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을 넘어서기 위해
2023년 7월 말,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원전)에서 나온 오염수(후쿠시마 오염수)는 아직 방류되지 않았다. 이 글이 나온 그 이후에도 방류되지 않길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간절한 바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후쿠시마 오염수는 별문제 없이 방류될 것이다. 머지않아 오염수는 조만간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고 결국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다. 세간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핵폐기물 투기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이런 묵시록적 예측이 가능하다. 이 글은 우리가 살아가는 핵 재난 이후의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역사학적 길잡이다.
후쿠시마 오염수는 원자력 기술의 뒷부분(back end)에 해당하는 쓰레기다. 인간이 사용하는 여러 물건처럼 원자력 또한 한살이(biological life)의 모든 부분에서 쓰레기를 만들지만,
[1] 이 글은 특히 이 한살이의 뒷부분에서 나오는 핵폐기물에 주목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원자력은 자동차나 비행기 등 운송 기술에 비유된다. 인간이 만들었되 인간이 전적으로 통제할 수 없고, 오작동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모두가 최선을 다하지만 사고의 여파가 인명 피해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한편 이러한 대중적인 규정에서 철저히 간과되는 지점이 바로 원자력 기술의 뒷부분이다.
[2] 그 누가 쓰레기에 주의를 기울일 것인가?
이 글은 인류의 역사에서 유례없던 규모의 핵 재난 세 건을 언급하며 시작한다. 후쿠시마가 그 자체로 새로운 역사는 결코 아닐뿐더러, 과거의 사례는 핵 재난이 어떻게 일상으로 스며드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조건으로 기능할 수 있다. 과거의 핵 재난을 살핀 이후, 재난의 처리와 관련한 정치학적 수사, 관련된 행위자들의 움직임을 살필 것이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오염수라는 용어에도,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핵폐기물 투기의 역사나 해양 처분의 역사에도, 정치적 셈법은 조밀하게 얽혀 있다. 한국의 핵폐기물을 둘러싼 이해도 이와 멀지 않다. 그리고 이 모든 정치적 얽힘과 수 싸움의 결과물로서 결국 원자력 재난은 계속해 망각돼 왔다. 시민인 우리가 오염수 방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재앙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핵폐기물을 둘러싼 모든 움직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후쿠시마, 체르노빌, 키시팀
2011년 이전까지 일본 혼슈의 동북부에 위치한 후쿠시마는 세인의 관심을 거의 끌지 못한 조용한 지역이었다. 운명적인 그해에 동일본 대지진이 나면서 거대한 해일이 대략 5미터 높이의 방파제를 가볍게 넘었다. 파도는 후쿠시마 제1원전을 덮쳤고, 전기 시설이 모두 꺼지면서 원자로의 심장인 노심(爐心)이 뜨거운 온도를 견디지 못하고 녹아내렸다. 녹아 버린 노심에서는 치명적인 방사성 물질이 방출됐다. 21세기에 일어난 핵 재난의 대명사로 후쿠시마가 자리매김하는 순간이다.
[3]
후쿠시마를 거론할 때 으레 비교되는 지역이 바로 오늘날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자리한 체르노빌이다.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체르노빌은 엄청난 수의 피폭자와 사상자를 동반한, 20세기 최대의 핵 재난을 겪은 지역이었다. 사람들은 체르노빌 재난을 소비에트연맹(소련)의 해체를 촉진시킨 사건으로 기억하기도 한다. MIT 과학기술사회 프로그램 교수인 케이트 브라운의 책 《체르노빌 생존 지침서》는 그러한 재난 이후를 살았던 현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4]
핵 재난의 대명사가 된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와 달리, 키시팀은 아직 그 실체가 분명히 밝혀지지 않은 초대형 핵 재난이다. 러시아 우랄 남부의 비밀 도시 오조르스크에는 소련 최초의 플루토늄 공장이 자리했다. 당시 오조르스크는 암호명으로 불렸고, 이곳에서 일어난 재난에 인근 도시인 키시팀의 이름이 붙었다. 오조르스크 공장의 핵폐기물은 인근 호수와 강에 버려지거나 스테인리스강 탱크에 담겨 공장 근처 지하 깊은 곳의 콘크리트 구조물에 매설됐다. 1957년 9월 말, 그러한 저장 탱크 중 하나에서 냉각 시설이 고장나면서 인체와 자연에 치명적인 핵폐기물이 하늘로 용솟음쳤고 이후 주변 지역을 광범하게 피폭시켰다.
