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야디를 비롯한 중국 자동차 회사들은 중국 내수 시장에서 쌓은 가격 및 품질 경쟁력을 바탕으로 이미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고 있다. 중국은 아직 한국 승용차 시장에서 뚜렷한 성과를 나타내고 있진 않지만 전기 버스 시장에서는 이미 점유율을 크게 높여 가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버스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전기 승합차’ 부문에서 2022년 외산차 신규 등록 비율을 무려 41.9퍼센트에 달했다.
과거 2020년 중국 선전 무역관에서 근무할 당시 비야디에서 코트라(KOTRA)를 초청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야디 전기 버스를 한국에 수출 시 배터리 제조 방식이 달라서 한국의 전기차 보조금 혜택을 누리기 어려운 점에 대한 지원 요청이었다. 한국은 삼원계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에만 보조금을 지급하고 LFP 배터리 장착 차량에는 보조금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는 비야디에 납품을 희망하는 한국 기업이 많아서 비야디와 우호적인 관계가 필요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코트라의 업무 범주를 넘어서는 일이라고 난색을 표하며 중국 전기 버스의 대규모 한국 진출에 대해 고심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중국산 전기 버스 점유율은 2019년 24퍼센트에서 2020년 33퍼센트, 2021년 38퍼센트, 2022년 40퍼센트대로 매년 빠르게 늘고 있다. 2023년 운행 중인 전기 버스 중에서도 중국산이 무려 32.1퍼센트에 달한다. 2023년 7월 기준 전국에서 운행 중인 전기 버스 6641대 가운데 중국산은 2135대다. 2023년 기준으로 대중교통 이용 시 보이는 생소한 브랜드는 대부분 중국산이다.
중국산 전기 버스는 비야디, 하이거, 킹롱, 조이롱 등 열 개에 달하는 반면, 한국의 전기 버스 제조사는 현대차와 우진산전, KGM커머셜(구 에디슨모터스) 등 세 개 업체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KGM커머셜은 기업 회생 절차 이후 이제 KG모빌리티에게 인수돼 24년 하반기까지는 생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예정이다. 수요에 비해 현대차와 우진산전의 생산량이 턱없이 모자른 것이 중국 전기 버스 점유율이 크게 높아진 이유 중에 하나다. 물론 중국 전기 버스의 가격은 평균 2억 원대로 국산 전기 버스에 비해서 약 1억 원가량 저렴한 것도 큰 이유다.
현재 비야디는 한국 시장에서 전기 지게차, 전기 트럭, 전기 버스 등 상용차 분야에 진출해서 활발한 영업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아직까지는 상용차 분야에 그 범위가 국한돼 있으나 시장 상황을 봐서 한국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승용차 분야에도 진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야디는 아직까지 내수형 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지만 내수 시장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 진출에 대해 지금보다 많은 역량을 집중할 것이다. 전기차 보조금 정책이 중단된 2024년이 비야디 해외 진출의 원년이 될 가능성이 크다.
비야디 공식 사이트에 따르면 비야디 전기차는 이미 유럽, 아시아태평양, 남미, 중동 등 70여 개 국가와 지역에서 판매되고 있다. 2023년 상반기 기준으로 비야디의 아토3 모델이 태국과 이스라엘에서 전기차 판매량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이미 성과는 나타나고 있다.
비야디는 동남아에서 태국과 베트남에서 생산 공장 설립을 추진 중이며 남미에서도 브라질에 생산 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인도에서는 2030년까지 점유율 40퍼센트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일본 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는 비야디가 홈그라운드를 뛰어넘어 반세기 넘게 일본 완성차 기업이 생산 체계를 구축해 온 동남아 지역에서도 인기를 높여 가고 있다며 위기감을 드러냈다.
유럽에서도 메르세데스 벤츠와 합작으로 만든 덴자라는 고급 브랜드를 내세워 현지 시장 공략을 시작했다. 전기차 시장은 중국 다음으로 유럽이 큰데, 유럽에서 중국산의 시장 점유율이 8퍼센트에 그치고 있어 시장은 비야디의 확장 여지가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 9월 IAA 모빌리티쇼에서 비야디는 덴자의 승합자 D9 모델을 선보이며 호평을 이끌어 냈다.
