 연결해도 화면은 깔끔하게 출력됐다. 이제 판매만 남았다. 판매 담당 진은 당시 유명했던 백화점 ‘시어스(SEARS)’와 미팅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시어스 측은 1975년을 기한으로, 15만 대 독점 납품 계약서에 서명한다. 이제 대량 제작을 위한 시설 확충이 필요했다. 놀런은 투자 미팅 경험이 있었던 도널드 발렌타인(Donald Valentine)
[1]을 찾았다. 가정용 〈퐁〉의 성능에 놀란 도널드는 대규모 투자를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