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최초의 근대식 유전이 설치되었다. 이곳에서 석유 시추가 시작되면서 석유는 경제학과 지정학의 심장부를 차지하게 되었다. 석유는 서구의 소비문화 성장을 이끌었다. 2차 세계 대전의 승패를 결정했고, 1970년대에는 전 세계를 경제 위기로 몰아넣었다. 지난 20년 동안 중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원유를 많이 소비한 국가의 자리에 올랐다. 한편 미국은 셰일 가스 혁명과 함께 1950년대 이후 처음으로 순 에너지 수출국에 근접하게 되었다. 이제 석유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가 펼쳐지고 있다. 전 세계가 친환경 에너지를 점점 선호하게 되면서 석유 수요는 정체되거나 줄어들 전망이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석유가 경제적, 지정학적 측면에서 놀라운 변화를 이끌고 있다.
곧 사우디 아람코(Saudi Aramco)의 상장이 이루어질 것이다. 아람코는 하루에 1000만 배럴의 석유를 생산하는 기업이다. 세계 석유 생산량의 11퍼센트를 책임진다. 초경질유를 비롯해 최상 품질의 오일을 생산하는 아람코는 논란도 함께 쏟아내고 있다.
(2화 참조) 아람코가 상장하면, 주식의 시가 총액은 1조 달러(1176조 원)를 넘어설 전망이다. 애플을 제치고 전 세계 상장 기업 중에서 시가 총액 1위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이들의 기업 공개(IPO)는 몇 차례 연기되었다. 2019년 9월에는 아람코의 원유 처리 공장 한 곳이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 회사를 장악하고 있는 이는 손에 피를 묻힌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Muhammad bin Salman)이다. 하지만 이 사실은 잠시 제쳐 놓도록 하자. 아람코의 진짜 의도는 석유 산업이 위축되며 이어지는 대혼란의 상황에서 최후의 승자가 되는 것이다.
1956년 지질학자인 M. 킹 허버트(M. King Hubbert)는 석유 생산이 정점에 달한 후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의미로 ‘피크 오일(peak oil)’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자원 고갈을 우려한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 단어가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생산이 아니라 수요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석유 산업이 2008년 이후에도 매년 1.4퍼센트씩 성장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석유 업계 관계자들은 보다 멀리 내다보고 있다. 도시 오염과 기후 변화를 고려할 때 업계의 장기적인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석유는 전 세계 에너지의 3분의 1을 공급하고 있지만, 그만큼의 탄소를 배출하고 있기도 하다.
석유 기업들은 여전히 향후 10년 동안 석유 생산량이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9500만 배럴에 달하는 일일 생산량이 조금 더 늘어나고, 이후 안정기를 맞이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전 세계 국가들은 산업화 이전 시기보다 지구의 기온이 섭씨 1.5~2도 이상 오르지 않도록 하자는 데 합의했다. 이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일일 석유 생산량을 4500~7000만 배럴 정도로 떨어뜨려야 한다. 석유 산업이 보다 깨끗한 원유를 생산하는 쪽으로 간다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깨끗한 원유는 저품질 원유보다 탄소 배출량이 5분의 1 미만이기 때문이다. 석유 업계의 리더들은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석유가 여전히 지구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연료라고 주장하지만, 그들도 오명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서구에서는 여론이 바뀌고 있고, 가스 배출 규제는 한층 강화될 것이다. 그리고 일부 서구 기업들은 수십 년 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석유 산업에 도박을 하기보다는, 단기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프로젝트를 선호한다.
석유 수요가 감소하면 일부 제품이나 생산 업체는 다른 산업보다 큰 타격을 입는다. 당장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자동차와 화물차다. 나중에는 전기 엔진을 사용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이들이 석유의 3분의 1 이상을 사용하고 있다. 석유 화학 제품과 플라스틱을 대체할 만한 재료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품질이 좋지 않고 비싼 석유를 생산하는 기업들이 먼저 퇴출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난 160년 동안 거대하게 팽창했던 석유 산업은 축소되어서 몇몇 생산자들만 남게 될 것이다. 그렇게 남은 소수의 기업들이 저렴하면서도 환경적인 부담도 적은 제품을 원하는 세계인들의 수요를 충족시켜야 한다.
