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적인 비즈니스에 자금을 지원하는 비즈니스가 호황을 맞고 있다. 동시에 벤처캐피털 안에서도 파괴적인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2020년 3월, 전 세계의 신생기업들은 종말의 날을 대비하고 있었다. 대형 벤처캐피털(VC) 기업인 세쿼이아캐피털(Sequoia Capital)이 아마겟돈을 경고했던 것이다. “거대한 해체(Great Unwinding)”을 예측하는 이들도 있었다. 에어비앤비(Airbnb)를 비롯한 스타트업들은 경제의 유혈참사에 대비하여 인력을 감축했다. 그러나 암울했던 분위기는 몇 달 만에 완화되었고, 다시금 역대급 호황이 시작되었다. 미국은 거액의 경기부양책을 쏟아냈다. 봉쇄령이 내려진 소비자들이 온라인에서 더욱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기술 기업들의 지배력이 더욱 강화되었다. 에어비앤비를 비롯한 많은 기업들이 증시에 상장하면서 이러한 활황세를 적극 활용했다. VC의 지원을 받는 미국 상장 기업들의 시가총액은 지난해 2000억 달러라는 기록적인 수준으로 치솟았는데, 2021년에는 5000억 달러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투자자들은 새로운 세대의 기업들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데이터 제공업체인 피치북(PitchBook)에 의하면, 이제 막 발걸음을 뗀 기업들을 위한 초기의 “종자돈(seed)” 지원에서부터 좀 더 성장한 스타트업들을 위한 자금지원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벤처 투자는 올해 사상 최고치인 58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는 2020년 투자액보다 거의 50퍼센트 많은 금액이며, 2002년에 비하면 약 20배나 높은 수준이다.
벤처 비즈니스에 몰려드는 투자자들의 유형도 역시나 크게 달라졌다. 그것은 한때 실리콘 밸리에서 사업을 벌이는 소수 벤처캐피털 기업들의 전유물이었다. 벤처캐피털들은 기업 창업자들과의 풍부한 인맥에 의존하면서 연기금 및 다른 최종 투자자(end investor)[1]들로부터 자금을 조성하고 때로는 그들에게 투자를 했다. 그러나 현재는 운용중인 자산의 최대 벤처 투자자 10곳 중 3곳만이 전통적인 VC 기업들이다.
대신에 벤처 투자를 거의 하지 않던 사모펀드나 헤지펀드 등이 주도하거나 또는 단독으로 진행한 투자는 2020년의 1440억 달러에서 올해는 2600억 달러로 거의 두 배에 달할 전망이다. (표1 참조) 이는 전 세계 VC 투자의 무려 44퍼센트를 차지하는데, 2002년의 20퍼센트에서 엄청나게 상승한 수치이다. 공공 부문과 민간 시장에 모두 발을 걸치고 있는 타이거글로벌매니지먼트(Tiger Global Management)와 같은 소위 “크로스오버(crossover)” 펀드들은 무서운 기세로 자본을 휘두르고 있다. 거대한 연기금들이 스타트업에 직접 투자하는 사례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주머니가 두둑한 투자가들로부터 홍수처럼 밀려드는 자금은 기업의 가치평가액을 부풀리는데 일조했다. 그러나 그러한 자금은 또한 한때는 무시되었던 구석으로, 그리고 새로운 기회가 있는 곳으로도 흘러들고 있다. 벤처 투자는 이제 실리콘 밸리와 미국을 넘어서 더욱 광범위하게 확장되고 있으며, 블록체인에서부터 생명공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의 기업들에게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자본의 물결은 VC의 작동 방식도 변화시키고 있다. VC 기업들은 한편에서는 스스로 차별화를 추구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월 스트리트의 경쟁자들을 모방하면서 새로운 전략들을 채택하고 있다. 이는 혁신적인 비즈니스에는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기도 하다.
