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칼라 프리워커
7화

진남현 ; 내가 할 수 있는 건 딱 여기까지

진남현은 90년생 농부다. 농사를 지으면 밥은 굶지 않겠다 생각해 농부의 길을 택했다. 스스로 개발한 무자본 농법으로 석유를 최소한으로 소비하는 농사를 짓고 있다. 그곳에서 대대로 자생해 온 토종 종자를 사용하기 때문에 자신의 직업을 생명을 돕는 일이라 여긴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KBS 〈인간극장〉, EBS 〈한국기행〉에 출연했고 에세이 《나는 너멍굴을 선택했다》를 펴냈다. 가족과 행복하게 사는 것이 소박하고도 원대한 바람이다. #인스타그램
 


시대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사진: 진남현

본인을 소개해 달라.

7년 차 농사꾼이다. 토종 씨앗과 자연 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전라북도 완주 너멍굴에서 아내와 딸과 함께 살고 있다. 둘째 출산을 앞두고 있다.


토종 씨앗을 사용하는 자연 농법은 무엇인가.

기계를 쓰지 않고 오로지 몸으로만 하는 농법을 말한다. 옛날 조선 시대 농사꾼들이 쓰던 손 도구만으로 농사를 짓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토종 씨앗은 대를 이어서 채종할 수 있는 씨앗을 말한다. 그 씨앗으로 가족이 먹을 농사도 짓고, 남은 것은 팔기도 한다.

자연 농법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농사를 책으로 배웠다. 이게 좋다더라 저게 나쁘다더라, 책에 있는 내용들을 보며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대학교 농촌 활동에서 사과 농약줄 잡는 일을 하다가 농약 중독에 걸렸다. 그러면서 농약을 쓰지 않는 자연 농법에 대한 생각이 확고해졌다.

어떻게 농사꾼이 돼야겠다 마음먹었나.

농사꾼이라는 장래 희망을 적기 시작한 건 고등학생 때부터였다. 그때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굶어 죽지 않을 일은 무엇일까. 농부는 밥을 생산하는 사람이니까 밥은 안 굶겠구나. 그런 생각이었다.

굶어 죽지 않을 직업을 고민한 이유가 궁금하다.

어머니는 은행원이고 아버지는 공무원이셨다. 중산층 가정이었다. 그런데 IMF가 오니 고꾸라지더라. 힘들게 살다가 어떻게 서울 소재 대학에는 들어갔다. 그리고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일어났다. 세계적으로 경제가 위태롭거나 국가가 시대적인 흐름을 만났을 때, 개인의 삶은 굉장히 흔들린다. 시대에 휘둘리지 않는 직업을 찾고 싶었다.

시대에 휘둘리지 않는 직업이 농부였나.

역사책을 들여다보면,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조선이 망하고 일제가 강점했을 때, 조선 농민들의 생계는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았다. 경제 위기, 전쟁이 와도 농촌에 살면 굶지는 않는다. 그래서 먼저 농촌에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농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농촌에 제일 많은 건 자연이고 땅이다. 사람은 밥을 먹고 산다. 그러니 농사를 지으면 휘둘리지 않는다, 죽지 않는다, 이런 생각이었다.

언제부터 귀농을 준비했나.

군대에 다녀온 후 26살 즈음부터 본격적인 준비를 했다. 그 전까진 흘러가는 대로 대학 시절을 보냈고, 어차피 농사를 지을 생각에 학과 공부도 대충 했다.

본격적인 준비라 함은.

귀농 안내 책자에 3년 치 생활비는 있어야 농사가 망해도 버틸 수 있다고 나와 있었다. 농촌에 사는 지인을 보니 1년에 700만 원씩, 3년 생활비로 2000만 원 정도면 될 것 같았다. 일단 그 돈을 모으는 게 본격적인 준비의 시작이었다.

돈을 모으기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궁금하다.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교수님께서 소개해 주셔서 대학교 박물관에서 일하고, 과외도 하고, 아이들 데리고 역사 탐방하는 일도 했다. 그것만으로 벌이가 부족하니까 치킨집, 호프집 서빙도 하고 건설 현장에서 막일도 했다.

그래서 2000만 원을 모았나.

