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가 돈을 들여 AI의 성문을 연 진짜 이유
1화

메타가 돈을 들여 AI의 성문을 연 진짜 이유

저커버그는 애플이 싫었다. 메타가 라마를 모두의 손에 쥐여주는 이유다.

‘AI won’t save us’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매주 금요일 오후 5시에 발행합니다. 우리는 지금 반세기마다 다가오는 완전히 새로운 변화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혁명보다 더 크고 더 강력한 혁명이 오고 있습니다. 바로 AI입니다. 디지털 대량 생산은 물질 대량 생산처럼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입니다. ‘AI won’t save us’ 시리즈는 AI가 가져올 경제, 사회, 문화 변화의 징후를 포착합니다.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메타의 라마 3.1 모델이 쏘아올린 ‘오픈소스 AI’ 논의가 어떤 변화와 징후를 불러올 수 있을지 이야기합니다.
엔비디아 CEO인 젠슨 황과 메타의 CEO인 마크 저커버그가 생성형 AI와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가 개발자와 크리에이터에게 어떻게 힘을 실어줄 것인지에 관해 대담을 나눴다. 출처: NVIDIA

변화와 징후


변화: 메타는 모바일 생태계에서 객체였다. 저커버그가 그걸 뒤집으려 한다. 라마 3.1 발표가 그 본격적인 시작이다.

징후: AI 시장은 양분되기 시작했다. 폐쇄형과 개방형, 두 진영이다. 후자가 승기를 잡는다면 수많은 AI 스타트업에 새로운 기회가 생길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지옥에서 구해낸 방법


오픈소스의 마법을 이야기할 때 늘 주워섬기는 레퍼런스가 바로 ‘리눅스(Linux)’다. 마크 저커버그도 라마(LLaMA) 3.1을 발표하며 리눅스를 언급했다. 오픈소스가 더 이롭다, 오픈소스가 업계의 표준이 될 수 있다, 오픈소스가 결국 이긴다고 얘기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AI 시대의 오픈소스를 이야기하려면 좀 다른 레퍼런스가 필요하다. 곧이 곧대로의 오픈소스라기보다는 ‘개방형 생태계’로 반전에 성공한 기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로 마이크로소프트다.

세상에 윈도우밖에 없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매킨토시가 있긴 했다. 뛰어났지만, 모두의 것은 되지 못했다. 윈도우는 달랐다. 모두를 장악했다. 그 장악력을 바탕으로 윈도우는 폐쇄적인 생태계를 만들었다. 초창기 컴퓨터에 돈을 쓸만한 회사들 입장에 없어서는 안 될 프로그램들이 윈도우와 묶여 판매되었다. 워드, 엑셀과 같은 오피스 프로그램들이다. 인터넷 브라우저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로터스 1-2-3’과 ‘넷스케이프’가 사라졌다. 어차피 윈도우가 깔리지 않은 PC가 없으니 이 폐쇄성을, 대부분의 고객은 느끼지도 못했다. 디지털의 세계는 영원히 마이크로소프트의 것이었다. 아이폰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패러다임이 모바일로 옮겨갔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PC 시장에서의 장악력을 놓지 못했다. 모바일에서도 윈도우가, 오피스 프로그램이 돌아가게 만들겠다며 윈도우폰을 출시하고 노키아를 사들였다. 다 실패했다. 군림했던 시절의 ‘규칙’에 스스로 얽매여 모바일 생태계도 수직 계열화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장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지 않았다. 전 세계의 수많은 개발자가 애플과 구글이 깔아놓은 시장판에서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디바이스의 무한한 가능성을 끌어내는 중이었다. 엑셀과 윈도우를 묶어 팔 수는 있었지만, 엑셀과 스마트폰을 묶어 팔 수는 없었다.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는 노키아 휴대전화 사업 부문 인수가 실패로 치닫게 되면서 1만 8000명에 가까운 인원을 해고했다.

추락하던 마이크로소프트를 건져 올린 것이 지금의 CEO, 사티아 나델라다. 2014년 취임 직후, 애플 iOS 운영 체제에 MS Office 프로그램을 공급하겠다는 발표가 나왔다. 굳게 걸어 잠갔던 성문을 연 것이다. 구글, 페이스북 등과도 손잡았다. 리눅스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영향력이 단단해졌다. 걱정도 있었다. 윈도우의 장악력이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다. 하지만 어차피 독점의 시대는 끝나고 있었다. 경쟁에 노출된 윈도우는 변화했고, 나아졌다. 2018년 11월 30일, 마이크로소프트는 오랜 라이벌 애플을 제치고 시가 총액 1위를 탈환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옥에서 완전히 탈출했다.

