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복 대표는 완전히 식물성 재료만 섭취하는 비건이다. 대학 시절 육식이 가지고 있는 폐해를 불현듯 깨닫고 채식에 완전히 뛰어들었다. 건강에 부쩍 관심이 커지는 4050 중심의 채식 문화가 지금처럼 젊은 세대로 무게 추를 옮기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이다. 이 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한 패닉이 영향을 크게 미쳤다고 봅니다. 인류에 치명적인 전염병은 대체로 육식 문화에서 촉발된 게 많습니다. 메르스, 광우병도 그렇고 돼지 독감도 마찬가지죠. 반려동물 인구가 늘고, 생존을 위해 기후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자각도 가치 소비 본능을 일깨우는 데 일조했다고 봅니다.”
소비에 적극적인 젊은 세대를 잡기 위해 대기업들도 채식을 입기 시작했다. 풀무원, 농심, 신세계푸드를 비롯한 대기업도 대체육 식품을 개발해 판매하고 있고, 대체육 브랜드를 사용하는 비건 식당을 론칭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채식 시장 잠재력은 큰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대체육 시장 규모는 약 238억 원 수준이다. 가장 규모가 큰 미국에 비하면 약 2퍼센트 수준이다.
고기란 무엇인가, 호명 논쟁
육식에 비토(veto)하는 정신이 채식주의다 보니 축산업계와의 갈등도 잇따르고 있다. 대체육을 일컬어 고기라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 대체육을 과연 축산 코너에서 팔아도 되는지에 대해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이름은 이렇게 중요하다.
전국한우협회 등 26개 단체는 지난해 12월 축산 코너 매대에서 대체육을 판매하고 있는 대형 마트에 ‘소비자 인식을 왜곡한다’며 시정을 요구했다. 콩으로 만들었으니 두부 등을 진열해 놓은 가공품목에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정부에 식물성 대체 식품에 ‘고기’나 고기를 뜻하는 ‘육(肉)’이라는 표현을 쓰지 못하게 해달라고 촉구했다. 현재 국내 대형 마트에서 대체육을 판매하는 매장은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를 합쳐서 150곳 미만이다. 이 중 약 20개 매장에서 대체육을 판매 중인 이마트는 아직 냉동 축산 코너에서 대체육을 판매하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매출 규모는 매우 적은 편이다. 전체 육류 매출 대비 대체육 매출 비중은 0.006퍼센트에 불과하다. 이마트 측은 “축산업계에서 매대 위치를 두고 항의성 공문을 두 차례 보내 왔지만 식물성 대체육을 찾는 고객들의 접근성을 따져 배치했다”고 밝혔다.
축산업계 항의가 빗발치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기준 마련을 위한 연구 조직을 결성하고 가이드라인 마련에 돌입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대체육과 배양육을 원료로 인정하기 위한 안전성 기준을 마련하는 일에 초점을 두고 명칭, 표시, 정의 등을 어떻게 구분하면 좋을지를 자문받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대체육에 대한 뚜렷한 지침은 고시로 마련되지 않았지만 ‘소비자를 기만하는 표시 또는 광고를 금지’한다는 식품표시광고법에 의거해 ‘고기’, ‘육’ 등의 표현은 규제 대상으로 유권 해석 처리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명을 둘러싼 논쟁은 이른바 공장식 축산업의 메카라 할 수 있는 미국 텍사스주에서 더 심각한 문제였다. 텍사스주는 2021년 5월 고기의 정의를 ‘소, 돼지, 닭 또는 기타 가축에서 도축한 식용 부분’으로 한정하는 식품법을 통과시켰다. 비슷한 법이 미시시피, 미주리, 루이지애나주 등에서도 제정됐다. 이 법에 따라 콩이나 두부 같은 단백질로 만든 제품이나 벌레 또는 세포 배양을 통해 만든 제품을 ‘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등으로 부르는 것이 금지됐다. 다만 ‘버거’라는 명칭은 새로 제정된 기준에서 빠졌다. “소비자들이 자신이 구매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도록 하기 위함”이 법 제정의 이유다. 유럽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20년 유럽 의회에선 ‘채식 버거’, ‘채식 소시지’ 같은 명칭을 대체육에 쓸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됐으나 부결됐다. 지난해 ‘크림 같은’, ‘버터 같은’이라는 표현도 식물성 식품에 쓰지 못하게 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역시 부결됐다. ‘상식적 수준에서 허용 가능한 표현’이라는 이유에서다.
채식은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비거니즘이 이른바 돈 되는 가치 소비재로 자리 잡으면서 패션계에서도 비건을 표방한 제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동물 가죽을 이용하거나 털을 뽑거나 깎아 만드는 의류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일을 최대한 지양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급부로 비건이라는 이름을 달고 출시되는 합성 섬유 재질의 옷들이 환경에 더 악영향을 준다는 주장도 있다. 폴리에스테르, PVC 소재의 합성 섬유는 결국 또 다른 환경 오염의 주범인 플라스틱이라는 논지다. 물론 ESG에 대한 투자가 강화되면서 땅에 묻으면 썩는 재생 소재를 활용한 옷과 신발도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진정한 채식주의를 실천하기 위해선 소비 자체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루 한 끼만 고기를 먹는 것으로도 지구를 구할 수 있다’는 실천적 방안부터, 지속 가능한 세계를 위해 학생들이 어릴 때부터 채식에 익숙한 식습관을 국가적으로 정착시켜야 한다는 정책까지 나온다. 채식 문화도 더는 지나칠 수 없는 대세가 된 것일까? 환경론자의 담론 영역에 있던 채식은 이제 명백히 ‘취향’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됐다.
