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가격이다. 단 한 번이라는 테마로 인해 통상 ‘가성비’를 따지기 어려운 웨딩 산업의 구미에도 스냅 사진은 맞아떨어졌다. 앞서 언급한 상품들도 아마추어 작가부터 프로 작가까지 부르는 게 값인 상황이다. 간단한 상품이라도 적게는 50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이 넘어가는 해외 로케이션 촬영(신혼여행지 스냅)까지, 비용이 적지 않다. 전문 사진작가가 찍어 주는 이른바 ‘본식 스냅’은 보정까지 시간이 걸린다. 이런 빈틈을 노려 바로 결혼식 당일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은 소비자들을 타깃으로 한 이른바 ‘아이폰 스냅’도 출현했다. 말 그대로 ‘아이폰’으로 찍어 주는 사진이다. 한 시간 남짓한 예식에 30~5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업체들은 “하객처럼 입고 가서 하객 동선을 그대로 따라가, 티 내지 않고 찍어 주겠다”며 홍보 중이다. 적잖은 비용에도 ‘느낌이 좋다’, ‘감성이 괜찮다’고 입소문을 탄 업체엔 예약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인스타그램 포트폴리오와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진 한 인기 작가는 밀려드는 촬영 문의에 심지어 “커플의 사연을 받아보고 찍을지 말지 결정하겠다”고 말해 주목받기도 했다.
오로지 포트폴리오와 경력, 입소문으로 승부하는 스냅 사진이 돈이 된다는 소식에 사진가들도 너나없이 뛰어들었다. 통계청에 등록된 사진업의 사업체 수는 2011년 8599개에서 2021년 1만 5957개로, 종사자 수는 1만 8155명에서 2만 5567명으로 성장했다. 카메라 등 촬영 기기의 진입 장벽이 낮아진 이유 등으로 인해 그리 전망이 밝지 않아 보였던 사진업이 이른바 ‘폭풍 성장’하는 추세다.
기록이 추억을 규정하는 시대
힙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스냅 사진의 전신은 사실 저널리즘이다. 1920년대 말, 독일의 포토 저널리스트 에리히 잘로몬(Erich Salomon)은 당시 처음 시판된 35밀리미터 카메라로 법정과 국제연맹 회의를 몰래 찍어 참여자들의 생생한 모습을 기사로 보도했다. 잘로몬의 방식은 당시 전통적 방식의 ‘기념사진적인 보도 사진’보다 독자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잘 전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숨김이 없고 솔직하다는 뜻에서 ‘캔디드 사진(candid photograph)’이라 불렀다. 캔디드 사진은 추후 스냅 사진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이런 역사에서도 알 수 있듯, 스냅 사진의 핵심은 피사체가 촬영 사실을 인지하거나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찍는다는 것이다.
사진이 갖는 본래의 의미는 세 가지 요소에서 탄생한다. 바깥에서 장면을 바라보던 사진작가, 그리고 작가의 문제의식에 포착된 사유의 이미지. 마지막으로 그 장면 속에서 세부적인 부분을 감지하는 제3자, 관객의 지각이 그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진 전문 박물관이자 영화 기록 보관소인 뉴욕 조지이스트먼뮤지엄(George Eastman House)의 사진 디렉터 네이선 라이언스 (Nathan Lyons)는 “사진의 본질은 스냅숏이다. 아름답다고 느낀 것을 직접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스냅 사진이라는 개념을 둘러싼 논의는 이렇듯 ‘작가주의’에 기반을 두고 확장해 나갔다. 그렇다면, 피사체가 돈을 주고, 뚜렷한 목적성을 가진 채 직접 의뢰하고, 직접 포착된 이미지를 감상할 관객을 선택하고, 피사체로서 자신의 포즈를 담은 시안마저 미리 짜두고 건네는 지금, 신인류의 스냅 사진은 어떤 존재론적 의미를 도출할 수 있을까?
나르시시즘 한 사발 하실래요
사실 스냅 사진처럼 자신의 모습을 담은 기록에 대한 욕구와 그와 직결되는 소비 심리는 결혼이나 생일과 같은 중대사에만 몰리는 것은 아니다. SNS가 현대인들의 중요한 소통 창구가 되었다는 지점을 주목해야 한다. SNS의 시대에는 매 순간 스스로를 어떻게 기록하고, 과시하는지가 중요해졌다. SNS에서는 특별한 날이 아닌 보통의 삶, 즉 일상 그 자체가 콘텐츠로 소비된다. 인스타그램에 ‘일상’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은 2.6억 개에 이르고, ‘일상 스냅’으로 검색되는 게시물도 69만 개에 이른다.
