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의 시대다. 업계뿐 아니라 일반인도 관심을 가져야 할 이슈가 쏟아지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의 비만 치료제 위고비Wegovy 열풍이 대표적이다. 위고비는 본래 당뇨병 치료제로 출시됐다. 그러나 확실한 체중 감소 효과가 확인되면서 너도나도 찾는 약이 됐다. 추격자 일라이 릴리Eli Lilly의 마운자로Mounjaro도 머지않아 등판한다. 비만 관리 시장 규모는 100조 원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이 시장이 이제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인류를 괴롭히는 최악의 질병 중 하나인 알츠하이머 분야에서도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다. 2023년 7월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레켐비Leqembi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는데 임상에서 병의 진행을 늦춘다는 걸 확인했다. 물론 아직은 경증 단계에서만 쓸 수 있고, 가격은 비싸다. 부작용 또한 걱정스럽다. 하지만 희망의 문을 연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2023년 6월 공개된 ‘캔서문샷Cancer Moonshot’ 참여 기업 리스트도 내내 화젯거리였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Moon Shot)에서 이름을 따온 캔서문샷은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는 미국의 암 정복 프로젝트다. 향후 25년간 암 사망률을 지금의 50퍼센트까지 줄이는 것을 목표로 연간 18억 달러(2조 4000억 원)를 투입하겠다는 계획이다. ‘루닛’을 비롯한 일부 국내 바이오테크가 여기에 이름을 올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백신 개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커털린 커리코 바이오엔테크 수석 부사장과 드루 와이스먼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 대학 교수가 2023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된 것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수상 자체는 유례없이 빠른 백신 개발에 대한 보상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mRNA는 암과의 전쟁에서도 가장 앞서 있는 기술이다. 얼마 전 바이오엔테크는 mRNA 기반 암 백신 CARVac의 첫 임상 결과를 공개했는데, 종양이 성장을 멈추거나 줄어드는 걸 확인했다. 아직 초기지만 어느 때보다 기대는 크다.
바이오는 꿈이다. 질병과의 전쟁은 인류의 영원한 숙제였기 때문이다. 그 노력 덕에 많은 질병을 정복하는 데 성공했지만 갈 길은 멀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절감했듯 새로운 바이러스는 호시탐탐 인간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 역사적으론 고통스러운 사투이겠으나 산업 측면에서 보면 일감이 차고 넘치는 시장이다. 그래서 바이오는 매력적인 투자처다.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로는 인구 고령화가 가속하면서 만성 질환이 증가하는 한편 ‘웰빙Well-being’과 ‘웰에이징Well-aging’ 욕구도 함께 강해진다는 지점을 짚을 수 있겠다. 이런 상황에서 의약품 수요는 앞으로 더욱 탄탄해질 수밖에 없다. 둘째로는 차세대 염기 서열 분석(NGS), 유전자 가위(가이드 RNA+Cas9)와 같은 혁신적인 기반 기술이 발명돼 신약의 무게 중심이 화학 의약품에서 바이오 의약품으로 이동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실제로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암이나 희귀 질환을 치료하는 여러 기술이 개발 중이다. 개별 환자의 질병 환경에 맞는 정밀 치료의 시대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다만, 바이오 기술의 다양성과 넓은 범위는 투자자에게 큰 장벽이다. 파편화한 지식만으로는 바이오의 숲을 볼 수 없다. 숲을 조망할 능력을 갖추려면 그 구성 요소에 대해 먼저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책에서는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바이오 키워드를 다룬다. 유전자 치료제, 유전자 편집 치료제, pre-mRNA 치료제, mRNA 백신, RNAi(RNA 간섭)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 핵산 치료제는 빼놓을 수 없는 미래 키워드다. T세포・NK세포 치료제와 함께 가장 근원적인 치료법이라 할 수 있는 줄기세포 기술의 발전도 마찬가지다. 상업적 가치가 큰 비만 치료제와 메디컬 에스테틱 분야, 인체 내 미생물로 질병을 치료하는 마이크로바이옴도 챙겨 볼 만한 주제다.
조금 더 좁혀 보자면 현 시점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키워드는 ‘항체-약물 접합체(ADC·Antibody-Drug Conjugate)’다. 항체 치료제는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특정 항원에만 결합해 항원의 활동을 차단하는 항체의 특성을 이용한 치료제다. 항원을 잘 찾아가서 효과적으로 활동을 차단하는 게 관건이다. ADC는 항체와 약물(Drug)이 결합한 구조로 항체가 공격하고자 하는 목표까지 안내하면 항체와 약물이 분리되고, 약물이 목표를 공격하는 원리다. 예컨대 암 치료에 적용하면 ADC는 혈관을 타고 수많은 정상 세포 사이에 숨어 있는 암세포를 정확히 찾아내 탑재된 약물로 사멸한다. 일명 ‘유도 미사일 항암제’로 불리는 이유다.
자신만의 바이오 투자 전략을 가지려면 결론적으로 ①신기술 개발 트렌드 ②빅파마의 움직임 ③기술력을 갖춘 국내 기업 이들의 교집합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 특히 빅파마의 시선이 어딜 향해 있는지 파악하는 건 핵심 중의 핵심이다. 최근 다수의 빅파마는 미래의 먹거리가 될 첨단 기술 투자를 늘리고 있다. 과거 경험을 통해 익힌 생존 전략이다.
아무리 큰 빅파마라도 기술 흐름을 놓쳐 블록버스터 개발 기회를 날린다면 순식간에 업계에서 도태될 수 있다. 수년 전 비만 치료제의 가치를 간과했던 많은 기업이 지금은 땅을 치고 후회하는 중이다. 빅파마가 점찍은 미래 먹거리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기술 도입 계약이나 인수전도 꼼꼼히 살펴야 한다. 이와 관련된 기업을 골라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면 투자 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바이오의 성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지난 40년간 미국 증시에서 섹터별 수익률이 가장 높았던 건 헬스 케어였다. 정보 기술(IT)보다도 앞선다. 사람은 늙고, 예전보다 더 오래 산다. 최근 2년간의 바이오 주가 부진은 일종의 도움닫기였을지도 모른다. 바이오의 시간은 반드시 온다. 투자의 눈도 그곳을 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