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나의 직장 동료
1화

2030, 나의 직장 동료

현대차와 도요타가 손을 잡았다. 휴머노이드 때문이다.

테슬라가 옵티머스의 새로운 영상을 공개했다. 변수로 가득한 공간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며 이동하고, 인간과 상호작용을 한다. 무엇보다, 여러 대의 옵티머스가 각자 파악한 공간을 데이터 공유를 통해 통합한다. 즉, 개별 옵티머스의 학습이 전체 옵티머스에 공유되는 집단학습이 가능하다. 테슬라 옵티머스의 저력은 어설픈 춤이나 가위바위보가 아니다. 출처: Tesla

변화와 징후


변화: 완성차 업체, 유통 업체 등이 휴머노이드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징후: AI를 품은 휴머노이드가 연구실을 벗어나 현실 세계로 나왔다. 진정한 노동 4.0이 시작된다.

로봇의 조건


지난달 27일, 대단한 쇼케이스가 있었다. 경기도 용인시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다. 사전 행사는 레이싱카 퍼포먼스였다. 운전대를 잡은 것은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 자동차그룹 회장, 보조석에 동승한 것은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이다. 이 둘은 어떤 제품도 소개하지 않았다. 깜짝 이벤트였고, 모빌리티의 미래를 함께 만들겠다는 선언적인 발언이 전부였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 장면에서 몇 가지 제품을 보았다. 첫 번째는 수소차다. 두 회사의 경쟁 분야다. 그러나 아직 산업이 초기 단계다. 함께 생태계를 만들어야 파이가 생긴다. 그리고 두 번째는 휴머노이드다.

완성차 업계가 휴머노이드 개발에 뛰어드는 이유는 명백하다. 제조업의 총아이기 때문이다. 제조업의 오랜 숙제는 노동력이다. 사람이 손을 놓으면 제품을 생산할 수 없다. 숙련도 또한 중요하다. 그래서 자동차 공장에는 로봇이 많다. 우리나라는 2023년 기준, 전 세계 산업용 로봇 밀도 1위 국가다. 노동자 만 명당 1012대의 로봇이 배치되어 있다. 생산라인에서 쉬지 않고 용접과 조립을 반복하고 있는 로봇 팔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업계는 그다음을 원한다. 현대차와 도요타는 물론이고 테슬라까지 휴머노이드에 매달리고 있다.

우리 주변에도 로봇은 많다. 음식점에서도 빈 그릇을 나르는 로봇이 심심찮게 보이고, 커피나 치킨을 만드는 로봇은 이제 흔하다. 일반적인 기계와 로봇의 경계는 어디에 있을까. UCLA 로멜라(RoMeLa)연구소의 데니스 홍 교수는 세 가지 요소를 제시한다.
  • 지각(Sense): 카메라나 마이크 등 센서 장치를 이용해 인간의 명령은 물론이고 주변 환경을 감지하여 입력할 수 있어야 한다.
  • 판단(Plan): 입력된 정보를 바탕으로 추론하고 판단하여 어떻게 작동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 작동(Act): 지각과 판단을 바탕으로 실제 물리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움직여야 한다.

커피를 만드는 로봇팔에 물의 온도를 감지하기 위한 센서가 장착되어 있다면, 그리고 일정 온도가 되었을 때 커피를 내리기에 적당해졌다고 판단할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가 작동해 물을 붓는 행동까지 옮긴다면 로봇이 맞다. 사람의 노동력을 대체할 수 있는 로봇이다.

얼굴은 필요 없다


그러나 로봇팔은 휴머노이드가 아니다. 사람의 얼굴을 흉내 낸 LED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서빙 로봇도 완성차 업계가 원하는 휴머노이드라 할 수 없다.
  • 휴머노이드(Humanoid): ‘인간형 로봇’이다. 얼굴과 몸, 두 팔과 다리가 있는 로봇이다. 사람에게 맞춰진 환경에 유연한 대응이 가능하다.
  • 안드로이드(Android): 인간의 이목구비와 피부를 모방하는 것에 주력한다. ‘불쾌한 골짜기’가 발생하는 지점이다.
  • 사이보그(Cyborg): 인간의 신체와 기기가 결합한 형태다. 두뇌는 사람의 것이나 몸이 기계라면 사이보그에 해당한다.