오픈AI를 지옥으로 보낼 수도 있는 것


이제 다음 스텝은 당연히 AI다. 오픈AI 이전에도 인공지능은 나델라의 야망이었다. 2017년 발행된 저서 《히트 리프레시》에서, 그 청사진을 밝히기도 했다.
  •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 방식을 바꾼다.
  • 오피스365, 다이내믹스 365등 애플리케이션에 AI를 탑재한다.
  • 모든 개발자가 패턴 인식 능력, 지각 능력, 인지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한다.
  • 가장 강력한 AI 슈퍼컴퓨터를 만들고, 이를 모두가 사용할 수 있게 한다.
2024년, 나델라의 야망은 일부 현실이 되었다. ‘코파일럿’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AI와 뭔가를 하고 싶을 때 챗GPT를 떠올린다.

윈도우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정체성이었다. 동시에 한 시대의 정체성이기도 했다. 지금 오픈AI는 챗GPT를 이 시대의 정체성으로 만들고자 한다. 모두에게 이 챗봇을 쥐여주고 뭐든 할 수 있다고 믿게끔 만드는 것이다. 시장 선점의 효과는 컸다. 유수의 언론사들이 오픈AI가 건넨 계약서에 사인했다. 이를 바탕으로 검색 시장에도 진출한다. AI에서 기회를 본 기업들, 혹은 위기를 본 기업들이 오픈AI의 GPT 모델을 도입해 AI 서비스에 나선다. 선점이 장악으로 바뀌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목소리가 내부에서 나온다. 지난 6월, 오픈AI와 구글 딥마인드의 전현직 직원들이 성명을 발표했다. AI 기업이 내부자 고발을 막아서는 안된다는 내용이었는데, 그 근거가 AI 기업들이 제품의 성능과 한계, 다양한 위험에 대해 폐쇄적이라는 점이었다. 정부와도, 시민사회와도 공유할 생각이 없으니, 내부자가 아니고서야 문제점을 알 수 없다는 얘기다. 2023년 5월에는 구글 내부의 걱정도 새어 나왔다. 사내 메시지가 유출된 것이다. “우리에겐 해자(moat)가 없다. 오픈AI도 마찬가지다. 불편한 진실은 우리도, 오픈AI도 다음 시금석을 놓을 수 없으리란 것이다. 제3의 세력이 떠오르고 있다. 바로 ‘오픈소스’다.”

이 메시지에 강력하게 동의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젠슨 황 엔비디아 CEO다. 2024년 8월 1일까지 열리는 컴퓨터 기술 콘퍼런스, ‘시그라프 2024’에서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CEO와 한 시간짜리 대담을 가진 젠슨 황은 “작년 AI 업계의 가장 큰 이벤트는 라마(LlaMA) 2.0 발표였다”고 강조했다. 이 오픈소스 AI 모델의 등장과 함께 갑자기 모든 회사가 AI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 스타트업까지도.

메타의 진심은 ‘F*** APPLE!’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메타의 라마가 개방형(Open Approach)인 것은 맞지만, 엄밀히 ‘오픈소스’인가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다. OSI(Open Source Initiative)는 〈Meta의 LLaMa 2 라이선스는 오픈소스가 아닙니다〉라는 제목의 의견까지 일부러 발표했을 정도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라마의 라이선스 조건이다. 이번에 발표된 라마 3.1의 경우 상업적으로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지만, MAU(월간 활성 사용자 수)가 7억 명을 넘어서는 안된다는 제약이 따라붙는다. 쉽게 말해 애플이 라마를 마음대로 가져다 써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명문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애플 정도가 라마를 쓰려면 돈을 내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게다가 메타는 AI를 도구로 만들어서 제공할 생각이 없다. 메타가 보유하고 있는 ‘왓츠앱’,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 AI를 넣어 플랫폼 자체의 영향력을 강화할 생각이다. 그렇다면 경쟁 메신저, 경쟁 소셜 미디어가 등장해 라마를 가져다 쓰게 되면 낭패다. MAU 7억 이상으로 성장하는 신규 플랫폼이 나온다면, 적어도 라마라는 도구에서는 배제하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니 라마를 ‘오픈소스’라 못 박아버린 메타에 일부 곱지 않은 시선이 따라붙는다. 오픈소스는 ‘소스코드’를 ‘오픈(공개)’한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나 가져다가 마음대로 쓰도록 열어둔다는 뜻이다. 오픈소스라는 가치를 마케팅으로 사용한다는 비난은 피하기 어렵다.

