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촨푸 vs. 일론 머스크
왕촨푸의 비야디와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는 모두 2003년부터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어 현재 주로 중국 글로벌 신에너지 차량 시장에서 경쟁 중이다. 지금은 이들 기업의 전기차 경쟁 구도가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만 시간을 약 10년 이상만 거슬러 올라가면 두 기업 모두 자동차 분야에 있음에도 서로를 크게 의식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상대방을 경쟁자로 인식하지 않는 경향은 테슬라 쪽에서 더 강했다. 2011년 일론 머스크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워런 버핏의 투자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버크셔가 테슬라가 아닌 비야디에게 큰 금액을 투자했는데 테슬라는 비야디를 경쟁사로 생각하냐는 질문이었다. 머스크는 말 그대로 실소를 머금으며 답했는데, 그는 비야디 차량을 본 적이 있냐며 비야디는 테슬라와의 경쟁이 문제가 아니라 중국 내에서 생존 과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10년 후 중국 내 신에너지 차량 판매량에서 테슬라는 비야디에 밀리고 있으며 테슬라의 고위 관계자도 중국 내 가장 큰 경쟁자로 주저 없이 비야디를 꼽고 있을 정도로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어쩌다 서로 경쟁자가 됐을지 모르겠을 정도로 전혀 다른 세상에서 평행선을 가던 두 사람이 각자의 변곡점을 지나며 2020년대에 들어 서로를 정면으로 마주치게 된 것이다.
비야디와 테슬라는 모두 창업자가 현역이고 기업 운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 때문에 두 기업을 비교하려면 우선 창업자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흥미로운 건 둘은 성장 배경부터 완전히 판이하지만 17세를 기점으로 인생을 바꿀 결정을 내렸다는 점이다. 앞서 간단히 살펴봤지만 1966년생인 왕촨푸는 10대에 일찍 아버지와 어머니를 여의었다. 당연히 경제 상황도 매우 좋지 못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도 형제간의 우애가 깊었고 이를 바탕으로 왕촨푸는 가난에도 학업을 계속 이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 비록 돈은 없었지만, 사랑과 우애가 넘치는 집안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83년 17세의 왕촨푸는 이에 보답하고자 학업에 매진한 결과 중점대학교에 합격하여 고향의 자랑이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고향을 떠나서 더 큰 세상으로의 여정을 시작했다.
일론 머스크는 1971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현지의 유명한 엔지니어였고 어머니는 모델이었다. 그의 집은 거의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부유했다. 집과 차는 물론이고 심지어 비행기도 있었다. 여섯 살부터 이미 머스크는 아버지를 따라서 전 세계를 여행했다. 게다가 머스크는 어렸을 때부터 두뇌가 비상해 10세부터 이미 스스로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시작했고 12세에 코딩해서 만든 게임을 500달러에 판매한 적도 있다.
머스크는 이렇듯 부유한 가정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집안에는 사랑이 결핍됐다. 머스크의 부모는 일찍이 이혼해 집안에는 그를 돌봐줄 사람이 없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아버지는 성정이 거칠고 괴팍했으며 매우 폭압적이었다. 머스크가 학교에서 심한 따돌림을 받는 상황에서도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긴 세월이 지난 후에도 머스크에게 유년 시절은 가혹한 기억있던 모양이다. 언론 인터뷰에서도 유년 시절에 대해 당시에 행복하지 않았다며 눈물을 쏟은 바 있다. 결국 그는 17세의 나이에 아버지의 반대에도 고향인 남아공을 떠나서 캐나다 시민권자인 어머니가 있는 캐나다로 유학을 떠났다. 2년간 온타리오의 퀸스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미국 펜실베니아의 와튼스쿨로 편입하여 경제학과 물리학 학사 학위를 취득한다. 너무도 다른 둘의 인생이 17세부터 바뀌기 시작한 것을 보면 일종의 평행 이론이 생각나기도 한다.