후쿠시마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체르노빌과 키시팀을 같이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냉각 기능의 문제로 인해 발생한 키시팀, 체르노빌, 후쿠시마가 보여 주는 것은 실로 분명하다. 핵 재난은 피해의 범위가 실로 막대하지만, 정작 피해의 주범인 방사성 물질은 육안으로 볼 수도, 현재의 기술로 쉽게 처리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물론 차이점도 있다. 키시팀과 체르노빌 사고에서 나온 재난의 쓰레기가 현지에 어지럽게 매설돼 주변의 풍경과 거주민을 피폭시켰던 것과 달리, 후쿠시마 오염수는 전 세계를 둘러싼, 넓은 바다로 방류될 것이다. 아쉽게도 인류는 세 차례의 초대형 핵 재난을 겪으면서도 별다른 교훈을 얻지 못했다.
오염수, 처리수, 핵 폐수?
하나의 현상을 두고 정치적 함의가 다른 여러 용어가 쓰인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 두꺼운 과학사 책을 펼 필요가 없을 정도로, 2023년 여름 한국 언론에서는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한 용어상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오염수, 처리수, 핵 폐수 중 맞는 말은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은 그 자체로 정당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각 용어에 담긴 정치적인 의미와 사회적인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다.
먼저 오염수는 말 그대로 후쿠시마 원전의 뜨거운(=방사능 활동이 활발한) 노심을 냉각시키는 과정에서 오염된 물을 일컫는다. 민물이든 바닷물이든 이 오염수에는 삼중수소(트리튬), 세슘, 스트론튬 등 무시무시한 방사성 동위원소(또는 핵종)가 들어있다. 이 글에서는 가장 가치 중립적인 용어인 오염수를 사용한다.
처리수는 일본 당국이나 도쿄의 오염수 방류 결정을 존중하는 세력이 주로 쓰는 용어로, ‘알프스(Advanced Liquid Processing System)’라는 고급액체처리체계 또는 다핵종제거설비라는 기계를 거쳐 여과 처리된 물을 일컫는다. 오염수에는 각종 방사성 동위원소가 들어있는데, ‘알프스’는 흡착 물질 필터를 이용해 삼중수소를 제외한 거의 모든 방사성 동위원소를 걸러 낸다. 오염수를 여과한 것인 만큼 알프스 처리를 거친 물을 처리수라고 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처리수는 오늘날의 기술로 제거가 어려운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를 머금고 있다. 오염수가 아무리 처리를 거쳐도 여전히 방사성이라면, 왜 일본 당국이 오염수 대신 처리수라는 말을 쓰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즉 함유된 방사성 물질보다는 처리를 거쳤다는 기술적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핵 폐수라는 용어다. 일본 당국이나 일본을 존중하는 세력을 비판하려는 쪽에서 주로 사용하는 말이다. 강렬한 어감에서 알 수 있듯, 공업용 폐수보다 더욱 무서운 느낌을 주는 이 단어는 오염수를 지칭하면서도 직관적으로 방사능과의 연관성을 강조한다. 정상적으로 가동되는 원전 내부의 노심을 냉각시키는 과정에서도 방사성 물이 나오는데, 이러한 물은 희석 과정을 거쳐 주변으로 방출된다. 이 물을 온배수(溫排水)라고 한다. 따뜻한 배출수라는 말인데, 물이 노심의 열을 가져왔기(=냉각시켰기) 때문이다. 또 원전과 플루토늄 공장에서는 많은 용수가 쓰이는데 대부분 희석돼 주변 환경으로 방류된다. 이를 폐수(effluent)라고 부른다. 