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수익성 좋은 기업의 본사로 들어가려면, 경비가 삼엄한 정문을 지나서 길을 하나 건너고, 또 한 번 보안 출입문을 통과해야 한다. 뜨거운 뙤약볕을 피해서 시원한 오피스 건물 내부로 들어서면 돌이 담겨 있는 상자들이 줄지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수천 미터 아래의 지하에서 채취한 경석고, 셰일, 백운석, 입자암의 표본이다. 검은색 표면에 구멍이 송송 나 있는 지극히 평범한 돌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약 1억 년 전에 아라비아반도를 뒤덮었던 해상 동물과 식물들의 잔해가 들어 있다. 이 돌에서는 희미하지만 친숙한 냄새가 난다. 석유 냄새다. “돈 냄새죠.” 임원 한 명이 말한다. 정확히 말하면 1110억 달러(130조 4500억 원)의 돈 냄새다.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이 소유한 석유 기업인 사우디 아람코의 작년 순이익은 1110억 달러였다.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 좋은 기업인 애플이 거둔 순이익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그리고 아람코를 제외한 세계 5대 석유 기업(엑손모빌, 로열 더치 셸, BP, 셰브론, 토탈)의 수익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많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사우디아라비아의 방대한 석유 매장량은 오로지 사우디아라비아만의 자산이었다. 사우디 왕국의 왕세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은 이를 바꾸려 하고 있다.
2016년 무함마드 왕세자는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사우디 왕국의 경제를 다변화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아람코의 지분 일부를 상장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여러 차례 지연되기는 했지만, 마침내 그의 계획이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아람코의 신임 회장으로 왕국의 국부 펀드 이사장인 야시르 알-루마얀(Yasir al-Rumayyan)을 임명하고 상장을 계속해서 진행하라는 임무를 맡겼다. 11개의 은행과 금융 자문단이 그 목표를 향해 열정을 쏟고 있다.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11월 초에 왕국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주식 시장인 타다울(Tadawul)에 아람코의 지분 2~3퍼센트를 상장한다고 발표할 것이다. 아람코가 상장하면 300억 달러(35조 원) 이상의 투자를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2014년에 250억 달러(29조 원)를 모으며 뉴욕 증시에 상장한 알리바바(Alibaba)의 기록을 넘어서는 역사상 최고액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2020년에는 외국 증시에도 상장할 전망이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IPO에 대한 포부를 밝힌 지 거의 4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연기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 그동안 기업 가치 평가에 대한 의견 불일치로 인해 IPO가 미뤄져 왔기 때문이다. 아람코 상장 계획은 당초 10월에 발표될 예정이었다. 왕세자가 만족할 만한 기업 가치가 얼마인지는 불명확하지만, 2016년에 그는 2조 달러(2350조 원)를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립적인 전문가들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아람코는 잘해야 1조 5000억 달러(1760조 원) 정도의 가치로 평가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아람코의 심장부에 존재하는 모순을 보여 준다. 아람코는 한때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석유 업계의 최강자였지만, 지금은 여러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이다. 2019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 동부에 있는 아람코의 정유 시설 두 곳이 드론의 공격을 받았다. 생산량 절반 이상의 피해를 입었고, 추가 공격의 위험도 있다. 미국은 이 공격이 이란의 소행이라고 말하고 있다. 10월에는 신용 평가 회사인 피치(Fitch)가 아람코의 신용 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지정학적인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군주제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국제 유가를 지탱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일고 있다. 2019년 4월에 배럴당 75달러였던 유가는 경기 침체 우려로 인해 약 60달러로 떨어졌다.
무엇보다 투자자들은 이제 석유 산업에 관심이 없다. S&P 500 지수에서 에너지 부문의 가중치는 2019년 6월에 5퍼센트 밑으로 떨어졌다. 2008년 수준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석유 시장은 변동이 심하기로 악명이 높다. 그리고 기후 변화로 인해 석유 소비가 타격을 받으면 변동성이 더 심화될 수도 있다. 금융 기업 번스타인(Bernstein)의 오스왈드 클린트(Oswald Clint)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15년 전에 기업 공개를 했다면, 아마도 투자자들로부터 어마어마한 관심을 받았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석유 수요나 에너지 분야의 전망이 불확실합니다.”