현대의 벤처캐피털 산업은 1960년대 실리콘밸리의 칩 제조사인 페어차일드반도체(Fairchild Semiconductor)의 실험실에서부터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페어차일드를 떠나서 처음으로 투자 분야에 뛰어든 아서 락(Arthur Rock)은 자신이 만든 첫 번째 펀드에서 500만 달러를 조성했고, 7년 동안 1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유진 클라이너(Eugene Kleiner)와 돈 밸런타인(Don Valentine)도 곧바로 뒤를 따랐고, 각각 클라이너퍼킨스(Kleiner Perkins)와 세쿼이아캐피털(Sequoia Capital)을 설립했다. 두 곳 모두 지금까지도 대형 VC 기업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들의 접근법은 구글처럼 크게 성공한 기업이 포트폴리오 전체를 이끌어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리스크가 있는 스타트업들을 후원한다는 것이었다. 아직 매출을 올리지도 못한 스타트업에게 종자돈을 투자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 후에는 알파벳 글자들이 뒤섞인 연이은 투자 라운드가 전개되었는데, 한 기업이 성장함에 따라서 일반적으로 시리즈 A부터 C까지 이어지곤 했다. VC 펀드들은 폐쇄적이었는데, 이는 그들이 일반적으로 연기금이나 기부기금(endowment fund) 등의 장기지향적인 투자자들에게 자신들의 수수료를 떼고 7년에서 10년 사이에 수익금을 분배한다는 의미였다.
왔노라, 보았노라, VC 했노라
벤처캐피털들은 단순히 자금만 제공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콘실리에리(consigliere, 법률자문) 역할도 했는데, 기업의 이사회에서 한 자리를 맡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풍부한 경험을 제공하고 적절한 인맥들을 연결시켜주었으며, 때로는 스타트업들에게 전문적인 경영인을 소개시켜주기도 했다. 수많은 기업인들이 자금을 지원받기 위하여, 많은 VC 기업들이 소재한 실리콘밸리의 샌드 힐 로드(Sand Hill Road)로 몰려들었다. 개인적인 인맥에 의존하는 이들의 모습은 오히려 마치 동창회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 모델은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매년 미국에서 창업하는 기업들 중에서 VC의 후원을 받는 곳은 0.5퍼센트 미만에 불과하지만, 그들은 1995년 이후에 창업한 상장기업들의 시가총액에서 거의 76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VC들은 조금 더 오래된 “말기(late stage)” 스타트업들에게 투자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각자 나름의 사정에 의하여 상장을 미루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일부 VC 기업들은 해외에도 사무실을 열었다. 2009년에 설립되었으며 역시 샌드 힐 로드에 소재한 앤드리슨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는 정상을 향해서 약진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 모델은 왜 혁신적이었을까? 이들의 놀라운 성공은 새로운 경쟁자들의 진입과 최종 투자자들의 거대한 관심 덕분이었다. 여기에는 부유한 세계 전역에 걸쳐서 금리가 하락한 현실이 반영되어 있는데, 이는 투자자들로 하여금 좀 더 리스크가 있지만 수익률이 높은 시장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지난 3년 동안 VC가 전 세계적으로 자산운용 시장에서 가장 뛰어난 실적을 거두었으며, 지난 10년 동안 사모펀드 및 증권 시장에서 거의 급등세와도 같은 성적을 올렸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VC를 기피했던 최종 투자자들도 이제 속속 뛰어들고 있다. 지난해 발간된 금융경제학저널(Journal of Financial Economics)의 연구에 따르면, VC는 수익률도 매력적이지만, 스타 펀드(star fund)[2]를 가려내는 일에 있어서도 다른 곳들보다 더욱 뛰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좋은 실적은 더욱 오래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 VC의 자금으로 성공을 거둔 수많은 기술 대기업들의 사례 역시 또 하나의 매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VC 펀드에 투자하고 있는 호슬리브릿지(Horsley Bridge) 펀드의 프레드 지우프리다(Fred Giuffrida)는 투자자들이 예전에는 기술 산업의 수익 가능성을 과소평가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이제 그들은 그런 생각을 수정하고 있을 것이다.
