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백인이 좋아하는 것들(Stuff White People Like)’이라는 풍자적인 성향의 블로그가 비록 잠시이긴 했지만 세간의 선풍적인 이목을 끌었다. 그곳에는 직설적인 비유가 있었는데, 백인들이 좋아하는 항목들을 136가지나 열거해 놓고, 각 항목이 가진 인종적인 매력을 설명하는 내용을 마치 그것이 인류학적인 사실인 것처럼 함께 적어 놓고 있었다. 그러한 항목들 중에는 41번의 인디 음악이라던가 10번에 있는 웨스 앤더슨(Wes Anderson) 감독의 영화처럼 조금은 뻔한 것들도 있었고, “무언가에 대한 의식”(18번)이나 “어른들이 아이들처럼 노는 것”(102번)처럼 다른 곳에서 영감을 받아서 작성한 것도 있었다. 이 글은 순식간에 인기를 얻었다. 불과 두 달 만에 ‘백인이 좋아하는 것들’ 블로그는 400만 명의 방문자가 몰렸으며, 곧이어 이 블로그에 실린 글을 바탕으로 만든 책은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블로그를 만든 사람은 코미디언 지망생이자 박사 과정을 중퇴한 크리스찬 랜더(Christian Lander)였다. 그는 로스앤젤레스에서 광고 카피라이터로 일하면서 충동적으로 이 사이트를 개설했다. 여러 인터뷰에서 랜더는 자신의 풍자가 계급에 대한 것만큼이나 인종과도 어느 정도는 관련이 있다는 점을 언제나 인정하고 있었다. 그는 이 블로그의 대상이 자신과 같이 부유하고 학력 수준이 높은 도시인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백인주의(whiteness)가 아무런 의미 없는 하나의 정체성에 불과하다는 가정에 기댄 유머를 추구하고 있었지만, 그 블로그의 인기가 백인이라는 인종에 대한 노골적인 축원과 관련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별로 없다. “백인이라는 사람들은 자신이 매달리고 싶은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찾으려 합니다.” 그가 2009년에 한 말이다. “저와 함께 자란 거의 모든 백인들이, 그러니까, 제2의 언어를 사용하는 다른 민족의 가정에서 자랐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습니다.”
‘백인이 좋아하는 것들’ 블로그의 현재 모습을 다시 살펴보면, 비교적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독특 아이러니함은 여전하고 주요 이용자층의 일반적인 특성도 바뀌지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시간이 엄청나게 많고 가처분 소득도 엄청나게 많은 백인들이 들락거리고 있다. 그리고 그들 중 상당수가 지금도 요가(15번)와 베스파(Vespa) 스쿠터(126번)를 좋아하고, “흑인들이 더 이상 듣지 않는 흑인 음악”(116번)을 좋아한다.
그러나 바뀐 것도 있다. 즉, ‘백인이 좋아하는 것들’도 분명하게 나이가 들었음을 보여 주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문화적인 배경이다. 10년 전, 백인주의는 주류 문화에 마치 안개처럼 퍼져 있었다. 즉, 어디에나 퍼져 있을 정도로 팽배했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았다. 랜더가 백인들에 대해 쓰는 글에서 백인을 말할 때는, 그 주제가 옹호와 어색함 사이의 좁은 범위에 한정되어 있었다. 이들이 자신의 인종적 정체성과 그에 따르는 특권을 나누어주기 위해서 떠들어댄 것이 아닌 것처럼, 그러한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거나 토론하는 것을 원하지도 않았다.
그 후 몇 년 동안, 특히 한때는 자신들을 랜더가 만든 블로그의 열렬한 팬으로 생각했을 것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백인주의의 대중적인 의미에 대한 거의 전면적인 재평가가 진행되었다. 백인주의에 대한 이야기는 조심스럽게 농담처럼 말하는 일종의 카타르시스 행위였지만, 이제는 신자유주의나 포퓰리즘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문화 및 정치 현상의 중심 동력으로 진지하게 언급되고 있다. 2008년에 랜더가 백인주의를 문화적으로 단조로운 혼합물이고 그것의 가장 큰 죄악은 재미없다는 점이라며 조롱하는 내용으로 쓴 책이 베스트셀러에 등극할 수 있었던 반면에, 불과 9년 후에는 타네하시 코츠(Ta-Nehisi Coates)가 백인주의를 두고 “이 나라와 이 세계에 대한 실존적인 위험”이라고 설명하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게 된다.