그렇게 닥치는 대로 하다 보니 벌이가 좀 됐지만 연애하고 친구, 후배들 술 사주느라 돈을 다 써 버렸다. 그렇게 1년을 지내고 나니 농촌에 방 한 칸 구할 보증금만 남았다. 그게 100만 원이었다. 계속 이렇게 지내면 100만 원도 까먹겠다 싶어서 대학을 자퇴하고 농촌으로 갔다.

힘든 상황에서 간 대학이었지 않나. 포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졸업장은 그냥 종이라는 생각이었다. 농사를 짓는 데 대학을 나왔다는 게 어떤 도움이 되겠나. 그냥 시간만 버리는 거였다. 기왕 갈 거 1년이라도 빠르게 가자, 그렇게 농부의 길로 들어섰다. 

 

이상향 아닌 생존 


처음 농촌에 도착한 순간을 기억하나.

우선은 가진 게 없었다. 100만 원 든 현금 봉투와 60리터 등산 가방 하나뿐이었다. 애초에 나에게 농촌은 이상향이 아니었다. 생존이었다. 살아남는 게 1순위 목표였다.

살아남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인가.

귀농 1년 차에 완주군 고산면 너멍굴에 들어왔다. 산골이다 보니 집이 없었다. 너멍굴 밖에다 집을 얻으면 밭까지 매일 30~40분 거리를 왔다갔다 해야 했다. 농사는 계속 살펴야 하는 일이다. 밭 근처에 집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옛날 사람들도 다 알아서 짓고 살았는데’라는 생각 하나로 집을 짓기 시작했다. 엔진 톱 하나 사서 산에서 썩은 나무를 주워다가 초가집을 지었다. 그렇게 2년을 버텼다. 그때 진짜 죽을 뻔했다.
ⓒ사진: 진남현
관용적 표현이 아니고 진짜로 ‘죽을’ 뻔했다는 건가.

그렇다. 밥도 못 먹고 집을 지었다. 장마철엔 지붕에서 비가 새고, 밤엔 쥐가 들어오고 뱀이 들어왔다. 육체적으로 힘들 때 든 생각은 ‘이것도 못하면 어딜 가도 죽는다’였다. 사람이 자기 몸 하나 건사 못하는데 어디 가서 뭘 할 수 있겠냐는 생각이었다. 도시로 다시 가더라도 집이라도 한 채 살 만하게 지어 놓고 가겠다고 다짐했다. 몸은 힘들지만 그렇게 버티다 보니 2주가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석 달이 됐다. 그리고 마침내 3년이 지나니까 사람이 바뀌더라.

어떻게 바뀌었나.

몸이 바뀐다. 일하는 사람의 몸으로 바뀐다.

일하는 사람의 몸이라는 게 어떤 몸인가?

직장인이 하루 종일 불편한 옷을 입고 앉아서 모니터 보고 타자 치는 일도 쉬운 게 아니다. 내 기분이 어떻든 사람들도 계속 만나야 한다. 이걸 반복하다 보면 견뎌 내는 힘이 생긴다. 아마도 정신적인 힘일 것이다. 반면 농사는 여름에는 태양 볕, 겨울에는 칼바람과 함께 하는 일이다. 직장인이 직장 생활을 
견디는 멘탈을 가지듯, 농부는 농사일을 견디는 몸을 갖게 된다.

농촌은 사람과 노동력이 귀한 곳이다. 그곳에서 본 육체노동의 의미는 남다를 것 같다.

도시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소모된다는 느낌이 자주 들었다. 나는 노동력을 제공할 뿐 ‘사람’인데, 소모재가 된 것 같았다. 농촌에서는 한 명 한 명이 재산이다. 아르바이트처럼 일당벌이로 남의 밭에 가서 일하는 경우도 물론 있다. 하지만 농사는 한 번 짓고 마는 일이 아니다. 내년에도 짓고 내후년에도 짓고 10년 뒤에도 짓는다. 그래서 사람과 관계 맺는 것 자체가 재산이다. 사람과 노동이 귀하게 대접받는다.

최근 귀농·귀촌을 선택하는 젊은층이 늘고 있다. 이유가 뭘까?

