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20대 여성인 나에게 결혼은 썩 내키지 않는 일이다. 주변에도 결혼하지 않을 권리를 이야기하거나 결혼을 해도 아이는 안 낳겠다는 친구들이 많다. 가사 노동에 대한 부담, 시집살이의 고충, 독박 육아와 경력 단절. 평생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결혼하기에는 희생하고 포기해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아 보인다.
프랑스의 팍스 제도를 보면서 ‘이런 결혼이라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팍스는 두 성인이 계약을 통해 배우자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는 제도다. 시민 연대 결합이라는 명칭이 의미하듯 두 시민이 가족으로 결합하는 계약이다. 증인이 필요 없고, 계약을 맺고 끊는 절차도 간단한 서류를 작성하고 제출하는 정도로 해결된다.
그렇다고 팍스가 헤어지기 쉬운 가벼운 관계는 아니다. 오히려 언제든 헤어질 수 있다는 관계의 본질을 인식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평등한 관계가 팍스 제도를 탄생시킨 프랑스의 가족 문화다. 프랑스 사람들은 가족을 꾸려도 독립적인 개인으로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배우자가 있어도, 아이가 있어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개인의 행복과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들에게 자신의 공간에 타인을 들이고 가족이 된다는 것은 깊은 고민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
프랑스에서 팍스 커플로 사는 저자는 “서로가 공존할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가족이 된다는 것의 진짜 의미를 배운다”고 말한다. 결혼이나 팍스, 동거와 같은 결합의 형식이 아니라, 함께 생활하면서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태도에서 가족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출산율이 높은 프랑스의 팍스 제도가 거론되곤 한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팍스라는 제도 이면의 문화다. 팍스는 결혼이나 출산 여부와 무관하게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프랑스의 문화에서 탄생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엔 개인의 행복이나 가치를 포기해야 하는 사회라면 팍스와 비슷한 제도를 도입한다고 해도 평등한 시민 간의 계약이라는 취지를 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이들이 그 모습 그대로 함께하는 것. 끊임없이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 ‘모두에게 평등한 결혼’이라는 팍스 제도의 취지를 일상에서 구현하고 있는 프랑스 사회의 모습은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말하고 있다.
곽민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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