다만, 이 부분을 제외하고 생각한다면 메타는 분명 오픈소스 ‘전략’을 취하고 있다. 어차피 기술적으로 넘을 수 없는 격차(해자, moat)가 없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붙어서 개선하고, 응용할 수 있는 오픈소스가 기술적 우위를 취할 수 있다. 더군다나 비용면에서도 부담이 없으니 생성형 AI에 대한 확신 없이도 라마를 통해 도입을 시도해 볼 수 있다. 물론, 라마 3.1 거대 모델의 경우에는 컴퓨팅 비용으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도 있지만, 라마는 다양한 크기의 모델을 제공한다. 감당할 수 있는 크기의 모델로 시작하면 그만이다. 사용자가 늘어나면 영향력이 늘어난다. 마이크로소프트처럼 말이다. 그리고 영향력이 늘어나면 업계 표준으로 자리 잡을 기회가 생긴다. 리눅스처럼 말이다. 그런데 정말 그게 저커버그가 라마를 오픈소스 ‘전략’으로 밀고 나가는 이유의 전부일까? 아닐지도 모른다.

저커버그는 젠슨 황과의 대담에서 그 이유를 확실히 보여줬다. 애플을 향한 “nah, f*** that!”이라는 한 마디로 말이다. 페이스북을 창업한 후 이걸 해야지, 저걸 해야지 할 때마다 플랫폼 제공자(a.k.a. 애플)로부터 “야, 실은 너 그거 못해”라는 말을 들었다고 이야기하면서 흥분한 것이다. 없던 것을 만들어 성공한 사람에게는 참을 수 없는 상황이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저커버그는 다음 시대는 열린 생태계의 시기가 될 것이며, 열린 생태계에서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다음 시대는 AI의 시대다.

사유


저커버그는 시그라프 대담에서 메타가 AI 그 자체를 상품으로 팔지는 않을 것임을 보여줬다. 대신 AI를 사용해 메타와 인스타그램의 인플루언서들이 더 쉽게 창작하고 커뮤니티에서 더 많이 소통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대담에서 밝힌 ‘AI Studio’가 그 시작이다. 그러니까, 바쁜 인플루언서들이 팬과 소통할 때 AI 에이전트가 도움이 되리라는 얘기다. 팬들이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싶지만, 저커버그에게는 근거가 있다. 사람들이 메타의 AI를 일종의 ‘역할극’에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사와의 연봉 협상, 관계가 틀어진 여자 친구와의 대화 등을 연습하는 식이다. 이런 상상은 저커버그만 하는 게 아니다. 줌 창업자 에릭 위안은 AI 기반의 디지털 트윈이 사람 대신 회의에 참석하고, 사람들은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미래를 꿈꾼다.

최근, 《포브스》의 미다스 리스트(Midas List)에서 최고 순위를 차지한 바 있는 VC, 파운더 콜렉티브는 새로운 전망을 내놨다. 예전처럼 ‘도구’를 만들어 팔아선 승산이 없다는 것이다. 즉, AI 기술로 ‘회계 도구’를 만들어 팔아봤자 시장에 도구가 이미 너무 많으니 그냥 ‘회계 서비스’를 팔라고 조언한다. 생성형 AI로 인해 그런 서비스를 파는 것이 쉽고 저렴해졌으며, 제대로만 삽을 대면 금맥도 잡을 수 있다는 논지다. 라마는 정말 그 삽이 되고, 곡괭이가 될 수 있을까.
 
신아람 에디터
#AI #테크 #메타 #스타트업 #aiwontsaveus

2화 ‘This Week in AI’에서는 이번 주의 가장 중요한 AI 뉴스 3가지를 엄선해 맥락을 해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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