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사냥꾼의 사회
8화

북저널리즘 인사이드; 존중 사회를 향한 첫걸음


이제 한국 사회의 혐오는 마이너리티만을 향하지 않는다. 세대나 성별, 계급은 물론 거주 지역, 취향, 외모, 직업까지 차별의 이유가 된다. 사람들은 남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강박 탓에 모든 관계에 우열을 매기고, 나보다 열등한 대상을 혐오하며 자존감을 찾는다. 그러나 이렇게 얻은 자존감은 내가 을이 되면 금방 사라지고 만다.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사냥감을 찾아 표적으로 삼아야 한다. 이런 사회에서 모두는 모두를 미워할 준비가 되어 있다.

지금까지 혐오는 태극기 노인이나 일베 청년 등 문제 집단의 일탈 행동으로 치부되어 왔다. 이런 시각은 혐오 발언을 쏟아 내는 일부 집단을 비난하고 단죄하는 접근으로 이어지기 쉽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한국 사회 구성원의 다수가 혐오에 노출되어 있다. 《세계일보》가 2018년 말 진행한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60퍼센트 이상이 혐오 발언이나 행동으로 위협을 느낀다고 답했다.

이런 현실을 잘 보여 주는 신조어가 ‘○○충’이다. 몰상식한 행위를 일삼는 이들을 비판하기 위해 등장한 표현이었으나, 지금은 사실상 모든 약자를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나이가 많아서, 아이가 있는 엄마라서, 지방에 살아서, 학생이라서 벌레가 된다. 저자는 “상대방을 단죄하려는 집합 심리가 거대한 벌레 공화국을 만들고 있다”며 “너도나도 벌레가 된 세상은 서로를 갉아먹는 병든 사회”라고 지적한다.

한국 사회에서 혐오가 관계의 기본값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차별과 혐오는 현상일 뿐, 진짜 문제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불안이라고 말한다. 생애 과정 내내 지속되는 불안의 기저에는 ‘한국 사회에서는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는 생존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결국 불안이라는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혐오와 차별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남은 질문은 하나다. 불안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저자의 해법은 혐오 운동의 요구를 살피는 것이다. 과격한 혐오 뒤에는 양극화와 학력주의,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다. 이는 한국 사회 일반의 진단과 다르지 않다. 표현이 아니라 메시지에 귀 기울이면 이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저자는 서로를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혐오 운동 이면의 요구를 살피는 일은 존중 사회를 지향하는 구성원의 역할이자 첫걸음이 될 것이다.

곽민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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