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으로 쓰는 트렌드 보고서
6화

북저널리즘 인사이드 ; 피상적인 트렌드를 넘어서

가을만 되면 내년을 준비하는 트렌드 서적이 서점의 매대를 가득 채운다. 공격적으로 미래를 앞세우는 트렌드 서적은 특정 현상을 다가올 새로운 흐름으로 정의한다. 대다수의 트렌드 설명은 현상과 흐름을 보기 좋게 정리하고 나열한다. 근거 있는 미래 전망이지만, 수명은 짧다. 책을 덮으면 시원함보다 섭섭한 마음이 먼저 찾아온다. 1년도 채 지나기 전 새로운 단어, 새로운 표현, 새로운 분류가 또 다른 트렌드로 도착할 것임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매일 새로운 유행이 피고 지는 현대 사회에서 트렌드는 유행에 대한 피상적인 해석과 맞닿게 됐다. ‘Z세대는 틱톡을 좋아한다’, 혹은 ‘MZ세대는 오마카세 가는 걸 즐긴다’는 식의 문장이 그 사례 중 하나다. 때로는 돈을 못 버는 젊은 세대들이 ‘거지방’에 들어가 돈을 아끼려 한다거나 쿠팡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즐긴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어딘가 안타까움이 묻은 말투는 덤이다.

지금 트렌드를 읽는 방식은 때로 사람들을 나누고 가둔다. 트렌드를 서술하고 호명하는 행위 자체가 자칫, 특정 세대와 사람을 향한 편견의 단서로 작용할 수 있다. ‘오마카세를 즐기는 MZ세대’에는 사치스럽다는 부정적인 수식이 따라붙기 쉽다. ‘갓생’이 트렌드임에도 불구하고 늦잠을 자는 젊은 세대에게는 게으르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쉬운 것도 마찬가지다. 피상적인 트렌드는 특정한 부류의 사람을 가두는 투명한 프레임으로 기능해 왔다. 피상적인 트렌드 해석은 정확히 같은 이유로 누군가에게는 전혀 소구하지 못한다. ‘갓생을 사는 게 트렌드라고?’ 늦잠을 즐기는 Z세대에게는 필요 없는 정보다. 〈피식대학〉을 구독하지 않는 사람에게 ‘한사랑 산악회’ 이야기는 굳이 듣고 싶지 않은 먼 나라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트렌드는 그런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나누는 투명한 분단선으로 작동한다.

투명한 프레임과 분단선을 만드는 피상적인 트렌드 해석은 결국 FOMO의 시대로 흘러 들어간다. 정혜경 기자는 프롤로그에 다음과 같이 썼다. “하지만 우리는 신경이 쓰인다. 대체 저게 뭔지, 사람들이 왜 저렇게 난리인지 알고 싶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나도 그들처럼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트렌드의 동역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개인은 이미 누군가가 닦고 개발한 트렌드를 불안한 마음을 안고 좇을 수밖에 없다. 피드의 새로 고침으로도, 실제 체험하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트렌드가 있는 건 그 때문이다.

《욕망으로 쓰는 트렌드 보고서》 는 트렌드를 향한 피상적 접근에 정면으로 승부한다. 스브스프리미엄이 바라보는 트렌드는 저널리즘의 영역이다. 모든 트렌드에는 단어와 정의, 일시적 유행보다 더 깊은 이유가 있다. 그 원인의 구조를 파고들 때야말로, 트렌드는 ‘분석할 가치가 있는 사회 현상’이 된다. 사회 현상은 같은 곳에서 같은 시대를 사는 모두에게 유효한 논의다. 오마카세를 즐기지 않는 사람도, 하루는 가치 있는 식사를 하고 싶다는 욕망을 갖기 마련이다. 쿠팡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이 없더라도, 육체노동이 선사하는 원초적 성취감에는 공감한 기억이 있을 테다.
트렌드 저널리즘은 문제를 해결한다. 공감해야만 했던 것, 경험해야만 했던 문제를 명확한 언어로 구조화하고 그 원리를 발견해 낸다. 구조를 좇다 보면 공감하지 않아도, 경험하지 않아도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비로소 트렌드가 누군가를 나누고 가두는 것이 아닌 소통의 단서로서 기능하게 되는 셈이다. 욕망을 가진 동시대인이라면 이 책이 풀어 놓는 트렌드의 구조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결국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기 때문이다.

김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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