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하베흐세는 한국어로 ‘횡단’을 의미한다. 이 구조물은 다리 뒤로 펼쳐진 산의 형상을 따 만든 것으로, 보행자들은 구조물을 오르내리며 주변 풍경을 역동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푸르른 하늘과 진녹색의 강 사이에 생기를 더하는 빨간 벤치에 앉아 다리 위에 머무르는 경험도 할 수 있다. 꺄바농은 다리 한가운데에 작은 쉼터 역할을 하는 하이브리드 공간을 만들어 평범한 다리 횡단을 하는 보행자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물해 줬다. 현재 트하베흐세는 루앙시의 공공 예술 작품으로 등록돼 있다.
땅을 디자인하다
알록달록 유도선
자칫 방향을 헷갈리기 쉬운 고속도로 갈림길에서 알록달록한 안내선을 만나면 너무나 반갑다. 내비게이션의 도움에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분홍색, 초록색 유도선만 따라가면 길을 잃을 걱정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바로 고속도로 위
노면 색깔 유도선(Safety Lane)이다. 소위 ‘길치의 축복’이라고도 불리는 이 노면 색깔 유도선은 고속도로를 넘어 복잡한 도심 도로에도 모두 적용되고 있다. 이는 다른 나라의 전례가 없는 한국 최초의 배려 침술로, 대표적인 고속도로 공공디자인으로서 전 세계에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다.
노면 색깔 유도선의 시작은 고속도로 갈림길 사고를 줄이기 위한 한국도로공사 윤석덕 설계차장의 고민에서 출발했다. 고속도로에 칠할 수 있는 색은 법적 제한이 있다. 중앙 분리대는 노란색, 일반 차선은 흰색, 하이패스는 청색, 그리고 규제는 적색. 이 네 가지 색을 벗어난 색상을 사용하면 도로교통법 위반에 해당한다. 그러나 규제의 차원을 넘어 윤석덕 차장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을 기리고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생각으로 실현 가능한 해결책을 고민했다. 수소문한 결과, 2012년 5월 인천지방경찰청의 교통 제한 승인과 협조로 분홍색 선과 초록색 선이 탄생했다. 그전까지는 안산 분기점에서 연간 30여 건의 사고가 발생했는데, 노면 색깔 유도선을 그린 이후 발생한 사고는 연간 3건으로 대폭 감소했다. 이 효과를 인지한 한국도로공사는 2014년 관련규정을 수정해 색깔 유도선을 제도화했다. 그 결과 2017년 색깔 유도선을 설치한 전국 76개의 고속도로를 분석한 결과 교차로 교통사고는 27퍼센트 줄었다. 한국도로공사의 배려 침술이, 시민 안전을 증진하는 드라마틱한 효과를 낳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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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서 비추는 신호등
대학생 시절 나는 학교 15층 높이에서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축구하는 모습을 내려다본 적이 있다. 마침 한 학생이 골을 넣었는데, 멀리서 본 탓에 그 장면을 잠깐 놓쳤다. 그 순간 나는 TV를 보고 있다고 착각해 잠시 확대 화면이 재생되길 기다렸다.
이처럼 우리는 현실과 가상을 혼동하며 살기도 한다.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 가속화되며 이런 현상은 더욱 빈번해지고 있다. 스몸비(Smombie)란 말도 생겼다. 스마트폰(smartphone)과 좀비(zombie)의 합성어로, 보행 중 스마트폰을 사용해 주변 인식력이 약화돼 누군가와 부딪치거나 넘어지는 사고가 흔히 일어난 탓에 생겨난 말이다.
교통안전공단의 분석 결과 스마트폰을 보며 길을 걸을 때 우리의 시야 폭은 56퍼센트 감소하고, 전방 주시율은 85퍼센트가 떨어진다. 또한 보행자가 일반적으로 소리를 듣고 인지하는 거리는 14.4미터이지만 이는 문자 메시지를 보낼 때는 7.2미터, 음악을 들을 때는 5.5미터로 확 줄어든다.
[4] 거리에서 음악을 듣거나 스마트 기기를 보는 행위는 우리에게 일상적 위험으로 자리 잡았고, 특히 차도를 건너는 횡단보도에서는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독일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시에 살던 한 청년이 헤드폰을 착용하고 길을 걷다 다가오는 트램에 치이는 사고를 당하며 사회적인 문제로 부각됐다. 이후 2016년, 아우크스부르크시는 이러한 사고를 막고자 바닥에 고양이 눈 모양의 신호등을 설치했다. 트램이 다가올 때면 이 고양이 눈 모양의 신호등이 바닥에서 빨간색으로 깜박이는 것이다.
지금 많은 나라들이 설치한 선형 바닥 신호등이 최초로 만들어진 것은 2017년 네델란드 보데그라벤(Bodegraven)시에서였다.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며 스마트폰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가도, 바닥 LED 조명을 통해 신호가 바뀌었다는 것을 인지하게 하는 배려 침술이다. 싱가포르에서도 지난 2017년 바닥 신호등을 도입했고, 우리나라 또한 2018년 시범 운영을 거쳐 전국에 바닥 LED 신호등을 설치하고 있다. 바닥 신호등은 스몸비족에게 보다 명확히 신호를 알릴 뿐만 아니라, 일반 보행자들 입장에서 반대편에 위치한 신호등이 커다란 물체에 가려져 보기 어려운 경우에도 유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운전자 입장에서도 비가 오거나 어두운 날, 차도와 횡단보도를 명확히 구별하게 해준다는 장점이 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조사에 따르면 2018년 서울, 용인, 수원 등 6개 지역에 바닥형 신호등을 설치한 이후 교통 신호 준수율은 90퍼센트대로 급증했다.
괄호라인 프로젝트
버스 정류장에서 시민들이 질서 있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을 종종 발견한다. 그런데 이 질서정연한 모습이 오히려 다른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인도의 수직 방향으로 길게 서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누군가의 통행로를 막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자신들을 툭 건드리고 지나갈 때 기분이 상하기도 한다. 비슷한 상황은 출퇴근 시간 지하철 승강장에서도 늘 발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