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은 농지를 활용해 도시화를 예방하고 도시와 농촌 간의 간극을 줄였다. 도시와 농촌을 나누지 않고 하나의 행정 구역 안에 배치함으로써 도농 간의 구분을 없앴다. 실제로 평양의 행정 구역은 우리가 흔히 아는 도심 밖의 넓은 지역을 포괄한다. 평양의 규모는 서울의 세 배가 넘는다. 일각에서는 평양이 서울과의 규모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행정 구역을 넓게 설정한 것이라고 하지만, 평양의 행정 구역이 넓은 이유는 농촌 영역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도시에 충분한 농지를 배치해 각 지역이 자생할 수 있는 도시 기반으로 삼았다. 평양에서 생산한 농산물은 평양에서 소비하고, 함흥에서 생산한 것은 함흥에서 소비하는 방식이다.
한국의 도시 외곽의 농경지는 도시가 커지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공간이다. 이런 도농 관계를 바탕으로 성장한 도시가 수도 서울이다. 서울의 강남이나 경기도 일산, 분당, 하남 등의 도시는 모두 농지를 개발해 만든 지역이다. 이에 반해 평양에서 농촌 또는 농지는 도시화 과정에서도 꼭 유지해야 하는 영역으로, 도시화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완충 지대다. 지금도 평양에는 도시와 농촌 간의 명확한 구분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개발이 많이 진행되어 도심이 넓어지고 있으나 농지를 침범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흥미로운 사실은 최근 많은 선진 도시에서 도시와 농촌 또는 도시와 농촌의 생산물을 어떻게 결합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는 점이다.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만 파는 가게들이 생겨나고, 어떤 레스토랑에서는 지역에서 난 재료를 가지고 요리한다.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서 오는지 알고자 하는 이들, 유전자 조작 식품이나 방부제가 들어간 가공 식재료를 꺼리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런 추세를 타고 신선하고 건강한 식재료는 지역 경제를 살리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생산의 도시를 그리다
평양은 도시에 농촌 영역을 편입시키고, 공업 생산 기지를 구축해 생산 도시로서의 모습을 지켰다. 일제 강점기에 병참 기지 역할을 했던 평양에는 한국 전쟁 이전부터 여러 공장이 있었다. 평양은 재건 과정에서 공장 기반 시설을 활용해 많은 제조 공장을 설립했다. 평양 공업 지구는 북한에서 가장 큰 공업 단지다. 평양과 위성 도시인 남포, 대안, 송림, 사리원 일대에 조성된 단지로, 대동강 유역을 따라 북한의 주요 경공업 및 중공업 시설이 분포한다. 생필품 등 필수적인 소비재를 각 도시에서 자급하는 구조를 갖추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무엇보다 평양이 생산 기지로 기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마이크로 디스트릭트라는 생활 단위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 디스트릭트는 도시의 가장 작은 단위이면서도, 커뮤니티로 기능하는 공동체를 일컫는 말이다. 사회주의 도시들이 사회의 근간이 되는 단위를 가족이 아니라 공동체인 코뮌(commune)으로 생각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하나의 마이크로 디스트릭트에는 주거부터 교육, 탁아, 공공, 상업 시설 등이 포함된다. 마이크로 디스트릭트 안에 사는 가족은 아이를 탁아소에 맡기고, 초등학교에 보내고,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고, 휴식을 취하는 일을 모두 한 구역에서 해결할 수 있다. 사회주의 도시에서 마이크로 디스트릭트란 자생적인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개념이었다. 마이크로 디스트릭트가 도시 전역에 고르게 분포하면 모든 주민이 각자의 주거 단위 내에서 충분한 녹지와 편의 시설을 향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1960년대 북한은 소련의 마이크로 디스트릭트 개념을 차용해 북한만의 주택 소구역 계획 이론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는 주택 소구역의 규모를 설정하고, 하나의 블록 안에서 주거 영역과 부대시설을 배치하는 방법 등이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지역이나 지형 특성에 따라 아파트가 병렬적으로 구성되는 것이 좋은지, 자유롭게 들어서는 것이 좋은지까지 제시하고 있다. 개별 단위의 소구역 안에 학교와 탁아소, 주민 생활에 필요한 상점과 공공시설을 설립해야 하고, 주민들의 공동 생산이 가능하도록 가내 수공업 형식의 생산 시설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규칙은 평양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를 계획하는 과정에서도 활용되는, 북한의 주택 공급에서 핵심적인 개념이다.
주택 소구역은 크게 세 개의 단위로 구성된다. 가장 기본이 되는 단위는 초급 봉사 단위다. 반경 100~150미터 범위에 주민 2000~3000명을 대상으로 하는 단위로, 여기에 포함되는 공공시설은 밥공장
[1], 어린이 놀이터, 공동 녹지 등이다. 그다음으로 큰 단위는 소규모 봉사 단위로 반경 400~500미터에 주민 6000~9000명을 포괄한다. 이 단위에는 도서관, 두부 공장, 체육관, 연료 공급소, 동사무소 등 초급 봉사 단위의 공공시설보다 큰 규모의 공간들이 들어선다. 가장 큰 단위는 구역 봉사 단위로 2000~2400개 가구에 1만 명~1만 5000명 정도의 주민이 대상이다. 경공업 시설이나 작업장을 배치해 주민들이 주거 지역에서 멀지 않은 장소에서 일할 수 있게 했다.
[2]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회주의 도시에서는 주거 지역과 공장의 인접성이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마이크로 디스트릭트는 생산 시설을 포함하고 있었다. 김일성 광장에서 바라봤을 때 대동강 맞은편에 있는 동평양 지역이 대표적인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