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비야디
1화

프롤로그 ; 중국의 전기차 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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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은 어디일까? 중국이다. 2022년 미국에서 고작 80만 대의 전기차가 판매될 때 중국에선 536만 대가 팔렸다. 전년 대비 81.6퍼센트가 늘어난 수치다. 엄청난 성장률을 고려하면 테슬라(Tesla)가 왜 이렇게 중국에 공을 들이는지 짐작할 수 있다. 언론들이 ‘중국의 전기차 굴기’라고 표현하는 건 과장이 아니다.

‘굴기(崛起)’는 ‘우뚝 솟아 일어난다’는 의미다. 중국의 숱한 산업에 쓰인 수사이지만 전기차만큼 이 단어에 적합한 건 없다. 전 세계가 반도체와 더불어 첨예하게 보호 무역주의로 맞붙는 이 산업을 논하려면 중국을 알아야 한다. 이 책은 그 최전선에 서 있는 한 기업에 대한 얘기다.

물론 시장의 크기와 기업 경쟁력은 별개다. 중국은 1978년 개혁 개방 이후 지난 40여 년간 미국, 유럽, 일본, 한국을 비롯한 외국 자동차 기업에 내수 시장을 내줬다. 내연 차량의 시대, 중국은 완성차 부문에서 웃지 못했다. 그런데 이 구도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중국 토종 기업들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지난 2023년은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역사적으로 특별한 해였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中国汽车工业协会)의 통계에 따르면 2023년 중국의 승용차 판매는 3009만 4000대에 달해 최초로 3000만 대 고지를 뚫었다. 또한 중국자동차기술연구센터(中国汽车技术研究中心)에 따르면 2023년 비야디(BYD)가 글로벌 강자인 폭스바겐(230만 대, 점유율 10.3퍼센트)을 제치고 처음으로 중국 내수 판매량 1위(240만 대, 점유율 11퍼센트)에 올라섰으며 중국 토종 자동차 메이커의 시장 점유율이 55.9퍼센트로 처음으로 절반을 넘었다.[1] 그뿐 아니다. 신에너지 차량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30퍼센트 이상 증가해 900만 대를 초과했고 수출은 491만 대에 달했다. 중국은 처음으로 일본을 제치고 자동차 최대 수출국이 됐다.

중요한 점은 최근 중국 기업의 폭발적인 성장과 선전이 신에너지 차량[2]의 시대와 맞물려 불고 있다는 점이다. 신에너지는 기존의 화석 연료가 아닌 대체 에너지를 말한다. 수소, 전기, 하이브리드 차량 등이 신에너지 차량에 해당한다. 이 미래 시장에서 명실상부 1위 기업으로 알려진 것은 테슬라지만 지금부터 말하게 될 것은 이 인식을 크게 뒤흔들 것이다.

2022년 비야디는 186만 대 이상을 팔아치우며 중국 토종 기업 및 단일 브랜드 중 판매량 1위를 달성했으며, 2023년에도 2022년보다 61퍼센트 이상의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며 302만 4400대를 판매했다. 이로써 비야디는 전 세계 신에너지 차량 판매량 1위 자리를 다시 한 번 지켜 냈다.

물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을 제외한 순수 전기차(BEV)의 왕관은 아직 테슬라의 차지다. 범위를 전기차로만 좁히고 글로벌 시장 전체로 보면 2022년 테슬라가 131만 대를 판매해 91만 대를 판매한 비야디보다 앞섰다. 그러나 비야디는 2023년은 한 단계 더 테슬라의 왕좌에 근접했다. 전체 판매량으로 따지면 비야디의 판매량은 이미 테슬라의 두 배에 근접하는 수준이다. 다만 여전히 순수 전기차만 따지면 157만 4800대를 판매하며 테슬라의 180만 8600대에 못 미쳤다. 그러나 2023년 4분기만 비교하면 비야디는 52만 대를 판매하여 전기차마저도 49만 대를 판매한 테슬라를 추월했다. 2024년에도 이 기세가 지속된다면 전기차 시장의 왕좌마저도 비야디의 차지가 될 것이다.

