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파이닝 REDEFINING
7화

북저널리즘 인사이드 ; 디테일은 진단에 있다

혁신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이타적 유전자》로 유명한 매트 리들리(Matt Ridley)는 2020년작 《혁신에 대한 모든 것》에서 인류가 이룬 혁신은 특정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류 사회 전체의 고민, 그리고 개선을 향한 시행착오의 결과물이라 설명한다. 혁신을 총량의 관점에서 접근할 때 강조되는 것은 그 ‘필연성’이다. 구글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Larry Page)와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이 없었어도 인터넷 시대는 도래했을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페이지와 브린은 필연적으로 혁신했어야 할 분야를 혁신하며 인터넷 시대의 ‘개척자’가 됐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다섯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토스, 당근마켓, 리멤버, 오늘의집, 런드리고의 솔루션은 의외로 간단하다. 토스는 송금을 포함한 각종 금융 행위의 절차를 간소화했다. 당근마켓은 동네 사람들이 모바일에서 교류할 장을 만들었다. 리멤버는 명함 정보를 받아 구인할 기업에 연결했다. 오늘의집은 사람들이 집 사진을 공유할 곳을 만들고 사진 속 인테리어 소품을 바로 살 수 있게 했다. 런드리고는 밤에 문 앞에 빨래를 걸어두면 다음 날 세탁해서 다시 갖다 준다. 이미 우리 일상에 파고들어 당연하게 느껴지는 이 솔루션들의 공통점은 뭘까? 혁신이 필연적이었음에도 그간 혁신이 이뤄지지 않던 분야라는 점이다. 그리고 대게 이런 영역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시장 마찰력을 가지고 있다.

많은 스타트업이 개척자를 꿈꾼다. 이들이 문제를 대하는 방법 역시 다양하다. 같은 문제에도 각기 다른 해결 방법이 난립하고 다른 문제에 같은 방법이 쓰이기도 한다. 하나의 프로덕트를 향해 스타트업은 끝없는 가설의 수정과 마일스톤(milestone) 설정, 과감한 실험과 기민한 피벗을 감내한다. 그래서 모든 스타트업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보상이 담보된 길은 아니다. 뾰족한 솔루션으로 시장에 진입하는 스타트업의 대부분은 쓴맛을 본다. 고객과 호흡하며 성장한 소수는 시장에 안착한다. 디테일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새 분야를 개척하고 시장을 점령한 다섯 스타트업은 문제를 진단하는 방법부터 달랐다. 이들은 사용자 경험 자체를 재정의했다.

토스는 8전 9기를 거쳐 고객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 집중한 끝에 모든 금융을 원 앱으로 통합하기 위한 여정에 오른다. 당근마켓은 그간 C2C에서 사기 방지를 위해 동원되던 시스템, 수익 확보를 위해 결제 수수료를 받던 관행을 뛰어넘어 이용자가 정말로 원하는 따뜻한 동네 플랫폼으로 남고자 한다. 리멤버는 초기 시장 진입을 위해 무모한 수기 입력을 도입하고 한국 고객의 심리에 집중해 경력직 스카우트라는 시장을 대중화한다. 오늘의집은 대표 스스로가 첫 번째 유저라 자평할 만큼 프로덕트 내 사소한 불편을 모두 제거하며 복잡한 고객 여정을 심리스(seamless)하게 만든다. 런드리고는 그간 드라이클리닝 등 고객 수요가 일어나던 부분을 넘어 진짜 일상의 숙제인 생활 빨래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세계 최대 규모의 스마트 팩토리를 세운다.

‘프로덕트 마켓 핏(PMF·Product Market Fit)’은 스타트업의 공통 과제다. 시장이 과열되며 어느 순간 혁신은 제안에서 해결로, 침투에서 파괴로 그 의미가 이동하고 있다. 기존 산업의 약한 고리를 끊어 내고 새로운 가치를 제안하는 수준을 넘어, 사용자가 종국에 어떤 경험을 하게 만들 것인가를 사명감으로 고민한 다섯 스타트업의 이야기가 이 책에 있다. 이들이 문제를 진단하고 시행착오를 거쳐 시장에 진입하고 성장통을 견디며 시장을 점령해 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고객 가치에 대한 남다른 관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혁신은 발명이 아니기에 언제나 문제의 시작과 끝은 사용자에 있다. 이들에게 혁신은 곧 재정의다.

이현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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