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이 우리 삶의 근간이 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플라스틱에 대한 전 세계적인 반란이 일어나고 있다.
플라스틱은 어디에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갑자기 플라스틱을 아주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최근까지만 해도 플라스틱은 온갖 곳에서 익명성을 만끽했다. 우리는 너무 많은 플라스틱에 둘러싸여 있는 나머지 플라스틱을 거의 의식하지 못했다. 자동차와 비행기 부피의 절반이 플라스틱이라는 사실을 알면 놀랄 것이다. 점점 더 많은 의류가 면이나 모직이 아니라 폴리에스테르와 나일론으로 제조되는데, 둘 다 플라스틱이다. 영국에서 매년 생산되는 600억 개의 티백 대부분을 봉인할 때 사용하는 소량의 접착제 또한 플라스틱이다.
플라스틱이 사용된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는 영역인 장난감, 집안 장식품, 포장재 등을 더하면 플라스틱 제국의 지배 범위가 명확해진다. 플라스틱은 현대적 삶에서 다채롭지만 진부한 배경을 이루는 물질이다. 매해 전 세계에서 3억 4000만 톤의 플라스틱 제품이 생산된다. 뉴욕시의 고층 건물 전체를 채우고도 남는 양이다. 인류는 수십 년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플라스틱을 생산해 왔다. 그 양은 1990년대 초반에 처음으로 1억 톤을 넘어섰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최근에서야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플라스틱에 대한 세계적인 반감이 일어났는데, 이 반감은 국경은 물론이고 오래된 정치적 대립도 뛰어넘는다. 2016년 영국 전역에서 미세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자며 그린피스가 올린 청원에 불과 넉 달 동안 36만 5000명이 서명했다. 정부에 제출된 환경 관련 청원 중 가장 큰 규모였다. 미국에서 한국에 이르기까지, 플라스틱 사용에 항의하는 단체들이 그들 말에 따르면 쓸데없이 무절제하게 사용되고 있는 플라스틱 포장재들을 슈퍼마켓 앞에 쌓아 놓았다. 2018년 초에는 성난 소비자들이 감자칩 봉지가 재활용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항의하는 뜻으로 엄청난 수의 감자칩 포장지를 제조사에 반송하는 바람에
우편 업무가 마비되기도 했다. 찰스 왕세자가 플라스틱의 위험성에 대해 연설했고, 배우 킴 카다시안(Kim Kardashian)은 인스타그램에 ‘플라스틱 위기’에 대한 게시물을 올리면서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하지 말자고 촉구했다.
정부 최고위층이 플라스틱 공포에 취한 조치는 자연재해 내지는 공중 보건 위기에 대한 발 빠른 대응과 유사하다. 유엔은 일회용 플라스틱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영국에서는 테레사 메이(Theresa May) 총리가 일회용 플라스틱을 ‘재앙’이라 일컬으면서 2042년까지 일회용 포장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25년짜리 정책을 발표했다. 인도는 같은 조치를 2022년까지 취하겠다고 선언했다.
환경 보호 단체 ‘지구의 벗(Friends of the Earth)’의 활동가 줄리안 커비(Julian Kirby)는 “거의 20년 가까이 활동을 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고 말했다. 지구의 벗은 2016년에야 겨우 플라스틱 문제를 다루는 프로그램에 착수했다. 그린피스도 2015년까지 플라스틱 전담팀을 꾸리지 않았다. 플라스틱을 취재한 기사를 실은 최초의 신문 중 하나인 《데일리 메일(Daily Mail)》의 한 기자는 다른 어떤 환경 문제보다 플라스틱에 대한 메일을 더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기후 변화 메일을 매번 능가한다니까요.”
