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조 5000억 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납부할 2017년 법인세 추정치다. 2000년대 초반 세계 최초로 CDMA를 상용화한 정부의 선견지명은 당대 최고의 반도체 기업을 양성하는 밑거름이 됐다. 두 기업이 납부하는 법인세는 우리나라 전체 법인세수의 10퍼센트를 넘나든다. 글로벌 수요를 예측하고 지원한 당국과 장기적인 안목으로 꾸준히 투자한 기업이 어우러져 20년 먹거리가 마련될 수 있었다.
다음 세대 먹거리로 가장 각광받는 분야는 빅데이터다. “10년 후 세계 최대 자원은 석유가 아닌 데이터”라는 알리바바 마윈 회장의 말처럼 구글, 페이스북 등 세계 유수 기업들에게 빅데이터 활용법이 최대 화두다. 넷플릭스, 우버 등 유니콘 기업들은 최적화된 빅데이터 활용을 바탕으로 급성장했다.
빅데이터 활용이 가장 빛을 발하는 분야는 핀테크 산업이다. 핀테크로 수행하는 경제 활동 대부분은 곧바로 데이터가 된다. 이렇게 수집된 개개인의 결제 내역은 정보를 필요로 하는 기업과 개인에게 제공된다. 알리바바, 텐센트 등 중국의 핀테크 선두 기업들은 40조 개가 넘는 데이터들을 분석해 자사의 플랫폼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는 개인과 기업에게 제공한다. 활용에 대한 고민은 정보 수용자들의 몫으로 맡겨 둔다. 지금 이 순간도 알리페이와 위챗페이는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핀테크에서 뒤처진다는 것은 단순히 특정 기업이나 특정 산업의 부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미래 먹거리가 빈약해진다. 지난 반세기 동안 석유를 가진 국가들이 부유했듯이, 앞으로는 금융 정보를 가지고 활용하는 국가들이 부유해질 것이다.
중국이 핀테크 산업을 육성하는 방식은 명쾌했다. 관치금융의 벽을 허물고 개혁의 밑그림을 민간에 맡겼다. 타당하다고 느껴지면 규제를 허물고 아낌없이 지원했다. 바탕에 정부의 꾸준한 연구가 있었음은 당연하다. 반면 한국 핀테크 기업들에게는 매 순간이 규제와의 싸움이다. 규제 극복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사이 경쟁자들은 앞서 나갔다. 일례로 인터넷 전문 은행 도입이 국내에서 처음 논의된 것은 2001년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핀테크 관련 세미나마다 규제에 대한 아쉬움과 불만이 가득하다.
텐센트의 마화텅 회장은 “남들이 고양이를 보고 고양이를 그릴 때, 우리는 고양이를 본떠 호랑이를 그렸다”고 성공 비결을 은유적으로 밝혔다. 고양이 그림을 낙서로 보는 금융 당국이 한번쯤 곱씹어 보기 바란다.
허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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