온배수와 폐수는 물론, 후쿠시마 오염수 모두 방사능을 가지고 있어 핵 폐수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정부의 구상은 처리 과정을 거쳤으나 여전히 삼중수소를 머금은 오염수를 자국의 배출 기준치 이하로 희석하여 태평양으로 방류하겠다는 것이다. 사고 직후, 후쿠시마 원전의 냉각 시설이 중단돼 노심이 녹았다. 이 현상을 전문 용어로는 노심 용융이라고 하는데, 이때 방출된 방사성 기체는 공기 중으로, 방사성 액체는 태평양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 사실을 고려하면, “처리수”의 배출은 매우 신경을 많이 쓴 처사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일본 당국의 주장대로 “처리수”가 ‘안전’하다면 대체 왜 방류하겠다는 것일까? 일본 국내서 공업용수로 사용하거나 저장하면 안 되는 것일까?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둘러싸고 거의 논의되지 않는 역사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재난의 처리 비용을 전가하기
후쿠시마 오염수의 방류 결정은 20세기 인류의 핵폐기물 자연 투기라는 맥락을 파악할 때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냉전 강대국인 미국과 소련의 정책 입안자들과 과학 기술자들은 개발(development)이라는 지상 과제를 수행하면서 비용 절감을 꾀했다. 그 결과, 방사성 쓰레기는 무단으로 투기됐다. 즉, 일상의 핵 재난 속에서 권력을 가졌거나 지식을 생산했던 이들은 원자력 개발 과정에서 이익(물질적 보너스와 학계에서의 위신)만을 추출했고, 그 비용은 사회와 자연에 전가했다.
한 기록에 따르면,
[5] 인류가 방사선을 내뿜는 쓰레기인 핵폐기물을 자연에 버리기 시작한 시점은 1944년이었다. 당시 미국은 핵폭탄을 만드는 맨해튼 계획을 추진 중이었다. 이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은 우라늄·토륨과 같은 핵분열 물질을 채굴하고, 안에 있는 분열 물질의 농도를 높이기 위해 가공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핵폭탄 연료 제조 과정에서 신체와 환경을 피폭시키는 치명적이면서도 새로운 성격의 쓰레기가 나왔다. 이것의 처리를 두고 정책 결정자들이 내린 최초의 결론은 무단 투기였다. 1944년 3월부터 맨해튼 계획에서 나온 피폭된 부식성 핵폐기물이 미국 뉴욕주 토나완다의 얕은 우물들에 버려졌고, 그 이후로도 무단 투기는 3년 동안 지속됐다.
케이트 브라운의 《플루토피아》는 미국과 소련에서 일어난 일상의 플루토늄 재난을 비교하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회를 관통하는 놀라운 동질성을 밝혔다.
[6] 그들은 모두 핵폐기물을 자연에 버려 비용을 절감하고 책임은 사회와 자연이 지게끔 하는 방법을 택했다. 《플루토피아》가 들려주는 일상의 핵 재난에 더해, 미국·소련·영국·프랑스는 1945년부터 1963년까지 대기권·수중·사막·극지에서 무수히 많은 핵 실험을 수행했고, 막대한 방사성 물질을 방출했다. 1963년 핵무기를 보유한 미국·소련·영국의 주도로 부분적 핵실험 금지 조약이 체결돼 지하 핵실험을 제외한 모든 핵폭발이 금지됐다. 하지만 이 조약이 체결된 이후에도 지속된 지하 핵실험은 지구 각지의 대기·토지·대양·지하수를 피폭시켰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이 핵실험의 여파로 인한 갑상선암, 소아백혈병, 남성의 정자 감소 등은 여전히 증가 추세다.
핵 재난을 대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비용 절감이 고려되는 추세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듯하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인근 국가들의 깊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후쿠시마 오염수를 태평양에 방류한다는 일본 정부의 손을 들어 줬다.
