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는 누구나 쉬었다 갈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휴식의 공간이며, 누군가에게는 만남의 장이 되기도 한다. 그만큼 벤치는 공공장소에서 다양한 역할을 담당한다. 아모레퍼시픽과 같이 단순한 재정 기부 혹은 분리수거가 아니라 환경에 대한 영향을 고려해 전에 없던 소재를 개발하고, 그 결과물을 공공재로 기부하는 것은 그 기업만이 사회에 줄 수 있는 가치다. 현재 이 벤치는 서울 종로구 창덕공원 및 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또한 포스코와의 협업으로 플라스틱 공병을 활용해 친환경 소재인 슬래스틱(Slastic)을 개발했다. 슬래스틱은 제철소의 부산물인 슬래그(slag)와 폐플라스틱(plastic)을 융합한 소재로, 이태원 소재 공중화장실 ‘아리따운 화장방’을 만들 때 외장 마감재로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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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표 플로깅 캠페인
지구를 위한 노력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 MZ세대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기후 위기와 같은 의제에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인플루언서가 시작한 챌린지(challenge)를 따라하며 긍정적인 바람을 일으키고, 해시태그로 함께 하고 싶은 활동에 사람들을 먼저 불러 모으기도 한다. 특히 혼자보단 온라인 플랫폼에서 커뮤니티를 만들어 사람들과 함께 활동을 하고 친목을 도모한다. 또 영어 ‘갓(God)’과 한자 ‘생(生)’을 합쳐 만든 소위 ‘갓생’이란 말로 자신이 정한 바른 생활 습관을 통해 자신을 돌보는 데 힘을 쓴다. MZ세대가 일하기 위해 운동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약간 슬프기도 하지만 이처럼 자신을 가꿔 나가는 바른 습관에서 활력을 얻는 것도 이 세대의 한 특징이다.
커뮤니티 문화와 바른 습관, 두 가지 속성이 합쳐진 여러 긍정적인 사회 활동이 늘고 있다. 일례로 스웨덴에서 시작한 플로깅(plogging)은 ‘줍다’라는 스웨덴 단어 ‘플로카 우프(plocka upp)’와 영단어 ‘조깅(jogging)’의 합성어로, 조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운동이다. 우리나라에선 ‘줍다’와 ‘조깅’을 결합해 ‘줍깅’이라는 재밌는 용어로 불리기도 한다. 건강을 챙기면서도 쓰레기를 주워 환경을 지킨다는 실천적 의미를 지니는 이 행위는 개인 단위의 작은 환경 보호 운동이다. 이 트렌드를 포착해 자사의 브랜드 가치와 접목시키는 회사들이 늘고 있으며, 밀가루 브랜드 곰표도 그중 하나다. 곰표는 곰표맥주와 같은 트렌디한 이미지의 밀 관련 상품을 제작하는 것뿐만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서도 세대의 취향을 저격하는 상품을 기획하고 소비자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행사를 마련한다. 최근 MZ세대가 등산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포착한 곰표는 2021년 11월 1일, ‘등산 플로깅’이라는 특이한 행사를 기획했다. 곰표는 소래산 입구에서 ‘곰표 포대’를 사람들에게 나눠 준 뒤 사람들이 등산하는 동안 쓰레기를 담아 정상에 오르면 품절된 곰표 굿즈를 선물하는 이벤트를 연 것이다.
20분이면 오를 수 있는 소래산 정상에 임시 설치된 곰표 플로깅 하우스가 오픈하자마자, 1시간 만에 준비한 굿즈는 품절됐고 등산로에 보이던 쓰레기도 모두 사라졌다. MZ세대에 퍼진 등산 문화와 화제성 있는 ‘곰표 굿즈’라는 아이템이 한몫한 것이다. 특이하게도 이 행사는 사전 홍보를 통해 참가자를 모으지 않았다. 행사 당일 설치된 부스 앞을 지나던 소래산 등산객을 대상으로 벌인 이벤트였다. 이전까지 플로깅 행사는 주로 시내 혹은 강변에서 이뤄진 반면, 곰표의 캠페인이 SNS에서 핫했던 이유는 바로 ‘자연스러움’ 때문이었다.
[7]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고, 불필요한 공정을 없애는 등 기업 차원의 임팩트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거기에 더해서 시민이 진심으로 공감하고,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활동들을 제시할 때 기업의 공적 가치는 더욱 커질 것이다.
지금까지 기업의 사회 공헌 활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많았다. 단순 기부 혹은 일부 집단을 위한 좁은 지원이 대부분이라 기업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알기란 쉽지 않았다. 반면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모레퍼시픽, 곰표 모두 기타 산업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했다. 이와 같이 기업은 환경과 관련된 공적 활동을 더욱 확대할 것이고, 그중에서도 소비자와의 접점을 정확히 포착하는 브랜드 액티비즘을 펼치는 기업의 파급력이 커질 것이다.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과정
누군가는 ‘공공디자인’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거리에 없던 공원을 만들고, 혁신적인 건축물을 짓는 등 좁은 영역에 한정해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많은 기업이 자사의 비즈니스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적으로 뛰어들며, 유무형의 공공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기업은 정부나 기관이 시스템적 한계로 해결하지 못했던 사회 문제들에 새로운 흐름을 제시하며 건강한 사회를 향한 다양한 역할을 자처한다.
카카오임팩트 100up 프로젝트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보이는 부분의 문제를 해결했는데 근본적인 문제가 다른 곳에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방에 물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단순히 그 밑에 양동이만 받쳐 두고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도모하고자 지난 2019년 사회 문제 정의 협업 플랫폼 ‘카카오임팩트 100up’이 출범했다. 100up은 문제 정의를 통해 다양한 사회적 문제의 복잡함을 정확히 인식하고, 각 문제를 하나씩 풀어가는 솔루션 프로젝트였다. 문제 정의 지원 베타 프로젝트는 2022년 4월 종료됐으나, 청년 실업·가정 폭력·저출산·고령화·디지털 성범죄·남녀 불평등 등 복잡한 사회 문제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남겼다.
“내가 정의하려고 하는 이 문제가 나와 어떻게 연결될까?”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카카오는 자사의 기술과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공감 기반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잘 된 문제 정의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 함께 해결하려는 동료들과의 소통,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공감, 솔루션의 방법적 완성도를 높인다.” 프로젝트의 참가자 서현진 씨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모든 사람이 함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사회다. 사회 문제들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광범위하고 모호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당사자들이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해 나가야 한다. 모두가 해결자가 돼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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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100up 프로젝트는 이처럼 사회 문제의 이해관계자 스스로가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그 질문이 사소한 것일지라도 나와 사회 문제 사이에 연결 지점이 있어야 무엇이 문제인지를 정의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신한카드 을지로 셔터갤러리
소위 ‘힙지로’로 불리는 을지로3가엔 철물, 목재, 공구 업체와 노포가 경계 없이 섞여 있는 골목들이 즐비하다. 낮에는 오토바이, 지게차, 트럭들이 지나다니고 사람들의 활기가 넘친다. 밤에는 그 길거리가 노포로 바뀐다. 예전부터 이곳은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말이 돌 정도로 다양한 업체와 장인, 기술자들이 공존하고 있다. 그런데 밤에 상점들이 업무를 마치고 셔터를 내리면 이 공구 거리는 어둡고 을씨년스러운 풍경이 된다. 그 스산한 골목에서 노포들은 저녁 장사를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