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종로3가를 향해 가고 있었다. 평일 점심이 조금 지난 시간, 양재에서 압구정을 지나 한강을 건널 무렵 서서 가던 내 앞에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정정한 어르신이 앉았다. 멀뚱히 앞에 서 있는 젊은이가 부담스러웠는지 옆에 빈자리가 생기자 몇 차례의 실랑이 끝에 기어코 나를 앉히고야 말았다. 못 이기는 척 앉기는 하였으나 이내 지하철 문 옆에 서서 갈 것을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가던 중, 이 어르신은 좀 전의 실랑이를 디딤돌 삼아 나에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소위 호구 조사라는 것의 시작이었다. 시간과 정신의 방을 지난 뒤, 그는 자신을 소개하기 위해 명함 지갑을 꺼내려 바지 주머니를 뒤적였다. 주머니를 뒤적이는 저 팔이 자칫 옆자리 아주머니의 얼굴을 가격할까 내심 신경이 쓰였으나 다행히 아주머니는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가 건넨 명함은 온통 한자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명함을 찾기 위해 반쯤 열어 둔 지갑 속에는 번듯한 증명사진이 새겨진 재무 설계사의 명함이 있었다. 증권, 채무, 투자 상담을 전문으로 한다는 이들의 명함을 보며 아마도 이 어르신의 자산은 이 중 누군가에 의해 관리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추측을 하는 찰나, 목적지에 도착한 젊은이는 내려야 했다. 1967년에 설립된 모 토목 회사에 근무했던 노신사와의 만남은 꽉 찬 다섯 정거장만큼의 시간이었다. 그에게 있어 명함에 담긴 정보는 짧은 시간 동안 상대방에게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가장 압축적인 수단이었을 것이다.
지하철에서의 사건을 끄집어낸 이유는 조용히 목적지에 가고 싶었던 젊은이가 느낀 불편함을 말하기 위함도, 젊은이가 쳐 놓은 불편함의 경계를 불쑥 치고 들어온 어르신의 무례를 비난하기 위함도 아니다. 그렇다고 한국의 고령화 속도를 운운하며 우리 사회에 닥칠 충격과 그에 따른 사회 제도 개선과 경제적 대응책에 대한 논의로 귀납하려는 의도는 더욱 아니다. 베이비붐 세대, 혹은 아저씨, 꼰대라는 범주에 묶여 몇 가지 특성으로 단순하게 규정되고 있는 이들을,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점을 상기하고 싶었다. 대체 자식뻘의 모르는 이에게 기어이 말을 걸어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자 했던 이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어떤 사회적 집단은 그 구성의 특징에 따라 이름을 얻는다. 특징의 범주는 계층, 세대, 젠더를 구분하는 의미에서 학술 용어로 규정되기도 하지만 일상적으로 쓰이는 용어에서부터 시작되기도 한다. 전자의 경우 최대한 정제된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때로 날것 그대로의 감정 혹은 가치관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경우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회사에서 근무한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 남성, 한국 사회에서 이들을 부르는 이름은 일방적이고 단편적이다. 이 기성세대 남성 퇴직자 집단이 가진 함의는 우선 고령화 사회의 위기 담지자이다. 이미 알려져 있는 것처럼, 고령화 위기론은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이 진행되고 이들이 노년기에 진입함과 동시에 발생하게 될 사회적 비용의 급증에서 출발한다. 이때 은퇴자는 인적 자원으로서 경제 활동 인구가 될 가능성, 노화에 따른 질병이나 우울감, 스트레스를 치료할 의료비 같은 사회적 비용의 범위와 규모로 대치되고, 지원 방안이 필요한 대상의 차원으로 재현된다. 이러한 시각에서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의 남성은 비생산 인구이자 복지 대상이다.
동시에 이들은 세대 간 상호 작용의 측면에서 젊은이들의 멘토가 되어 줘야 하는 집단이다. 사회는 이들에게 젊은 세대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방향성을 제시해 줄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결과는 멘토가 아닌 꼰대다. 이 세대는 군사주의적 특성을 가진 우리나라 조직 체계에서 길러졌다. 남성성이 강조되고 근속 기간에 비중을 두는 연공서열제, 톱다운(top-down) 방식의 조직 생활에 익숙했던 사람에게 “은퇴할 시기가 되었으니 아직 취직하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멘토가 되어 주세요. 당신의 경험담을 들려주세요.”라고 요청한다면 경험담보다 무용담을, 격려와 위로보다는 젊은이들의 나약함에 대한 지적을 듣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에서는 이런 특징을 가진 집단을 ‘회사인간’이라고 불렀다. 회사인간이란 전후 경제 성장기를 거치면서 자신의 헌신이 조직의 성장, 나아가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사고를 내면화한 조직 구성원을 의미한다. 국가의 경제가 기업의 성장에 의존하는 구조하에서, 기업은 연공서열제와 종신(정년) 고용, 각종 복리 후생 제도를 제공하면서 구성원들이 조직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했다. 동시에 기업이 구성원에게 가족을 부양할 만큼의 임금을 제공함으로써, 남성 생계 부양자 모델을 구성했다. 남성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여성과 자녀 등 부양가족이 회사가 아닌 다른 영역에서 생활하도록 역할의 분리를 종용했다. 여기서 다른 영역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가사 영역이다. 이런 남성 생계 부양자 모델이 지배적으로 작동하는 모습이 일본의 전후 경제 성장기 기업 중심 사회의 전형이었다. 당시 일본의 회사인간의 세대적 구성은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 세대(団塊世代)’였다.