[7] ‘과학적’ 처리 과정을 거친 “처리수”를 희석하면 인체와 자연에 끼칠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이러한 생각의 이면에는 ‘바다가 방사능을 희석할 것’이라는 전제가 있다. 아쉽게도 이 전제의 신빙성에 도전한 과학 연구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자력 기술의 뒷부분에 대한 역사적이고 거대한 무관심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최소 380억 리터의 방사성 쓰레기
핵에너지를 얻는 과정의 부산물로 나오는 핵폐기물은 액체·기체·고체의 형태를 띠고, 원전에서 가장 많이 배출된다. 원전에서는 피폭된 옷가지나 장갑, 물 등 방사능 활동이 있지만 비교적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쓰레기(저·중준위 폐기물)와 매우 치명적인 쓰레기(고준위 폐기물)가 동시에 나온다. 저·중준위 폐기물은 말 그대로 높지 않은 수준의 방사능을 가진 쓰레기를, 고준위 폐기물은 높은 수준의 열과 독성, 방사능을 가진 쓰레기를 말한다. 한편 고준위 폐기물인 사용 후 핵연료에서 원자 폭탄 제조에 쓸모 있는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공정은 재처리라고 부른다. 원자력이 무기로 쓰이는 것을 국제정치학 용어로 핵 확산이라고 하는데, 재처리는 바로 이 핵 확산의 위험 때문에 주요한 국제 정치적 사안이다. 2023년 현재, 중국·러시아·인도·파키스탄·프랑스가 상용 재처리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IAEA는 전 세계 사용 후 핵연료의 무게를 26만 5000톤으로, 그 부피를 모두 합치면 3800만 제곱미터(=380억 리터)에 달한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8]
저명한 핵폐기물 전문가인 카이스트 임만성 교수에 따르면,
[9] 핵폐기물, 특히 사용 후 핵연료의 관리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1960년대 말이다. 1950년대 중반부터 미국은 핵폐기물을 처리하기 위해 폐광을 이용한다는 계획을 추진했으나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1970년대, 연방 정부·주 정부·지역 관료의 입장이 충돌하면서 폐광산에 핵폐기물을 둔다는 생각은 거의 기각된다. 1982년, 지난한 협상 끝에 유관 정책이 통과된 뒤, 에너지부의 주도하에 네바다주 유카산이 2002년 처분장으로 최종 선정됐다. 하지만 이곳에서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는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미국을 비롯해 원자력을 이용하는 국가 대부분에서 고준위 핵폐기물은 수조에 보관돼 최종적인 처리를 기다리고 있고, 저·중준위 핵폐기물은 통에 담겨 땅 아래 묻히거나 바다에 버려졌다.
여전히 비밀에 싸인 핵폐기물 해양 처분의 역사
1945년 일본에 대한 핵 공격 이전에 시작된 핵폐기물 자연 투기는 미국을 선두로 소련·영국·프랑스 등 핵무기 보유국이 주도했다. 핵무기 보유국들에 더해 “평화적” 원자력 발전을 추구한 모든 국가는 방사성 쓰레기 처리를 고민해야 했다. 이때 바다를 쓰레기통으로 쓴다는 선택지는 별다른 기술 개발이 필요 없고 저렴하다는 이유로,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바다에는 얼마나 많은 핵폐기물이 잠들어 있을까? IAEA 문헌을 통해 바다에 버려진 핵폐기물의 현주소를 살펴보자.
1999년과
2005년에 간행된 핵폐기물 해양 처분과 해양 생태계의 방사능에 관한 보고서 두 건을 참조했다.
[10] 보고서들은 다른 IAEA 문헌과 마찬가지로 과학의 언어로 단조롭게 기술됐으나 그 내용은 실로 충격적이다.
1999년도 보고서는 핵폐기물 해양 투기의 금지를 촉구한 1972년 런던 컨벤션 참여 당사국들이 의뢰해 IAEA가 수행한 연구 결과물이다. 이에 따르면, 인류 최초의 핵폐기물 해양 처분은 1946년 미국 캘리포니아 해안 인근에서 이뤄졌다. 해양 처분은 응고된 핵폐기물을 통에 담아 바다에 버리는 행위를 일컫는다.
