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켓 사업을 혁신한 스페이스X는 이제 통신 사업을 정조준하고 있다.
올라간 것은 내려오게 돼 있다. 일론 머스크가 열렬히 옹호했던 비트코인이 확실히 여기에 해당한다. 비트코인은 지난 2월 테슬라가 15억 달러(1조 7000억 원)어치를 사들이면서 가치가 급등했지만, 5월 12일 테슬라가 자사 차량 결제에 비트코인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서 가치가 폭락했다. 테슬라의 CEO 머스크는 비트코인 채굴 과정에서 화석 연료가 많이 쓰이는 것을 걱정한다. 5월 5일에는 더 우아한 일이 있었다. 스페이스X의 우주선 ‘스타십(Starship)’ 시제품이 미국 텍사스주 보카치카에서 발사돼 10킬로미터 상공까지 올라간 뒤, 다시 발사대로 내려와 지상에 부드럽게 착륙했다. 앞선 4번의 발사 실패 끝에 맞이한 첫 성공이었다. 스타십은 아폴로 우주 비행사를 달에 데려다준 새턴 5호 이후 가장 큰 규모로 설계된 우주선이다.
이번 시험 발사는 2002년 머스크가 설립한 로켓 회사 스페이스X에겐 최신 호재였다. 머스크는 전기차 산업을 개척하고 있는 테슬라의 창업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스페이스X 역시 테슬라와 마찬가지로, 선호되지 않던 기술을 채택하고 획기적으로 개선해 현실에 안주해 오던 산업을 뒤흔들고 있다.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의 세계적 전환을 가속화”한다는 테슬라의 미션은 거창하지만, 스페이스X의 미션은 더 거창하다. 머스크는 화성에 식민지를 건설해 인류를 “다행성 종족”으로 만들기 위해 저렴한 로켓을 활용하고자 한다. 테슬라처럼 스페이스X의 가치도 치솟고 있다. 데이터 분석 기업인 피치북에 따르면 스페이스X는 올해 4월 완료된 펀딩 라운드에서 회사 가치가 740억 달러(83조 7500억 원)로 평가됐다. 작년 8월에는 460억 달러(52조 원)였다. CB인사이트는 스페이스X를 세계에서 세 번째로 가치가 높은 스타트업으로 꼽는다(표 참조).
빅 로켓맨
19년이 된 회사를 ‘스타트업’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페이스X의 가치 상승은 대부분이 이미 벌이고 있는 사업이 아니라, 테슬라와 마찬가지로 미래에 대한 투자자들의 희망에서 비롯한다. 화성 이주라는 야심을 실현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스페이스X는 지구촌을 아우르는 거대 통신업체로 탈바꿈할 계획이다. 기존 기술을 크게 개선하는 머스크 특유의 묘수가 여기에도 사용된다. 현재 미국, 영국, 독일 등에서 시험 운영되고 있는 스타링크(Starlink) 서비스는 지구 구석구석에 초고속 인터넷을 제공하기 위해 사상 최대 규모의 위성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스페이스X의 로켓 공학 기술은 도약대를 제공한다. 스페이스X의 로켓은 일회용이 아니라 재사용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팰컨9 로켓은 발사된 다음, 1단 추진 로켓이 지구로 돌아와 몇 주간 수리를 받고는 다시 발사될 수 있다. 비용 절감에 초점을 맞춘 실험, 그리고 위험을 감수하는 의지로 스페이스X는 많은 경쟁자를 물리칠 수 있었다.
테슬라가 그랬듯 현실에 안주하던 기성 업체들도 대응에 나서고 있다. 보잉과 록히드 마틴의 합작사인 유나이티드 론치 얼라이언스(United Launch Alliance·ULA)는 일자리를 줄이고 비용을 절감했다. 지난해 11월에 ULA의 대표 토리 브루노(Tory Bruno)는 아틀라스V 로켓의 발사당 금액이 2억 2500만 달러(2550억 원)에서 1억 달러(1130억 원)를 조금 넘는 금액으로 내려갔다고 밝혔다. 유럽 회사인 아리안스페이스(Arianespace)도 발사당 2억 1300만 달러(2410억 원)가 드는 아리안 5호의 비용을 낮췄다. 아리안스페이스는 내년에 첫 발사 예정인 아리안 6호의 발사 비용을 이전 모델보다 40퍼센트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한편 스페이스X의 신형 로켓 발사 비용은 6200만 달러(702억 원)이다. 재활용 로켓은 5000만 달러(566억 원)이다.