기사들을 보면 ‘도시 속 경쟁에서 지쳐서’라는 답을 정해 두고 있는 것 같다. 귀농·귀촌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쓰인 보고서를 본 적이 있는데, 3년 안에 80퍼센트가 농촌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떠난다고 했다. 도시를 떠나든 농촌을 떠나든, 삶은 어디서든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아 나서는 과정인 것 같다.

 

육체노동은 기술이자 꾀


육체노동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

육체노동이라고 무조건 몸만 움직이는 게 아니다. 육체노동은 기술이고 꾀다. 쉬는 것도 일의 일종이다. 지인들의 권유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한 적이 있다. 집 만드는 법을 배울 겸 따라다녔는데, 현장에서 보면 건설업 노동자들도 엄청 쉰다. 시간을 정해 두고 일하고 시간 맞춰 퇴근한다. 어디 놀러갈 법도 한데 몸을 쉬이는 데 집중한다. 그래야 또 일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농사 안 하고 쉴 땐 무얼 하나.

보통 책을 읽는데 요즘엔 주로 아이랑 논다. 아이랑 그늘에서 맛있는 거 먹고 누워서 낮잠도 잔다. 쉬어야 또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열심히 쉰다. 농사꾼에게 쉼은 생산적인 일과다.
ⓒ사진: 진남현
노동의 강도가 가장 센 농사일은 무엇인가.

흙을 가지고 하는 일이다. 고랑을 파거나 물을 가두는 배수로를 만드는 등 땅의 모양을 바꾸는 일이다. 가장 먼저 만들어진 기계도 땅을 가는 기계지 않나. 옛날에 소가 귀했던 이유도 같다. 소나 기계가 하던 일을 사람의 힘으로 하려니 그게 가장 힘들다. 하지만 즐겁다.

몸은 힘든데 마음은 즐겁다는 건가.

어느 순간이 오면 몸도 힘들지 않을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기술이 늘고 꾀가 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논 100평을 일일이 삽으로 뒤집었다. 물이 부족하면 물길을 만들어서 물을 댔다. 어느 날 보니 장마철이면 비가 알아서 양분을 갖고 땅으로 들어가더라. 그럼 심는 시기를 조금 늦추면 안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심는 시기를 늦추니 알아서 잘 자랐다. 마른 땅엔 마른 걸 좋아하는 작물을 심고, 습한 땅엔 습한 걸 좋아하는 작물을 심었다. 땅을 바꾸는 게 아니라 내가 땅에 맞추면 된다. 그렇게 꾀가 늘면 육체적인 고역이 덜하다.

그럼에도 농촌은 몸을 바삐 움직여야 하는 곳이지 않나.

맞다. 농촌 어르신들은 필요한 걸 다 만들어 쓰신다. 먹는 것과 입는 것부터 농사짓고 생활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 처음에는 그게 재미일까 궁금했다. 지켜보니 그게 생존이다. 도시는 돈이 많고 물건이 없는 공간이다. 그래서 서로 돈을 주고받으며 물건을 만들고 물건을 산다. 반면 농촌은 물건은 많고 돈은 없는 공간이다. 나무도 얼마든지 쉽게 구할 수 있고 흙은 말할 것도 없다. 내가 가진 것들을 활용해서 나의 생활과 삶을 꾸려 나가야 한다. 그래서 농촌에서는 문밖에 나가면 먹고살기 위해 몸을 바삐 움직여야 한다.

 

농사꾼의 일


농사는 어떻게 배웠나.

농촌 어르신들로부터 배웠다. 사람마다 잘 맞는 농사법, 농사 도구, 농사 시기가 따로 있다. 그리고 농사를 짓는 사람에 맞게 작물이 변한다. 그래서 농사꾼이 10명이면 10개의 농법, 10개의 종자가 나온다. 결국 정해진 건 없다. 어르신들의 농사를 관찰하고 나한테 맞춰서 해봐야 한다. 그대로 따라 한다고 잘 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 농사는 내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내 농법을 찾은 작물도 있고 아직 찾고 있는 작물도 있다.

결국은 부지런히 관찰해야 하는 것 같다.

맞다. 농사는 부지런해야 하고 무엇보다 정성스러워야 한다. 작물은 농사꾼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한다. 처음엔 못 믿었다. 그런데 이게 과학적으로도 맞는 말이다. 인간의 발자국이 식물 뿌리의 분화를 촉진한다. 인간이 만드는 미세한 진동이 뿌리를 더 깊고 더 많이 자랄 수 있도록 한다. 그래서 자주 들여다봐야 한다.