1993년까지 액체·고체 핵폐기물이나 원자로 용기가 지구상의 각지에서 해양 처분됐다. 유럽의 OECD 회원국들은 대서양 해양 처분장에 핵폐기물을 버렸고, 처분장 해저에서는 핵폐기물에서 유출된 방사성 물질인 탄소-14, 세슘-137, 플루토늄 등이 조사됐다. 유사한 조사는 태평양·북극해에서도 시행됐다. 1994~1995년에는 한국·일본·러시아 3개국이 공동으로 동해를 조사했다. 흥미롭게도, 조사 보고서의 결론은 모두 같았다. 극히 일부의 예외를 제외하면, 해양 처분된 핵폐기물의 방사능 유출은 무시할 만하다는 것이다.
핵폐기물의 해양 처분과 관련된 정확한 정보는 냉전이 끝난 뒤 극히 조금씩 공개됐다. 1993년, 러시아는 소련 시절 해양 처분의 비밀을 담은 “백서”와 동해에 액체 핵폐기물을 버린 사실을 각각 공개했다. 스웨덴은 발트해(1959~1961년)에, 영국은 잉글랜드 근해(1948~1976년)에 각각 해양 처분한 사실도 드러났다. 1946년부터 48년 동안, 14개국이 80여 곳의 장소에서 핵폐기물을 바다에 버렸고, 이 쓰레기가 가진 방사능의 총량은 히로시마 핵폭탄이 방출한 방사능(89테라베크렐)의 약 955배인 85페타베크렐에 달했다. 놀랍게도, 동해와 오호츠크해 등지에서도 1955년부터 핵폐기물 해양 처분이 이뤄졌다. 일본은 도쿄 근해 여섯 개 부지에서 12회(1955~1969년)에 걸쳐, 소련은 아홉 개 부지에 최소 61회(1966~1992년) 핵폐기물을 바다에 버렸다. 대한민국도 1968~1972년 사이 동해에 약 45톤의 핵폐기물을 수차례에 걸쳐 해양 처분했다.
2005년도 보고서는 IAEA가 모나코의 한 연구소에 의뢰하여 4년간 진행한 조사 보고서로, 주요 목적은 바다에 있는 핵분열 물질의 분포에 대한 종합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핵분열 물질이 수산물을 통해 인간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바다에 분포한 핵분열 물질 대부분은 1963년까지 시행된 핵 실험의 낙진이다. 핵 실험 낙진으로 바다에 있는 세슘-137의 방사능 추정치는 약 600페타베크렐이다. 이중 절반이 태평양에, 3분의 1이 대서양에, 6분의 1이 인도양에 분포돼있다. 한편 수치로만 따지면 바다에 버려진 핵폐기물의 방사능 총량(85페타베크렐)은 핵실험 낙진(603페타베크렐) 방사능의 15퍼센트 미만이고, 체르노빌 사고의 방사능(100페타베크렐)보다도 낮다. 인류는 핵 실험 낙진과 체르노빌 사고를 살아남았다. 그러니 해양 처분된 핵폐기물의 방사능은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
이 IAEA 보고서들은 바다에 다양한 핵분열 물질이 있음을 ‘과학적으로’ 알려준다. 안타깝게도 보고서만으로는 방류된 후쿠시마 오염수로 인해 우리가 피해를 받을지의 여부에 관해서는 결코 알 수 없다. 후쿠시마 오염수 배출의 주요한 쟁점 중 하나는 체내 축적의 문제로, 방사성 물질이 생물체의 몸 안에서 어떤 작용을 일으키고 얼마나 오래 체내에 남을 것인가와 관련 있다. 체르노빌 지역에서 다년간 현지 조사를 수행한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교의 과학자 티모시 무쏘는 2023년 4월, 삼중수소가 인체에 끼치는 영향을 보여 주는 연구는 실질적으로 이뤄진 적이 없다고
언급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방사성 실험은 설계도 어렵고 윤리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물론 수많은 문헌은 방사성 물질의 체내 축적이 유전적인 질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하여 언젠가 후쿠시마 오염수로 인한 보건상의 영향이 관측된다면, 무언가 행동을 취하기엔 이미 늦었을 것이다.
