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의 정치학
9화

첨단 기술은 도시를 구원할 것인가

서론에서 도시의 미래는 누가 만드는지를 물었다. 그렇다면 미래 도시를 만드는 것은 누굴까? 여기까지 읽었다면 도시 계획은 혼자서 완성하는 것이 아니며 수많은 이해관계자의 각축전임을 이해할 것이다. 여기에 새로운 플레이어가 등장하려 한다. 바로 테크 기업이다.

교통 체증이나 범죄, 환경 오염 등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첨단 기술은 스마트시티 바람과 함께 속속 등장하고 있다. 자율주행 자동차,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하이퍼루프, 드론, 로봇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4차 산업혁명에 힘입어 여러 기업이 혁신적인 도전을 시도한 결과다. 정부와 지자체의 오랜 파트너로 활동하던 건설·토목·부동산 회사가 아니라 구글이나 애플, 삼성전자 등과 같은 기업도 도시 계획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첨단 기술을 통해 신도시를 만드는 일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 현재 진행 중인 이야기다. 사막 한가운데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길고 높은 장벽 도시를 세워, 수백만 명이 살게 하겠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계획은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바로 ‘네옴 시티(Neom City)’의 ‘더 라인(The Line)’이다. 약 500미터 높이의 두 벽을 사이에 두고 의식주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도시로, 초고속 열차가 도시를 수평으로 가로지른다. 외벽은 모두 유리로 만들어 태양광을 통한 ‘제로 에너지(Zero Energy)’ 도시가 완성된다. 서울의 수십 배에 달하는 이 비현실적인 도시는 수백조 원에 이르는 사업비를 투자해 석유 중심의 경제를 탈피하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초대형 프로젝트, ‘비전 2030’의 핵심 사업이다.

기후 변화와 해수면 상승에 따른 문제에 대응하는 해상 도시도 있다. 위치는 다름 아닌 부산이다. UN은 2030년까지 부산항 인근 바다에 떠다니는 인공섬을 조성하여 약 1만 명의 시민이 거주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시범적으로 추진하려고 한다. 계획에 따르면 물과 식량, 에너지를 자급자족할 수 있다. UN 해비타트(UN HABITAT)와 해양 도시 개발 기업인 오셔닉스 그리고 부산시가 함께 도전하고 있다.

미국 중부 사막에 구상 중인 탄소 중립의 평등 도시 ‘텔로사(Telosa)’, 일본 후지산 자락에 도요타자동차가 만들고 있는 자율 주행 첨단 도시 ‘우븐 시티(Woven City)’ 등, 전 세계 각국의 도전과 계획을 나열하면 끝이 없다. 아직 두꺼운 베일에 싸인 것도 있고, 대대적인 선전과 투자 협약, 업무 협정 등을 통해 다양한 국가와 기업에 적극적인 러브콜을 돌리는 도시도 있다. 이런 도시들의 이야기가 보도될 때면 기술의 신비로움에 압도되기도 하고,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항상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것도 결국 도시 계획이라는 점이다.

무탈하게 순항하는 기술 도시도 있지만 시민들의 반대와 정치·사회적 갈등 때문에 좌초된 사업도 있다. 특히 이런 문제는 신도시 개발이 아닌 기존 도시의 정비와 재개발 과정에서 발행한다. 대표적인 사례 하나를 살펴보자.

캐나다의 최대 도시는 토론토다. 약 300만 명의 시민들이 거주하는 북아메리카 동쪽의 도시다. 넓은 호수 하나를 사이에 두고 미국과 마주하고 있어 넓고 긴 호수 공원과 수변 공간을 가지고 있는 게 이 도시의 특징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항구로 기능하던 공간들은 도시의 확장에 따라 잘 사용되지 않았으며, 낡고 위험하게 방치되었다. 특히 토론토 중앙에 위치한 키사이드(Quayside)는 도시 중심부에 있음에도 오래된 공장과 화물 창고, 적치장이 곳곳에 뒤섞여 현대적으로 정비·재개발할 필요가 있었다. 여기에 출사표를 던진 것은 바로 구글, 정확히는 구글의 형제 회사인 ‘사이드워크랩(Sidewalk Labs)’이었다.

‘알파벳(Alphabet)’은 구글을 포함한 다양한 기업들의 모회사다. 2015년 설립된 사이드워크랩은 알파벳의 수많은 자회사 중 하나로 도시의 다양한 공간을 개선하여 지속 가능한 스마트시티를 만드는 것을 사업 목적으로 한다. 도시 개발 컨설팅부터 사물인터넷 센서 판매·설치, 주차 관제 시스템, 스마트 건물 관리 등과 같은 업무를 진행한다. 2017년 10월, 사이드워크랩은 토론토의 워터프론트(Waterfront) 지역의 관리 회사와 손을 잡고 수변 공간의 재개발과 재생을 총괄할 민간 파트너 회사로 선정된다.

