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아마존의 기술이 연일 화제다. 아마존이 발명한 ‘대시 버튼(dash button)’은 누르기만 하면 화장지, 우유, 세제 등 200여 종의 제품을 자동 주문하고 배송 받을 수 있는 기기다. 물류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한 아마존은 드론 배송, 오프라인 식료품 무인 매장
[4] 등을 바탕으로 플랫폼을 확장하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아마존은 내 삶에서 점점 더 많은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Amazon took on ever-greater role in my life).”는 말처럼, 많은 사람들이 아마존을 통해 플랫폼에 익숙해지고 있다. 한국이 IT 산업의 선발 주자라고 하지만 이제는 후발 주자들과 앞서가는 글로벌 혁신 기업들 사이에서 정체되어 있다.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배우고 사업에 적용해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도태되지 않을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의미는 다양해서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들다. 그러나 ①파괴적 혁신
[5] ②예측 불가능성 ③소프트웨어, 소프트파워, 컴퓨팅 사고력
[6] ④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과 리더십 ⑤초연결사회(hyper-connected society)
[7] 등 다섯 가지 특징이 핵심이다. 분야별로는 경제, 인구, 무역, 교육, 시장, 기술 등에서 세계와 한국의 상황을 비교하면 현재 한국이 4차 산업혁명에 어느 정도 준비되어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중국 현장의 변화를 읽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다양한 글로벌 기업의 본사가 중국으로 옮겨갈 만큼 중국의 경제가 부상하고 있다. 인구가 많아 내수 시장이 활성화된 중국에서는 매달 수백만 개의 새로운 회사가 생겨나고 있으며, 정부도 이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신생 회사가 내수 시장만으로 글로벌 규모로 성장하기 어렵다. 다행인 것은 4차 산업혁명이 시장의 개념을 바꾸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케팅 시장을 마켓 1.0부터 마켓 3.0까지 정의한 것으로 유명한 경제 석학 필립 코틀러(Philip Kotler)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생존 방법으로 마켓 4.0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마켓 4.0에서는 소비자와 공급자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소비자 커뮤니티의 영향력이 급증한다. 시장은 소비자가 아이디어를 내놓는 장이 되고, 기업은 시장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채택한다.
시장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4차 산업혁명의 동력이자 핵심인 소프트웨어에 대한 인식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P&G는 성공적으로 평가받던 R&D모델을 C&D(Connect&Development) 모델로 바꿨다. C&D 모델은 내부에서만 개발을 진행하던 폐쇄형 R&D를 넘어 내부와 외부의 자원을 연결해 제품을 만들어 내는 개방형 R&D다. 대중과 소통하는 모델을 채택하면서 P&G는 고객 중심의 제품 혁신에 성공했다. 제너럴 일렉트릭(GE)의 변화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GE는 120년 전통의 제조업 회사지만, 이제는 소프트웨어 회사로 변화하고 있다. GE에서 일하는 수천 명의 개발자는 제품에 센서를 붙여 데이터를 얻고 분석한 정보를 바탕으로 인공지능을 활용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GE는 자사의 항공기 제트 엔진에 센서를 부착해 고장 전에 미리 결함을 추적하고 발견할 수 있도록 했다. 항공사는 센서가 부착된 GE의 제트 엔진을 사용해 예방 정비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고장으로 인한 손실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GE는 2016년 블룸버그가 발표한 세계 10대 기업에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포함되었다. 2020년까지 세계 10위권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GE의 선언은 1년 만에 현실이 되었다.
교육의 혁신도 필요하다. 이미 여러 나라가 4차 산업혁명에 맞는 교육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소프트웨어 기반 산업을 육성하려면 학생들이 어릴 때부터 관련 교육을 받도록 해야 한다. 최근 소프트웨어 교육으로 코딩 수업이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코딩을 하는 방법이 아니라 코딩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소프트웨어 교육을 지원하려는 ‘소프트웨어 교육 지원 법안’을 발의했지만 여전히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의무 교육에서 소프트웨어를 가르치고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를 마련해 아이들이 컴퓨팅 사고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급변하는 산업 현장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2017년 초, 캐나다 워털루 대학교의 총장이 국회에서 창업 교육과 관련된 강연을 했다. 워털루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정규 과정으로 편성된 인턴십을 통해 기업에서 일하며 기술과 업무에 대한 맞춤형 교육을 받는다. 실무 교육을 집중적으로 실시하는 코업(co-op) 프로그램을 이수한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24개월의 업무 경력을 쌓을 수 있다. 헤닝 카거만(Henning Kagermann) 독일 공학한림원장은 한국의 교육 과정을 모듈식으로 구성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8] 모듈식 교육은 기술을 세분화한 후, 실무에 필요한 분야를 선택해 듣도록 하는 수업 방식이다. 독일 공학한림원은 2010~2011년 전기차 연구 당시 기존 자동차 생산 과정에 전기차와 관련된 모듈 교육 두세 가지를 추가해 불과 1~2년 만에 관련 인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기존의 교육과 사고방식을 벗어나 코업 프로그램과 모듈식 수업 등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도입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내비게이션이 필요하다
앞으로 더 많은 데이터를 가진 기업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승자 독식의 시대가 올 것이다. 중국 기업 샤오미는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애플의 카피캣이라는 비웃음을 샀다. 하지만 그 카피 마켓에서 경쟁력을 발휘해 막대한 데이터를 보유한 소프트웨어 회사로 거듭났다. 현재 샤오미는 체중계, 스마트밴드 등을 통해 자사 제품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데이터는 앞으로 샤오미의 가장 큰 무기가 될 것이다.
구글의 경쟁력도 데이터에서 나온다. 미래에는 구글이 지구를 구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구글은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태양 발전기가 설치된 지붕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미래에 에너지가 고갈된다면 우리는 구글을 통해서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데이터를 갖춘 기업은 플랫폼 산업에 뛰어든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만 있으면 살 수 있다고 한다. 중국이라면 바이두와 알리바바, 텐센트일 것이다. 전 세계에서 플랫폼 업체가 시장을 독식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는 아직 두드러진 플랫폼 업체가 보이지 않는다.
2016년 세계경제포럼(WEF)은 한국의 4차 산업혁명 준비 지수를 139개국 중 25위로 발표했다. 한국의 경제 규모나 영향력을 생각했을 때 상당히 낮은 순위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법 제도가 63위, 빅데이터 활용도는 56위였다. ICT 강국임에도 4차 산업혁명에 제동을 거는 규제가 많고 데이터를 활용하는 방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반면, 한국과 같은 제조업 중심 경제인 독일은 사물인터넷(IoT)을 통해 생산 기기와 생산품 간의 정보 교환이 가능한 제조업의 완전 자동 생산 체제를 구축하고, 전체 생산 과정을 최적화하는 인더스트리 4.0(industry 4.0)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9]
인더스트리 4.0이 독일 산업 전반에 적용되면서 기대 이상의 효과를 보이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프랭크 필러(Frank Piller) 박사는 독일 RWTH 아헨공과대학(Rheinisch-Westfälische Technische Hochschule Aachen) 경영학 교수로, 특히 기술경영학(Technology and Innovation Management)에 관심이 많다. 인더스트리 4.0을 연구하는 세계적인 석학에게 한국이 4차 산업혁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방안을 듣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4차 산업혁명 시대로 나아갈 내비게이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