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의 해자
1화

카카오의 해자

카카오가 왜 흔들렸는지, 생태학으로 분석한다.

‘AI won’t save us’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매주 금요일 오후 5시에 발행합니다. 우리는 지금 반세기마다 다가오는 완전히 새로운 변화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혁명보다 더 크고 더 강력한 혁명이 오고 있습니다. 바로 AI입니다. 디지털 대량 생산은 물질 대량 생산처럼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입니다. ‘AI won’t save us’ 시리즈는 AI가 가져올 경제, 사회, 문화 변화의 징후를 포착합니다.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흔들리는 카카오의 문제를 ‘앨리 효과’로 분석해 봅니다.
카카오페이가 개인신용정보를 고객의 동의 없이 중국 최대 핀테크 기업인 중국 앤트그룹의 계열사 알리페이에 넘겼다가 금융당국에 적발됐다. 카카오는 위법성을 다투고 있다. 출처: 카카오

변화와 징후


변화: 카카오가 사업구조 재편과 AI 강화를 약속했다. 그리고 기업을 위한 AI 챗봇 서비스를 내놨다.

징후: AI로 어떤 해자를 쌓느냐에 따라 빅테크의 생존 여부가 갈릴 것이다. 다만, 업계가 성급하게 해자를 쌓으면서 산업 자체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

생태계의 앨리 효과


어항 속 금붕어는 몇 마리가 적당할까? 인간의 입장이 아니라 금붕어의 입장에서 말이다. 1930년대, 생태학자 워더 앨리(Warder Allee)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금붕어는 집단에 속해 있을 때 더 빠르게 성장하며, 수분 독성에 대한 저항성도 높아진다. 새들도 마찬가지다. 멸종 위기종인 북부점박이올빼미의 개체수에 관한 연구에서도 특정 서식지 내에서 올빼미의 밀도가 낮아지면 올빼미의 멸종 확률이 상승한다. 이것이 앨리 효과(Allee Effect)다. 사회적 동물은 함께 살아갈수록 잘살게 되어있다.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돕는다. 무리 안에서 짝을 찾고 먹이를 찾는 일도 효율이 늘어난다.

이와 같은 효과는 자연 생태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기술 생태계에도 비슷한 것이 있다. ‘멧칼프 법칙(Metcalfe’s Law)’이다. 전화를 예로 들어보자. 1900년 미국 인구 1000명당 전화는 7대뿐이었다. 전화기를 살 이유가 없다. 상대방이 전화기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화기 보급률이 2배로 증가한다면? 전화의 가치는 2배가 아니라 4배 상승한다. 휴대전화가 처음 보급되기 시작했을 때, 손쉽게 좋은 기계를 ‘공짜폰’으로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이유다. 친구가 아무도 없는 페이스북은 존재 의미가 없다. 인플루언서 없는 인스타그램, 틱톡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콘텐츠를 만들고, 공유하고, ‘좋아요’를 눌러야 비즈니스가 성립한다.

그래서 많은 스타트업이, 특히나 ‘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를 노리는 플랫폼 스타트업이 이용자 수를 늘리는 데에 주력한다. 그러려면 최대한 빠르게 상품을 공개해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 몸집을 불려 주식시장 상장(IPO)까지 성공하면 스타트업의 성공 스토리가 일단락된다. 카카오도 이 법칙을 따랐다. 마치 사내 벤처처럼, 새로운 사업을 벌이고 빠르게 상장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런데 멧칼프의 법칙을 맹신해서는 안 된다. 빗나간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유가 있다. a16z의 앤드루 첸(Andrew Chen)은 앨리 효과로 그 이유를 설명한다. 바로 ‘앨리 한계점(Allee Threshold)’과 수용 능력(Carrying Capacity)이라는 개념이다.

멧칼프 법칙이 부딪치는 한계


많은 닷컴 기업이 앨리 한계점을 넘지 못했다. 넓은 연못에 금붕어가 한 마리에서 두 마리로 증가한들, 큰 의미가 없다. 집단의 힘이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열 마리, 스무 마리가 되면 달라진다. 집단의 형성이 의미 있게 되는 지점이 있다. 마찬가지다. 사용자 증가에 따라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경험하려면 최소한의 사용자는 모아야 한다. 이 기준점이 바로 앨리 한계점이다. 물론, 개체수가 무한정 많아져서는 곤란하다. 서식지가 품을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면 개체수는 다시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기술도 마찬가지다.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용자가 급증하면 고객 경험이 악화한다. 수용 능력 한계치다. 대표적으로 ‘클럽 하우스’가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사용자가 급증하면서 수용 능력 한계치를 빠르게 드러냈던 사례다. 그리고 지금 한국의 빅테크, 카카오도 비슷한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사실, 카카오는 앨리 한계점을 진작 넘어섰다.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시작하던 때, 한국 시장에는 카카오톡을 밀어낼 경쟁자가 없었다. 네이버 등이 뒤늦게 뛰어들었지만, 이미 카카오톡이 문자 메시지를 완벽히 대체한 뒤였다. 그런데 이를 바탕으로 뛰어든 서비스들이 문제다. 카카오는 계열사가 123개에 달한다. 그나마 줄여서 그 정도다. 스타트업 만들듯, 가능성이 있다면 여기저기 뛰어들었다. 문제는 이러한 서비스가 처음부터 너무 많은 잠재 사용자, 즉 카카오톡 사용자를 확보한 채 시작한다는 점이다. 앨리 효과로 설명하자면, 카카오 그룹 전체는 지금 수용 능력 한계를 경험하고 있다. 카카오는 능력 이상으로 사업을 벌였다.