이후의 행보를 보면 두 사람이 어떻게 서로를 마주하게 됐는지 알 수 있다. 왕촨푸는 1994년 28세에 다니던 철밥통 직장을 그만두고 배터리 제조 분야의 창업을 시작했다. 머스크는 1995년 24세에 스탠포드대학교의 고체물리학 슈퍼 축전기 분야로 박사 과정에 합격했으나 인터넷의 잠재력을 보고 실리콘밸리로 이주하여 창업을 시작했다. 집중한 분야는 달랐지만 둘 모두 비슷한 시기에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왕촨푸가 배터리 분야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던 시절 머스크는 인터넷에 기반한 지역 정보 제공하는 서비스 ‘Zip2’를 개발해 당시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컴퓨터 회사 컴팩COMPAQ에 약 3억 달러에 매각하고 머스크는 자기 지분 2200만 달러를 현금으로 챙겼다. 이른 나이에 백만장자가 된 머스크는 이후 온라인 결제 플랫폼 페이팔(Paypal)을 공동 개발해 이베이에 2억 5000만 달러를 받고 매각하며 엑싯(exit)한 바 있다. 이 시절만 하더라도 두 사람의 인생에서 교차점이 생길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둘의 인생은 2003년경 다시 한 번 운명적인 유사점을 보인다. 자신의 주변인과 투자자들이 원치 않는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바로 전기차 제조였다. 2004년 당시만 하더라도 완벽한 내연 기관 차량의 시대였다. 그러나 머스크는 테슬라의 최초 투자자로서 650만 달러 자금을 투자하여 최대 주주로 등극하고 추후 최고 경영자까지 맡게 된다. 석유 고갈과 무분별한 탄소 배출이 인류의 재난이 될 수 있음을 꿰뚫어 보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해 인류를 구하겠다는 거대한 대의명분을 내세운 것이다. 당시 자동차 및 투자 업계 인사들은 이런 머스크의 결정에 대부분 의문을 표했다.
왕촨푸의 비야디가 자동차 업계에 진출하기로 선언한 2003년, 그들은 이미 글로벌 배터리 업계 2위 기업이었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은 왕촨푸는 비야디의 재도약을 위해선 전기차를 만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들의 개발한 배터리를 자사의 전기차에 탑재하는 것이 왕촨푸의 큰 그림이었다. 그러나 여러 주주는 이제 자동차 사업을 처음 시작하는 비야디가 벌써부터 전기차를 개발하고 판매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비야디가 친촨자동차 인수를 발표하던 당시 이들의 매각으로 비야디 주가가 하루 만에 20퍼센트 이상 폭락한 것은 이 때문이다.
배경도, 전기차로 향하게 된 과정도 모두 다른 둘이지만 확실한 건 두 기업 모두 전기차 사업에 창업자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둘 모두 아무것도 없이 자수성가로 사업을 일으켰다는 점과 전기차 제조에 뛰어들 때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했다는 점이 닮았다. 비야디와 테슬라는 서로가 각자 처음 포지셔닝한 중저가 및 고급 자동차 시장에서 벗어나 각자 상대방의 영역으로 돌격하면서 드디어 제대로 마주친 상황이다.
비야디의 전기차 vs. 테슬라의 전기차
고급화를 꿈꾸는 비야디, 저변 확대를 꿈꾸는 테슬라. 두 기업 중 자신의 큰 그림을 성공적으로 그리는 쪽은 어딜까? 앞서 살펴본 비야디의 시장 지배 과정을 간단히 복기해 보자. 비야디는 배터리 기업으로부터 시작해 파산 직전으로 망해 가던 자동차 회사를 인수하여 여러 좌절을 겪으며 첫 자체 제작 모델을 만들었으나 실패했다. 그 이후 도요타 코롤라를 가져온 후 샅샅이 분해해서 파악한 후 그대로 카피를 시도한다. 동시에 비야디는 자동차 관련 기술 특허를 연구해서 자신들이 경쟁사를 모방하기 쉽게 하는 동시에 경쟁사가 자신들을 따라 하지 못하도록 힘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배터리 시절부터 강점이었던 인해人海 전술을 사용해 각종 자동화 설비를 도입하는 대신 저렴한 인건비로 생산 단가를 최대한 줄였다.