젊은 동년배들이 사주를 배우는 이유
사주, 운세, 토정비결은 지난해의 묵은 때를 벗겨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기에 좋은 준비물이다. 이제는 ‘용하다’고 입소문 탄 명당 찾아 나서는 데 필요한 노력도 부쩍 줄었다. 손에 든 휴대 전화로 다 찾아볼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것조차 귀찮다면 그냥 유튜브를 켜면 된다. 불안하고 초조한 당신을 위로하기 위한 수천 개의 타로 영상이 기다리고 있다. 불안 사회의 방증이라고만 말하기엔 명리, 사주, 역학, 무속과 같은 말이 정치 뉴스에 이렇게 자주 등장하는 것도 처음이다. 중국에서 발흥해 수 세기 동안 한반도 역사와 함께한 무속과 역학이 다시 뜨거운 이슈의 한복판에 떠올랐다. 이런 떡상의 배경엔 젊은 세대의 뜨거운 관심도 있다. 고루한 토속 신앙의 잔재, 낡은 세대의 전유물이라기엔 요즘 젊은이들의 사주 사랑이 유별나다. 사주는 성격 유형 검사 MBTI와 감히 쌍벽을 이루는 셀프 탐구의 도구가 됐다. 사주 역학은 어쩌다 요즘 것들의 마음을 이토록 사로잡게 된 걸까?
사주 풀이도 스마트하게 하는 시대
통상 사주 역학의 원리를 설명할 때 가장 먼저 언급하는 것이 굿이나 점술을 뜻하는 무속과의 차별성이다. 사주 풀이의 재료는 정해져 있다. 태어난 해와 날짜, 그리고 시간이 그것이다. 연, 월, 일, 시가 굵직한 네 개의 기둥, 사주(四柱)가 된다. 그리고 이 기둥에 각각 두 글자씩, 도합 여덟 개의 글자를 팔자(八字)라 부른다. 흔히 말하는 ‘사주팔자’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그리하여 사주 공부라 부르는 것을 명리(命理)에 관한 학문이라 부른다. 다시 말해 이 여덟 글자는 당신의 삶을 인식하는 ‘바코드’라 할 수 있다.
해설가별로 제각각 다른 풀이와 해석을 내놓을 수 있지만, 이 바코드는 모두 1900년대 고종 재위 시절 출간된 역서(달력) 만세력에 유래를 두고 있다. 만세력은 달력을 60갑자로 표기한 형태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 궤도를 계절 단위로 분절한 24절기에 따라 각 순서대로 글자의 조합이 이뤄진다. 누가 계산하든 같은 결과가 나오지만 암산에 시간이 다소 걸릴 수는 있다. ‘선생님’들이 의뢰인 앞에서 이것저것 써가며 암산 실력을 뽐냈던 과거와 달리, 현대에는 각종 웹사이트와 모바일 앱에서도 검색어를 입력하면 만세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역술인 카페에선 “손님이 앞에 있는데 이 책, 저 책을 뒤져 가며 복잡한 계산을 하다간 체면이 손상되기 일쑤”라며 “복잡한 계산은 컴퓨터에 맡기는 것이 좋다”고 조언하기도 한다.
시대를 반영하는 역술
만세력에서 추출한 팔자는 음과 양, 또 오행(五行)이라는 기운을 따른다. 오행은 우주의 질료로 일컬어지는 나무, 불, 흙, 금, 물을 뜻한다. 음양과 오행은 비단 사주뿐 아니라 풍수나 작명과 같이 동양 문화에서 전해 내려오는 중심 개념이다. 이 성질들이 추가되면서 사주 해석의 경우의 수는 더욱 방대해진다. 재밌는 지점이 있다. 만세력이 지구의 공전 궤도를 분절한 24절기를 따르기 때문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감은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다 보니 중국, 한국과는 계절이 반대인 호주, 뉴질랜드 등 남반구에서 태어난 이들의 사주는 조금 더 복잡한 계산이 필요하다. 지구의 어느 쪽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사주 풀이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요즘엔 만세력을 제공하는 모바일 앱에서 사주 풀이 대상자의 출생 장소도 기입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출생지의 위도와 경도에 따라 만세력 데이터의 시차를 반영하는 것이다. 명리학의 세계화를 위한 현대적 변용이라 표현할 수 있겠다.
〈운명〉 교향곡을 작곡한 독일 출생의 위대한 작곡가 루트비히 반 베토벤의 ‘바코드’를 살펴보자. 강헌의 《명리, 운명을 읽다》 에 따르면 베토벤은 독일 본에서 1770년 12월 16일 새벽 3시 40분에 태어났다. 만세력 앱을 돌려 보니, 베토벤은 경인년 무자월 임인일, 임인시생 사주를 가지고 있다. 앞서 말한 오행은 통상 팔자에 색깔로 표시된다. 녹색은 나무, 검정색은 물, 흰색은 금, 노란색은 흙을 뜻한다. 베토벤의 팔자는 오행 중 나무와 물의 기운이 각 세 개씩 있고, 흙과 금이 하나씩 있다. 우리 베토벤 씨는 불이 없는 팔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