휴머노이드 이전에 안드로이드가 더 깊은 인상을 남겼다. 대표적으로는 홍콩의 핸슨 로보틱스가 제작한 ‘소피아’, 영국 기업인 엔지니어드 아츠의 ‘아메카’ 등이 대표적이다. 첫인상이 좋지는 않았다. 언어로 표현하자면 ‘Creepy’라는 단어에 가까운 감정이다. 다만, 거기까지였다. 안드로이드는 일종의 홍보 대사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을 뿐이다. 로봇에게 얼굴이 필요한 까닭은 인간과 상호작용을 하기 위해서다. 일상에 로봇이 녹아든 다음의 이야기다. 우리에게 얼굴 있는 로봇, 안드로이드는 아직 필요치 않다.

그렇다면 휴머노이드는 어떨까. 완성차 업계가 매달릴 만한 가치가 있을까. 있다. 시계를 돌려 2011년으로 가보면 명확하다. 동일본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이 피해를 당하였던 때다. 무너진 잔해로 들어가 상황을 살필 로봇을 찾았다. 하지만 가능한 모델이 없었다. 실험실 밖은 험난하다. 사람처럼 장애물을 넘고, 때로는 기어오르며 현장에 들어갈 수 있을 만한 기계 공학적 설계는 완성되지 않았다. 방사능과 고열, 수분 등은 덤이었다. 이를 계기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미국 고등방위연구계획국(DARPA) 주최로 세계 재난 구조 로봇 대회가 열렸다. 미래를 향한 ‘연구’ 수준에 머물렀던 휴머노이드가 현실 세계로 나오게 된 계기다. 물론, 당시 대회 수준을 보면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는 수준이다. 두 발로 걸어와 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가는 정도의 움직임도 엄청난 설계가 필요하다. 애당초 이족 보행이 매우 불안정한 동작이기 때문이다. 지면에 약간의 경사가 진 것만으로, 대단찮은 장애물이 굴러다니는 것만으로 당시의 최첨단 기계들은 픽픽 쓰러지고 굴렀다.
 
애질리티 로보틱스의 공동 창립자인 조나단 허스트가 왜 휴머노이드에 ‘다리’가 필요한지 설명한다. 출처: Agility Robotics

10여 년 만에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아마존의 물류 창고에 가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아마존은 이미 75만 대의 로봇을 물류 시스템에 투입했지만, 만족할 수 없었다. 사람도, 시스템도, 심지어 창고까지 로봇에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비효율적이다. 게다가 특정 작업에 특화한 로봇은 작은 전선 하나가 바닥에 굴러다니는 것만으로도 오류를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아마존은 휴머노이드 로봇에 미래를 걸었다. 지금 아마존의 일부 물류센터에서는 ‘디짓(Digit)’이라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일하고 있다. 막대한 투자를 하는 애질리티 로보틱스(Agility Robotics)의 제품이다. 두 팔로 운송될 상품을 들어 올려 두 다리로 걸어 나른다. 사람이 일하는 환경과 거의 동일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다. 디짓의 대당 가격은 약 25만 달러다. 올봄, 미국 오리건에 디짓을 연간 만 대 이상 생산할 수 있는 대량 생산 공장도 완공되었다. 애질리티 로보틱스의 주장대로 이 로봇이 2만 시간 작동한다면, 디짓의 시급은 12.5달러가 된다.