결과적으로 2005년 원조 모델인 코롤라보다 30~40퍼센트 이상 저렴한 7만 위안 정도의 가격으로 F3를 출시하여 판매량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러나 이미 시작 단계부터 카피캣으로 시작했기에 중국 소비자가 원하던 가성비만 일부 만족시켰을 뿐 저품질, 저성능, 저신뢰 등 하위의 브랜드로 포지셔닝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비야디 입장에서 피할 수 없던 기업 발전 초기 단계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만큼 프리미엄 브랜드로 발돋움하기 위한 계단이 높다는 의미기도 했다.
이에 반해 테슬라는 처음부터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기업이었다. 테슬라의 초기 투자자이자 창업자인 머스크는 이미 실리콘밸리에서 여러 번 창업 후 매각에 성공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유명 인사였다. 비야디가 소위 말하는 ‘자세 안 나오는 카피캣 전략’으로 도요타 차량을 베끼기에 급급할 때 테슬라는 자사의 첫 번째 모델로 무려 스포츠카를 선보였다. 2006년에 최초로 발표하고 2008년에 출시한 로드스터(Roadster)다. 이 차량의 출시 가격은 10만 9000달러로 고가의 럭셔리카이자 세계 최초의 전기 스포츠카라는 포지셔닝으로 테슬라의 이름을 각인시킨다. 이 순수 전기 스포츠카는 발표되자마자 멋진 디자인과 성능으로 대중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그러나 로드스터를 출시하고 양산을 시작할 때야 비로소 각종 문제가 터져 나왔다. 당시만 하더라도 전기차 제조에 필요한 부품 및 배터리 등 관련 공급망이 성숙하지 못했으므로 원래 팔려던 가격의 두 배인 약 20만 달러의 제조 원가가 들어갔던 것이다. 문제는 이미 많은 고객은 예약금을 걸고 차량 출고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약속된 날짜에 제때 차량을 공급하지 못하자 머스크는 사기꾼 취급까지 받게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8년 금융 위기까지 발발해 머스크는 집과 차량 등 개인 재산을 처분해 회사 자금을 대는 것은 물론, 여기저기 힘겹게 투자금을 유치하러 다녔다. 머스크가 워렌 버핏과 찰스 멍거에게 투자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것도 바로 이 즈음이다. 다행히 테슬라는 2010년 미국 에너지부로부터 미국 전기차 산업 발전을 위한 ‘선진 기술 자동차 제조 대출 프로그램(Advanced Technology Venicle Manufacturing loan program)’에 선정돼 약 4억 6500만 달러의 저금리 대출을 받고 자금 숨통이 트이게 된다. 신규 대출 자금과 로드스터를 개발한 경험을 가지고 테슬라는 다시 한번 세계 최초의 프리미엄 전기차 세단을 공개하게 되는데 이게 바로 모델S다.
1세대 로드스터는 고성능 스포츠카였으나 양산 능력 미흡과 제조 원가 절감 실패로 결국 전 세계적으로 고작 약 2000여 대가 판매되는 데 그쳤고 2012년경 단종됐다. 하지만 같은 해에 공개된 프리미엄 세단인 모델S로 인해 테슬라는 끝내 최고급 차량을 생산하는 전기차 선도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대중에게 심어 주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로드스터의 전철을 밟지 않고 2년 만에 5만 대를 판매하는 기록을 세웠다.
테슬라는 안정적인 양산에 성공한 모델S에 이어서 프리미엄 SUV인 모델X, 보급형 세단 모델3, 보급형 SUV인 모델Y까지 차례로 발표하며 자신들의 라인업을 일단 완성한 모습이다. 즉, 고급 라인부터 발표하고 향후 보급형 라인을 생산하면서 테슬라의 판매 저변을 넓혀 가는 전략을 취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비야디는 어떻게 고급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을까? 중국 왕조 시리즈를 발매하며 전열을 가다듬고 디자인과 성능을 대폭 향상한 비야디는 2023년 중저가 라인에서의 확장 한계를 느끼고 최근 해양 계열로 자사의 라인업을 더욱 풍부하게 넓혀 놓았다. 비야디가 출시한 새로운 프리미엄 브랜드인 양왕(仰望)에는 무려 수륙 양용 SUV 모델이 포함됐다.
