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을 소개해 달라.
7년 차 농사꾼이다. 토종 씨앗과 자연 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전라북도 완주 너멍굴에서 아내와 딸과 함께 살고 있다. 둘째 출산을 앞두고 있다.
토종 씨앗을 사용하는 자연 농법은 무엇인가.
기계를 쓰지 않고 오로지 몸으로만 하는 농법을 말한다. 옛날 조선 시대 농사꾼들이 쓰던 손 도구만으로 농사를 짓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토종 씨앗은 대를 이어서 채종할 수 있는 씨앗을 말한다. 그 씨앗으로 가족이 먹을 농사도 짓고, 남은 것은 팔기도 한다.
자연 농법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농사를 책으로 배웠다. 이게 좋다더라 저게 나쁘다더라, 책에 있는 내용들을 보며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대학교 농촌 활동에서 사과 농약줄 잡는 일을 하다가 농약 중독에 걸렸다. 그러면서 농약을 쓰지 않는 자연 농법에 대한 생각이 확고해졌다.
어떻게 농사꾼이 돼야겠다 마음먹었나.
농사꾼이라는 장래 희망을 적기 시작한 건 고등학생 때부터였다. 그때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굶어 죽지 않을 일은 무엇일까. 농부는 밥을 생산하는 사람이니까 밥은 안 굶겠구나. 그런 생각이었다.
굶어 죽지 않을 직업을 고민한 이유가 궁금하다.
어머니는 은행원이고 아버지는 공무원이셨다. 중산층 가정이었다. 그런데 IMF가 오니 고꾸라지더라. 힘들게 살다가 어떻게 서울 소재 대학에는 들어갔다. 그리고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일어났다. 세계적으로 경제가 위태롭거나 국가가 시대적인 흐름을 만났을 때, 개인의 삶은 굉장히 흔들린다. 시대에 휘둘리지 않는 직업을 찾고 싶었다.
시대에 휘둘리지 않는 직업이 농부였나.
역사책을 들여다보면,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조선이 망하고 일제가 강점했을 때, 조선 농민들의 생계는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았다. 경제 위기, 전쟁이 와도 농촌에 살면 굶지는 않는다. 그래서 먼저 농촌에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농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농촌에 제일 많은 건 자연이고 땅이다. 사람은 밥을 먹고 산다. 그러니 농사를 지으면 휘둘리지 않는다, 죽지 않는다, 이런 생각이었다.
언제부터 귀농을 준비했나.
군대에 다녀온 후 26살 즈음부터 본격적인 준비를 했다. 그 전까진 흘러가는 대로 대학 시절을 보냈고, 어차피 농사를 지을 생각에 학과 공부도 대충 했다.
본격적인 준비라 함은.
귀농 안내 책자에 3년 치 생활비는 있어야 농사가 망해도 버틸 수 있다고 나와 있었다. 농촌에 사는 지인을 보니 1년에 700만 원씩, 3년 생활비로 2000만 원 정도면 될 것 같았다. 일단 그 돈을 모으는 게 본격적인 준비의 시작이었다.
돈을 모으기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궁금하다.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교수님께서 소개해 주셔서 대학교 박물관에서 일하고, 과외도 하고, 아이들 데리고 역사 탐방하는 일도 했다. 그것만으로 벌이가 부족하니까 치킨집, 호프집 서빙도 하고 건설 현장에서 막일도 했다.
그래서 2000만 원을 모았나.
그렇게 닥치는 대로 하다 보니 벌이가 좀 됐지만 연애하고 친구, 후배들 술 사주느라 돈을 다 써 버렸다. 그렇게 1년을 지내고 나니 농촌에 방 한 칸 구할 보증금만 남았다. 그게 100만 원이었다. 계속 이렇게 지내면 100만 원도 까먹겠다 싶어서 대학을 자퇴하고 농촌으로 갔다.
힘든 상황에서 간 대학이었지 않나. 포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졸업장은 그냥 종이라는 생각이었다. 농사를 짓는 데 대학을 나왔다는 게 어떤 도움이 되겠나. 그냥 시간만 버리는 거였다. 기왕 갈 거 1년이라도 빠르게 가자, 그렇게 농부의 길로 들어섰다.
이상향 아닌 생존
처음 농촌에 도착한 순간을 기억하나.
우선은 가진 게 없었다. 100만 원 든 현금 봉투와 60리터 등산 가방 하나뿐이었다. 애초에 나에게 농촌은 이상향이 아니었다. 생존이었다. 살아남는 게 1순위 목표였다.
살아남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인가.
귀농 1년 차에 완주군 고산면 너멍굴에 들어왔다. 산골이다 보니 집이 없었다. 너멍굴 밖에다 집을 얻으면 밭까지 매일 30~40분 거리를 왔다갔다 해야 했다. 농사는 계속 살펴야 하는 일이다. 밭 근처에 집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옛날 사람들도 다 알아서 짓고 살았는데’라는 생각 하나로 집을 짓기 시작했다. 엔진 톱 하나 사서 산에서 썩은 나무를 주워다가 초가집을 지었다. 그렇게 2년을 버텼다. 그때 진짜 죽을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