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인도, 남아프리카, 독일, 뉴욕, 캐나다에서 기록적인 홍수가 발생하여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 서부, ‘아프리카의 뿔’이라 불리는 소말리아 반도, 이라크 등에서 가뭄이 발생해 대지가 바짝 마르고 작물들은 말라 죽어가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방을 더욱 높이 쌓고, 배수관을 더욱 크게 만들며, 수로를 더욱 길게 건설해야 한다는 요구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물길을 제어하려는, 이러한 구체적인 방안들은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극단적인 기후 재난은 엄중한 진실 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다.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과 산업적 농업, 그리고 심지어 물을 통제하기 위해 건설된 콘크리트 기반 시설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선택한 개발 프로젝트들 때문에 오히려 우리의 문제들이 더욱 악화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이기는 것은 언제나 물이기 때문이다. 언제 이기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물은 유연하고 협조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기꺼이 흘러갈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인류 문명이 확장하고 기후가 변화하면서 많은 도시가 완전히 물에 잠겨버리거나, 곡식이 자라는 지표면까지는 끌어올릴 수도 없을 만큼 지하수가 말라붙으며 우리의 삶을 위태롭게 만드는 경우가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물은 어딘가로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다. 때로는 말라버렸다고 생각했던 물길이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솟아 나오기도 한다. 우기만 되면 지하층이 물에 잠기는 건물이 있다면, 그 건물이 땅속에 묻힌 물길을 침범했다는 뜻이다. 습지에 지어진 집들이 가장 먼저 침수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물을 통제하고자 하는 우리의 시도가 실패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물이 그 자체의 의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물은 대지를 관통하는 길을 스스로 찾아내면서 지표를 깎아내고 때로는 지형에 의해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복원생태학자, 수문지질학자(hydrogeologist), 생물학자, 인류학자, 도시계획가, 조경건축가, 공학자 등 지구촌의 새로운 ‘물 탐정’ 집단은 중요한 질문 하나를 던지고 있다. 점점 더 자주,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는 가뭄과 홍수의 영향을 줄이기 위한 중요한 질문이다. “물이 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물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요구사항을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 안에 수용하는 것은 이제 생존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사항이 되었다. 물 탐정들은 인류가 지난 수 세대에 걸쳐서 지형과 수로를 이토록 급격하게 변화시키기 이전에는 물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부터 탐색한다. 우리가 교란을 일으키기 전에 물은 각 지역의 암반, 토양, 생태계, 기후와 어떻게 상호작용을 했을까?
물 탐정들이 점점 더 많은 사실을 발견해 내고 있다. 이에 따라 왜 특정 지역에 홍수가 반복되는지, 지하수를 더 빠르게 퍼 올리고자 하는 인류의 노력이 어찌하여 정작 시급하게 물이 필요한 지역에 내려야 할 비를 빼앗아 가는지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는 인류가 이미 거주하고 있는 지역 내에 물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함으로써 이러한 문제들을 풀어내는 방법들을 창의적으로 생각해낼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도시와 들판, 늪과 습지, 범람원, 그리고 산과 숲. 이 모든 곳에서 물 탐정들이 찾고 있는 해답은 우리가 자연 그대로의 시스템을 보존하거나 회복시켜야 한다는 것, 또는 자연을 모방해서 자연의 일부 기능을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콘크리트 기반 시설을 더 이상 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회복 조치들은 자연 기반 시스템(nature-based systems), 녹색 기반 시설(green infrastructure), 저영향 개발(low-impact development), 물순환 관리형 도시설계(water-sensitive urban design) 등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다. 중국에서는 ‘스펀지 도시(sponge city)’라는 계획을 통하여 도시 지역에서 빗물을 더욱 잘 흡수하고, 필요할 때 방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유형의 해결책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시뮬레이션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홍수와 가뭄을 줄이는 것 이상의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 동물 종의 급격한 감소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기후변화에 적응하거나, 적어도 기후변화의 속도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생물다양성을 보호하고 이산화탄소를 저장할 수 있다는 건 단지 물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부수적인 효과만이 아니다. 그것은 건강한 지구를 위해 아주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물은 무엇을 원할까? 액체 상태의 물은 충분한 양이 모이면 강물을 이루어 대지를 가로지르거나 중력의 영향에 의해 장엄한 폭포의 형태로 떨어져 내린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물이 깜짝 놀랄 만큼 오랫동안 한자리에 머물기도 한다. 물은 원래 수많은 단계를 거치면서 서서히 이동하지만, 지금의 기반 시설들이 그러한 단계를 생략해 버렸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는 물을 한 곳에 가두거나 저장하거나 아니면 빠르게 이동시켰다. 물이 서서히 이동하는 단계는 인간의 간섭으로 특히나 쉽게 피해를 입는다. 왜냐하면 물은 범람원이나 습지처럼 좀 더 평평한 장소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는데, 대개 그런 지역은 우리 인간이 정착하기 위하여 물을 막거나 빼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지 위에서 물이 일단 속도를 늦추면서 서서히 움직이면 마법이 일어난다. 수면의 위아래에서 수많은 생명체에게 먹이와 서식처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자연의 회복력을 더욱 키우기 위한 핵심은 물이 원래의 물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대지에서 물이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주는 것이라고 물 탐정들은 말한다. 혁신적인 물 관리 프로젝트들은 자연적인 패턴과 다소 유사한 방식으로 대지 위에서 물의 속도를 늦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운동을 ‘슬로우 워터(Slow Water)’라고 부르기로 했다.