양왕을 프리미엄 브랜드로 포지셔닝하겠다는 비야디의 의지는 홈페이지에서부터 보인다. 비야디(
www.bydauto.com.cn)와 별도로 홈페이지(
www.yangwangauto.com)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양왕은 2024년 3월 기준 프리미엄 SUV인 U8, 고성능 스포츠카인 U9과 럭셔리 세단인 U7까지, 총 세 가지 라인업으로 구성돼 있다. 2023년 4월 상하이 모터쇼에서 처음으로 발표된 U8의 가격은 109만 위안((2억 114만 원)으로 책정됐다. 우리 돈 2억 원이 넘는 초고가의 차량인 셈이다. 시장 반응은 어땠을까? 사전 판매가 시작된 이후 48시간 만에 1만 3000대가 계약됐고 20일 만에 총 3만 대가 넘게 계약된 것으로 보도됐다. 2024년 2월 비야디에서는 고성능 스포츠카인 U9의 판매 가격을 168만 위안(3억 1002만 원)으로 공식 발표했다. 이와 더불어 비야디에서는 럭셔리 세단 U7을 새롭게 양왕 라인업에 추가했다. U7의 가격은 미정이다.
이렇듯 비야디가 프리미엄 브랜드를 공식적으로 론칭하여 이미지 제고와 고급 전기차 시장을 향한 도전장을 내민 것과 상반되게 테슬라는 오히려 자신들의 주력 모델인 모델3의 가격을 쉴 새 없이 인하하고 있다. 테슬라의 이 같은 가격 인하는 전기차 업계의 치킨 게임으로 번지고 있는데, 중국 시장뿐 아니라 미국 시장의 전기차 기업들마저 도산 위기에 처했다는 보도가 계속되고 있다. 과거 성장기의 반도체 산업처럼 전기차 시장에서 제로섬 게임이 계속되자 테슬라 역시 기존 비야디가 장악하고 있는 중저가 시장까지 영역을 확장하기 위한 진격을 시작한 것이다. 테슬라는 2019년 35만 위안(6458만 원)이상으로 판매하던 모델3의 기본 모델을 2023년 23만 위안((4244만 원)까지 인하했다. 2023년 9월 부분 변경된 모델3을 발표하면서 2만 위안 소폭 인상하긴 했으나 과거보다 무려 약 30퍼센트 할인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최근 반년간 무려 5회 이상 점진적으로 가격을 인하하며 전기차 가격 경쟁에 불을 붙였다.
앞선 내용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 비야디와 테슬라의 타깃 고객군은 처음부터 아예 달랐다. 비야디의 신에너지 차량은 중국의 타 브랜드를 비롯한 기존 중저가 내연 차량의 잠재 고객을 신규로 유치하여 점유율을 높였다. 반면 테슬라는 벤츠, BMW, 아우디 등 고가 내연 차량의 점유율을 빼앗으며 성장했다. 그간 시장에서 서로 경쟁할 일이 적던 두 기업이 맞붙기 시작한 것은 신에너지차가 비단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 잡아 가는 국제적인 흐름과도 관련이 있다. 각자 포지셔닝한 시장을 넘어 전방위적인 전환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비야디가 20~30만 위안(3690~5536만 원)대 가격의 차량 라인업을 늘려서 브랜드 전체에 힘을 실어 주는 동시에 테슬라의 모델S, 모델X 같은 프리미엄 차량을 상대하기 위한 새로운 브랜드까지 론칭한 이유다.
