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다지/ 콘텐츠 제작 누적 비용(스포츠 포함, 2019년은 전망치), 십억 달러/디즈니, 넷플릭스, 워너미디어/자료: UBS
스트리밍 서비스로 돈을 버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국내외의 충성도 높은 구독자 목록을 축적하는 것, 그리고 가격을 올리는 것, 아니면 프로그램 제작 비용 줄이는 것이다.
수백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뉴스나 스포츠 묶음 상품을 보기 위해 고속 데이터 통신망에 지불하는 돈은 현재 가격으로 스트리밍 서비스 3~4개의 가격을 합한 수준이다. 옵션을 늘려서 과거 소비자들이 유료 TV에 쏟아부었던 요금과 비슷한 수준에 이르기 전에는 큰 차이가 아니다. 미디어 리서치(Midia Research)의 팀 멀리건(Tim Mulligan)은 기업들이 ‘관심을 끌어올리는 경제(peak-attention economy)’
[1] 속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로 뛰어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소비자들은 새로운 TV 애플리케이션에 더 많은 여유 시간을 투자할 여력이 없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 리드 헤이스팅스는 히트 비디오게임 포트나이트(Fortnite)를 경쟁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다.
[2]
실제로 넷플릭스와 스트리밍 서비스들은 상대의 구독자를 빼앗아 와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소비자들은 한곳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전환 비용은 낮다. 사람들은 〈더 만달로리안〉을 보기 위해 디즈니플러스에 가입했다가 떠나고, 다시 1년 뒤 마블 영화를 보기 위해 돌아올 수도 있다.
만약 더 큰 규모의 구독자를 구축하는 것이 힘들어 보인다면 가격을 올리는 것은 어떨까. 넷플릭스는 지난 봄 상품의 표준 가격을 2달러 올렸다. 일부는 디즈니플러스가 조만간 가격을 올려야 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이런 결정은 구독자를 다른 경쟁사로 떠나게 만들 위험이 있다.
여기에서도 넷플릭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지난 3분기 넷플릭스는 미국에서 겨우 50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했다. 예상보다 30만 명 적다. 올해 초 이 회사는 12년 만에 처음으로 구독자 감소를 경험했다. 디즈니, 애플 그리고 다른 경쟁자들이 싸움을 시작하기 전인데도 말이다. 전 세계적으로 넷플릭스는 올해 2670만 명의 구독자를 추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2860만 명보다 줄어든 숫자다. 증가하는 구독자의 90퍼센트는 해외에서 오는데, 이 구독자들을 계속 확보하려면 잠재적으로 더 많은 비용이 든다. 각 시장에 맞는 콘텐츠를 다시 기획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프로그램 편성에 돈을 들이는 것은 수익을 내는 최후의 방법에 해당한다. 컴캐스트의 최고 경영자 브라이언 로버츠는 시간이 지나면 이런 전략도 수정될 것이라고 본다. 아직은 그럴 만한 신호가 없다. 리서치 회사인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대본이 있는 드라마 한 회를 제작하는 평균 비용은 600만 달러(70억 원)에 육박한다. 이는 3~4년 전의 두 배다. 올해 디즈니부터 짧은 동영상 시청 플랫폼인 퀴비(Quibi)까지 16개에 이르는 회사들이 콘텐츠에만 총 1000억 달러(116조 7800억 원)를 쓸 것이라고 UBS 은행은 추산했다. 올해 미국 원유 시장 투자액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바보 같다고?
디즈니는 디즈니플러스가 6000만~9000만 명의 유료 구독자 수 목표를 달성하기만 하면 2024년까지 손익 분기점을 돌파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 계획은 구독자의 3분의 2가 해외에서 나올 것이라는 예측에 기반하고 있다. 미국 증권가 일각에선 디즈니가 디즈니플러스로 인해 앞으로 수년간 손실을 보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코드 자르기(cord-cutting·유료 방송 가입자가 이를 해지하고 경쟁사로 갈아타는 것)‘’ 현상을 더 가속화할 것이다. 사람들이 비싼 유료 TV 구독을 취소하면서, 기업의 이익을 지탱해 온 케이블 수익은 무너질 것이다.
디즈니 최고경영자 밥 아이거는 이기든 지든 한번 도전해 보는 것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최근 출간한 자서전에서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경쟁사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AT&T는 HBO맥스 출시 첫해 20억 달러(2조 3356억 원)를 투자할 계획이지만, 초반 수익은 기대하지 않고 있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투자가 줄고 매출이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한다. 회사는 이 서비스가 5년 안에 손익 분기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한다.