‘하면 된다’에 가려진 한국의 핵폐기물
일본의 방류 계획이 발표된 시점은 2년 전인 2021년이었다.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놀랍게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초래할 보건상의 영향에 관한 예측은 여전히 미심쩍다. 삼중수소를 머금은 “처리수”를 마셔도 괜찮은가? 오염수가 섞인 방사성 해수가 어떤 확산 과정을 거칠 것이며, 그것이 우리에게 가져다줄 결과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과학적으로’ 합의된 답변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국내 과학계의 입장은 방류를 두고 괜찮다는 편과 위험하다는 편으로 양분됐다. 흥미롭게도, 전자(안전하다) 쪽에선 후자(위험하다)의 시각을 비과학적이라고 규정하기 일쑤다.
이러한 모습은 지난 60년간 한국의 원자력 이해에서 지배적이었던 특징들을 반영한다.
[11] 첫 번째 특징은 원자력 발전의 부산물인 핵폐기물에 대한 거대한 사회적 무관심이다. 우리는 원전에서 어떤 쓰레기가 배출되는지, 그러한 폐기물이 어디로 향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이에 대한 언론과 과학의 설명은 그러한 쓰레기들이 별문제 없이 안전히 잘 관리되고 있다는 것뿐이다. 두 번째 특징은 상대방을 비과학적이라고 규정하는 일에 과학 기술의 언어와 권위를 쉽사리 동원하는 태도다. 1980년대 후반의 신문에는 무수히 많은 방사성 피해에 관한 억눌린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러한 정당한 우려는 냉전기에는 물론, 탈냉전기에도 대다수는 근거 없는 것으로 치부됐다.
[12]
‘하면 된다’식의 경제 개발 지상주의가 팽배한 냉전기 한국 사회에서 정계와 과학계의 지도자들은 핵폐기물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과학과 시민 사회의 합의가 조화를 이뤄야 할 핵폐기물 처리장(방폐장) 부지의 확보 과정은 민주화의 열망과 졸속 행정으로 인해 정책적 후순위로 밀려났고,
[13] 방사성 피폭 피해 주장이나 핵폐기물 처리장 설치와 같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된 문제들은 과학적 탐구 주제라기보다는 정치의 내깃돈이 된 측면이 강했다. 이러한 역사는 크게 바뀌지 않아, 오늘날 과학 기술이 공정한 민주주의를 만드는 데 복무하기보다 다른 입장의 상대를 공격하는 무기로 쓰이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14] 핵폐기물이 정치적 문제가 되는 동안 원자력 재난은 계속해 망각되고 있다.
원자력 재난이 계속 망각되는 이유
모든 재난이 그렇듯, 핵 재난도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자연스레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진다. 핵 재난이 쉽게 망각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핵 역사의 가장 큰 특징이 비밀주의(secrecy)이기 때문이다. 비밀주의란, 개방과 협력을 원칙으로 하는 과학의 결과로 탄생한 원자력이 너무나도 강력해 철저히 은폐돼야 하고 과학계 내에서도 오직 극소수만 이에 관해 알아야 한다는 태도를 일컫는다. 핵무기의 역사학자 알렉스 월러스틴의 저서 《Restricted Data》가 보여주듯 비밀주의는 핵과 관련된 모든 활동을 규제하고 관장한다.
[15]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핵 역사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이다. 그 역사의 중요한 일부인 핵 재난도 마찬가지다. 밝혀진 바가 많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잘 모른다.
둘째, 플루토늄 재난이 보여 주는 것처럼 일상의 원자력 재난은 보이지 않는다. 마치 후쿠시마 오염수가 머금고 있는 삼중수소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해산물이 방사성 물질을 섭취한다 해도 검사를 하기 전까지 그 해산물이 방사능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다. 수입 해산물에 대한 전수 조사라도 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후쿠시마 오염수가 내뱉은 방사성 물질, 즉 핵 재난의 발자취를 도무지 파악할 수 없다. 선명히 보이는 것도 쉽사리 망각되는 판국에, 보이지 않는 방사성 동위원소가 우리의 뇌리에 남을까?