양사가 비슷한 가격대에서 경쟁 중이라는 것은 확인했다. 그렇다면 실제 주력 모델의 스펙과 가성비는 어떻게 다를까? 당장에 전기차를 살 계획이 없거나 전기차 관련 투자자가 아니더라도 이 둘의 라인업을 봐두는 것은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들의 경쟁이 비단 전기차끼리의 경쟁에 국한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20~30만 위안(3690~5536만 원)대 가격의 차량에서 현재 중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경쟁력 있는 차종은 바로 도요타, 혼다 등 일본계의 내연 기관 및 하이브리드 차량이다. 비야디와 테슬라의 가격 경쟁이 기존의 내연 기관 차량 시장까지 뒤흔들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살펴볼 양사의 주력 모델 전쟁은 가까운 미래 우리에게 주어질 선택지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두 브랜드의 주력 모델을 분석하기에 앞서 스펙 분석에 있어서는 객관성 확보를 위해 국내 전기차를 대조군으로 설정하고자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국산 차종에 비해 비야디와 테슬라 차량의 스펙이 어떤지 알아야 보다 현실적인 비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분석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한다. 먼저 라인업을 비교한다. 다음으론 전기차 핵심 스펙인 주행 거리의 측정 기준에 관해 논한다. 그리곤 주행 거리에 따라 양사의 모델이 얼마나 가격 경쟁력이 있는지를 국내 차종과 비교하며 알아본다. 다만 2023년 중국 신에너지 차량 보조금 중단과 더불어 테슬라가 주도한 가격 인하 경쟁으로 비야디도 같이 가격을 내리고 있어 자동차 가격 변동이 심하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이 책에선 2024년 3월 기준으로 양사의 주력 모델을 살펴본다.
라인업
우선 비야디를 보면 2022년 4월 내연 기관차 생산 중단을 선언한 이후 모든 라인업은 순수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로만 구성돼 있고 크게 두 가지 카테고리로 나뉜다. 하나는 중국 역대 왕조 이름을 딴 왕조 계열이며 나머지 하나는 해양 선박 및 동물의 이름을 딴 해양 계열이다. 또한 비야디는 메르세데스 벤츠와 합작해서 만든 ‘덴자(Denza)’라는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협업이 지지부진했는데,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싶어 하는 비야디 측에서 지분을 50퍼센트에서 90퍼센트로 늘렸다. 그리고 비야디보다 높은 가격대로 2022년에 미니백 D9, 2023년에 중형 크로스오버 N7를 공개한 바 있다. 2023년 비야디는 양왕이라는 자체 최고급 프리미엄 브랜드를 론칭했다. 이제 비야디는 10만 위안(1845만 원) 이하의 최저가 엔트리 차량부터 168만 위안(3억 1002만 원)이 넘는 프리미엄 고가 브랜드까지 전부 갖춘 셈이다.
테슬라의 모델은 비야디에 비하면 매우 단순하다. 지금 시판되고 있는 모델은 S-E(3)-X-Y, 소위 말하는 섹시 라인업의 네 가지 모델이다. 2012년 고급형 프리미엄 세단 모델S, 2015년 고급형 프리미엄 SUV 모델X, 2017년 보급형 세단 모델3 그리고 2019년 보급형 SUV 모델Y를 발표하면서 라인업을 완성했다. 사이버 트럭은 2019년 공개됐으나 아직 시판 전이고 모델3보다 더 저렴한 모델2 발표도 예상되고 있다.
비야디의 왕조 계열은 친(秦), 위안(元), 송(宋), 탕(唐), 한(汉) 총 다섯 개로 구분돼 있다. 비야디 공식 사이트에서 차량별 최대 주행 거리는 중국 기준(CLTC·China Light-duty vehicle Test Cycle)과 유럽 기준(NEDC·New European Driving Cycle)이 혼용되고 있다. 이에 반해 테슬라 모델의 최대 주행 가능 거리는 모두 CLTC 기준으로 통일돼 있다. 객관적인 비교를 위해 전기차 최대 주행 거리의 기준부터 살펴본다.
주행 거리 측정 방식
일반적으로 전기차 최대 주행 거리 측정 방식은 먼저 네 가지를 꼽아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NEDC, WLTP(Worldwide Harmonized Light vehicle Test Procedure), EPA(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 그리고 한국 환경부 기준이다.