정성을 다하면 바로 드러나는 건가.

바로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언젠가 반드시 티가 난다.

농부는 만족스러운 직업인가.

자유롭게 일하고 싶다는 게 컸다. 생계에 속박되는 것이 아닌 좋아하는 일을 자유롭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기왕 하는 일이 세상에 도움 되고 주변 사람에게도 도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럼 사업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사업은 사람이랑 하는 일이다. 농사라는 건 사람이 아니라 자연과 하는 일이다. 물론 대농을 하고 거래를 시작하면 사회 속에 밀접하게 녹아 들어가겠지만 내가 선택한 농사는 그런 게 아니다. 풍족하진 않으나, 자유로운 농법이다.

정성을 들이면 티가 난다는 것, 그게 자유인 건가.

그렇게 해서 얻어가는 하나하나가 다 자유다.
ⓒ사진: 진남현
자유로운 농법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나는 그것을 ‘무자본 농법’이라고 부른다. ‘자본을 들이지 않고 농사를 지을 순 없을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농사도 실은 사업과 유사하다. 자본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 자본을 많이 투자한 사람이 더 많은 수익을 내는 구조다. 쉽게 말하면 땅 1만 평을 가진 사람은 벼농사만 지어도 수익이 난다. 반면 땅 한 평도 없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농사를 짓는 과정도 다 돈이다. 농기계, 씨앗, 비료, 농약, 거름까지 다 사야 한다. 거기에 임대료까지 내고 나면 큰 수확을 내더라도 남는 게 없다. 돈은 돈대로 들어가고 몸은 몸대로 힘들다.

농사에 들어가는 자본을 줄인 건가.

그렇다. 인간이 농사를 처음 짓기 시작한 게 기원전 7000년이다. 그땐 어떻게 농사를 지었을까 생각해 봤다. 소비 없이 주변에 있는 것들로만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종자는 토종 종자를 쓰고 비료는 주변에 있는 낙엽을 긁어모았다. 아궁이에서 나는 재도 갖다 썼다. 닭과 개를 키우고 있으니 닭똥 개똥을 모아서 퇴비를 만들었다. 아주 사소한 것부터 줄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임대료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할 텐데.

너멍굴에 들어오자마자 빚을 내서 땅을 샀다. 땅은 오늘이 제일 싸다고 하지 않나. 땅은 사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들자마자 땅을 샀다. 빚은 갚아 나가고 있고, 그 외의 소비를 줄이니까 생활은 어렵지 않다.

농기계는 어떻게 했나.

가장 중요한 게 기계다. 현대 농법은 석유가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다. 농기계로 밭을 갈고, 트럭으로 작물을 옮긴다. 생산과 유통의 많은 단계에서 석유를 써야 한다. 결국 이걸 줄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하게 옛날 농법만 따라 하는 게 아니라 석유를 안 쓰려고 노력한다. 아주 안 쓸 수는 없으니 최대한 안 쓰려고 한다. 그게 무자본 농법의 핵심이다.

줄인 만큼 다른 걸로 채워야 할 것 같은데.

그렇다. 결국 노동으로 채워야 한다. 몸이 아주 힘든 농법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꾀가 생기면 몸도 덜 힘들다.

 

해 지면 멈추는 노동


어떻게 보면 농부는 몸이 자산인 프리랜서다. 농부로서의 루틴이 궁금하다.

농부의 하루 일과는 계절에 따라 다르다. 변하지 않는 원칙은 해 뜨면 일어나고 해 지면 자는 것이다. 여름엔 오전 4~5시, 겨울엔 6시 반 정도에 일어난다. 해가 완전히 뜰 때까지 일을 하다가, 마침내 중천이면 씻고 쉰다. 카페에 가기도 하고 볼일을 본다. 그러다 오후 4시에 다시 일을 시작한다. 해가 지면 집에 들어와 저녁을 먹고 뒹굴뒹굴 놀다가 식구들과 잠자리에 든다.

계절에 따라 루틴이 바뀌는 건가.