물론 이러한 변화의 상당 부분은 도널드 트럼프와 관련이 있는데, 코츠는 그를 두고 “백인주의는 개념적이거나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권력의 핵심”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이는 단지 트럼프 때문만은 아니다. 백인주의는 대서양의 양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을 통해서도 드러나고 있었다. 브렉시트는 물론이고, 노르웨이와 뉴질랜드, 미국에서 일어난 대규모 총기 난사,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와 브리오나 테일러(Breonna Taylor) 사망 사건, 그리고 지난 1월 6일 미국의 국회의사당에서 있었던 반란 사태 등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실제로 발생한 사건들과 함께 타네하시 코츠, 넬 어빈 페인터(Nell Irvin Painter), 조던 필(Jordan Peele), 에릭 포너(Eric Foner), 에바 두버네이(Ava DuVernay), 애덤 서워(Adam Serwer), 바버라 필즈(Barbara J. Fields)와 캐런 필즈(Karen E. Fields) 자매, 케빈 영(Kevin Young), 데이비드 올루소가(David Olusoga), 니콜 해나-존스(Nikole Hannah-Jones), 콜슨 화이트헤드(Colson Whitehead), 클로디아 랭킨(Claudia Rankine)을 필두로 한 많은 이들이 학계, 언론계, 예술계, 문학계 등에서 엄청나게 활약하면서, 50년 만에 인종으로서의 백인에 대한 가장 진지한 재성찰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추정이 가끔씩 이루어지곤 하지만, 이번에는 실제로 그 영향이 측정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퓨(Pew Research Center)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 백인들의 거의 3분의 1은 최근의 인종적인 이슈에 대한 관심이 미국인들이 인종에 대해 가지는 태도에서 “상당한 변화”를 의미한다고 답했고(45퍼센트는 “약간의 변화”라고 답했다), 거의 절반은 이러한 변화가 인종적인 불평등을 개선하는 정책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국에서 유가브(YouGov)가 지난해 12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영국인들의 3분의 1 이상이 인종 차별에 대해서 예전보다 더 많은 토론을 벌였다고 대답했다.
동시에, 백인주의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관심은 상당한 혼란과 실망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특히 자기 자신을 인종 차별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백인들 사이에서 그러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퓨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 백인들의 절반은 인종적인 이슈에 대한 논의가 “지나치게 많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절반 정도의 백인들은 인종 차별이 존재하는 영역에서 그러한 차별이 있음을 인식하는 것보다는 인종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영역에서 그러한 차별이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 더욱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이러한 최근의 논쟁을 통해서 무엇보다도 드러나는 것은 아마도 백인주의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여전히 거의 아무런 합의가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현대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백인”이라는 것은 유의미한 지표로 간주되고 있는데, 그것은 나이나 젠더와 마찬가지로 뉴스 기사에서 언급해야 하고, 정치 여론조사에서 집계되어야 하며, 정부의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되어야 할 만큼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정체성이 우리에게 말해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상당한 논쟁거리이다. 백인주의는 많은 면에서 성 아우구스티누스(Saint Augustine)가 목격했던 ‘시간’이라는 개념과 유사하다. 즉,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설명하라는 요청을 받지 않는 한 그것을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것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도저히 설명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백인주의라는 종교
100여 년 전, 사회학자이자 사회비평가였던 듀 보이스(W. E. B. Du Bois)는 〈백인의 영혼(The Souls of White Folk)〉이라는 에세이에서, 우리가 백인이라고 부르는 인종적 정체성에 대해서 가장 날카로우며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력의 하나로 평가받는 표현을 제시한 바 있다. “전 세계의 사람들 사이에서 개인으로서의 백인주의를 발견한다는 것은 매우 근대적인 일이다. 그것은 실로 19세기와 20세기적인 현상이다.”
비록 당시에는 급진적이었지만, 듀 보이스가 “신이 창조한 모든 색조들 가운데 오직 흰색만이 갈색이나 황갈색보다 본질적이며 명백하게 우월하다고 믿는” 교리에 기반을 둔 “백인주의라는 새로운 종교”라고 불렀던 이러한 규정은, 이후에 역사학자들을 비롯한 다른 학자들이 인종적인 정체성을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는 부분적으로 백인과 같은 인종적인 분류가 생물학적인 사실이라기보다는 종교적인 믿음에 더욱 가깝다는 그의 주장과도 관련이 있다. 듀 보이스의 시대에는 인종이 생물학적인 인류 내에서 자연적인 종의 분화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흔했는데, 그는 이러한 관념을 거부했다. 또한 백인과 관련된 신체적, 정신적, 행동적 특성이 현대 사회에서 가장 귀중한 것이 되었으며 거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주장하는 결론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한 주장은 예를 들어서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의 견해에서도 나타나는데, 그는 1781년에 초판이 출간된 자신의 저서 <버지니아 주에 관한 주석(Notes on the State of Virginia)>에서 인종 간에 “자연이 만든 실제적인 차이”를 설명하려고 시도했다. 그리고 이러한 견해는 그 기세가 조금 약화되긴 했지만 2세기가 지난 1994년에 찰스 머레이(Charles Murray)와 리처드 헌슈타인(Richard J. Herrnstein)이 출간한 〈종형 곡선(Bell Curve)〉에서 다시 나타나게 된다. 머레이와 헌슈타인은 IQ 테스트 기록에서 흑인과 백인 집단이 보이는 차이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유전자와 환경적인 요소가 어떤 형태로 섞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서, 적어도 그런 차이의 일부는 자연적 차이로 인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종형 곡선〉이 출간될 무렵, 인종적인 분류가 생물학적으로 근거가 없다는 듀 보이스의 주장은 이미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과학적인 근거는 더욱 강력해질 뿐이었다. 2017년에 진행된 어느 연구에서는 전 세계 약 6000명의 DNA를 검사했는데, 그 결과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일부 유전적인 차이는 동아프리카인, 남유럽인, 극지인 등 다양한 조상의 혈통으로 추적해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이러한 혈통들은 그 어떤 것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인종이라는 개념에 해당하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