완성차 시장에서의 외형적인 성장만이 다가 아니다. 중국 기업은 최근 신에너지 차량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 분야에서도 위세가 대단하다. 중국 배터리 기업에서 많이 쓰는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는 한국에서 주로 제조하는 삼원계(NCM, 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에 비해 에너지 밀도가 낮아 시장에서 점점 퇴출당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오히려 점유율이 상승하며 시장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 테슬라는 자사의 장기 경영 계획인 ‘마스터 플랜(Master Plan) 파트 3’에서 전 세계인이 모두 전기차를 탄다면 향후 LFP 배터리가 61퍼센트의 점유율을 차지할 것이라 밝히기도 했다.

비단 미래의 일이 아니다. 2023년 4월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중국 LFP 배터리 공급망 분석에 따르면 2018~2020년 사이 삼원계 배터리의 전기차 점유율은 약 60퍼센트 전후를 유지했으나 2021년 LFP 배터리가 점유율 52퍼센트로 첫 역전을 하더니 2022년 점유율 62퍼센트를 기록하며 격차가 더 커졌다. 이는 중국 내 신에너지 차량 시장이 급성장하며 생긴 변화다. 2022년 SNE 리서치 발표 기준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시장에서는 한국 배터리 3사의 점유율 합계가 53.4퍼센트로 한국이 우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LFP 배터리 점유율의 심상치 않은 상승세에 한국 기업이 오히려 위기감을 느끼고 LFP 배터리 연구·개발 및 상용화 제품을 발표하고 있으며 한국 정부에서도 이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최근 SNE 리서치 발표에 따르면 2023년 1~12월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점유율에서 비야디는 CATL의 36.8퍼센트에 이어 15.8퍼센트를 기록하여 작년 3위에서 2위로 올라섰다. 따라서 중국은 CATL, 비야디, CALB, EVE 등 총 여섯 개 기업이 글로벌 10대 배터리 업체에 포함됐으며 이들의 합계 점유율은 63.5퍼센트에 달했다. 중국이 전 세계 배터리 시장의 6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은 어떻게 소리 소문도 없이 전 세계 신에너지 차량과 관련 핵심 부품 시장을 주름잡게 되었을까? 중국이 개혁 개방 이후 내수 시장을 내줄 수밖에 없던 것은 엄청난 기술적격차 때문이다. 서방은 100년 이상의 기술력을 가진 내연 기관(엔진), 변속기 및 차량 플랫폼 등을 내세워 중국 시장을 지배해 왔고 중국은 핵심 기술의 격차를 좁히는 데 한계를 느끼게 된다. 기후 변화와 함께 친환경 차량의 바람이 불자 중국은 내연 차량 대신 신에너지 차량 분야에서 승부를 보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한다. 다양하고 정교한 보조금 정책 및 세금 감면으로 해당 산업을 타깃 육성하고 소비자에게도 신에너지 차량 구매를 적극적으로 권장했던 결과가 지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직접적인 수혜를 본 기업 중 한 곳이 바로 광둥성 선전시에 본사를 둔 비야디다. 정부 지원, 연구· 개발을 통한 상품성 제고, 원가 절감으로 얻은 가격 경쟁력 및 브랜드 이미지 개선에 힘입어 비야디는 2022~2023년 연속으로 눈부신 성장을 기록했고 2024년의 판매 실적은 더 좋아질 전망이다.

이 책에선 신에너지 차량의 최강자 중 한 곳으로 떠오르고 있는 비야디가 어떤 기업인지, 주요 사업 및 발전 과정을 소개한다. 특히 ‘배터리 인간’으로 불리는 창업자 왕촨푸(王传福)에 대해서 알아보고 판이한 성격의 라이벌 기업인 테슬라와의 경쟁에서 비야디의 강점과 약점을 분석한다. 이를 통해 향후 신에너지 차량 분야의 발전 방향을 가늠해 보고 관련 분야 한국 기업의 기회를 모색한다.
[1]
그룹사로 따지면 비야디의 판매량은 아직 상치, 이치, 동펑, 광치, 창안 그룹에 못 미친다. 이유는 이 그룹사들은 오랜 기간 다양한 외자 기업과 합자한 여러 브랜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치 그룹만 해도 폭스바겐, GM 등과 합작한 여러 기업을 거느리고 있다.
[2]
본서에서 신에너지 차량은 중국 기준으로 순수 전기차(BEV),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수소전기차(FCEV) 등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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