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의 등장
제품이 아닌 서비스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시대가 왔다. 콘텐츠 업계에선 음원과 영상을 제품이 아닌 일정 기간 제공하는 서비스로 취급한다. 채용의 모든 과정을 기업형 서비스로 제공하는 채용 솔루션 플랫폼들도 나오고 있다. 프로그램 혹은 라이선스 단건 구매가 아닌, 내가 이용한 만큼의 비용을 지불한다. 이처럼 이제는 분야를 막론하고 ‘모든 것을 서비스로 사고하는’ XaaS(Anything as a Service)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모빌리티 산업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MaaS’, ‘LaaS’, ‘TaaS’ 개념을 들어봤겠지만 이를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우선 ‘A as a Service(이하 aaS)’는 A라는 제품을 고객에게 제공할 때 A를 제품 이전에 서비스로 생각한다는 개념이다. 예컨대 카카오 T가 벤티로 택시 정기 예약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이는 VaaS(Venti as a Service)라 부를 수 있다.
초기 aaS 개념은 IT 산업에서 출발했다. 과거엔 메모리, 네트워크, 미들웨어(middleware) 등 각종 하드웨어부터 윈도우 체제, 데이터베이스, 애플리케이션 등의 소프트웨어까지 직접 설치해야 했다. 그러나 클라우드의 등장으로 직접 설치 방식의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는 확장성과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퍼졌다. 클라우드 서비스가 보편화되며 이제는 네트워크에 접속할 하드웨어만 필요하게 됐고, 명령의 실행과 제어 같은 연산 작업도 모두 서버에서 처리된다. 결국 현 IT 시스템은 사용자가 정보값을 한 번 입력하면 이후 최종 결과값만 수신하는 간편한 구조로 바뀌었다.
다양한 형태의 클라우드 서비스가 나오며 세부적인 기능을 구분하고자 IaaS, PaaS, SaaS라는 용어가 함께 등장했다. 각각 서비스로서의 인프라(Infrastructure), 플랫폼(Platform), 소프트웨어(Software)를 지칭한다. 인프라는 고객이 원하는 하드웨어를, 플랫폼은 하드웨어와 더불어 다양한 앱을 구동할 수 있는 중간 소프트웨어를, 소프트웨어는 고객이 직접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를 뜻한다. 여기서 소프트웨어는 이메일이나 결제 등과 같이 사용자에게 필요한 모든 완결된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즉, IT 산업에서 aaS는 사용자가 필요한 자원 혹은 기능을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만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MaaS, LaaS, TaaS
상술한 인프라, 플랫폼, 소프트웨어 개념이 모빌리티에 적용되며 MaaS, LaaS, TaaS가 탄생했다. MaaS는 ‘사람’, LaaS는 ‘사물’, TaaS는 사람과 사물을 포함해 이동 수단의 ‘생태계’에 관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즉 서비스로서의 모빌리티는 1) 적절한 제품 및 서비스를 2) 원하는 시간에 3) 원하는 장소에서 4) 원하는 기간 동안 이용하는 것이다.
우선 MaaS(Mobility as a Service)란 ‘사람’을 이동시키는 기차, 버스 등 대중교통을 비롯해 택시나 공유 차량 등 다양한 디바이스를 하나의 서비스로 통합하는 것이다. 목적지까지 가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이동 수단에 대한 요금 결제 및 예약까지 심리스하게 제공한다. 예컨대 핀란드 헬싱키는 윔(Whim)이라는 앱을 통해 주민들이 도시 내에서 모든 종류의 대중교통 및 개인 교통 수단 경로를 계획하고 비용을 지불할 수 있게 했다. 핵심은 환승 시간 계산, 교통편 예약 등으로 대기 시간을 단축해 심리스한 이동 경험을 주는 것이다. 사용자는 목적지를 입력하고, 선호하는 교통수단을 선택한다. 여러 교통수단이 필요할 경우 트램, 택시, 버스, 오토바이, 렌터카, 공공 자전거까지 개별 결제 혹은 정액제로 무제한 조합할 수 있다.
