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내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지난 8월 23일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해 25일 법제사법위원회 문턱까지 넘었다. 2015년 19대 국회에서 논의가 시작된 지 6년여 만이다. 해당 법안은 앞서 의료계의 극렬한 반발에 부딪혀 두 차례 폐기된 바 있다. CCTV를 수술실 내외부 중 어디에 설치할 것인지, 촬영 시 음성 녹음까지 허용할 것인지 등을 두고는 여전히 의견 대립이 심한데, 여기서 분명히 할 건 해당 논쟁의 본질이 정치권과 의료계만의 힘겨루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갈등의 기저에는 의사들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깔려 있다.
지난 6월 국민권익위원회는 국민의 98퍼센트가 수술실 CCTV 설치에 찬성한다는 여론 조사 결과를 내놨다. 수치상 차이는 있으나 다른 대부분 조사에서도 찬성 여론이 압도적이다. 그간 불거진 일부 대리 수술, 수술실 내 성범죄, 의료 사고 은폐 의혹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에서는 CCTV가 의사의 긴장을 유발해 도리어 수술 질을 낮추고, 외과 등 분쟁 소지가 많은 분야에 지원하는 인력이 줄어 필수 의료가 붕괴할 것이라 우려한다. 그런데도 여론은 여전히 차갑다. “뭔가 켕기는 것이 있으니 저러는 거겠지.”
의사 집단에 대한 불신은 이번 수술실 CCTV 논란에서 처음 드러난 게 아니다. 2014년 영국에서 의사에 대한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는 전 세계 29개국 중 20위였고, 2016년 글로벌 시장 정보 기업 GFK의 국제 비교 연구에서는 27개국 가운데 24위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다.[1] 병원을 배경으로 하는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처음 방영됐을 때, 시청자들은 누구보다 인간적이고 헌신적으로 환자를 대하는 주인공들에 열광했지만 동시에 ‘세상에 저런 의사가 어디 있냐’며 냉소를 지었다.
상호 존중하고 신뢰하는 의사와 환자 관계는 왜 비현실적인 판타지로 여겨질까. 의사는 왜 엘리트주의와 특권 의식에 젖은 기득권으로만 비치는 걸까. 피곤에 찌들어 내게는 무심한 듯한 얼굴, 속사포처럼 뱉어내는 알아듣기 힘든 설명, 빨리 내 차례를 끝내고 다음 환자를 보려는 듯한 행동 등 보편적이라 여겨지는 의사들의 태도 때문일 거다. 많은 경우 우리는 병원에서 오감을 통해 인간적 소외감을 경험하고 이것이 쌓여 불신과 불만으로 발현한다. 상황이 이러니 의사들은 왜 저렇게 말하고 행동할까 이해하려는 노력은 시도조차 어렵다.
그럼에도 ‘의사들은 원래 그래’라는 감정적 고착은 도려내야만 한다. 불친절한 의사들의 이면에 불합리한 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환자들이 경험해 온 소외감의 상당 부분이 병원을 둘러싼 정책과 의료 체계에 기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현실적인 수가 수준, 획일적인 병원 운영 방식, 무계획적인 의료 인력 운용 등이다.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불신하는 의사를 양산해 낸 건 그들의 엘리트주의나 특권 의식이 아닌, 하나같이 낯설고 나와 상관없어 보이는 이 시스템일지도 모른다.
김선영 저자는 현행 의료 제도의 모순과 불합리가 환자와 의사 사이의 관계를 왜곡하는데, 이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모순과도 연결된다고 지적한다. 소위 ‘사람을 갈아 넣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의료 현장에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음을 꼬집은 거다. 정부는 병원을, 병원은 의료진을, 국민은 다시 정부를 압박하는 이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의사에 대한 불신 혹은 무관심이 나와 내 가족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끔찍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코로나19 판데믹은 ‘K방역’이라는 화려함 뒤에 가려졌던 열악한 의료 환경을 직시하게 했다. 불신을 걷어 내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첫 단계가 상호 이해라는 점에서,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의사들은 왜 그래’라는 질문을 던질 최적의 시기다.
전찬우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