그러던 중 다큐멘터리 〈블루 플래닛(Blue Planet) 2〉가 등장한다. 2017년 12월에 방송된 마지막 화에서는 플라스틱이 해양 생물에 끼친 영향을 6분 동안 집중적으로 보여 줬다. 희망을 잃은 채 플라스틱 그물에 엉켜 있는 거북이, 배 속에 가득 찬 플라스틱 조각 때문에 죽은 앨버트로스 같은 것들을 말이다. “그 장면이 시리즈 전체에서 가장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BBC의 방송 책임자 톰 맥도널드가 말했다. “사람들은 마지막 화에 대해 말만 하고 끝내길 원치 않았어요. 사실 보통은 거기서 끝인데 말이죠. 시청자들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 왔어요.” 그 뒤 며칠 동안 정치인들은 방송을 보고 행동해야겠다고 느낀 유권자들이 보낸 숱한 전화와 이메일을 받았다. 사람들은 여론이 플라스틱에 등을 돌린 결정적인 이유를 설명할 때 ‘〈블루 플래닛 2〉 효과’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일로 인해, 30년 전 산성비와 프레온 가스에 맞서 성공적인 투쟁을 벌였던 이후 처음으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종류의 환경적인 승리가 목전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분위기가 생겨났다. 거대한 대중의 분노는 우리의 집단생활에서 단 하나의 물질을 제거하도록 권력자들을 압박하고 있다. 이미 확언한 대형 공약들로 미루어 보건대 전망은 밝아 보인다.
그러나 플라스틱을 제거한다는 것은 플라스틱 포장재를 쓰지 않는 제품을 진열한 구역이 슈퍼마켓에 생기고 펍에서 퍼석거리는 종이 빨대를 쓴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플라스틱이 어디에나 사용되는 까닭은 그것이 대체한 천연 물질보다 품질이 좋아서가 아니라 가볍고 저렴하기 때문이다. 사실 정말로 저렴한 덕에 버릴 때도 정당화하기가 쉬웠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편했고, 기업들은 고객이 청량음료나 샌드위치를 살 때마다 새 플라스틱 포장 용기도 같이 파는 셈이었으니 행복했다. 강철이 건축의 지평을 넓힌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플라스틱은 이제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저렴한 일회용 문화를 가능하게 해줬다. 플라스틱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느 정도는 소비주의 자체를 수용하는 것이다. 이제 한 인간의 생애 정도의 시간 동안 우리 삶의 방식이 지구를 얼마나 급진적으로 재편해 왔는지 깨닫고, 그 변화가 너무 과한 건 아닌지 물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플라스틱을 잡동사니 정도로 간주하곤 했다. 성가신 것이긴 해도 위협은 아니었다.
반(反)플라스틱 운동의 가장 놀라운 점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2015년의 세상으로 돌아가 봐도, 사람들은 플라스틱에 대해 딱히 분노하지 않았다. 우리가 현재 플라스틱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 당시에도 대부분 알려져 있었는데도 말이다. 3년 전만 해도 플라스틱은 기후 변화, 멸종 위기종, 아니면 항생제 내성 등 여러 문제 중 하나에 불과했다. 다들 플라스틱이 나쁘다는 데는 동의했지만 그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는 사람은 드물었다.
과학자들의 노력이 부족해서는 아니었다. 플라스틱을 반대하는 주장은 거의 30년간 차곡차곡 쌓여 왔다. 1990년대 초 연구자들은 해양 쓰레기의 60~80퍼센트가 미생물이 분해할 수 없는 플라스틱이며, 해변과 항구에 밀려들어 오는 플라스틱의 양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던 중 플라스틱이 해류 사이의 무풍 수역에 퇴적되면서 해양학자 커티스 에비스메이어(Curtis Ebbesmeyer)가 ‘거대한 쓰레기 지역’이라 부르는 영역이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쓰레기 지역 중 가장 큰 곳은 ― 에비스메이어는 이런 곳이 총 여덟 군데라고 추산한다 ― 프랑스 면적의 세 배에 달하며 7만 9000톤의 쓰레기가 모여 있다.
