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하다’는 형용사는 개성이 강하고 유행에 민감하다는 뜻의 영어 ‘hip’에 우리말 ‘-하다’를 합성한 신조어다. 힙합의 ‘힙’은 ‘엉덩이를 흔들다’에서 유래했으니 힙합과는 무관한 말이지만 이렇게 말해도 전혀 생경하지 않다. 요즘은 힙합이 가장 ‘힙하다.’
도처에 힙합이다. 지난해 가장 많이 재생된 음원 네 곡 중 한 곡이 힙합이고, 힙합이 주제인 드라마와 래퍼가 주인공인 영화도 나왔다. 10대와 20대의 주류 문화로 부상한 힙합이 소비되는 방식을 들여다보면 젊은 세대의 삶의 조건과 대응 전략을 발견할 수 있다.
“아버지는 택시 운전사였다. 늦은 밤 전화해 어디냐고 물으면 아버지는 항상 ‘양화대교’라고 말했다. 아침이면 아이의 머리맡에는 별사탕과 라면땅이 놓여 있었다. 홀로 집을 지키던 아이는 새벽에 퇴근하는 아버지의, 주머니를 기다렸다.”
자이언티가 부른 <양화대교> 가사에 조사와 연결어미를 붙여 재구성한 내용이다. 일기나 자전적 에세이의 한 대목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에 가장 고유하고 확실한 존재인 ‘나’를 사유하는 행위만큼 위로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직설적이고 적나라한 힙합에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지도 모른다.
부조리에 저항하는 정신을 힙합 문화의 뿌리라고 일컫지만, 거칠고 독한 가사에 욱여넣은 젊음의 패기도 신자유주의를 비껴가진 못했다. 길거리를 배회하며 비트를 타던 래퍼 지망생들은 이제 랩 학원에 들어가 레슨을 받는다. 랩 실력은 학벌과 학점처럼 으레 갖춰야 하는 일종의 스펙이 되었다. 힙합을 대중문화의 전위로 올려놓은 랩 경연 프로그램은 유명 래퍼든 아마추어든 똑같은 출발선에서 경쟁을 벌인다. 현실에선 불가능한 수저계급론의 전복이라는 판타지를 구성한다.
헌신적인 자기계발로 성공에 도달한 이들은 ‘리스펙트’의 대상이 된다. 온종일 연습실에서 가사를 쓰고 곡을 녹음하는 ‘허슬’한 삶의 자세는 자기 착취에 가까운 ‘노력’을 신봉하는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삶의 방식과 일치한다. 앞선 세대의 유산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으로 ‘밑바닥에서 꼭대기까지’ 일군 부와 명예라면 돈 자랑도 기꺼이 용납된다.
힙합은 그저 빠르게 뇌까리는 10대의 유행가가 아니다. 신자유주의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청춘의 자화상이자 그들의 생각과 행동 양식을 함축한 문화 코드다. 지금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방문을 걸어 잠그고 유튜브에서 힙합 비트를 다운받아 가사를 쓰고 있다. 다소 시끄럽고 때론 상스럽게 들리더라도 힙합 문화를 조금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김세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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