석유 시장은 전반적인 어려움을 겪겠지만, 아람코는 자신이 계속해서 다른 경쟁자들을 압도할 것이라고 말한다. 최근 아람코는 새로운 사업 조직을 만들고 계약을 체결해 고객을 확보하고 수익원을 다각화하면서 자신이 가진 석유의 가치를 극대화하고 있다. 세계의 석유 산업이 끝날 때까지도 사우디아라비아는 계속해서 원유를 뽑아낼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 행보다. 그런 먼 훗날의 가능성을 투자자들이 얼마나 가치 있게 생각할지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최근 전 세계 석유 기업과 산유국은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다른 기업들이 아람코를 능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이 회사의 역사를 보면 다른 나라의 국영 석유 대기업과 비슷한 면도 있다. 1938년에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으로 유전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 작업을 이끈 아람코(Aramco)라는 회사 명칭은 중동 미국 석유 기업(Arabian American Oil Company)을 줄인 것이다. 아람코 본사는 한때 뉴욕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1973년부터 1981년까지 꾸준히 국가의 지분을 늘려서 완전한 국영 기업이 되었다. 이는 당시 베네수엘라에서부터 말레이시아까지 불어닥친 석유 산업 국유화라는 거센 바람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하지만 아람코는 여느 평범한 국영 석유 기업들과는 다르다. 전문적인 경영진과 독특한 기업 문화를 가졌으며, 업계에서도 운영이 잘되는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아람코의 본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동부주(Eastern Province)에 위치한 다란(Dhahran)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1만 5000명의 사람들이 거주하는, 하나의 세계다. 여러 학교와 체육 시설, 식료품점이 갖추어져 있으며, 길거리에는 멋진 집들이 줄지어 있다.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가 좀 많을 뿐, 언뜻 보면 애리조나의 교외 지역이 연상된다. 아람코의 직원들 중 약 90퍼센트는 사우디아라비아인이며, 여성 직원들은 아바야(abaya)라는 의상으로 머리를 가려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도 여느 평범한 산유국과는 다르다. 이 나라의 보물인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 곳은 주로 동부주 지역이다. 여기에는 483억 배럴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 축복받은 가와르(Ghawar) 유전이 있다. 이곳은 하늘에서 보면 마치 무용수가 발끝으로 선 모양처럼 보인다. 석유는 룹알할리 사막의 사구 아래와 걸프만 해저에도 매장되어 있다. 아람코가 확보하고 있는 유정은 500군데 이상이며, 이들 모두의 매장량은 확인된 것만 해도 2600억 배럴 가량이다. 다른 상위 5개 업체들의 매장량을 합친 것보다도 세 배나 많은 양이다. 2018년에 아람코가 뽑아 올린 원유의 양은 전 세계 생산량의 8분의 1에 달한다.
이처럼 놀라운 규모로 인해 사우디아라비아는 OPEC의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해왔다. 미국 셰일 가스 업체들의 석유 생산량을 모두 합친 것이 더 많을지도 모르지만, 미국의 업체들은 모두 개별 기업이다. 변동성이 큰 석유 시장을 길들이기 위해 생산량을 빠르게 조절할 수 있는 곳은 오직 사우디아라비아뿐이다.
석유는 사우디 왕국에 번영을 가져다주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시민들에게 무상 교육과 무상 의료, 최저 소득 보장 제도와 같은 안전망을 제공하면서 절대 군주제를 유지하고 있다. 사우디 내에도 천연자원의 혜택을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이 누리는 곳이 있다. 리야드(Riyadh), 담맘(Dammam)의 부유한 지역에서는 푸르른 숲을 볼 수 있다. 높은 콘크리트 장벽이 이 지역과 먼지 쌓인 서민 주거 지역을 구분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사우디아라비아는 원유에 위태롭게 의존하고 있다.
석유는 사우디 정부 수입(收入)의 70퍼센트와 수출의 80퍼센트 가량을 책임진다. 비석유 분야의 경제 활동은 대부분 정부 지출로 인한 것인데, 그조차도 결국은 석유에 의존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 석유나 천연가스에 의존하지 않는 사람이나 서비스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조한 기후 때문에 물을 얻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엄청나게 드는 해수 담수화 시설을 사용해야 한다. 물까지도 화석 연료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스윙 컨슈머[1]
사우디아라비아는 오랫동안 유가 변동에 취약했다. 게다가 세 가지 새로운 문제점을 마주하고 있다. 첫째, 셰일 가스 혁명으로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변신한 미국은 유가를 높은 가격으로 꾸준히 유지하려는 OPEC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기 시작했다. 둘째, 사우디아라비아에 청년 인구가 급증했다. 석유 산업은 자본 집약적인 산업이기 때문에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지 않고, 따라서 넘쳐나는 젊은이들을 전부 고용할 수 없다. IMF는 앞으로 5년 안에 사우디아라비아 내에서 100만 개의 일자리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