LaaS(Logistics as a Service)는 ‘물건’의 이동에 초점을 맞춘다. 화물 운송 중개, 음식 배달, 택배, 퀵 서비스 등 이동하는 물건이나 이동 수단에 따라 LaaS에 속하기도 한다. 최적 배송 경로나 위치 정보를 제공하는 TMS(Transportation Management System)와 같은 솔루션도 해당된다. 예를 들어 티맵모빌리티는 ‘TMAP TMS’를 통해 물건 이동에 필요한 배송 및 현장 방문 계획을 자동으로 최적화한다.
TaaS(Transportation as a Service)는 사람과 물건의 ‘이동 수단’을 서비스화한 것이다. 수송 전반을 서비스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PBV(Purpose Built Vehicle)가 대표적이다. PBV는 고객의 요구에 따라 저비용으로 제공하는 친환경 다목적 모빌리티 차량을 말한다. 미국의 전기차 기업 리비안(Rivian)은 아마존으로부터 10만 대 규모의 상품 배송 전용 전기차를 수주하며, 아마존만의 배송 워크 플로 및 차량 운전자의 피드백을 반영해 차량을 개발했다. 2022년부터 일부 차량을 아마존에 제공했고, 현재 시카고와 시애틀을 비롯해 미국 10개 도시에서 운행 중이다. 즉 리비안의 PVB는 아마존이 원하는 이동 디바이스를 기획하고 제작함으로써 솔루션을 제공하는 긴 과정 전체를 하나의 서비스로 간주한 것이다.
다른 니즈, 다른 자원
MaaS, LaaS, TaaS는 서비스에 이용되는 자원에 따라 구체화할 수 있다. 모든 모빌리티 서비스에는 여섯 가지 자원이 필요하다. 이동 대상, 디바이스, 솔루션, 서비스, 플랫폼, 그리고 사용자다. 우선 사람이든 사물이든 서비스든, 이동시킬 대상이 필요하다. 이 대상을 옮기는 디바이스에 차량, 오토바이, 킥보드, 화물차, 비행기, 충전, 인프라 등이 해당된다. 디바이스를 지원하는 솔루션들이 바로 GPS, 지도, 미터링 솔루션, 결제 솔루션 등이다. 이 디바이스와 솔루션을 활용해 앱 미터기나 내비게이션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호출, 연결 플랫폼을 통해 이 서비스들은 B2C나 B2B 방식으로 사용자에게 연결된다.
모빌리티 서비스는 각각의 종류와 목적, 대상에 따라 필요한 자원이 다르다. 대표적인 MaaS 서비스인 마이크로 모빌리티 솔루션은 말 그대로 마이크로 모빌리티 서비스를 운영하려는 사업자에게 킥보드와 같은 하드웨어나 플랫폼 등 운영 솔루션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 모빌리티 사업자 씽씽을 운영하는 피유엠피(PUMP)는 지역 사업자들에게 씽씽 기기와 플랫폼, 배터리 교체 및 수거 재배치에 필요한 운영 교육 및 노하우 등을 제공한다.
반면 TaaS는 이동 대상이나 사용자와 무관하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디바이스 중심의 서비스로, 특정 고객을 위한 서비스가 아니라 범용적인 성격을 띈다. 지난 2022년 11월, 청계천의 자율 주행 전용 버스는 승객을 대상으로 이동 서비스를 시작했다. 자원 관점에서 이 서비스를 살펴보면 자율 주행 차량, 카메라와 같은 센서 디바이스, 센서에서 인지된 내용을 구분하고 처리하는 자율 주행 솔루션, 호출 앱 등이 제공된다. 이 서비스는 일차적으로 고객 대상 이동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그보다 훨씬 다양한 경로로 확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거점 간 물건을 이동하는 물류 서비스, 장애인의 이동을 돕는 복지 서비스 등 동일한 디바이스와 솔루션을 갖고도 다양한 목적에 이용되는 것이다.
모빌리티에서 aaS 개념이 도래한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자동차의 소유·운영·관리의 관점이 아닌, 이동이라는 관점에 필요한 서비스가 주목받는 것이다. 서비스 이용의 목적과 대상에 따라 자원이 구체화되고, 고객의 니즈에 따라 MaaS의 종류와 가치는 더욱 다양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다음 장에서는 MaaS와 LaaS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사업 영역들을 살펴보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