셋째, 기술에 거는 우리의 순진한 태도다. 미국 오리건주립대학교 역사학과 교수인 제이콥 햄블린의 저서 《저주받은 원자》가 잘 짚듯
[16], “평화적” 원자력이라는 말은 애초에 핵폭탄보다 더욱 강력한 수소 폭탄 실험의 파장을 잠재우기 위해 나온 정치적 구호의 측면이 강했다. 이후 “평화적” 핵 기술이 지구적으로 확산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이들은 원자력을 “깨끗한 에너지”의 선두주자로 취급했다. 물론 그러한 원자력 활용에 어떠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별다른 질문을 던지지 않고 말이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이후에도 우리의 태도에는 바뀐 바가 없다.
시민이 오염수 방류를 막는 방법
원자력의 뒷부분이 배출하는 핵폐기물은 한국 사회에서 거의 논의되지 않는 주제였다. 그러나 이를 파악해야만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결정이 내려지게 된 인류사적 맥락을 조망하고, 우리가 얼마나 핵폐기물에 무감하게 살았는지를 성찰할 수 있다. 후쿠시마 오염수가 핵 재난의 한 가운데서 나온 쓰레기라는 점을 고려할 때, 아쉽게도 후쿠시마뿐만 아니라 미래의 어떠한 핵 폐수 방류도 우리의 기억에서 쉽게 잊힐 것이다. 과거의 관성은 결연히 이어진다.
인류는 어떻게 그리도 무심하게 핵폐기물을 자연에 버렸을까? 힘과 지식을 가진 이들은 그 결과에 책임지지 않고 어떻게 자신의 활동을 이어 나갔는가? 이와 같은 문제들은 앞으로 더욱 탐구돼야 할 지점이다. 동시에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중요한 것은 친핵이나 반핵과 같은 원자력에 대한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분법으로부터의 탈피가 선결 조건으로 전제돼야만 우리는 의미 있는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친핵이든 반핵이든 하나의 입장을 정하면 자신과 입장이 반대되는 이와는 가장 기본적인 논의조차 시작하기 어렵다. 이를테면, ‘원자력이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가’ 또는 ‘방사성 물질이 왜 인체에 치명적인가’와 같은 문제들 말이다. 그 대안으로 역사적 관점을 취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핵 재난과 핵폐기물, 나아가 원자력에 대한 역사적 관점을 취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는 우리 사회가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핵의 역사를 독해하고, 더 나아가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의미다. 물론 원자력과 관련된 현상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도 중요하다. 하지만 누가 원자력을 어떤 방식으로 선택하고, 옹호하며, 혁신하고, 그로부터 이득을 얻는지를 검토하는 역사학적인 설명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맨눈으로 보기 어려운 방사선과 달리, 원자력의 역사를 담은 자료들은 어느 정도 공개가 됐으며 누구나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어렵지 않게 탐구에 참여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체르노빌 생존 지침서》, 《플루토피아》, 《저주받은 원자》 등의 저서는 우리가 가진 핵과 관련된 상식의 범위를 획기적으로 넓혀 준다.
마지막으로 과학의 의도치 않은 효과 한 가지를 생각해 보며 글을 맺고자 한다. 과학은 관찰과 계산의 힘을 바탕으로 권위를 얻지만, 이러한 과학이 보여 주는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제한된 단면이다. 동시에 과학은 세부에 집중하면서 관찰하는 현상과 결부된 다른 측면에 대한 논의를 손쉽게 차단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과학의 편파성은 “처리수가 안전하다면 방류가 필요 없지 않은가?”라는 질문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극미한 확률이라도 후쿠시마 오염수를 섭취한 방사성 생선이 교묘히 검역을 피해 우리 가족의 식탁에 올라오고, 그 물고기를 누군가 먹었을 때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안타깝게도, 과학은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