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와 징후
변화: 아마존의 연례 클라우드 콘퍼런스 ‘AWS 리인벤트 2024’에서 생성형 AI 모델 ‘노바(NOVA)’와 차세대 AI 칩 ‘트레이니움3(Trainium3)’가 발표됐다.
징후: AI 생태계를 장악하고자 하는 시도는 계속된다. 오픈AI-엔비디아 다음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아마존의 80억 달러짜리 야망
AI에 관한 논의에서 아마존(Amazon)은 종종 간과되곤 한다.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연합을 중심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도전하고 있는 빅테크로 구글과 메타가 꼽히고, 이 모두가 원하는 AI 칩을 개발하고 있는 엔비디아까지 언급하면 충분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아마존은 AI 시대의 맹주를 꿈꾸고 있다. 실력도 있고 돈도 있다. 그것을 증명한 것이 이번 ‘AWS 리인벤트 2024’ 행사다. 아마존은 AI 산업의 수직 계열화를 어떻게 이루고자 하는지 그 청사진을 보여줬다.
아마존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까닭은 아마존표 AI 모델이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픈AI의 존재를 잘 알고 있다. 챗GPT를 사용해 봤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무료 버전만 가끔 이용하는 정도일 수도 있다. 처음 챗GPT-3.5 버전이 공개되었을 때 재미 삼아 한 번 로그인 해 본 것이 경험의 전부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경험’의 유무가 중요하다. 나이 지긋한 어머님들께서 ‘퐁퐁’이라는 제품명을 일반 명사처럼 사용하시는 까닭은 긴 시간에 걸친 사용 경험 때문이다. 대중에게 오픈AI와 챗GPT는 생성형 AI 시대의 일반 명사로 각인되었다. 그 뒤를 이은 것이 구글의 ‘제미나이’ 정도다.
이례적으로 입소문을 타며 이름을 알린 스타트업도 있다. 앤트로픽의 ‘클로드’ 모델이다. 글쓰기에 있어서는 챗GPT보다 낫다는 평가도 한 때 받았다. 물론 앤트로픽은 오픈AI 출신의 창업자라는 보증 수표가 있었다. 그러나 보증 수표를 진짜 수표로 만든 줄 수 있었던 것은 아마존의 투자와 컴퓨팅 파워 덕분이다. 지금까지 누적 투자금이 80억 달러(약 10조 6천억 원)에 달한다. 생성형 AI의 성능은 투여할 수 있는 자본의 총량과 비례한다. 앤트로픽의 AI 모델이 인상적인 성능을 보여준 것은, 오픈AI의 대항마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아마존의 욕심 덕분이다. 그리고 그 욕심의 크기는 사실, 80억 달러 이상이다.
AI 모델도 상품이다.
아마존은 이번 리인벤트 행사에서 자체 개발한 생성형 AI 모델, ‘노바(NOVA)’를 선보였다. 앤트로픽에 AI 모델 분야를 의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가 독주하는 시장의 판도를 깨기 위해 앤트로픽에 막대한 투자를 감행하기는 했지만, 결국 아마존은 자체 모델로 시장에서 승부를 볼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물론, 노바는 현존하는 경쟁 모델과 비교해서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방향성은 명확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AI 체스 플레이어를 만드는 것보다 사용자에게 맞춤형 추천을 제공하거나 상품 배송 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최단 경로를 찾기 위해 AI를 사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앤디 재시 아마존 CEO가 이번 키노트 초반에 언급한 내용이다. 대놓고 구글의 딥마인드를 저격했다. 아마존은 고객에 집착해 온 기업이다. 아마존의 노바는 기술적으로 최고가 아닐지 몰라도, 기업의 철학이 반영된 ‘상품성’으로는 최고일 수 있는 이유다.
재시 CEO가 강조한 노바의 가장 큰 상품성은 ‘가성비’다. 75퍼센트까지 저렴하게 최고 성능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아마존의 주장이다. 비용 절감을 위한 노력은 여러모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증류(Distillation) 기술을 이용해 대형 모델이 학습한 내용을 소형 모델에게 학습시킬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비용은 줄이고 속도는 높일 수 있다. AWS의 베드록(bedrock) 플랫폼도 한몫했다. 베드록에는 앤트로픽의 클로드와 노바를 포함한 100여 개의 AI 모델들이 ‘입점’되어 있다. 개발자들은 베드록을 통해 다양한 AI 모델을 이용해 소비자에게 판매할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외국어 학습 AI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한다면, 앤트로픽의 클로드를 이용해 쓰기 학습 분야를 개발하고, 아마존의 노바를 이용해 말하기를 개발하는 식으로 애플리케이션 개발이 가능하다. 이 베드록 플랫폼에서 잘 동작할 수 있도록 노바를 최적화했다.
