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서 주인공 해원은, 책값을 주고 싶은 만큼만 줘도 된다는 말에 이렇게 대답한다. “그런데, 그럼 제가 너무 드러나잖아요.”
가격이 정해진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내가 가격을 정해야 한다. 책의 가격을 정할 때 드러나는 것은 나의 취향과 안목, 지적 소양 및 경제적 수준, 타인에 대한 고려와 성격 등이다. 즉, ‘얼마를 지불할까’라는 질문에서 호기심은 판단 대상이 아니라 주체를 향한다. 책만이 아니다. 모든 재화와 서비스에 있어 가치를 판단하는 행위는 판단의 대상이 아닌 그 주체를 더 많이 드러내게 마련이다.
2500원. 40년 이상 유지해 온 공영 방송 수신료 값어치 역시 공영 방송의 가치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바라보고 판단하는 우리 사회를 드러낸다. 방만 경영과 편파 방송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KBS는 그 2500원마저 받아서는 안 될 것처럼 낙인찍혔다. 수신료는 ‘안 내는 게 정당한 저항’이라는 수사를 통해 ‘안 내도 괜찮을 것 같은’ 징수 방식으로 속전속결 개편됐다.
KBS가 더 잘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질문이 따라 붙을 것이다. 그런데 ‘잘한다’는 말은 모호하다. 무엇을, 어떻게라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 모호한 기준에 대해 우리는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는가.
2021년 한국방송공사 국정감사에서 가장 화제가 된 질문은 “KBS는 왜 〈오징어 게임〉 못 만드나”였다. 이 질의가 있은 후 한국방송학회는 토크 콘서트를 개최했고 많은 지면이 ‘KBS는 왜’로 채워졌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답은 간단하다. KBS가 공영 방송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KBS는 제작비가 어마어마하게 많이 들고, 투자한 이상의 금전적 가치를 창출해 내기 위한 콘텐츠를 만들기 어렵다.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콘텐츠에 대한 심의 기준도 걸림돌이 된다.
간단하게 해결될 질문에 반응이 뜨거웠던 이유는 그 저변에 깔린 ‘방송은 〈오징어 게임〉 같아야 한다’는 규범적 인식 때문이다. 여기에는 많은 사람이 보고, 해외로 퍼져 나가 유행을 선도하며, 수익을 창출하고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 좋은 방송이라는 대전제가 깔려 있다. 국회는 민의가 모이고 대변되는 곳이다. 공론장에서 이러한 질문의 나왔다는 것에 주안점을 두자면, 우리 사회가 어떤 방송 콘텐츠를 높은 값어치를 매기는지가 드러난다. 그러나 공공재인 전파를 사용하고 남녀노소 외국인까지 누구나 즐길 수 있어야 하는 방송이 그 파급력과 영향력만으로 평가되는 것은 괜찮을까. 궁극적으로 공영 방송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해 논하는 《KBS 죽이기》의 질문과도 이어진다.
《KBS 죽이기》는 현재 공영 방송과 관련하여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사건을 중계하는 책도, 싸움의 판돈을 올리는 책도 아니다. 다만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깊게 고민해 본 적 없는, 공영 방송의 역할에 대해서 처음으로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실존적 위기가 눈앞으로 다가온 지금에서야 그 실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KBS에 필요한 진짜 변화는 무엇인가. KBS는 정권이 아니라 시민을 위한 방송이 될 수 있는가.
백승민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