사이드워크랩의 ‘워터프론트 토론토’ 계획은 거의 모든 도시 계획 요소를 포함한다. 보행자 중심의 도로 설계와 자전거·무장애 시설 확대, 경전철 설치, 통합 모빌리티 서비스를 통한 다양한 종류의 대중·개인 교통 연계, 지속 가능한 원자재를 사용한 건물 신축, 주변 시세보다 20퍼센트 저렴한 임대 주택 공급, 주민 커뮤니티 공간 설치, 지하를 활용한 폐기물 수거·처리, 사물인터넷 센서를 통한 도시 데이터 수집 및 활용 등이 가장 대표적인 가이드라인이었다.

사업 비용의 대부분은 부동산 금융을 통해 조달하며, 경전철을 포함한 주요 도시 인프라에 대해서는 시(市)정부에 보조금을 요청했다. 1조 200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은 사이드워크랩에서 자체 자금을 사용해 투자하기로 했다. 구글이 참여한 전체 사업비 35조 원 규모의 스마트시티 사업이 토론토의 호숫가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020년 5월, 모든 계획은 전면 철회됐다. 표면적인 이유는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확산에 따른 사회 경제적 불확실성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수십조 원의 스마트시티 계획을 중단시킨 핵심적 사안이 아니라는 것은 계획에 함께한 모든 당사자가 알고 있다. 사업 무산의 핵심은 토론토 시민들의 반발이었다.

2019년 4월 ‘캐나다 시민 자유 협회(Canadian Civil Liberties Association)’는 정부를 상대로 계획의 철회와 계약 무효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다. 구글이라는 글로벌 IT 대기업이 스마트시티 사업으로 토론토 시민의 일상과 삶, 행동을 통해 수집할 데이터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 것이다. 노후 수변 공간을 정비하고 인프라를 조성하며 설치될 사물인터넷 센서와 CCTV, 각종 정보 수집 장치는 광범위하게 시민들을 감시한다. 수집된 데이터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서버에 보관되어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이나 성능개선에 사용될 수 있고 제3자에게 유출·판매될 수도 있다. 프라이버시 침해가 명백해 보였다.

민간 사업자와 지자체는 최선을 다해 대응했다. 천 페이지가 넘는 보고서를 발간하고 주민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걱정과 불만에 대한 해결책을 설명했다. 모든 데이터에 대하여 제3자에 대한 제공·판매 행위 금지와 더불어, 데이터 관리를 정부에 위임하기로 했다. 2019년 후반, 해당 사업의 조건부 승인이 통과되었지만, 대외적인 반발 여론으로 사업을 정상적으로 추진하긴 어려웠다. 계획은 무산되었고, 사이드워크랩은 토론토 현장 사무실을 비울 수밖에 없었다.

 

도시 계획, 과정과 결과


차라리 구글이 자신들의 막대한 자본을 동원하여 토지를 사서 새롭게 신도시를 세웠다면 계획은 성공했을 것이다. 혹은 도시 시설 중 주차장 관리 혹은 폐기물 처리 시설 등 부분적인 기능에 집중했다면 사업이 중단될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이드워크랩은 토론토시와 전략적 관계를 맺고 기존 도심을 재생하는 스마트시티 사업을 추진했다. 정부와 기업이 정체 모를 애매한 동맹을 체결하고 민간의 다양한 기술을 적용한 도시 계획과 기반 시설을 디자인한 것이다.

지역 주민과 시민·사회 단체는 그들의 삶의 터전이 바뀌는 것에 민감하다. 아무리 도시에 차가 막히고 보행 환경이 불편하더라도 도시의 첨단 기술은 자신의 사생활이나 생활 데이터와 교환·거래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중국의 몇몇 도시에는 이미 CCTV의 얼굴 인식 시스템을 통해 하루 수백만 명을 추적·관리할 수 있는 기술이 사용되고 있다. 구글맵을 통하면 전 세계 어느 나라든 위성 사진과 로드뷰를 볼 수도 있다. 수십억 개의 계정을 보유·관리하고 있는 구글에 토론토 시민의 생활·통행·활동 데이터가 더해져 어떤 기술이 탄생할지 개인은 알 수 없다. 특히 사생활 침해와 개인 정보에 민감한 서구권 국가에서 구글의 도시 계획은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 《1984》의 ‘빅 브라더(Big Brother)’와 겹쳐 보였다.

