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을 위한 도시
우리가 흔히 아는 평양은 서울보다 낙후된 도시인 데다, 정치적 의사 표현이나 상거래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곳이다. 탈산업화 시대에 접어들어 많은 도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서울에서 다른 도시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면, 비슷한 과정을 거친 뉴욕, 도쿄, 런던 등의 대도시나 도시 환경을 잘 정비한 싱가포르 같은 곳을 살펴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도시와 평양을 말하는 이유는 도시 생산 주거라는 삶의 양식에 있다.
한 도시 안에 사는 사람들은 소비자이면서 생산자다. 소비자와 생산자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 사는 공동체는 경제적 성공과는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저녁상을 차릴 때 한 동네에 살고 있는 이웃이 만든 된장으로 찌개를 끓이는 상상을 해보자.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보다 더 건강하고 맛도 좋을 수 있다. 자생적인 모델을 꿈꿨던 사회주의 도시에서는 생산된 농업 생산물을 그 지역에서 소비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일본의 경제학자 미무라 미쓰히로(三村光弘는) 북한이 오랜 시간 경제 제재를 당했음에도 주민들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로 지역 순환 경제를 지목했다. 외부 요소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생활에 필요한 소비재를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다면, 자생 도시의 조건을 갖출 수 있다. 이런 모델을 뒷받침하는 구조가 도시 생산 주거의 한 모델인 마이크로 디스트릭트다.
산업화 시대에는 농산물이건 공장에서 생산한 물건이건 대량 생산 기지를 갖추고, 물류 시스템을 통해 소비자의 손까지 이동하게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었다. 하지만 효율에 바탕을 둔 도시 구조는 우리에게 더 나은 삶의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다. 앞으로는 많은 도시가 지역 생산, 지역 소비를 강조하고, 지역의 순환 경제 시스템을 목표로 삼을 것이다.
이 시스템의 원형이 사회주의 도시 모델이다. 100년 전에 나온 사회주의 도시 모델은 많은 건축가의 꿈이었다. 도시의 공공성이 살아 있는 도시, 주민의 환경을 질적으로 개선한 도시 모델이었다. 사회주의 도시에는 자본의 논리도, 도시 공간에서 소외되는 계층이나 도시 공간의 이점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누리는 특권층도 없었다. 도시에 사는 누구나 공공재로서 그 환경을 누릴 수 있었다. 물론 오류도 있었다. 자본의 논리를 무시하다 보니 인간의 개성과 욕망까지 억눌렀고, 비효율적인 도시 운영 방식으로 경쟁력을 잃었다.
이제는 많은 자본주의 도시에서 사회주의 도시 개념을 받아들이려 한다. 도시의 공공성은 점점 더 주목받고 있고, 도시와 도시를 경쟁 관계로 보는 관점도 달라지고 있다. 어떤 도시가 다른 도시에 비해 얼마나 잘사느냐보다 한 도시가 자생적인 경제 단위로 독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현대의 도시 계획 전문가들은 어떻게 하면 도시 경제가 원활하게 순환할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도시 안에서 농업이 발달하는 현상과,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탈산업화는 연결되어 있다. 도시 안에서 농업이나 지역 생산이 발달하는 배경에는 농업 기술의 진보뿐 아니라, 효율성을 추구하는 대량 생산 제품보다 개인의 취향을 고려하는 소량 생산 제품을 선호하는 소비자의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
사회주의 도시 모델을 우리 사정에 맞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시장과 산업의 논리를 배제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도시 생산 주거는 사회주의 도시 모델의 마이크로 디스트릭트보다 진보한 개념이다. 한 도시 안에 생산 영역과 소비 영역, 주거 영역이 어우러져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하지만 도시 생산 주거의 근간에는 산업 구조의 변화, 소량 생산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욕구에 대응하는 시장 논리가 깔려 있다.
1990년대 개방화 수순을 거쳐 자본주의 도시가 된 사회주의 도시의 사례를 보면, 도시에서 공공성이 사라지면서 발생하는 부작용이 굉장히 컸다. 가장 먼저 사회주의 도시의 핵심이었던 공공 공간이나 녹지 공간이 자본에 침식당해 사라지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이 활용하는 상징적 공간인 광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상점들이 생겨나고, 사람들은 광장 근처에서 기본적인 경제 활동을 시작했다. 상업화가 진행되면 더 많은 가게들이 입점하고, 주변으로 쇼핑몰이나 영화관 등 대규모 상업 시설이 들어서며 공공성을 잠식하게 된다. 쇼핑몰을 공공 공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쇼핑몰은 소비를 해야만 그 효용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다. 결국 모두가 편히 이용할 수 있는 도시의 모습은 사라지고, 소비자를 위한 공간만이 남는다.
녹지 공간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Sofia)에서는 시장 개방 이후 녹지 공간의 30퍼센트가 개발로 인해 사라졌다. 남아 있는 녹지에서도 개발이 진행 중이다. 시장 경제를 받아들인 사회주의 도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도시가 제반 시설을 구축하고, 정비 사업이나 주택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국민의 세금을 통해 부족한 비용을 충당할 수 없다면 국가 소유의 공공 공간을 사유화하는 수밖에 없다. 여러 도시에서 공원의 개발권을 민간에게 넘겨주고 개발 사업을 진행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평양도 많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우리가 뉴스를 통해 자주 접할 수 있는 미래 과학자 거리나 려명 거리는 북한이 현대식 아파트를 공급한다는 명목으로 근래에 건설한 아파트 단지다. 이러한 변화와 더불어 북한 내에서 중요한 원칙으로 통했던 마이크로 디스트릭트 계획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부동산 가치라는 개념이 북한 주택 시장에 들어온 후 도시의 최우선 목표는 좋은 위치에 많은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됐다. 부동산 가치로는 별 볼 일 없는 학교나 생산 시설이 뒷전으로 밀리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