자잘한 문제까지 들춰내 고객 경험을 분석할 필요도 없다. 데이터 센터에 화재가 발생하자 서비스가 먹통이 되어버리거나, 불법 오픈 채팅방 문제에 제대로 된 대책도 내놓지 못하는 등 큼직한 사고들이 이어졌다. 최근에는 자회사 카카오페이가 중국 기업 알리에 회원 개인 정보를 넘긴 사실이 드러나며 여론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 덩치도 크고 돈도 많이 버는데 서비스는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서비스의 안정성, 보안, 지속 가능한 시장 생태계 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결과다.

카카오가 바라보는 고객


정점을 찍은 것은 카카오의 김범수 창업자의 구속이었다. 사람을 잘못 썼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도 주요 원인으로 대중의 신뢰를 잃게 만든 ‘C레벨들의 도덕적 해이’를 들었다. 카카오의 주가는 2021년 최고가 17만 3000 원에서 3만 원대로 추락했다. 수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카카오가 내놓은 수는 비핵심 사업들을 정리하겠다는 것이다. 123개의 자회사는 골프, 캐릭터 완구, 유아동용품, 음식 서비스, 부동산 임대업 등까지 아우르고 있다. 카카오톡 플랫폼과 AI 연관 사업을 제외하고는 “효율화 작업을 속도감 있게 진행하겠다”는 것이 정신아 대표의 약속이다. 역량에 미치지 못하는 서비스는 혹독하게 가지치기하겠다는 뜻이다.

물론 사업구조 재편만으로는 부족하다. 앨리 효과로 플랫폼 기업들의 성공 방정식을 분석한 앤드루 첸은 저서 《콜드 스타트》에서 성장이 침체한 기업이 네트워크(집단의 힘)와 서비스를 다시 성장시키거나 최소한 지켜내기 위해서는 ‘해자(The Moat)’를 세워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 방법은 마케팅일 수도 있으며 경쟁자를 제거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방법은 혁신적인 기술의 개발이다.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것으로는 AI가 있다. 카카오는 AI 기반 챗봇 서비스를 통한 전문가 상담, 고객 관리, 상품 추천 서비스 등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기업 고객을 바라보는 AI다. 잘만 되면, 돈이 될 수도 있다.

해자가 필요한 기업 중 AI에 사활을 걸고 있는 곳이 또 있다. 바로 메타다. 그런데 메타는 AI를 카카오와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메타는 최근 미국에서 ‘AI 스튜디오’ 서비스를 출시했다. 인스타그램이나 왓츠앱 등에서 크리에이터들이 AI 아바타를 생성해 팬들과 소통할 수 있다. 네트워크의 힘을 강화한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AI를 활용한 것이다. 메타가 내놓고 있는 이미지 및 동영상 관련 AI 툴도 결과적으로는 사용자가 더 재미있는 콘텐츠를 손쉽게 만들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메타는 자신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잘 알고 있다.

사유


앨리 효과를 생성형 AI 씬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오픈AI는 멧칼프 법칙(Metcalfe’s Law)을 노리고 완성형이 아니었던 챗GPT-3.5 모델을 공개했다. 할루시네이션, 낮은 성능에도 시장은 열광했다. 앨리 한계점을 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지만, 예외적인 상황이었다. 기술 발전 속도가 너무 빨랐고, 기술 경험에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았다. 결국, 시장이 실망하기 전 한계점을 넘어섰다. 사용자는 급증했고, AI 스타트업도 속속 뛰어들었다. 그리고 지금 프론티어 AI 기업들은 해자를 만들고 있다. 스타트업을 인수하거나 규제와 비용의 장벽을 쌓는 방식이다. 다만, 지금 생성형 AI라는 기술은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다. 개발 과정과 사용 전반에 있어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도 합의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과연 지금 AI 씬에 해자가 필요한 시점일까.
 
신아람 에디터
#AI #aiwontsaveus #과학 #경영 #스타트업

2화 ‘This Week in AI’에서는 이번 주의 가장 중요한 AI 뉴스 3가지를 엄선해 맥락을 해설합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