2004년 플리머스 대학의 해양학자 리처드 톰슨(Richard Thompson)이 커다란 플라스틱이 부서지면서 생성되거나 상품에 사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제조된 수억 개의 조그만 플라스틱 조각을 일컫기 위해 ‘미세 플라스틱(microplastic)’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면서 문제의 심각성은 훨씬 더 분명해졌다. 전 세계의 연구자들은 이 미세 플라스틱이 아주 작은 크릴새우부터 참치처럼 커다란 생선에 이르기까지 유기체의 내장 기관에 어떻게 침투하는지 분석하기 시작했다. 2015년 조지아 대학의 환경공학자 제나 잼벡(Jenna Jambeck)이 이끄는 연구팀은 매년 480~1270만 톤의 플라스틱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고 있으며, 2025년경에는 그 규모가 두 배에 달하리라 추산했다.
플라스틱 문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심각했고 점점 더 심각해졌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끌기는 어려웠다. 가끔씩 플라스틱에 대한 놀라운 기사가 매체에 실려 대중의 흥미를 일으켰지만 ― 쓰레기 지역 얘기는 매체의 단골 기삿감이었고, 넘쳐나는 쓰레기 처리장이나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배에 실어 외국으로 보낸다는 내용의 기사가 종종 새로운 두려움을 야기했다 ― 반응이 요즘 같지는 않았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영향력 있는 산업 생태학자 롤랜드 가이어(Roland Geyer)가 2006년과 2016년 사이의 변화에 대해 증언한 바에 따르면, 10년 전에는 플라스틱에 관해 열 건도 안 되는 인터뷰를 했는데 최근 2년 동안에는 인터뷰 요청이 200건 이상 들어왔다고 한다.
이런 변화가 정확히 왜 일어났는지는 커다란 논쟁거리다. 가장 그럴싸한 대답이자 내가 이야기를 나눠 본 과학자와 환경 운동가들의 잠정적인 이론은 플라스틱과 관련한 과학이 임계치에 도달했다거나 우리 머릿속이 우리가 만든 쓰레기(설령 그것이 중요한 것이라 해도)에 질식하는 사랑스러운 바다 생물의 이미지로 들어차게 돼서가 아니다. 우리가 플라스틱을 생각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플라스틱을 잡동사니 정도로 간주하곤 했다. 성가신 것이긴 해도 위협은 아니었다. 하지만 플라스틱이 많은 사람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만연해 있고 훨씬 더 사악한 존재라는 인식이 최근 전 세계적으로 퍼지면서 생각은 달라졌다.
사고의 전환은 마이크로비드(microbead), 즉 1990년대 중반에 제조사들이 화장품과 세제에 거칠거칠한 가루를 추가하고자 쏟아부은 조그만 연마용 플라스틱 알갱이에 대한 대중의 반감과 더불어 시작되었다[거의 대부분의 플라스틱 제품에는 그보다 먼저 사용된, 미생물로 분해할 수 있는 천연 재료가 있다. 플라스틱 마이크로비드는 잘게 빻은 낱알이나 부석(浮石)을 대체한 재료다]. 2010년 과학자들은 해양 생물에 가해질 잠재적 위협에 경종을 울리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마이크로비드가 존슨앤드존슨의 여드름 제거용 페이스 스크럽에서부터 바디샵처럼 친환경인 줄 알았던 브랜드에 이르기까지 수천 종의 제품에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영국 그린피스의 플라스틱 캠페인 부서장인 윌 맥컬럼(Will McCallum)에 따르면 대중이 플라스틱에 대해 등을 돌린 결정적인 계기는 마이크로비드가 수백만 개의 욕실 배수관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마이크로비드는 디자인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는데, 실은 디자인 결함이었던 거죠. 사람들이 묻게 되었거든요.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라고요.” 2015년 미국 의회는 마이크로비드가 함유된 화장품에 대한 제한적 금지 조치를 검토했고, 양당의 고른 지지 속에 통과되었다. “대중의 인식에서 그 이슈는 거의 모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가 광범위한 충격으로까지 번지게 되었죠.” 영국 하원의원 메리 크레이(Mary Creagh)의 말이다. 그녀가 위원장이었던
환경 청문회는 2016년에 마이크로비드를 조사했고, 결국 그 제품의 생산과 판매에 대한 포괄적 금지를 이끌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