농사꾼 루틴의 핵심은 자연과 함께 하는 것이다. 농촌엔 계절이 한발 빠르게 도착한다. 도시는 더워도 농촌엔 아침저녁으로 느껴지는 쌀쌀한 바람이 있다. 중복쯤 지나 그런 바람이 불어오는데, 벌써 가을이 온 것이다. 그럼 농사꾼은 가을 농사를 준비해야 한다. 이번 가을에 배추 농사를 짓고자 계획했다면, 서둘러 배추 씨앗을 갈무리해야 한다. 농사지을 밭을 정하면 살살살살 밭도 만들기 시작한다. 자연의 때를 관찰하고 계절의 흐름을 느끼는 게 농사꾼에겐 가장 중요한 루틴이다. 

항상 느끼고 살펴야 할 것 같다.

농사는 많이 봐야 한다. 그러려면 여유가 있어야 한다. 여유가 있어야 이런 것들이 보인다.

일할 때 노동요는 안 듣는지?

처음에는 들었는데 지금은 안 듣는다. 자세히 관찰해야 하는데 음악을 틀어 놓으면 음악의 감정선에 따라 마음이 요동친다. 그게 방해가 된다. “잘 자라라, 고맙다” 말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쿵쾅쿵쾅 노래를 틀어 놓으면 집중이 잘 안 된다. 농사는 정성을 다해야 하는 시간이다.
ⓒ사진: 진남현
다른 직업과 달리 농부는 해가 지면 일을 멈춰야 한다. 이게 어떤 의미일지 궁금하다.

모든 게 인간 마음대로 될 수는 없다는 걸 느낀다. 처음 너멍굴에 들어왔을 때 그런 생각이 강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 자연에 존재한다. 그러니까 무엇이든지 포기하지 않고 하면 된다’. 그런데 농사를 지으며 느낀다. 땅이 직장이고 태양이 상사다. 인간의 힘으론 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도 많다.

땅을 직장으로 태양을 상사로 삼는 일, 그건 또 어떤 의미인가.

야근이 없다는 것이다. 태양은 일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해야 할 때가 딱 정해져 있다. 그때까지만 최선을 다한다. 그 시간 안에 못 하면 내 꾀, 내 노력, 내 정성이 부족했던 것이다. 해가 지기 전까지. 그게 내 몫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다.

생계유지 수단으로서 만족스러운가.

지금까지 7년 동안 일곱 번의 농사를 지었다. 쌀농사도 일곱 번, 고추 농사도 일곱 번, 배추 농사도 일곱 번이다. 매년 좋아지고 있다. 오늘이 제일 가난하다. 내일은 오늘보다는 덜 가난하고, 모레는 내일보다도 덜 가난하다. 그 이상의 큰 꿈을 꿀 수 없다. 돌아가는 삶에 만족할 뿐이다.

농촌에서 얻은 가장 큰 건 무엇인가.

고요함이다. 사실 농촌에 처음 도착하면 생각보다 주변이 시끄럽다고 느낀다. 처음 몇 해는 그렇다. 오만 생명이 깃들어 같이 사는 공간이다. 풀벌레 소리, 모깃소리, 날파리 소리, 바람 소리, 식물들이 살아가는 소리 등 엄청 시끄럽다. 그러다 거기에 무뎌지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도시에 딱 가보면 이건 귀가 찢어지는구나 느낀다. 자동차나 빌딩 숲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소리들이 굉장히 시끄럽다. 그리고 다시 농촌에 돌아오면 느낀다. 고요하구나.

육체노동에서 얻은 가장 큰 건 무엇인가.

조화로움이다. 우리가 머릿속으로 그려 놓은 세상과 내 몸이 구현해 내는 세상은 전혀 다르다. 마음은 42.195킬로미터 마라톤도 단박에 뛸 수 있을 것 같은데 몸은 그렇지 않다. 몸을 쓰는 일을 하다 보면 머릿속으로 그렸던 이상에서 허황된 부분을 덜어 낼 수 있다. 욕심을 내려놓아야 힘이 빠진다. 욕심껏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육체노동은 몸과 마음을 조화롭게 만드는 일이다. 결국 농사를 지으면서 가장 많이 배운 것은 욕심을 덜어 내는 일이다. 해가 지기 전 딱 여기까지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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