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맞이한 2001년, 캡콤에서 출시한 〈귀무자〉가 역대 최고급 판매량을 기록하자 플레이스테이션2 판매량도 덩달아 상승한다. 〈귀무자〉는 실제 배우가 등장해 큰 화제를 모았다. 전작보다 높아진 난도의 개발 환경 때문에 개발이 지연됐던 게임들도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그란 투리스모3(Gran Turismo 3)〉를 비롯한 명작이 모두 이 시기에 나왔다. 플레이스테이션2의 판매량은 수직 상승했고 2002년 7월 일본에서만 1000만 대가, 같은 해 9월에는 전 세계 4000만 대가 판매된다. 지금까지 어떤 게임기도 하지 못한 업적을 이제 막 두 번 게임기를 내놓은 소니가 이룬 것이다. 압도적인 성과 앞에 세가는 게임기 사업 철수를 선언, 완패를 인정했다.
세가의 철수 이후, 곧바로 두 개의 게임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와 닌텐도의 게임큐브다. 소니는 미국 시장에서 엑스박스와 경쟁을 펼쳐야 했고, 일본에서는 게임큐브와 맞서야 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압도적인 자금력을 바탕으로 미국 서드 파티와 함께 블록버스터급의 대형 게임을 쏟아냈고, 게임큐브는 앙숙이었던 스퀘어와 화해하며 일본 유저 맞춤형 게임을 대거 내놨다. 하지만 이 모든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다. 플레이스테이션2의 아성은 후발 주자들이 넘어설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결국, 모든 경쟁자를 3년도 안 돼 물리친 소니는 전 세계 시장을 호령하며 게임기 산업 왕좌에 오른다. 플레이스테이션2는 2012년 기준으로 약 1억 5768만 대의 판매를 기록했다. 휴대용 게임기까지 포함하면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따라온 닌텐도DS가 있지만 이를 현재까지 이긴 게임기는 없다. 동작 인식을 내세운 닌텐도의 게임기 ‘위Wii’도 1억 대 넘게 판매됐지만, 플레이스테이션2를 이기진 못했다.
엄청난 업적을 세운 플레이스테이션2는 우리나라에서 더욱 특별하다. 소니가 직접 지사를 내고 유통한 첫 번째 게임기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시장에 맞춰 현지화가 이루어진 다양한 라인업이 함께 출시돼 큰 화제를 모았다. 소니가 시작한 게임기 직접 유통은 다른 게임기들로도 이어졌다. 이는 우리나라의 게임기 열풍을 주도했고, 게임을 잘 모르는 일반인도 관심을 가질 정도의 많은 뉴스를 쏟아 냈다. 플레이스테이션2는 2004년, 출시 2년 만에 100만 대 판매를 넘어선다. 하지만 흥행은 아쉽게도 3년 정도 짧은 시간 내 막을 내렸다. 피시방 문화의 확산과 고성능 PC의 가격 인하로 인해 상당수의 게임 유저가 온라인 게임에 빠져든 탓이다.
플레이스테이션2의 흥행은 게임기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장면이다. 소니의 압도적 성과는 여러 경쟁사를 자극했고, 이는 게임 시장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미국 시장 재탈환을 위한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했고, 닌텐도는 소니가 놓친 휴대용 게임기 시장을 공략한다. 틈새시장을 노린 고화질의 PC 게임과 온라인 기반의 게임들도 출현하며 게임 시장은 무한 경쟁에 돌입하게 된다.
다시 미드웨이로, 엑스박스
아타리 쇼크로 무너진 미국 게임 산업은 1990년대 중반, 제법 회복세를 맞는다. 그럼에도 전 세계 게임 시장은 닌텐도와 세가, 소니의 활약에 이끌려 가는 추세였다. 미국은 자신들을 대표할 게임기 하나 가지지 못한 상황이었다. 일본 기업과 경쟁하는 것은 달걀로 바위를 쳐야 하는 상황에 가까웠다. 이 시기, 마이크로소프트는 PC 운영 체제인 윈도우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다음 목표는 윈도우를 기반에 둔 거실용 종합 엔터테인먼트 허브 장치였다. 게임기보다는 PC처럼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기기에 게임이 추가되는 형태였다. 개념상 현재의 스마트폰과 비슷한 형태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야망은 거실 문화를 완전히 뒤바꾸는 것에 있었다. 1999년 3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게임기로 전 세계를 호령하고 있는 소니 그룹의 신형 기기 발표회를 접하게 된다. 이때 공개된 기기가 바로 플레이스테이션2다. 게임 외에도 멀티미디어 기능과 주변 기기를 이용한 온라인 기능까지, 어떻게 보면 마이크로소프트가 꿈꾸던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기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소니가 내던진 한 마디가 빌 게이츠의 심기를 건드렸다.
“컴퓨터를 새롭게 정의한 플레이스테이션2는 PC의 가장 큰 경쟁자가 될 것이다”
빌은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충분한 가능성을 지녔다고 판단했다. PC의 5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으로 접할 수 있는 플레이스테이션2가 전 세계 시장에 보급되면 전통적인 PC 시장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이때 마이크로소프트 내부에서는 ‘다이렉트X(DirectX)’ 개발팀과 신입 엔지니어들이 모여 하나의 실험을 진행 중이었다. 일명 ‘다이렉트 박스’로 불린 프로토타입 게임기였다. 이들은 예산을 배정받기 위해 직접 만든 프로토타입을 들고 가 퍼블리싱 사업 담당자에게 보여 줬다. 나쁘지 않은 방향이었으나 게임만 가능하다는 지점 때문에 문턱을 넘지 못했다. 마이크로소프트 내부에는 이미 종합 엔터테인먼트 허브 장치를 개발 중인 팀이 있었다. 휴대용 기기 운영 체제를 선보이며 시장에서 호평을 받던 윈도우CE 팀도 그 분야를 노리고 있었다. 팀 사이에 경쟁이 붙자 퍼블리싱 팀은 최종 결정을 빌에게 맡긴다.