일본의 단카이 세대처럼, 1950~1960년대에 출생한 한국의 베이비부머들은 회사인간으로 성장했다. 자신들이 산업 역군으로 투입되어 철저하게 회사인간이 되어 가는 동안 한강의 기적과 88올림픽 유치를 목도하며 기뻐했다.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 가입함으로써 경제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찬사를 받으며 업무에 박차를 가했다. 내가 맡은 자리에서 열심히 일한 결과, 국가의 1인당 국민 소득 만 달러 시대를 열었다. 묵묵히 최선을 다해 책임감을 가지고 야근도 마다하지 않고 일한 만큼 내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었다. 고도성장을 배경으로 다양한 부문에 진출하여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안정을 구가한 이들에게 회사란 그저 직장 이상의 의미다. 회사는 회사인간에게 성취에 대한 가치를 공유하고 관계를 형성하며 의사소통을 했던 생활 세계였다. 출근하는 한 이들은 공적 사회 관계망을 유지하려 애쓸 필요가 없었다. 성취해야 할 목표는 굳이 찾아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주어졌다. 소속된 회사와 직책을 밝히는 것은 곧 자신을 소개하는 일이었다.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회사인간이었던 퇴직자들이 탈회사인간화하는 과정의 대응 방식이다. 퇴직은 이들에게 생활 세계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계기다. 퇴직 후, 회사인간의 정체성은 가족 간의 갈등과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위기를 맞닥뜨리게 된다. 재직 당시 공적 영역에서의 생존은 가정에서의 부재와 단절을 의미했다.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친밀성뿐 아니라 가정에 대한 기여 또한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가족들은 이미 가장이 부재한 환경에 익숙하다. 결국 회사인간에게 가정은 당연히 돌아가야 할 곳이면서도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곳이 된다.
회사 밖의 영역에서 회사인간의 정체성을 지탱해 온 경제력은 퇴직과 동시에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들의 경제적 근간인 연금과 자산은 자녀의 결혼과 의료비, 부동산 가치의 하락 등으로 위협받는다. 위기에 내몰린 이들을 대상으로, 금융 업계는 노후 난민과 같은 자극적인 용어를 앞세운 공포 마케팅 전략을 구사한다. 최소 얼마의 은퇴 자금을 모아 두어야 소외받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 각종 금융 상품에 가입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될 것이다, 으름장을 놓는다. 소득이 끊기고 모든 소비가 부담이 되기 시작하는데도, 자기 계발 시장의 유혹은 끊이지 않는다. 뷰티 산업은 꽃중년의 이미지를 강조하면서 노화를 미의 대척점으로 규정하고 건강, 의류부터 성형까지, 돈을 써야 할 지점을 친절히 안내한다. 은퇴 후의 풍요로운 삶을 위한, 젊은이와 소통하는 멘토가 되기 위한 교육은 이제 하나의 산업이 되었다.
평생에 걸쳐 자신의 약한 모습을 감추는 것이 생존 전략이었던 사람들, 그래서 현재의 약한 모습이 공론화되는 것을 꺼리는 이들은, 과연 그저 노년에 접어들 때까지 자신의 주어진 삶을 버텨야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인가?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명명하는 대로 갈등과 위기의 씨앗이 되는 문제의 담지자인가?
개인 간, 세대 간, 집단 간의 적대와 갈등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최근의 대한민국에서, 어떤 집단, 세대가 내포한 문제점은 이해와 관심의 지점이 아닌, 적대감의 기폭제가 되어 버렸다. 서로를 알기 위해 노력해 보기도 전에, 매섭게 쏘아보며 문제점을 찾아내려 하는 것이 관계의 수순이 되어 버린 듯하다.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직접 부딪치고, 소통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우선은 편견 없이 상대의 삶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은 때로는 대한민국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갈등의 씨앗을 품은 시한폭탄처럼 그려지는 한 세대, 그중에서도 생존을 위해 특정한 문화를 내면화해 온 이들에 대한 일종의 번역서다. 이들과의 소통을 선뜻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사람들, 막연한 반감을 갖고 있는 세대가 회사인간 세대에 대해 알아 가는 시작점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