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미래 도시를 상상해 보라는 그림 숙제를 받았다. 형형색색의 색연필과 크레파스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와 공중 부양 건물, 도시에서 발사되는 우주선을 그렸다. 높은 건물 외벽에는 나무가 자랐다. 건물을 짓는 데 얼마나 들지, 도시에 녹지 공간은 얼마나 필요할지, 지하철 노선은 어떻게 할지 구체적인 계획은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더 자유롭고 상상력 넘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성인이 된 지금, 나만의 도시를 만든다면 어떤 모습일까?
랜드마크를 세우고 공원을 배치하며 다양한 모양의 건물들을 이리저리 놓을 때, 우리 머리는 최고의 유토피아를 상상한다. 하늘을 찌르는 높은 마천루와 비행기보다 빠른 하이퍼루프(hyperloop), 도심을 날아다니는 드론 택시, 운전사 없이 움직이는 버스들, 점차 구체화 되어가는 다양한 첨단 기술들을 도시에 그려 넣는다.
그리고 지금 상상이 아닌 현실 속에서 미래 도시를 만들기 위한 각국의 계획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선 비현실적인 유리 장벽의 도시가, 미국의 한 사막에서는 자급자족이 가능한 ‘15분 도시’가, 도쿄 후지산 기슭에선 차세대 기술이 집약된 실험 도시가 조성될 예정이다. 심지어 서울도 오세훈 시장 아래 대규모 개발 계획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각 국가가 사활을 걸고 ‘도시’에 집중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국가의 막대한 자본과 인구는 대부분 특정 도시에 집중되어 있으며, 도시를 잘 관리하고 성장시키는 것이 곧 국가의 미래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잘 만들어진 도시는 국격을 높인다.
이 때문에 만들어진 게 ‘도시 경쟁력’이다. 뉴스에서 “서울의 도시 경쟁력이 세계 10위에 진입했다” 혹은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도시로 뉴욕이 5년 연속 선정됐다”와 같은 헤드라인을 간혹 접해봤을 것이다. 뉴욕, 런던, 도쿄 등 세계적인 도시들은 늘 상위권을 차지한다. 그런데 이것이 너무 당연하게 느껴져 우리가 망각하는 질문이 있다. 과연 평가 기준은 무엇인가? 인구수, 도시 면적, 물가나 소득 수준, 경제 규모, 기업의 수 등 도시를 평가할 수 있는 항목은 수도 없이 많다. 이 항목들 가운데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할까.
모든 평가에는 주관이 개입한다. 도시 경쟁력 평가에서 경제가 중요한지 환경이 중요한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할 것이다. 하물며 경제를 놓고도 평가 방법은 다양하며, 평가 기관이나 연구자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과 숫자를 사용한다. 말하자면 도시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기업의 수를 셀 수도, 근로자의 평균 연봉을 지표로 삼을 수도, 혹은 도시의 GDP를 측정할 수도 있다. 환경도 마찬가지다. 도시 전체의 면적 대비 공원면적을 측정할 수도 있지만, 도심에서 얼마나 가까이에 공원이 있는지 거리나 접근성을 평가할 수도 있다. 이는 도시 계획자가 무엇을 경쟁력으로 여기고 중시하는지 그 가치관에 따라 우리의 도시가 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도시 경쟁력이 주목받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노동의 이동과 자본의 이동 때문이다. 전 세계의 주요 선진국은 오랜 시간 저출산·노령화라는 문제에 봉착했다. 경제 활동 인구는 큰 폭으로 감소했고, 동시에 두뇌 유출(brain drain)이 일어났다. 고학력의 젊은 청년들은 더 좋은 도시를 찾아 세계 각지로 빠져나갔다. 교육 수준이 높은 이들은 자신이 교육받고 근무할 장소를 찾는 과정에서 국가에 연연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기업이 있고 거주하기 좋은 환경과 문화만 있다면, 유럽이든 미국이든 아시아든 상관치 않고 이동한다.
지역과 국경에 연연하지 않은 것은 자본과 기업도 마찬가지다. 20세기 후반을 지나며, 대기업이 다른 나라에 새로운 법인을 차리고 투자를 단행하는 건 일상적인 기업 활동이 됐다. 수백조 원을 들여 공장을 짓는 식의 투자는 어려워도, 특정 국가에 지역 사무소를 낸다거나 연구 개발 인력을 채용하는 일은 흔하다. 국가의 소비 여력이나 GDP도 중요하지만, 영어와 같은 다국적 언어 사용의 용이성, 시민의 교육 수준, 외국인 생활 편의성, 정치적 안정성 등 다양한 요소가 진출의 기준이 된다.
도시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인 시대다. 전체 인구 중 도시에 사는 인구 비율을 의미하는 ‘도시화율’은 선진국들 기준으로 평균 90퍼센트에 육박한다. 사람도, 기업도 언제든 떠날 수 있기에 도시는 달라져야 한다. 도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어떤 부분에 집중할지, 어떤 방식으로 더 나은 도시를 만들지를 구체화하는 게 바로 ‘도시 계획’이다.
이 책에서는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진행 중인 다양한 도시 계획을 살펴보고 그 속에 담긴 역학을 추적한다. 도심 한복판에서 어떤 이해관계와 가치관, 자본과 기술이 충돌하고 있는지 살핀다. 멋진 마천루 빌딩은 돈만 많다고 지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앞서 살펴본 미래 도시의 기술들도 그 기술이 도시의 어느 공간을 연결하며 누가 비용을 부담할 것인지 등 결정해야 할 사항이 수두룩하다. 도시 계획이 중요한 이유다. 누가, 왜,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는지, 대체 도시 계획이란 무엇이며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치와 경제, 사회와 공간을 토대로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