빌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Steve Ballmer) 앞으로 온 세 팀은 각각 자신들의 제품에 대한 시연과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다. 게임 산업에 진출해야 한다는 임원진의 판단에 따라 ‘다이렉트 박스’가 최종 선정됐다. 프로젝트 이름은 ‘미드웨이(Midway)’였다. 태평양 전쟁 중 미국이 일본으로부터 주도권을 빼앗았던 전투인 미드웨이 해전에서 따온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프로젝트 미드웨이는 똘똘한 엔지니어들의 개발력과 상상력이 결합해 빠르게 발전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개발팀은 처음부터 게임기에 윈도우를 넣을 수 없을 것이라 예상했다. PC에 맞춰진 운영 체제는 게임을 구동하기엔 너무 무겁고 복잡했다.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빌을 비롯한 임원진에 거짓말을 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빌은 엄청나게 분노했다. 개발팀 전체를 불러 자신과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를 모독했다고 소리치며 날뛰었다. 개발팀 중 한 명이 윈도우를 게임기에 넣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조리 있게 설명했지만 격노한 빌은 심한 말로 응수했다. 회의실에는 빌의 분노만 울려 퍼질 뿐, 어떠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프로젝트 미드웨이는 내전으로 막을 내릴 판이었다. 그때 한 임원이 작게 한마디를 했다.
“그럼 소니는 어쩌죠?”
날뛰던 빌도 한숨을 쉬던 스티브도, 그리고 내내 욕만 듣고 있던 개발팀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소니가 플레이스테이션2로 거실을 차지하고 이 기기가 컴퓨터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재차 말이 이어지자 빌은 뛰던 걸 멈추고 의자에 앉았다. 빌은 스티브를 향해 “그러게 소니를 어쩌지…”라고 읊조렸다. 스티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다이렉트 박스가 없다면 마이크로소프트는 소니를 넘어설 수 없었다. 냉정함을 되찾은 빌은 아까의 일에 대해 사과한 후 프로젝트 미드웨이를 진행을 수락했다. 스티브는 개발팀에게 프로젝트 전권을 넘기고 원하는 모든 걸 지원해 주겠다고 덧붙인다. 일명 ‘밸런타인데이 학살(St. Valentine`s Day Massacre)’
[2]로 불린 이 마라톤 회의는 마이크로소프트 내부에서도 매우 특이한 경우로 기록되고 있다.
다시 정상화된 프로젝트 미드웨이는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개발을 이어 나간다. 넉넉한 예산과 충분한 팀원이 더해지자 개발은 속도를 냈고 1년을 조금 넘기는 시점에 프로토타입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름은 엑스박스(Xbox)로 결정됐다. 플레이스테이션2가 출시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3월 10일,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 GDC에 참석한 빌은 대중에게 처음 엑스박스를 공개한다. 모든 관심이 엑스박스로 쏠렸다. 다음 스텝은 영업 팀의 일이었다. 영업 팀은 소니의 성공 사례를 고려해 서드 파티 확보에 나섰다. 많은 인력이 다수의 게임사를 만나 엑스박스에 합류할 것을 요청했다. 필요하다면 마이크로소프트는 인수도 서슴지 않았다.
이때 인수된 대표적인 업체가 〈헤일로〉를 개발한 ‘번지 스튜디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를 개발한 ‘앙상블스튜디오’ 등이다. 일본 쪽 서드 파티 참여도 적지 않았다. 세가를 비롯해 ‘테크모(現 코에이테크모)’, 캡콤, 남코가 엑스박스로 인기 게임을 이식하고, 엑스박스 독점 게임 개발에 나서기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넉넉한 자금 지원이 만들어 낸 풍경이었다. 준비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빌은 2001년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 전자제품 박람회(CES·The International 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 엑스박스 출시일과 독점 게임 〈헤일로: 전쟁의 서막〉과 〈데드 오어 얼라이브3〉를 시연형태로 공개했다.
그리고 2001년 11월 15일, 마침내 프로젝트 미드웨이 엑스박스가 미국에 출시된다. 아타리 쇼크 이후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 게임기 경쟁의 시작이었다. 론칭 게임 〈헤일로: 전쟁의 서막〉은 순식간에 미국 거실을 점령하며 무려 500만 장이 팔린다. 타 게임기보다 월등히 뛰어난 그래픽 처리 능력을 바탕으로 편의성을 높인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을 직접 저장해 불러내는 내장 HDD가 주는 매력은 거부할 수 없었다. 엑스박스는 미국 시장을 빠르게 평정했다. 하지만 미드웨이라는 명칭이 아까울 정도로 일본 시장에선 참패했다. 플레이스테이션2의 아성도 높았지만 기기 자체가 가진 투박함이 문제였다. 커다란 컨트롤러는 아시아 사람들이 쓰기엔 너무 컸고, 본체 역시 비대했다. 내부 DVD 로더에는 디스크가 긁히는 문제가 있었으나, 이에 대한 대처도 미흡했다. 일본에서 최종 판매량은 50만 대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의 성패는 결국 대개 ‘실패작’으로 논해진다. 제품을 선보인 이후 마이크로소프트는 매해 적자를 기록했으며, 일본을 비롯해 여러 아시아 시장에서 기록한 참패도 실패작 이미지에 한몫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