패스트푸드와 그 악영향에 대항하여 20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처음 시작된 슬로우 푸드(Slow Food) 운동과 마찬가지로, 슬로우 워터의 접근법 역시 맞춤형이다. 그들은 현지의 지형, 기후, 문화를 통제하거나 변형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요소들과 조화를 이룬다. 슬로우 푸드 운동은 현지의 음식문화를 보존하고, 사람들이 스스로가 먹는 음식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그리고 그러한 음식의 생산이 사람들과 환경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마찬가지로 슬로우 워터는 대지에서 빠르게 흐르는 물이 여러 문제를 일으키는 방식에 주목한다. 그들의 목표는 물이 자연스럽게 천천히 흐르는 단계를 복원하여 물을 현지에서 사용될 수 있도록 하고, 홍수를 통제하며, 탄소를 저장하고, 다양한 형태의 생명체들이 살아가게끔 하는 것이다.
슬로우 푸드가 현지의 농부들을 지원하고 시골의 대지를 산업개발로부터 보호하면서 먹거리의 이동 거리와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등 ‘지역성’을 중시하는 것처럼, 슬로우 워터 역시 지역성을 목표로 해야 한다. 물 부족 문제에 대한 공학적인 대응책은 일반적으로 다른 곳에서 더욱 많은 물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닷물의 염분을 제거하고 물을 수송하는 과정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비된다. 예를 들자면 캘리포니아주 전체에서 전력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곳은 새크라멘토 삼각주(Sacramento Delta)에서 남쪽으로 물을 밀어내는 거대한 펌프 시설이다.
어느 유역 한 곳을 없애거나 그곳의 물을 다른 곳으로 내보내는 작업 역시 공여생태계(donor ecosystem)를 급격히 감소시킬 수도 있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지역으로 생태계를 교란하는 침입종이 유입될 수도 있다. 또한 물에 대한 공학적 접근 방식은 환경 정의(environmental justice)와 관련한 이슈를 안고 있다. 2017년의 연구에 따르면 1971년부터 2010년 사이에 세계 인구의 20퍼센트는 댐을 포함하여 인간이 강에 개입한 시설로부터 물을 얻을 수 있었지만, 24퍼센트의 인구는 더 적은 물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다른 곳에서 물을 가져오는 작업은 그것을 받는 사람들에게도 해를 끼칠 수 있다. 새로운 대형 저수시설은 잘못된 안도감을 들게 한다. 수원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물의 공급량에 제한이 있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할 수밖에 없고, 때문에 물을 보존하려는 노력을 덜 기울이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사용하는 바로 그 물이 지역의 생태계를 어떻게 지탱해주는지에 관해서도 알 수 없다. 미국의 남서부나 캘리포니아 남부, 중동처럼 물이 부족한 지역에 인구를 과도하게 팽창시킴으로써 문제는 더욱 심화하고 있으며, 주민들은 물 공급이 감소하면 쉽게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물을 이동시키는 것은 또한 도로의 차선을 추가하면 오히려 더욱 많은 자동차가 유입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원리로 물 부족의 악순환을 야기한다.
슬로우 워터는 다양한 토착 문화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켈시 레너드(Kelsey Leonard)는 미국의 원주민 부족인 시네콕 인디언 국가(Shinnecock Indian Nation)의 주민인데, 그들의 역사적 영토는 현재의 뉴욕주에 해당한다. 그녀는 또한 온타리오에 있는 워털루대학교(University of Waterloo) 환경자원지속가능성대학(School of Environment, Resources and Sustainability)의 조교수이기도 하다. 2020년에 온라인으로 나눈 대화에서 그녀는 토착 문화의 전통에 따르면 물이 “무엇(what)”인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물이 “누구(who)”인지를 고민한다고 한다. 전 세계의 수많은 원주민은 물이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가족이라고 믿는다. “그러한 사고방식 지금 우리가 물을 보호하는 방법을 정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녀의 말이다.
물 탐정들은 다양한 믿음을 가진 다채로운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공통점이 있다. 통제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존중을 중시하는 태도로 사고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개방적인 태도가 그것이다. 우리가 물을 통제할 수 있다는 오랜 환상이 점점 거세지는 재난에 부딪히고 산산이 무너져 내리면서, 우리는 물을 받아들이고 물과의 조화가 가져다줄 수 있는 혜택을 누리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더 낫다는 사실을 서서히 이해하기 시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