두뇌는 필요하다


지금 휴머노이드 로봇 업계의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물 들어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꼬를 튼 것은 테슬라다. 테슬라는 ‘무엇을, 어떻게, 왜’ 할 것인지를 명확히 했다. 휴머노이드 로봇을 AI 기술을 탑재하여 개발할 것이라는 점, 그 로봇을 테슬라 공장에 투입하여 자동차 가격을 대폭 낮추기 위해 개발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막연했던 미래가 구체적인 이익으로 형상화했다. 때마침 생성형 AI의 눈부신 발전이 상상력을 부풀린다. 투자가 몰린다. 실제로 생성형 AI의 발전은 휴머노이드 로봇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연구실과 달리 현실 세계는 변수로 가득 차 있다.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 골목에서 뛰어나오는 어린아이, 발밑으로 지나가는 곤충까지 무엇 하나 예측할 수 없다. 로봇의 모든 변수와 동작을 일일이 사람이 프로그래밍해야만 했던 시절, 특수 설계된 공장이나 연구실 밖으로 로봇이 나오지 못했던 까닭이다. 그런데 이제 달라졌다. 생성형 AI를 이용해 상황을 학습하고 추론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자연어 학습에 집중한 LLM과 달리 현실의 이미지나 촉각, 환경 데이터를 입력한 뒤 이를 다시 현실과 상호작용을 하는 행동으로 출력하는 모델은 비싸고 무겁다. 심지어 언제 돌발 상황이 발생할지 알 수 없는 만큼, 온디바이스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다만, AI는 지금 가장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분야다. 충분히 개선될 수 있으며, 개선되고 있다. 문제는 학습이다. 무한한 세상을 학습시킬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요즘 휴머노이드 로봇의 학습에는 애플의 비전 프로와 같은 VR 기기가 사용된다. 손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는 센서를 통해 인간의 행동을 로봇에 입력시키기 위해서다. 엔비디아는 디지털 트윈을 활용해 가상 공간에서 로봇을 몇 번이고 반복하여 훈련할 수 있는 플랫폼도 제공한다. 물론, 자사의 반도체를 판매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렇게 학습시킨 로봇은 예전보다 더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현대차가 투자한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모델, ‘아틀라스’는 유압식 액추에이터(구동기)를 사용해 엄청난 기계 능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유압식은 무겁고 시끄럽고 전기를 많이 소모한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지난 4월 ‘아틀라스’를 단종시키고 ‘더 뉴 아틀라스’를 선보였다. 가볍고 조용한 전기식 액추에이터를 사용한다. 이제 상업화로 나아가겠다는 선언이다. 출처: Boston Dynamics
이것이 현대자동차가 도요타와 손을 잡은 까닭이다. 현대차가 투자하고 있는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손꼽히는 휴머노이드 개발사다. 로봇의 움직임과 파워는 단연 세계 최정상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로봇의 두뇌다. 오픈AI의 GPT 시스템을 이식한 피규어(Figure)의 모델처럼, 테슬라의 FSD 기술을 기반으로 한 AI를 품고 있는 옵티머스처럼, 인간과 상호작용을 하려면 더 똑똑한 두뇌가 필요한 것이다. 도요타는 산하 리서치연구소에서 범용 AI 모델을 개발 중이다. 현대와 도요타가 손을 잡은 만큼, 아마존의 디짓이나 테슬라의 옵티머스처럼 현대차 공장에서 일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곧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이 로봇은 인간 작업자를 보조하는 역할을 맡을 수도 있고, 예상치 못했던 부품 결함에도 대응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 풀어야 할 문제는 산더미다. 당장 닥친 것은 저전력 반도체와 고용량 배터리다. 온디바이스로 장착된 AI는 엄청난 전력을 소모한다. 사람처럼 움직이는 몸체도 전기 먹는 하마다. 한 시간마다 충전해야 한다며 자리를 비우는 로봇은 쓸모없다. 본격적인 상용화를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물론,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이 문제를 해결한 다음은 곧 상용화다.

사유


빌 게이츠는 로봇이 사람처럼 움직일 수 있게 된다면 그 활용도가 무궁무진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적어도 게이츠에게 휴머노이드가 널리 보급된 미래는 유토피아다. 단, 전제가 있다. 로봇이 고용에 영향을 미칠 경우 정부와 민간 부문 모두 사람들이 전환기를 돌파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게이츠는 지난 2016년 5월, 유럽 의회에서 제기된 ‘로봇세’ 주장에 찬성한 바 있다. 분명, 로봇이 야기할 수 있는 불평등을 고려해 로봇세를 도입하면 과도기의 재교육 비용 등에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도입까지는 쉽지 않은 관문들이 있을 것이다. 정책적으로 키워줘도 모자랄 로봇 산업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부터 대기업에 대한 징벌적 과세라는 반발까지 쉬이 예상되는 지점들이다.

로봇을 만들고 있는 회사들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특정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아마존으로부터 투자를 받는 애질리티 로보틱스는 단순 반복적인 고강도 육체노동의 경우 미국에서 일손을 구하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런 일은 로봇에게 맡기고 사람들은 사람의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주목받고 있는 국내 로봇 스타트업, ‘에이로봇’의 한재권 CTO 또한 자사의 휴머노이드가 ‘외국인 노동자’를 대체할 수 있는 미래를 이야기한다. 우리는 휴머노이드 제조사들이 내놓는 놀라운 영상에서 미래를 본다. 하지만 그 미래 속에서 우리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해야 할 때다.
 
신아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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