많은 환경 운동가들은 이러한 에너지 전환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실제로 바로 그 전환이 아람코의 전략이자 투자자들에게 어필하는 지점이다. 아람코가 사막 아래에 묻힌 석유를 퍼내는 데 들이는 비용은 배럴당 3달러에 불과하다. 다른 업체들보다 저렴하다. 석유를 추출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가스의 양도 최저 수준이다. 아람코는 석유 화학 제품 생산량을 늘리며 아시아의 소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2019년 8월 아람코는 인도의 거대 화학 기업인 릴라이언스(Reliance)의 화학 부문 지분 150억 달러(17조 6430억 원)어치를 사들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향후 전망과 상관없이 꾸준히 배당금을 지급할 것이라고 투자자들에게 약속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이 보이는 이런 태도를 보면, 설령 석유 수요가 불안정해진다 하더라도 아람코는 끝까지 살아남을 것으로 보인다.
모두가 지구를 더 깨끗하게 만들고 싶어 한다. 하지만 석유 산업 쇠퇴가 에너지 시장과 지정학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심각할 것이다. 에너지 시장을 먼저 살펴보자.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수요와 공급이 모두 함께 줄어드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수요가 감소하는 만큼 석유의 공급 가격도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16조 달러(1경 8800조 원)의 자본이 투자되어 있고, 최소 1000만 명을 고용하고 있는 산업이 축소되는 것은 결코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다. 유전은 자연적으로 고갈되기 마련인데 여기에다 자본까지 마르게 되면 유가가 치솟을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생산국들과 모든 기업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이윤과 세수를 늘리기 위해서 생산량을 제한할 것인가, 아니면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가격과 상관없이 남은 매장량을 최대한 퍼낼 것인가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고비용 생산국과 저비용 생산국이 모여 있는 석유 수출국 기구(OPEC)의 카르텔이 붕괴될 수도 있다. 그리고 원유 생산이 소수의 유전에 집중되다 보면, 테러의 대상이 되거나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도 커진다.
정치적인 영향도 막대할 것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국내 총생산(GDP)의 5퍼센트 이상을 석유에 의존하는 국가는 26개국이다(이들 국가는 평균적으로 GDP의 18퍼센트를 석유로 만들어 낸다). 만약 경제 논리가 우선한다면 알제리, 브라질, 캐나다, 나이지리아, 베네수엘라처럼 비싸고 품질이 좋지 않은 석유를 생산하는 국가들은 생산을 중단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고통스럽고 엄청난 손실일 것이다. 한편 미국은 에너지 수요의 40퍼센트를 여전히 석유에 의존하고 있다. 에너지에 대한 미국의 갈증은 텍사스의 퍼미언(Permian) 분지와 같은 곳에서 셰일 가스 붐이 일어나면서 어느 정도는 해소되었다. 하지만 셰일 가스 역시 청정한 에너지원은 아니며, 수익을 내려면 현재 배럴당 40~50달러인 석유보다 저렴해야 한다. 아람코는 그 절반 가격에 석유를 생산할 수 있다. 기후 문제와 효율성을 고려할 때 셰일 가스 산업은 결국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미국은 다른 국가들에게 더 의존하게 될 것이다.
왕국이여 영원하라
사우디아라비아 자체의 문제도 존재한다. 아람코가 투자자들에게 하는 홍보를 보면, 저렴하면서도 상대적으로 깨끗한 석유가 풍부하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다. 상당 부분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청년 실업이나 불투명한 왕실 정치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기업 공개는 사우디아라비아 경제를 현대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과연 아람코는 30년 후에도 석유 산업의 독보적인 기업으로 남을 수 있을까? 이를 판단해야 하는 투자자들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혁명이 일어나거나 외국과의 전쟁이 벌어질 위험성도 고려해야 한다. 아람코의 상장은 석유 산업의 끝이 보일 수 있다는 신호다. 하지만 동시에, 정치와 경제를 뒤흔드는 검은 물질의 능력이 향후 수십 년 동안에도 건재할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