다만 비야디에게 미국 시장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이자 미지의 영역이다. 2023년 6월 주주 총회에서 비야디 왕촨푸 회장은 IRA 때문에 미국에 진출할 계획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전기차가 세계적인 스탠다드로 자리잡게 되면 언젠간 글로벌 자동차 기업의 진검승부가 펼쳐지는 미국에도 진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3년 9월 대만 시장 조사 업체 트렌드포스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8월 판매량 기준 비야디는 27만 4000대를 판매해(1~8월 누적 179만 2000대) 글로벌 자동차 판매 세계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탄탄한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해외 진출에 속도를 내면서 신에너지 차량만으로 내연 기관 차량을 포함한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선두권에 진입한 것이다. 1위 도요타(9.8퍼센트), 2위 폭스바겐(6.5퍼센트), 3위 혼다(4.9퍼센트)에 이어 4.8퍼센트의 점유율을 보인 것인데 현대차는 4.3퍼센트, 포드는 4.2퍼센트를 기록했다. 3위인 혼다와의 격차는 0.1퍼센트포인트에 불과했다.
2022년 186만 대를 판매한 비야디는 2023년 300만 대의 판매 목표를 세웠고 이미 상반기에 125만 5000대를 판매했다. 비야디 공시에 따르면 2023년 9월까지 누적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76.2퍼센트 증가한 208만 대로 나타났다. 그리고 12월까지 누적 판매량은 302만 4400대를 기록하며 2023년 판매 목표인 300만 대를 초과 달성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2023년 들어 비야디를 필두로 중국의 신에너지 차량 수출이 급증하며 전체 판매를 견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3년 9월까지 중국의 신에너지 차량 수출은 82만 5000대를 기록해 3분기 만에 이미 2022년 총 수출 물량인 67만 대를 크게 넘어섰다. 비야디는 2023년 총 24만 대를 수출하며 전년동기 대비 334퍼센트 큰 성장세를 보였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3년 1~12월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점유율에서도 비야디는 CATL의 36.8퍼센트에 이어 15.8퍼센트를 기록하여 직전 해 3위에서 2위로 올라섰다. 같은 기간 LG에너지솔루션은 13.6퍼센트, SK온은 4.9퍼센트, 삼성SDI는 4.6퍼센트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비야디 차량 판매가 전년 대비 급증하는 상황에서 비야디 배터리의 점유율 향상은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한국 배터리 3사의 합계 점유율은 23.1퍼센트로 약 1퍼센트포인트 줄어들었다. 반면 중국은 CATL, 비야디, CALB, EVE 등 총 6개사가 글로벌 10대 배터리 업체에 포함됐으며 이들의 합계 점유율은 63.5퍼센트에 달했다. 중국이 전 세계 배터리 시장의 6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편 2022년 131만 대를 인도한 테슬라는 2023년 180만 대를 판매 목표로 세웠다. 상반기에 93만 5000대를 판매했고 3분기까지 132만 4000대 판매량을 달성했으며 12월까지 184만 6000대를 판매하여 비야디와 마찬가지로 2023년 판매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이제는 어떠한 통계와 데이터를 봐도 비야디가 이미 전기차 기업인 테슬라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모든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를 위협하는 메기 같은 존재가 되어가는 중인 점을 부인할 수가 없다.
현대차도 이미 한국의 전기 버스 분야에서 비야디를 비롯한 여러 중국 기업에게 빼앗긴 점유율이 뼈아플 것이다. 한국 소비자가 갖고 있는 중국산 자동차에 대한 반감과 막연한 불안감으로 인해 아직 승용차 부문에는 중국의 그림자가 드리워지지 않았지만 방심한다면 위기는 언제든 닥칠 수 있다.
특히 2024년을 기점으로 중국 전기차 수출이 폭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한국에는 현대자동차그룹이라는 강력한 국산 브랜드가 있지만 그렇다고 비야디도 진출을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비야디 승용차가 한국에서도 발매될 것이다. 이미 2024년 하반기부터 한국에 비야디 승용차가 시판될 것이라는 기사가 자주 나오고 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고 했던가? 현대차의 중국 시장에서의 선전이 한국 내수 시장을 지키는 방파제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