저렴한 가격, 비용 통제에 대한 집중, 위험을 감수하고 빠르게 반복하려는 의지(또 다른 머스크의 특성)는 스페이스X가 위성 회사인 이리듐(Iridium), 인텔셋(Intelsat)부터 스타트업인 플래닛(Planet), 각국 정부에 이르기까지 계약을 체결하는 데 도움이 됐다. 4월 16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2024년까지 인류를 달에 보내는 프로젝트를 위한 달 착륙선 개발 사업자로 스페이스X를 선정했다. 사업 규모는 29억 달러(3조 2840억 원)다. 9월 15일에는 관광객 4명을 우주선에 태우고 3일간 궤도 여행을 진행할 예정이다. 글로벌 투자 은행 모건스탠리는 스페이스X를 빠르게 성장하는 “신흥 우주 경제의 관제 센터(지배자)”라고 표현한다. 벤처 캐피털 회사인 세라핌 캐피탈은 이 부문이 올해 3월까지 87억 달러(9조 851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한 것으로 추정하는데, 전년 대비 95퍼센트 증가한 수치다.
이 분야는 계속 발전하고 있다. 스타십의 수송량은 팔콘9보다 6배 이상 많다. 거대한 크기에도 완전히 재사용할 수 있고, 스페이스X의 현재 로켓보다 훨씬 저렴하다. 머스크는 스타십의 1회 발사 비용을 200만 달러(23억 원) 이하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술 분석 회사인 브라이스테크(BryceTech)의 사이먼 포터(Simon Potter)는 스페이스X의 기술이 좋기는 하지만, 2019년 기준으로 로켓 발사 시장 규모는 60억 달러(6조 7910억 원) 정도여서 비교적 작다고 말한다. 많은 로켓 회사들이 국가 안보를 우려하는 정부들에 의해 완전 경쟁에서 보호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스페이스X의 시장 점유율이 제한될 수 있다. 대신 스페이스X는 로켓 발사를 다른 계획을 위한 “활성화 기술(enabling technology)”로 보고 있다고 모건스탠리의 애널리스트 아담 조나스(Adam Jonas)는 말한다. 스페이스X의 다음 목표는 통신 사업이다. 스타링크는 다른 형태의 연결이 좋지 않거나, 연결되지 않고 있는 장소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인터넷 접속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시장은 적어도 서류상으로는 규모가 훨씬 크다. 국제전기통신연합(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 Union·ITU)은 2019년에 세계 인구의 48퍼센트가 오프라인 상태였다고 추정한다. 스페이스X의 최고운영책임자(COO)인 그윈 샷웰(Gwynne Shotwell)은 2019년 기준 전 세계 인터넷 접속 시장 규모가 1조 달러(1132조 원)에 달한다고 말한다. 머스크는 스페이스X가 그중 3퍼센트를 점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는데, 그 작은 점유율로도 2년 전 기준으로 연간 300억 달러(34조 원)를 벌어들일 수 있다.
내일은 별들
위성 인터넷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다. 그러나 머스크가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또 다른 기술이다. 기존 인터넷 위성은 높은 고도에 위치해 적용 범위를 최대화한다. 대신 많은 고객이 단일 위성을 공유하기 때문에 용량이 제한된다. 무선 신호가 고도를 비행하는 위성으로 이동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짜증스러운 지연이 발생한다. 현재 위성 인터넷은 외딴 시골이나 해상 선박처럼 더 나은 대안이 없을 때나 사용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스타링크는 저렴한 로켓을 이용해 작고 값싼 위성 수천 개를 저궤도에 배치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사이먼 포터에 따르면 올해 1분기에 스페이스X는 다른 모든 로켓 회사가 쏘아 올린 것을 합한 것보다 많은 물체를 궤도에 발사했다. 스타링크 위성은 이미 1500개가 넘는데, 궤도상 모든 위성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스페이스X는 1만 개 이상의 위성을 배치할 계획이고, 최대 4만 2000개까지 배치할 수 있다고 ITU에 신고했다. 이는 우주 시대가 시작된 이래로 발사된 모든 위성의 4배가 넘는다.