자본의 유입이 급증하면서 기업들의 가치가 올랐다. 현재 (스타트업들의) 시드 단계(seed stage)의 가치평가액은 10년 전 (이미 매출을 일으키고 있었던 좀 더 오래된 기업들의) 가치평가액에 근접한 수준이다. 2021년 미국 스타트업의 시드 단계 평균 가치평가액은 330만 달러로, 2010년에 비해 다섯 배가 높다. (표2 참조)
한편, 새로운 영역에도 자금이 흘러들고 있다. 금액 기준으로 보면, 2002년 전 세계의 벤처 투자 가운데 84퍼센트는 미국 내에서 이뤄졌다. 지금은 약 49퍼센트이다. 여기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대의 5퍼센트 미만에서 2018년에는 37퍼센트까지 증가했는데, 이후에는 기술계에 대한 탄압으로 20퍼센트 가까이 떨어졌다. 투자자들은 유럽에서 더욱 푸르른 목초지들을 찾아 나섰다. VC 기업인 파운더스펀드(Founders Fund)의 키스 라보이즈(Keith Rabois)는 만약 제대로만 이루어진다면, 벤처 투자가들로서는 덜 과열된 분야에 투자하는 것이 더욱 매력적인 수익을 창출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벤처캐피털들에게는 여전히 소프트웨어 스타트업들의 인기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조쉬 러너(Josh Lerner)는 “자금을 지원받는 분야가 넓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좀 더 리스크가 큰 생명공학이나 암호화폐, 우주개발 분야의 아이디어들도 자금을 지원받고 있다. 코로나19 백신을 생산하는 제약회사 모더나(Moderna)는 VC 기업인 플래그십파이오니어링(Flagship Pioneering)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서 창업했다. 2000년대에 호황을 누렸다가 인기가 식어버린 그린테크(green tech) 분야도 되살아나고 있다. 컨설팅 기업 PWC는 2013년부터 2019년 사이에 기후 관련 기술 벤처에 대한 투자액은 스타트업 분야의 전반적인 자금조달 추세보다 다섯 배가 높았던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통적인 스타일의 많은 벤처캐피털에게는 이렇게 경쟁이 치열한 새로운 현실이 불안하게 느껴질 수 있다. 세쿼이아캐피털의 롤로프 보타(Roelof Botha) 역시 “우리도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이러한 사실을 인정한다. 기업들의 가치가 상승하면서 현재의 포트폴리오에 대한 수익률은 더욱 강화시켜주지만, 미래에 대한 수익은 고갈시키고 있다. 크로스오버 펀드들은 전통적인 VC들에 비해서 가치평가액에 대하여 덜 민감한 편이다. 그리고 말기(late stage)의 스타트업일수록 투자자들의 자금에 대한 대체가능성(fungibility)[3]이 더욱 높다고 프레드 지우프리다는 말한다.
따라서 누가 투자를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들이 얼마를 투자를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게다가 전통적인 VC 기업들에게는 시장이 더욱 험난해지고 있다. 벤처 업계의 호황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에서 신생 틈새 VC가 조성한 금액은 2018년에는 140억 달러로 정점에 달했는데, 2021년에는 55억 달러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통적인 VC 기업들이 대응하는 한 가지 방법은 차별화이다. 많은 크로스오버 투자자들은 데이터 위주의 접근방식을 채택하면서 각 분야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두고 있는 스타트업들로 포트폴리오를 꾸리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투자한 기업들에서 많은 역할을 하는 걸 피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부 VC들은 개별적인 영향력을 강조하고 있다. 초기 단계에 투자하고 있는 어떤 VC는 이렇게 말한다. “크로스오버 펀드는 업무 위주의 자본이고, 우리는 관계를 중시하는 자본입니다.”
