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일본이 한국에 무역 보복을 하고 있을 즈음, 필자는 안식년을 맞아 일본의 나고야대학 도서관에서 평소 읽고 싶던 일본 서적들을 뒤적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당시엔 유학 시절 함께 공부했던 친구 중 귀국하지 않고 일본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몇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종종 있었는데, 그때마다 약간의 거북함을 느꼈다. 그들은 “아직도 한국이 일본에 비해 기술력이 뒤처져 있고 앞으로도 일본을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으며, 그런 점에서 이번 수출 규제는 한국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 줬다”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은 일본에 뒤처져 있는가? 각종 언론은 한국을 여전히 일본을 캐치 업(catch up)하는 데 급급하던 80~90년대 시절에 묶어 두고는 풀어 주지 않는다. 이제는 일본을 부러워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거나, 혹은 변화를 ‘캐치 업’할 만한 ‘감’이 떨어진 탓일 수도 있다.
역사는 일견 심리학과 같아서 해석에 따라 자신감과 자존감이 달라지고, 향후 경제적·외교적 성과에서도 그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의 무역 국가인 동시에 OECD와 G20 회원국이며, 전후 해외 원조를 받는 수혜국에서 이제는 원조 공여국으로 바뀐 자타공인 선진국이다. 게다가 최근 케이팝을 비롯한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서구가 독점하던 클래식과 스포츠 분야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그러니 이제는 일본에 대한 패배주의와 비관론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다. 세계 어디서도 한국을 일본보다 뒤처진 나라라고 손가락질하지 않는데, 오히려 우리는 툭하면 일본과 각종 지표를 비교해 등수가 올라가거나 내려갈 때마다 일희일비하는 모습을 보인다. 올림픽 은메달을 딴 선수가 동메달을 딴 선수보다 불행하다는 말처럼, 우리도 혹시나 일본 앞에서 스스로를 얕잡아 보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필자의 이야기가 섣부른 결론이라고. 출산율은 전 세계 최하에 자살율은 OECD 국가 1위, 노벨상을 과학 분야에서만 25개나 받은 일본과 달리 평화상 외에는 받지 못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고. 여기에 더하여 일본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과의 격차가 아직도 20년 가까이 벌어져 있다는 이야기도 한일 관계를 논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다. 그래서 한국이 2019년 7월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야심차게 내놓은 국산화 정책을 두고 호들갑 떠는 것은, 바닷물에 빗물 몇 방울 떨어진 것에 화들짝 놀라는 것처럼 그저 우리의 위시풀 씽킹(wishful thinking)일 뿐이라고.
부산 토박이들이 관부선에 올라타 시모노세키와 후쿠오카에 가서 조지루시 밥솥을 사오던 시대가 불과 20여 년 전이다. 한국은 일본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고들 박제된 문장 한마디씩 던지던 시절이었다. 왜? 일본은 우리와 격차가 너무 벌어진 선진국이었고 우리는 막 가난을 벗어난 신흥 국가였으니⋯. 그렇지만 결국 쿠쿠밥솥이 조지루시를 넘어서지 않았나. 가전제품과 마찬가지로 소부장 산업을 비롯한 여러 산업 분야에서도 조만간 그런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100여 년이 넘는 과학의 시대를 거쳐 온 일본처럼, 우리도 기술력에 있어 시간의 축적이 필요할 뿐이다.
사람이 다수의 그룹에 속할 때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역사적 담론에서도 마찬가지다. 특정 지식인층이 내린 해석을 추종하는 단체와 세력이 불어날수록 대중은 그에 편승하는 경향을 보인다. 반대 의견을 내는 자는 곧 이단아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이 책은 ‘경제학은 심리학이다’라는 명제를 전제로, 일본으로부터 쌓아 온 한국적 패배감의 잔여물을 씻어 내는 데 방점을 두고자 한다. 그 작업의 첫발로 한국과 일본이 동등하거나 비슷한 위치에 서 있는 산업군과 사회 현상을 중심으로 비교했다. 독도 문제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같이 오랜 갈등 속에 놓여 왔고, 앞으로도 관점에 따라 끝없는 다툼이 일어날 수 있는 주제는 잠시 제쳐 두고 말이다.
혹자는 본고가 너무 가볍거나 편향됐다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을 너무 심각하게 읽지 말라. 고급 양식집에서 나비넥타이를 매고 토론할 내용이 아니라 우동이나 칼국수를 먹으며 양비론을 논할 때 살펴볼 만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반일을 외치거나 애국심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경제 성장에 대한 전문가들의 거친 생각과, 그걸 바라보는 일본 정치인들의 불안한 눈빛, 그걸 지켜보는 일본 국민들이 서서히 많아지고 있음을 주시하고자 한다. 흘러간 유행가 제목처럼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일본에 대한 역사적 상흔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인들에게, 지나간 우리의 역사를 이제는 현시점에서 객관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