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더링은 몸으로 푸는 문제다
클라이밍은 소수의 취미였습니다. 체험할 곳도 적고 위험했기 때문입니다. 소셜 미디어 탄생 이후 생활 피트니스가 수면 위로 떠 올랐지만 클라이밍을 즐기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헬스와 바디 프로필, 홈 트레이닝 일색이었죠. 16:9의 화면비가 대세로 자리 잡을 즈음 엄지로 쓸어올린 화면 속에는 실내에서 알록달록한 암벽을 타는 사람들이 숱하게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볼더링의 시대가 온 겁니다.
볼더(Boulder)는 바위를 뜻합니다. 특히 오랫동안 풍화나 침식을 거쳐 표면이 반들반들해진 바위를 말하죠. 벽에 달린 앙증맞은 설치물을 홀더(holder)라고 하는데 잡기 쉽게 생긴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비정형적인 바위의 모습처럼 제각각이고 심지어 어떤 것은 미끄럽습니다. 볼더링의 묘미죠. 취미 운동으로만 생각했다면 오산입니다. 무려 올림픽 시범 종목이니까요. 스포츠 클라이밍은 규격화된 코스를 빠르게 오르는 ‘스피드’, 제한 시간 내 누가 더 높이 오르나를 겨루는 ‘리드’, 그리고 볼더링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주된 차이는 높이와 로프의 유무입니다. 앞선 두 종목은 보통 15미터의 높이에서 진행되고 로프를 달지만 볼더링은 4~5미터 고도에서 맨몸으로 진행합니다.
볼더링이 많은 이의 취미가 될 수 있던 건 단순히 쉬워서가 아닙니다. 볼더링 코스는 대회 직전까지 결코 공개되지 않습니다. 볼더링은 본질적으로 ‘문제를 푸는’ 종목이기 때문이죠. 형형색색의 홀더에는 시작점과 결승점이 정해져 있고 같은 색 홀더만을 사용해 등반해야 합니다. 어떤 홀더를 어떻게 잡고 어떻게 밟아 올라가야 할지 치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흔히 말하는 ‘피지컬(physical)’과 ‘뇌지컬’을 동시에 요구하는 운동이죠. 중력을 거슬러 높은 벽을 오른다는 도전과 극복의 서사, 몸과 머리를 동시에 쓰는 재미, 자극되는 소셜 미디어 포스팅 욕구, 완등의 성취감은 볼더링을 확고한 마이크로 트렌드로 만들었습니다. 갓생을 외치는 세대가 몸으로 푸는 문제이자 취미가 된 겁니다.
LOOKS OF, Bouldering
들어서자마자 회색 벽의 높이에 놀라게 됩니다. 가까이 다가설수록 5미터가 꽤 높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처음 클라이밍 짐을 방문하면 입문 강의가 필수입니다. 룰과 안전 수칙을 꼭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발 밑엔 든든한 매트가 있지만 떨어질 때 골절상을 입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괜히 익스트림 스포츠가 아닌 겁니다. 주로 쓰는 손에 간단히 밴디지를 감고 가장 쉬운 난이도의 문제부터 차근차근 풀어봅니다. 제가 방문한 센터에는 난이도가 일곱 가지 무지개 색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홀더의 색과 무관하게 홀더 옆에 붙은 시작점과 결승점의 테이프 색으로 난이도가 정해집니다. 입문자용은 빨간색이죠. 미끄러지지 않으려 손에 바른 초크가 홀더들에 숱하게 묻어 마치 실내 클라이밍 짐에 눈이 내린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