텍사스 오스틴 소재의 8VC라는 펀드는 자체적인 스타트업 “인큐베이터”를 확장하고 있는데, 현재 이곳에서는 매년 다섯 군데 이상의 기업들을 기르며 후원하고 있다. 또 다른 VC 기업인 슬로우벤처스(Slow Ventures)는 심지어 아직까지 제대로 된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있지도 않은 온라인 콘텐츠 크리에이터들과 같은 개인들의 커리어에도 직접 투자를 하고 있다. 앤드리슨호로위츠의 공동창업자인 벤 호로위츠(Ben Horowitz)는 만약 강력하게 제시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갖고 있지 못하다면, VC들은 돈을 더 지불하거나, 아니면 아예 문을 닫아야 한다고 말한다.
또 다른 대응은 규모를 키우는 것이다. 팀이나 회사를 거치지 않고 자신의 돈을 직접 투자하는 일부 투자자들은 그들의 날개를 펴며 외부의 펀드에 투자하는 개인 벤처캐피털로 진화하고 있다. 그들은 투자를 결정하기 위해 설득해야 할 다른 파트너들이 없기 때문에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저명한 개인 벤처캐피털인 엘라드 길(Elad Gil)은 2021년 상반기에 약 20개의 투자를 진행하면서 6억2000만 달러의 자금을 조성했는데, 이는 개인 투자가로서는 놀라운 금액이다.
가장 크고 잘 알려진 VC 기업들 역시 확장하고 있다. 앤드리슨호로위츠는 지난 4년 동안 투자 팀의 규모를 25개에서 70개 정도로 늘렸다. 그들은 기업들에게 다양성과 포용에 대한 정책에서부터 신입 직원이나 고객들에 대한 방대한 후보군 네트워크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VC와 다른 투자자들과의 경계도 더욱 모호해지고 있는데, 이는 단지 월 스트리트가 샌드 힐 로드를 잠식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거대 VC 기업들도 좀 더 다른 자산관리사들과 비슷해지고 있다. 세쿼이아캐피털은 증권시장으로 그들의 존재감을 넓히고 있다. 지난 10월 그들은 미국과 유럽의 벤처 펀드들을 세간의 흐름에 영향을 받지 않는 더욱 규모가 큰 한 곳의 펀드에 넣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포트폴리오 기업들이 상장을 하면, 그들이 가진 지분은 최종 투자자들이 아니라 그렇게 만든 슈퍼펀드로 흘러간다. 이렇게 함으로써 포트폴리오 기업이 상장을 한 이후에도 세쿼이아캐피털은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 타이거글로벌매니지먼트와 같은 크로스오버 펀드들은 이미 보유 지분을 자사의 사모펀드에서 공모펀드로 원활하게 이전하고 있다. 다른 대형 VC 기업들도 이러한 흐름을 따를 수 있다.
세쿼이아캐피털의 슈퍼펀드는 월 스트리트가 선호하는 만기 없는 자본을 연상시킨다. 조쉬 러너는 “사모펀드 시장이 가진 역동성의 많은 부분이 이제는 벤처 시장으로 흘러들고 있다”고 말한다. VC와 사모펀드들은 몇 년에 한 번씩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조성하곤 했는데, 이는 비용이 많이 들고 투자자들이 빠져나갈 위험이 있다. 기업인수를 전문으로 하는 블랙스톤(Blackstone)이나 KKR과 같은 회사들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KKR이 운용하고 있는 자산의 거의 3분의 1은 현재 만기가 정해져 있지 않다.
세쿼이어캐피털은 또한 앤드리슨호로위츠 및 소프트뱅크(SoftBank)와 같은 대형 펀드들과 마찬가지로 정식으로 등록된 투자자문회사로도 변신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그들은 상장기업이 신규로 발행한 것이 아니라 시중에서 거래되고 있는 “2차 주식(secondary shares)”을 더욱 많이 확보할 수 있다. (VC들은 일반적으로 포트폴리오 구성에서 2차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의 한도를 20퍼센트로 정해두고 있다.) 앤드리슨호로위츠는 지난 6월에 자문회사의 지위를 활용해서 스타트업이 아니라 주로 디지털 코인에 투자하는 22억 달러 규모의 암호화폐 펀드를 출시할 수 있었다.