다음 상품성은 ‘목적성’이다. 노바는 6개의 제품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텍스트 전용 모델부터 이미지, 비디오, 텍스트 입력 등을 처리할 수 있는 멀티 모달 모델까지 다양하다. 특히 스튜디오 품질의 이미지를 생성하는 노바 캔버스(Nova Canvas), 텍스트 프롬프트와 이미지를 통해 짧은 비디오를 생성하는 노바 릴(Nova Reel)이 주목받았다. 마케팅과 광고에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기능이 아마존에서 상품을 판매하는 셀러들을 위해 제공된다면 시너지는 엄청날 것이다. 체스를 잘 두는 AI보다는 당장에 유용할 것이 확실하다. 내년 1분기에는 음성 AI 모델도 출시한다. 스트리밍 음성 입력을 이해하는 동시에 입력된 음성에 포함된 비언어적 신호도 해석할 수 있다. 말투나 리듬 같은 것들이다. 내년 출시를 앞둔 음성 비서 스피커, ‘알렉사’ 업그레이드 버전이 기대되는 까닭이다.
반 엔비디아 진영?
리인벤트 행사에는 특별한 초대 손님도 등장했다. 앤트로픽과 애플이다. 아마존에는 아직 앤트로픽이 필요하다. 지금 AI 기술은 클라우드 플랫폼 - AI 칩(AI 가속기) - AI 모델이 한 팀을 이루어 발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클라우드 플랫폼을 갖고 있다. 오픈AI는 AI 모델을 개발한다. 이 둘이 손잡고 엔비디아의 AI 칩을 사들여 시장 선두로 나서고 있다. AWS는 앤트로픽과 같은 AI 모델을 자사 클라우드 서비스에 이식해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서는 AI 모델을 이용해 애플리케이션이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개발자들을 아예 아마존 서버에 묶어두겠다는 계산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아마존은 AI 칩 시장에서도 영향력을 확보하고자 한다. 이번 리인벤트 행사에서 노바와 함께 중요하게 다루어진 것이 아마존이 자체 개발한 AI 훈련용 칩, ‘트레이니움(Trainium)’이다. 행사에 참석한 앤트로픽의 창업자 톰 브라운은 트레이니움2 수십만 개를 사용하는 AWS의 AI 클러스터, ‘프로젝트 레이니어(Project Rainier)’에서 앤트로픽의 차세대 모델이 훈련되고 있다고 밝혔다. 윈윈이다. AI 모델 개발에는 꼭 맞는 AI 칩이, AI 칩의 개발에는 꼭 맞는 AI 모델이 필요하다. 게다가 트레이니움을 통해 훈련한 앤트로픽의 새 모델이 혁신적인 성능을 보여준다면, 아마존은 자체 칩 성능을 만천하에 증명할 수 있게 된다.
애플로서는 아마존이 필요하다. 애플은 기계를 만드는 회사다. 공급망 관리에는 선수라는 얘기다. 애플은 AI 기술로 혁명적인 과학 발전을 이루는 회사가 아니다. 아이폰이나 맥의 유저들에게 차별화한 고객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렇다면 비싸고 무거운 엔비디아의 AI 칩과 CUDA 플랫폼에만 의존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다양한 AI 칩과 AI 모델을 통해 유저들의 필요를 해결하면 된다. 행사에 참여한 애플의 베누아 뒤팽 디렉터는 트레이니움2를 사용해 애플 인텔리전스를 훈련한다고 발표했다. AI 칩과 서버, 모델까지 공급망 다양화를 통해 ‘갑’의 위치를 유지하겠다는 전략이다. 리인벤트 행사와 함께 아마존의 주가는 한 때 219.99달러까지 상승해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사유
AWS의 베드록은 일종의 ‘배민’이다. 여기에 입점하면 전 세계 클라우드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는 AWS의 고객들에게 잠재적으로 ‘팔릴’ 기회가 생긴다. 배달의 민족 애플리케이션에 입점이 되어야 고객들의 선택지에 오를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국내 기업이 개발한 AI 모델도 이번에 4개가 입점하면서 글로벌 시장으로의 진출 교두보를 마련했다. 하지만 AI는 아직 혁신을 시작하는 단계다. 실리콘밸리의 빅테크가 자본과 컴퓨팅 파워도 AI 시장을 잠식하는 가운데 플랫폼의 논리까지 가세하고 있다. 아마존은 AI 생태계의 끝단까지 독점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끝단에는 내년 출시를 앞둔, 훨씬 똑똑해져 돌아올 ‘알렉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