NEDC는 1970년대 처음 도입돼 오랜 기간 세계 표준으로 인정받은 주행 거리 측정 방식이지만 급가속, 에어컨 사용, 주행 모드 변경 등은 측정에 반영되지 않는다. 단순히 주행을 시작해서 멈출 때까지 달린 거리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실제 주행 환경과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현실적인 주행 거리 측정을 위한 개선이 계속됐다. WLTP는 NEDC의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2017년부터 채택된 표준이다. 다양한 주행 환경 속에서 테스트를 진행하므로 이론적인 주행 거리를 측정하는 NEDC보다 훨씬 실제 운행 환경의 주행 거리와 가깝게 측정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현재 유럽의 경우 WLTP를 표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한편 미국은 미국 환경보호청 EPA를 따른다. EPA는 앞선 두 표준보다 기준이 엄격한데 일반적으로 WLTP보다 최대 주행 거리가 10~15퍼센트 짧아진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측정 기준은 어떨까? 한국은 환경부가 전기차 주행 거리 인증을 담당하고 있는데 EPA 기준을 참고하여 만들었기에 EPA와 유사한 방식으로 테스트가 진행된다. 하지만 환경부는 EPA 기준에서 ‘5-Cycle’이라는 보정식을 추가로 대입한다. 시내 주행, 고속도로 주행, 급가속 및 고속 주행, 에어컨, 겨울철 낮은 온도 등의 상황을 고려해 보정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상기한 모든 기준에서 가장 주행 거리가 낮게 나오는 편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인증 기준을 지닌 만큼 이런 기준의 차이를 감안하고 한국 전기차의 최대 주행 거리를 볼 필요가 있다.
사실 변수는 더 많다. 전기차의 경우 저속에서 가속력이 좋고 고속 주행시 모터 효율이 떨어진다. 도심에서의 최대 주행 거리가 고속도로보다 오히려 길게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주행에 중점을 두고 평가하느냐에 따라 또 최대 주행 거리가 달라진다. 정리하자면 동일 제조사, 동일 스펙의 차량이라고 해도 NEDC>WLTP>EPA>한국 환경부 기준 순으로 최대 주행 거리가 줄어든다.
상기 네 가지 기준 외에 중국 자체적으로 만든 기준인 CLTC은 그렇다면 어떤 특징이 있을까? CLTC는 중국의 유일한 기준이므로 비야디 등 토종 브랜드는 물론이고 테슬라 등 중국에 진출한 글로벌 브랜드도 모두 이 기준으로 최대 주행 거리를 발표한다. 문제는 다른 기준에 비하면 상당히 후한 최대 주행 거리가 나온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이 기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통상 WLTP 기준은 CLTC 대비 80퍼센트 수준이며, EPA 기준은 CLTC 대비 70퍼센트 수준이다. 한국 환경부의 기준은 심지어 EPA보다도 엄격하므로 CLTC 대비 70퍼센트 이하로 추정된다.
이처럼 각 국가별 표준이 상이하니 일대일 비교는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다만 비야디와 테슬라의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한국의 대표적인 전기차 모델인 현대 아이오닉5와 기아 EV6의 스펙과 가격을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이들은 2023년 한국 내 전기 승용차 판매량 1~2위 차량이다.
스펙과 가격
먼저 아이오닉5의 최대 주행 거리는 롱레인지 2WD의 모델의 경우 485킬로미터(복합 연비 기준, 빌트인 캠 미적용)다. 아이오닉5의 기본 모델(E-Lite)은 5240만 원(세제 혜택 후, 이하 동일)에서부터 프레스티지 5885만 원까지 포진돼 있다. 추가 가능한 옵션은 제외한 가격이다.
기아 EV6의 경우 스탠다드 2WD 기준 370킬로미터이며, 롱레인지 2WD 기준 475킬로미터다. EV6의 기본 모델(Light)은 4870만 원에서부터 롱레인지(GT-Line) 5995만 원까지 포진돼 있다. 기아 역시 추가 가능한 옵션은 제외한 가격이다.