‘결국 남는 것은 결과’라는 말이 있다. 앞서 살펴본 토론토를 비롯해 네옴 시티, 부산 해상 도시, 텔로사, 우븐 시티의 계획은 우리에게 미래 도시의 결과를 보여주는 듯하다. 조감도 속 서울링은 누가 봐도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될만하다. 다만 아무리 훌륭하고 아름다운, 완벽한 계획일지라도 그 과정 상의 갈등을 조율하지 못하고, 당위와 필요에 관해 지역 사회를 설득하지 못한다면 액자 속 청사진에 불과하다. 우리의 도시 계획은 완결된 역사 교과서가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사업이다. 결국 계획가와 시민들이 마주하고 다뤄야 하는 일은 ‘과정’이다.

 

대안은 언제나 있다


세계의 수많은 도시와 마찬가지로, 서울 또한 글로벌 도시를 꿈꾸고 있다. 서울링을 포함한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 여의도 구축 아파트에 대한 대규모 통합 재건축 계획, 경기도와 서울을 연결하는 대심도 GTX, 기존의 건축 규제와 복잡한 도시 계획에 구애받지 않는 용산 정비창 도시혁신구역, 드론 택시를 통해 김포공항과 여의도를 연결하는 도심 항공 교통 등. 이 모든 사업들은 모두 도시 경쟁력을 강화하여 서울을 더 나은 국제 도시를 만들기 위한 도전이다.

멋지고 가슴 뛰는 일이다. 특히 국내 유수 기업의 기술력이 도입된 첨단 도시라면 더욱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교통 체증이 획기적으로 줄고, 용산에 100층짜리 건물 위에서 드론을 타고 강남이나 인천공항으로 출발할 수도 있다. 도시의 주차장과 도로를 반으로 줄이고 그 자리에 주택과 공원을 조성하는 상상도 해본다. 하지만 항상 기억해야 할 점은 기술이든 도시 계획이든 드론과 자율주행 자동차든 언제나 이를 이용하는 시민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도시 계획이 기술과 함께 스마트시티로 거듭나더라도, 그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다양한 개인과 집단, 이들 속에 있는 갈등을 중재하며 만들어가는 지난한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안을 찾고 더 나은 해결책을 고민하는 과정은 피곤하다. 전에 해왔던 대로 다음에도 하고 싶은 게 사람의 습관이고 관성의 힘이다. 30년 전에 조성했던 신도시 계획도, 재건축과 재개발도, 이제껏 해온 방식으로 위치만 바꿔서 ‘복사-붙여넣기’ 하고 싶겠지만 대중들의 생각과 인식은 법과 제도보다 언제나 빠르게 바뀐다. 과거에 반복한 실수와 착오, 문제를 그대로 반복할 우려도 있다. 십수 년 전에는 시민들의 무관심과 제도적 미비로 별다른 문제 제기 없이 넘어갔던 사항이 오늘날엔 심대한 문제로 번질 수 있다. 법과 제도가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긴 어렵지만 쫓아갈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더더욱 후퇴할 것이다.

계획을 세우고 규정을 만드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다양한 선택지를 갖고 있다. 사업성이 낮아 지지부진하게 체류하던 사업에 대해 사업지의 용적률을 상향하거나 금융 지원 등을 통해 속도를 붙여 정상 궤도에 올릴 수 있다. 토지주의 반발이 커서 추진이 어려운 정비 사업은 사업 추진에 대한 동의율 기준을 바꿀 수도 있고, 공공·민간의 전문가를 투입하여 한 명 한 명 설득해 나갈 수도 있다. 여기에 첨단 기술까지 도입된다면 더 많은 선택지가 생길 것이다. 물론 대안을 실행할 비용(자본, 사람, 혹은 시간)은 늘 부족하다. 그러나 고민할 노력이 부족해서, 특정 집단만을 위해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서 대안을 차버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도시 계획은 권력자의 공치사도, 시공사와 땅 주인의 잔치도, 원주민을 몰아내는 못된 정부 정책도 아니다. 도시에 대한 관리 기준이자 규칙이다. 이를 하나의 완성된 결과와 조감도처럼 보지 않고 그 시간성을 고려하면 마치 스포츠 경기의 규칙과도 같다. 게임의 본질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선수들과 소속팀, 관객, 코치, 심판, 스포츠협회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들 사이의 갈등과 협상, 타협이 이뤄진다. 그렇게 만들어지고 수정된 경기 규칙은 공정을 담보한다.

도시 계획도 그렇다. 특정 지역의 재개발, 재건축이라도 같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에 기존의 틀과 기준을 뒤흔드는 힘을 가지는 것이다. 정치인과 공무원의 책무가 있듯 시민의 역할도 있다. 내가 살고 싶은 도시의 모습과 철학을 고민하며, 내가 사는 도시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관심이 있어야 한다. 내 이익을 지키기 위한 행동뿐만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한 목소리와 용기도 필요하다. 모든 시민은 도시 계획의 잠재적 참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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