여전히 변혁은 불가피해 보인다. 누가 견고하게 살아남을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업계의 대부분은 넷플릭스를 몰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있다. 넷플릭스는 전 세계에서 1억 5800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했고, 모든 연령과 관심사를 충족하는 브랜드를 만들어 냈다. 넷플릭스가 최근 저작권을 구입한 드라마 〈사인펠드(Seinfeld)〉는 AT&T와 컴캐스트가 가져갈 예정인 인기 TV 프로그램 〈프렌즈〉와 〈오피스〉의 부재를 메워 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리서치 업체 암페어 애널리시스(Ampere Analysis)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미국 콘텐츠로만 4만 7000편의 TV 에피소드와 4000편의 영화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디즈니플러스가 첫해에 제공할 7500편의 에피소드, 그리고 500편의 영화를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넷플릭스는 올해 오리지널 콘텐츠에 150억 달러(17조 5170억 원)를 쓸 계획이다. 넷플릭스의 최고 콘텐츠 책임자 사란도스는 새로운 경쟁자들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전략을 수정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꼭 봐야 할 TV쇼와 업계가 부러워할 만한 수익을 확보하고 있는 디즈니 역시 물러설 생각은 없어 보인다. 모회사 AT&T가 확보하고 있는 1억 7000만 명 소비자와의 관계를 활용할 수 있는 HBO맥스도 마찬가지다. 그룹 고객 대응 본부를 총괄하는 워너미디어 엔터테인먼트의 밥 그린블랫(Bob Greenblatt)은 “AT&T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우리 스스로 수천만 명의 사람들에게 그렇게 쉽게 다가갈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피콕 서비스로 새로운 미디어 지형에서 자리 잡아야 하는 컴캐스트와 마찬가지로 엔터테인먼트는 AT&T의 중요한 수익원이 되어 가고 있다. 이 대형 이동 통신사는 통신 고객을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해 HBO맥스를 활용해야 할 것이다. 디스커버리나 소니 엔터테인먼트 같은 소규모 경쟁사들은 틈새시장을 잘 공략해야 한다. (합병하는) CBS와 비아컴은 구입을 원하는 누구에게나 콘텐츠를 공급하는 ‘무기 거래상 전략’을 펼 계획이다.
엑스피니티와 그 이후
시간이 흐를수록 다양한 스트리밍 서비스를 단순한 인터페이스로 통합할 수 있는 회사들이 보상을 얻을 것이다. 소비자들은 몰아닥치는 방대한 양의 콘텐츠에 압도당하고 있다. 그들은 다양한 플랫폼에서 원하는 영상을 찾는 일에 점점 더 지쳐 가고 있다. 이런 영상 폭격에서 컴캐스트나 버라이즌 같은 인터넷 회사들은 소비자를 안내하는 역할을 맡을 것이다.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에게만 제공하는 컴캐스트의 새 서비스 엑스피니티 플렉스(xfinity Flex)는 100개 이상의 영상과 음악 서비스를 끊김 없이 제공한다. 목소리로 검색할 수 있는 TV 리모컨은 예를 들어 등장 인물 조지가 해양 생물학자라고 거짓말하는 내용이 나오는 〈사인펠드〉 에피소드를 찾아 준다.
테크 대기업들도 있다. 매튜 볼(Matthew Ball) 전 아마존스튜디오 전략 총괄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제작 자체가 목표는 아니라고 말했다. 아마존의 경우 TV는 프라임 구독자를 붙잡아 두고, 더 많은 신발과 두루마리 휴지를 팔기 위한 방법이었다. 애플에게 콘텐츠 제작은 하드웨어 전자 기기를 파는 것이나 서비스 영역을 넓히는 일이다.
많은 미디어 경영자들, 특히 베테랑들은 이것이 고품질 콘텐츠의 미래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다. 그들의 관점에서 현재 많은 영화와 TV 사업은 업계를 잘 모르는 아웃사이더들이 운영하고 있다. 그들은 애플의 〈믿어야 하는 이야기(Stories to Believe in)〉를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 애플의 첫 번째 TV프로그램은 순진함을 드러내듯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제작됐다. 제니퍼 애니스톤과 리즈 위더스푼을 섭외해 TV 속 연예인으로 일하는 내용을 그린 드라마 〈더 모닝 쇼(The Morning Show)〉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대중문화 잡지 《롤링 스톤》은 “이 드라마, 그리고 이 서비스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플리백(Fleabag)〉이나 〈마블러스 미시스 메이즐(The Marvelous Mrs Maisel)〉처럼 비평가들의 극찬으로 지지를 받은 프로그램들도 있지만, 애플보다 먼저 시작한 아마존의 프로그램들도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얻었다. 한 전직 영화 스튜디오 거물은 “애플은 자기들이 대체 뭘 하는지 모르고 있는데, 아마존은 그것보다 더 모른다”고 일갈했다.
AT&T의 최고 경영진들은 HBO가 훨씬 더 많은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 회사의 서비스는 해안가의 엘리트들만이 아니라 미국 중심부의 구독자들에게도 매력적일 수 있는, 덜 까다로운 요금제를 제공한다. HBO의 능청스런 엘리트주의자 고참들은 새로운 전략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AT&T 엔터테인먼트 유닛 총괄인 존 스탠키(John Stankey)의 제작 확대 결정으로 많은 사람들이 떠났다. HBO의 대표 리처드 플레플러(Richard Plepler)가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 제작을 추진한 것도 그런 결정 중 하나였다. 인디버 에이전시(Endeavour Agency) 설립자 릭 로즌(Rick Rosen)은 “스탠키는 HBO가 넷플릭스와 경쟁하길 바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HBO 브랜드의 특성을 잃어버릴 큰 위험이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한 스트리밍 기업의 대표는 “그런 식으로 20년 넘게 계속하면 존 스탠키는 훌륭한 제작 전문가가 될 것”이라고 농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웃사이더들이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실수다. 타임워너의 전직 최고 경영자 제프 베큐스(Jeff Bewkes)는 언젠가 넷플릭스를 ‘알바니안 군대’라고 일축한 적이 있었다. 이제 할리우드는 넷플릭스를 합법적인 영화 스튜디오로 간주한다. 한편으론 미디어 회사들의 모회사 최고 임원진의 역할을 과대평가하기도 쉽다. 할리우드의 창의력 대부분은 아래 단계에서 나온다. 큰 회사의 외부, 그리고 작가들과 배우들, 리즈 위더스푼이나 마이클 B 조던 등 창작자들이 운영하는 자체 제작사의 비공식적인 네트워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