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는 슬럼프로 만들어진다
13화

에필로그; 7년 만의 포크볼

2017년 7월 9일 부산 사직구장, 롯데 자이언츠의 투수 조정훈이 마운드에 섰다. 7년하고도 25일, 2583일 만의 등판이었다. 그는 마운드에 서서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고 공을 던졌다. 그가 뿌린 7년 만의 포크볼에 사직 관중은 기립 박수를 보냈다.

조정훈은 2009년 14승으로 다승 부문 공동 1위를 차지한 스타였다. 그러나 2010년 11경기에서 5승을 거두는 데 그친 뒤, 수술대에 올랐다. 팔꿈치 수술만 세 번을 받았고, 수년간 수술과 재활을 반복했다. 2015년 시범 경기에 등판해 가능성을 보였지만 곧 다시 수술을 받았다. 2016년에는 재활을 하느라 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기나긴 재활의 늪. 그러나 조정훈은 포기하지 않았다.

복귀전을 마친 뒤 조정훈은 “7년간의 긴 시간이 지나도 한결같이 응원해 준 팬들과 몇 번의 수술에도 잘 관리해 준 우리 구단과 재활을 도와주신 코치님들께 감사드린다. 지금부터 갚아 나가겠다”고 복귀 소감을 밝혔다. 7년간의 기다림이 결실을 맺은 것, 다시 마운드에 선 것, 그것만으로도 그는 슬럼프를 극복했다. 그리고 2017년 7월 22일, 2620일 만에 1군에서 승리 투수가 되었다. ‘비운의 포크볼러’로 불렸던 조정훈은 그렇게 ‘재기의 아이콘’이 되었다.

나는 조정훈 선수의 복귀를 떨리는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역경을 겪은 후 스스로 성장을 경험하고 자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선수들은 위기를 통해 성장한다. 주변의 인정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인 스스로가 발전했음을 느끼는 것이 진정한 성장이다. 특히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선수들의 경우, 재활에 성공하고 다시 경기에서 뛰게 되더라도 기술적으로 예전과 똑같은 경기력을 보여 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3할 타자, 10승 투수는 되지 못했을지라도 ‘타석에 다시 들어설 수 있게 된 것’, ‘마운드에서 전력 피칭이 가능해진 것’만으로도 선수들은 스스로 슬럼프를 극복하고 한 단계 더 성장했다고 느끼고 있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이 있다. 시련은 발전의 계기이자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내가 만난 프로 야구 선수들은 슬럼프를 극복하면서 과거에 비해 성숙해진 자신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겸손해지고, 내적으로 더 강해졌으며, 융통성이 생기고,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야구뿐 아니라 인생 자체를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통찰력도 생겼다.

선수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부상,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 정도의 건강 악화에도 불구하고 끈질긴 재활과 노력 끝에 재기에 성공한 ‘재기의 아이콘’들이 KBO 리그에는 수없이 존재해 왔다. 지금도 2군에서, 병원에서, 중·고등학교 야구장에서, 어쩌면 그라운드가 아닌 사무 현장에서 포기하지 않고 슬럼프를 견뎌 내고 있는 수많은 조정훈이 있을 것이다. 이들 모두 시련을 딛고 스스로 성장했다고 느끼는 날이 왔을 때 함께 박수를 보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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