현재 스타링크 시범 서비스는 수천 명이 이용하고 있다. 대부분은 빠른 속도에 만족하는 것 같다. 그러나 위성 인터넷 사업은 좋지 않은 기록을 갖고 있다. 이리듐은 출시 이듬해인 1999년에 파산했고, 결국 미국 정부에 의해 구제됐다. 인텔셋과 스피드캐스트(Speedcast)는 작년에 파산 신청을 했고, 스타링크와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을 지닌 스타트업인 원웹(OneWeb)도 마찬가지다. 인텔셋은 현재 구조 조정 중이고, 스피드캐스트는 새 소유자 아래에서 다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런 비즈니스의 취약성은 스페이스X의 미래 가치 설정을 까다롭게 만든다. 모건스탠리는 스타링크의 생존 가능성에 대해 전혀 다른 두 가지 가정에 따라 회사 가치를 50억 달러(5조 6600억 원)에서 2000억 달러(226조 4200억 원)까지 평가하고 있다.
컨설팅 회사인 런던 이코노믹스(London Economics)의 라스무스 플라이크자어(Rasmus Flytkjaer)은 낮은 발사 비용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두 가지 큰 과제가 남아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스타링크의 잠재 고객 대부분이 기존 인터넷 회사의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가난한 시골 지역에 살고 있다. 스타링크의 서비스는 월 99달러인데, 부유한 국가의 사용자에게조차 저렴한 가격이 아니다. 다른 하나는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데 필요한 첨단 위성 수신 안테나 비용이다. 지붕이나 벽에 부착되는 23인치 크기의 안테나다. 스타링크 위성은 저궤도에서 하늘을 빠르게 가로질러 이동한다. 안테나는 이동하는 위성을 추적할 수 있어야 하고, 위성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면 다른 위성으로 원활하게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4월 스페이스X의 COO 그윈 샷웰은 현재 499달러에 판매하는 위성 수신 안테나의 생산 비용은 1500달러로, 2년 전 3000달러에서 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스페이스X는 규모의 경제를 통해 궁극적으로 제조 비용을 수백 달러까지 낮출 계획이다. 플라이크자어는 유료 고객을 확보하기 전까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드는 자본을 마련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한다. 이 문제는 이리듐이 겪었던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머스크의 주머니가 두둑한 덕분에 스페이스X는 20년 전 이리듐처럼 현금 부족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낮다고 그는 말한다.
이러한 도전들이 남아 있는 탓에 머스크는 스타링크에 대해 말할 때 그답지 않게 호언장담을 삼가는 것인지 모른다. 테슬라는 “터무니없는 모드(Ludicrous Mode)”와 “바이오 무기 방어 모드(Bioweapon Defense Mode)” 같은 기능을 갖춘 자동차를 판매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스타링크는 공개 테스트 프로그램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나은 베타 테스트(Better Than Nothing Beta Test)”라고 부른다. 지난해 머스크는 스타링크의 목표가, 현재로서는 단순히 파산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타링크가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에서 많은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하며, 기존 통신 회사에 스타링크가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반복해서 말해 왔다.
스타링크의 시험 서비스는 현재 부유한 몇 나라에서만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스페이스X는 5월 5일 50만 건의 선주문을 받았다고 밝혔다. 미국에서만 최대 500만 명의 사용자에 대한 규제 허가를 요청했다. 12월에 스페이스X는 미국 시골 지역에 광대역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가로 미국 정부로부터 8억 8600만 달러(1조 원)의 보조금을 받았다. 영국에서도 비슷한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스타링크가 제공하는 인터넷 접속은 당국이 검열하기 까다로울 수 있어서, 모든 정부가 수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난한 국가들에서는 스타링크의 인공위성이 시골 지역의 핸드폰 기지국을 인터넷에 연결해 많은 사용자에게 비용을 분산할 수 있다고 플라이크자어는 말한다. 스페이스X는 모든 전장에 인터넷이 연결되기를 바라는 미국 군대와도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2019년에 스페이스X는 군용 제트기에 고속 기내 인터넷을 제공하는 능력을 보여 줬다.
실패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위성 인터넷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생각하는 억만장자는 머스크 외에도 또 있다. 원웹은 파산한 이후 영국 정부와 인도 대기업 바하티 엔터프라이즈(Bharti Enterprises)에 의해 구제됐고, 이곳의 설립자 수닐 미탈(Sunil Mittal)은 인도의 최대 갑부 중 하나다. 아마존 설립자인 제프 베이조스는 머스크만큼이나 부유하고, 자신의 민간 로켓 회사인 블루 오리진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아마존은 카이퍼(Kuiper)라고 불리는 스타링크와 유사한 저궤도 위성 인터넷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은 머스크의 곡조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우주 산업도 똑같이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