선톡 오는 프로필 사진
욕망할 만한 타인이라는 존재가 ‘인플루언서’라는 직업으로 규정되기 시작하면서 자기 PR과 셀프 브랜딩 영역 역시 수익을 내는 부가 가치 사업으로 성장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상품이 있다. 이른바 ‘인생 샷’으로 불리는 사진을 찍어 주는 상품이다. 다만 소중한 순간을 기억될 만한 사진으로 남긴다는 의미보다, 가공된 일상의 모습을 통해 특수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는 마케팅으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가의 장비가 아닌 휴대 전화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 해당 비즈니스는 고객이 원하는 목적에 따라 사진의 배경이 되는 장소와 포즈, 스타일링 등 맞춤식으로 조언하는, 이른바 이미지 컨설팅 사업으로 스스로를 정체화한다.
각 업체는 상품을 이용하는 목적으로 ‘전문직 등 소득이 높은 이성에게 먼저 연락이 오게 하기 위함’, ‘헤어진 연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함’, ‘대외 비즈니스에서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함’ 등을 제시하고 있다. 1년 동안 계절별로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찍어 주는 세트 상품이 160만 원대에 팔리고 있고, 최대한 자연스러워 보이는 ‘일상룩’을 만들기 위한 헤어·메이크업 등 뷰티 사업 제휴도 있다. 모두 그럴듯한 일상을 만들기 위한 세트다. 단순히 외모가 잘 나오게 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는 아니다. 한 업체는 인물 사진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고급 호텔임을 은근히 입증할 수 있는 ‘호텔 라운지 프로필 사진’ 상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기본 음료 두 잔을 주문하고 사진을 찍을 경우는 40만 원, 주문 메뉴가 ‘애프터눈 티 세트’일 경우는 사진을 찍어 주는 업체에 50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
지금 당신이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이유는 충분히 포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실제의 모습보다 타인이 인식하는 모습이 더 큰 가치를 가진다는 속삭임이 이런 기이한 변종 스냅 사진 업의 확장 동력이다. 시즌 예약이 개시되면 수요가 폭증해 금세 매진되곤 한다는 이런 업체들은 “외모지상주의를 겸허히 인정하고 사진 관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스스로 대접받고자 하는 욕망에 솔직한 사람”을 신청자의 요건으로 못 박아 두기도 했다.
나르시시즘 권하는 사회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수입 명품과 쉽게 방문하기 어려운 장소, 돈이 많이 드는 취향이 마치 별 것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은 앵글. 특별한 경험임에도 호들갑 떨 것 없다는 태도와 포즈. 이러한 일상 콘텐츠는 하루에도 무수히 벌어지는 생활 최전선의 지리멸렬한 일을 잘 숨겨 두기 마련이다. 요컨대, 콘텐츠가 될 수 있는 일상은 대개 긍정적이다.
학자들은 현대인에 만연한 ‘나르시시즘’에 주목하고 있다. 자기애로도 해석되는 나르시시즘은 자기 자신에 대해 느끼는 중요성과 특별함에 집중하는 마음뿐 아니라 그런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과 그로 인한 민감성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러다 보니 나르시시스트는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드러낸 자신에 대한 타인의 구체적인 반응에 갈증을 느낀다. 지난 2014년에 출간된 한 논문
[1]이 흥미롭다. 연구진이 총 28개 연구 집단에 포함됐던 1만 3450명의 자료를 대상으로 시계열별로 가중치를 곱해 분석해 보니, 한국 대학생들의 나르시시즘이 지난 15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NPI 지수(Narcissistic Personality Inventory)는 40개의 강제 선택 문항으로 이뤄져 있고, 참여자에게 두 가지 문항 중 자신을 더 잘 설명하는 문항을 택하도록 돼있다. 가령 “나는 다른 사람과 비슷하다”, “나는 비범하다” 라는 두 가지 문항이 주어지면 그중 하나를 택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