두 차량을 종합해 보면 한국의 대표적인 전기차 스펙은 기본 트림 2WD 선택 시 평균 약 427킬로미터의 최대 주행 거리를 가지고 있다. 가격은 5000만 원 초반대를 형성하고 있다. 가격은 즉각 비교가 가능하지만 최대 주행 거리는 약간의 보정이 필요하다. 한국 환경부 기준은 중국 기준 CLTC보다 최소 30퍼센트 정도가 적게 나온다고 전제하고 보수적으로 약 610킬로미터를 한국 전기차의 기본 스펙으로 간주한다. 평균값인 427킬로미터를 0.7로 나눈 값이다. 참고로 현대차와 기아차 모두 홈페이지에서 해당 차량의 제로백 수치와 최고 속도는 공식적으로 명기하지 않고 있다.
비야디 차량의 스펙과 가격은 어떨까? 2013~2015년 사이에 출시된 친, 위안, 송, 탕 등 여러 가지 세단 및 SUV를 제외하고 2020년 이후에 출시된 비야디의 대표적 중형 세단인 한汉 모델과 하이바오(Seal·海豹·바다표범) 위주로 비교해 보고자 한다.
한은 2020년에 출시된 왕조 계열 중 가장 최신 모델이다. 중형 세단으로 처음부터 테슬라 모델3를 겨냥해서 나온 차량으로 순수 전기차 및 여러 버전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버전으로 나왔다. 순수 전기차인 한 EV(챔피언 버전)의 가격은 21~30만 위안(3875~5536만 원) 사이이며 최대 주행 거리는 506~715킬로미터다. 제로백은 3.9~7.9초 사이지만 고성능 차량 구입을 위해선 최저 가격보다 9만 위안(1660만 원) 즉 차 가격의 약 42퍼센트를 추가 지불해야 한다.
해양 계열에서는 소형차인 하이어우(갈매기)와 하이툰(돌고래), 준중형 세단 구축함(驱逐舰)05, 중형 SUV 호위함(护卫舰)07 등이 있다. 하이툰도 2022년 총 20만 4200대의 판매량을 기록해 중국 내 신에너지 차량 중 판매 순위 4위에 오를 정도의 인기 모델이다. 다만 편의상 2023년 5월 출시돼 테슬라 ‘모델3 킬러’로 많은 주목을 받은 하이바오 모델만 살펴본다.
한은 처음부터 테슬라 모델3와 경쟁하기 위해 출시된 모델이다. 2022년 중국 내 판매량은 27만 2400대로 테슬라 모델3의 판매량인 12만 4400대를 크게 제치긴 했지만 여전히 모델3는 강력한 상대였다. 하이바오는 이런 배경 속에서 모델3를 견제할 또 하나의 차량으로서 출시됐다. 하이바오의 챔피언 버전은 19~28만 위안(3506~5167만 원) 사이로 엔트리 가격대가 상당히 좋다. 최대 주행 거리는 550~700킬로미터, 제로백은 3.8~7.5초 사이다. 다른 비야디 순수 전기차와 마찬가지로 30퍼센트에서 80퍼센트까지 급속 충전 시 30분이 소요되며 배터리 용량은 61.4~82.5킬로와트시(kWh)이다. 전체적으로 한과 스펙의 차이가 크진 않지만 일단은 해양 계열의 새로운 라인이라는 점, 이제껏 아우디의 냄새가 풍기는 드래곤 페이스를 탈피했다는 점 때문에 시장의 반응이 좋은 편이다.
비야디 대표 모델인 한과 하이바오 기본 트림의 최대 주행 거리 평균값은 528킬로미터로 한국 현대, 기아차의 평균값인 610킬로미터보다 약 13퍼센트 정도 짧다. 상기한 대로 CLTC 기준과 한국 환경부 기준의 격차를 보수적으로 30퍼센트만 뒀기에 실제 운행 시는 현대, 기아차의 주력 차종이 13퍼센트보다 더 길게 주행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비야디는 전체적으로 저렴한 가격이 강점이다. 동급 모델의 최하위 트림으로 비교하면 약 30퍼센트가량 저렴하다.
테슬라의 네 가지 주력 모델의 최대 주행 가능 거리, 가격 등의 스펙은 다음 표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