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게 듣고 많이 이야기한다. 같은 말을 두 번 반복한다. 함부로 반말을 하기 시작한다. 내 견해만 옳다고 주장한다.’
최근 몇 년 새 유행하고 있는 ‘꼰대 테스트’의 주요 문항들이다. 종합하면, ‘꼰대’는 남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으면서 자기 말만 하는, 예의 없는 사람이다. 타인에게 이런 평가를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꼰대 공포증’에 떠는 성인들에게 꼰대 테스트는 스스로 꼰대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자, 꼰대가 되지 않는 법을 안내하는 지침과도 같다.
‘꼰대 담론’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시대에, 꼰대는 은어나 비속어의 수준을 넘은 사회 현상으로 다뤄지는 듯하다. 그러나 그 내막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아주 단순한 세대 간 대결 구도만 남는다. 젊은 세대들은 꼰대 때문에 못 살겠다는 비판을 쏟아 내고, 어른들은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애쓰면서 미안해하는 것이다. 꼰대 테스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꼰대는 백번 양보해도 좋게는 봐줄 수 없는 민폐 캐릭터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그렇다 해도, 어떤 세대가, 어떤 직책에 오른 사람들이 무조건적으로 동일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주장은 어딘가 석연치 않다. 사람 일에는 다 사정이 있고 상황이 있는 것 아니던가.
모두가 꼰대를 손가락질하는 사이, 저자 김종률은 꼰대의 ‘속사정’에 주목한다. 우리가 꼰대라는 한 마디 말로 단순화한 50대 이상 남성들의 이해하기 어려운 행태가 회사의 조직 문화에서 유래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저자는 조직에서 관리자 역할을 맡았던 화이트칼라 남성들을 면접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1980년대 고도성장기에 직장 생활을 하면서 체화한 문화와 습관이 이들의 사회적인 소외와 갈등을 낳고 있다고 분석한다.
회사인간은 공적 영역에 묶여 생존에 집중해 왔다. 회사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회사에서 주로 생활해 오면서 외부와는 단절돼 있었다. 과거의 시대적인 요구에 의해 자연스럽게 체화한 정체성은 새로운 시대에는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과거의 아버지 세대가 누렸던 연장자에 대한 존경도, 회사에서 누렸던 권위도 없는 회사 밖 세계에서 이들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회사인간도 꼰대보다는 멘토가 되고 싶다. 그러나 멘토가 되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한다. 회사에서 체득한 화법으로는, 부하 직원을 대하는 태도로는, 자녀 세대와 대화조차 할 수 없다. 수십 년을 회사에 투신하면서 나라를 위해, 가족을 위해 일해 온 자신을 존중하기는커녕 피하고 비난하는 가족들의 모습에 회사인간은 좌절하게 된다.
대화의 시작은 관심과 이해다. 이 책은 시대적 존재로서의 회사인간을 이해함으로써 대화와 소통을 시작하는 계기를 만들고 있다. ‘꼰대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당위론 이전에 ‘왜 꼰대가 되었을까’라는 의문을 던지는 저자의 시선이 따뜻한 이유다.
김하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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