가장 큰 펀드들은 새로운 환경으로부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입장이다. 인덱스벤처스(Index Ventures)의 마이크 볼피(Mike Volpi)는 최고의 VC 기업들이 자금을 지원한다는 것은 그 스타트업의 자질을 어느 정도 보증하는 일종의 신호라고 말한다. 그리고 전통적이지 않은 투자자들은 그러한 신호에 의존해서 자금을 움직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런 스타트업들의 가치가 더욱 오르게 된다. 그 결과 벤처캐피털 산업은 더욱 불평등해졌다. 미국의 VC들이 운용 중인 평균 자산이 2007년의 2억2000만 달러에서 2020년에는 2억8000만 달러로 늘어났지만, 이는 몇몇 대형 투자자들에게 더욱 편중되어 나타난 결과이다. 그러한 예외적인 초대형 기업들의 영향을 덜 받는 중간값(median)은 오히려 7000만 달러에서 4800만 달러로 하락했다. 그렇다고 해서 VC 산업을 몇몇 스타펀드들이 장악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들이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여전히 작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타이거글로벌매니지먼트는 2020년에 전 세계에서 50억 달러 상당의 투자를 단독으로 또는 공동으로 주도했는데, 이는 벤처 투자액 전체에서 겨우 1.3퍼센트에 불과하다. 자금이 필요한 스타트업들의 수요는 충분히 다양하기 때문에, 그만큼 VC 기업들도 다양한 유형으로 존재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마이크 볼피는 생각한다.
투자자들이 서로 경쟁을 벌이면서 회사의 창업자들도 그들 나름대로 협상력을 키웠다. 샌프란시스코 소재의 VC 기업인 네오(Neo)의 알리 파토비(Ali Partovi)는 “회사를 창업하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시기가 없었다”고 말한다. 어느 벤처투자가의 말에 의하면, 10년 전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신규 창업자들은 투자에 대한 조건들을 명시해 놓은 문서인 텀 시트(term sheet)에 대해서 들어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지금은 많은 스타트업들이 와이컴비네이터(Y Combinator)와 같은 “액셀러레이터(accelerator)”와 함께 투자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들을 배우고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을 비롯한 서비스로서의 소프트웨어(SaaS)들 덕분에 일부 기업들은 거액의 자본을 투자받지 않고도 규모를 키울 수 있다.
협상이 타결되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몇 시간까지는 아니지만, 몇 주에서 며칠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줌(Zoom)이 널리 활용되면서 자금조달의 속성이 바뀌었다. 현미경 검사기술 스타트업인 바이오닥(Biodock)은 하루에 VC들과 10차례의 통화가 예정되어 있는데, 이곳의 창업자인 마이클 리(Michael Lee)는 이런 방법 덕분에 그들이 협상에서 더욱 많은 힘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들이 자금을 조달하는 라운드에서는 기존의 투자자들이 지분을 더욱 늘리는 “리프레쉬(refresh)”를 진행하기도 한다. 다른 경쟁자들보다 앞서 나가기 위해서, 일부 투자자들은 스타트업들이 추가적인 자금을 찾아 나서기 전에 미리 현금을 제공하는 경우도 많다.
어떤 면에서는 투자자들이 가졌던 힘이 이동한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치열한 경쟁으로 인하여 VC 기업들이 거두었던 놀라운 수익률은 점점 더 하락할 것이다. 게다가 기술이라는 것은 더 이상 실리콘밸리의 인맥이 두터운 벤처투자가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예를 들어서 SaaS 업체들의 실적은 사용자들의 행동에 대한 데이터를 활용하여 측정할 수 있다. 창업자와 벤처투자가들 사이의 관계는 특히 스타트업이 성장함에 따라서 예전보다는 덜 중요해질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대가는 존재한다. 협상의 기간이 단축되면서 투자자들이 포모(fomo, 기회 상실에 대한 두려움)를 느낄 수 있고, 때로는 최악의 투자 결정이 이뤄질 수도 있다고 알리 파토비는 말한다. 이러한 변화는 또한 기업에 대한 지배력을 약화시켰다. 힘의 균형이 멀어지면서 VC들이 차지하고 있던 이사회의 의석수가 줄어들었고, 회사의 지분은 창업자들이 의결권을 유지할 수 있게끔 구조화된다. 차량호출 기업인 우버(Uber)의 전임 대표였던 트래비스 칼라닉(Travis Kalanick)과 같은 가난한 창업자들도 이제는 훨씬 더 오래 버틸 수 있게 되었다. VC 기업들과 창업자와의 관계는 10년 정도 지속되는데, 알리 파토비의 지적에 의하면 이는 일반적인 결혼 생활보다 더욱 긴 시간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성급하게 배우자를 선택하지는 않는다.
또 다른 리스크는 이 시장에 거품이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일부 투자자들은 기술기업들의 수익이 어마어마하며 이제 막 창업한 스타트업들조차도 재무상태가 건전하다는 점 때문에 이들 기업들에 대한 가치평가가 긍정적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호슬리브릿지의 프레드 지우프리다는 “모두가 승리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 기업에 대한 가치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통계적으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따라서 투자자들에게는 눈부신 수익을 장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혁신이 과연 리스크를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이에 대하여 벤 호로위츠는 이렇게 말한다. “너무 많은 업체들이 자금을 지원받는다고 하더라도 그건 대체로 좋은 일입니다. 아무도 모더나에 투자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입니다.” 그리고 자본이 오히려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자극하고 있다. 임페리얼칼리지런던(Imperial College London)의 라마나 난다(Ramana Nanda)와 MIT 슬론경영대학원(Sloan School of Management)의 매튜 로즈-크로프(Matthew Rhodes-Kropf)의 연구에 의하면, 투자자들은 일반적으로 과거의 벤처 호황 당시보다 좀 더 리스크가 있지만 더욱 혁신적인 스타트업들에게 의욕적으로 투자를 감행한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지난해 창업한 자본집약형 제약회사인 리질리언스(Resilience)는 8억 달러의 자금을 조성하면서 이미 다수의 생산시설들을 인수했다. 이는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불가능했던 일이라고 8VC의 드류 오팅(Drew Oetting)은 말한다. 우주개발 분야에서의 벤처 투자는 전 세계적으로 70퍼센트 증가해서 2020년에는 77억 달러가 되었다. 하버드의 조쉬 러너는 “달 탐사(moonshot)[4]”가 더욱 많이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기술 업계에서는 더욱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 기술 대기업들은 그동안 경쟁업체들을 먹어 치워왔다. 2000년 이후로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구글, 마이크로소프트가 인수한 기업들의 수는 2014년에 74개로 정점에 달했다. 그런데 그 이후로는 수치가 하락해서 2019년과 2020년에는 60개 정도에 머물렀는데, 이는 아마도 반독점 관련 규제에 대한 우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스타트업들이 (인수보다는)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스타트업의 “투자회수(exit)” 전략에서 인수나 매각이 아니라 상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약 2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데, 참고로 5년 전에는 그 비율이 약 5퍼센트였다.
가치평가가 어떻게 나오든, VC들의 구조 변화는 계속해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창업 초기 단계에 투자를 함으로써 거두었던 놀라운 수익률은 결국 하락할 수밖에 없다. VC 기업들이 스스로 혁신을 강요받으면서, 더욱 다양한 분야에서 더욱 폭넓은 아이디어들이 자금을 지원받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벤처투자가들이 애초에 예상했던 참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투자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