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안내는 불필요하게 소비자들을 무지하게 만든다. 소시지를 살펴보자. 나는 영국식 아침 요리에서 가장 건강에 해로운 요소가 베이컨보다는 소시지라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이 글을 위한 자료 조사를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소시지가 가공육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국민 건강 보험(NHS)의 웹사이트에도 잘못 분류되어 있었다.
프랑스의 소시송(saucisson)과 같은 단단한 소시지와는 다르게, 일반적인 영국식 소시지는 보존 처리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재료를 첨가하지 않고 오직 신선한 돼지고기, 빵가루, 허브, 소금, 메타중아황산나트륨(E223)만을 사용해서 만든다. 보존제로 사용되는 E223은 발암 물질이 아니다. 수많은 질문이 오고간 끝에, 미국 국립 암 연구소(National Cancer Institute)의 전문가 대변인 2명은 나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신선한 소시지는 가공육이 아니라 “붉은 육류”라고 “생각할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발암 물질일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나는 대부분의 소시지가 가공육이 아니라는 사실이 무척이나 기뻤고, 토드 인 더 홀(toad in the hole)
[4]을 만들 생각에 기쁜 나머지 부엌에서 춤을 추기까지 했다.]
암 연구자들에게 서로 다른 종류의 육류들이 가진 위험성을 가려 달라고 부탁하면, 당연하게도 말을 아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 국립 암 연구소의 두 전문가가 내게 말한 바에 따르면, 질산염과 아질산염을 포함한 육류가 “대장암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꾸준하게 확인되고 있다.” 다만 그들은 “암 발병 가능성이 베이컨과 같은 가공육에 들어 있는 다른 물질 때문인지, 니트로사민 때문인지를 가려내는 것은 어렵다”고 덧붙였다. 용의선상에 오른 다른 물질로는 헴 철분(haem iron)과 헤테로사이클릭아민(heterocyclic amine)이 있다. 헴 철분은 가공육이든 아니든 모든 붉은 육류에 많이 들어 있다. 헤테로사이클릭아민은 육류를 조리할 때 생성되는 화학 물질이다. 바삭하게 바짝 구운 베이컨 한 조각에는 다양한 발암 물질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고, 그 모든 성분이 질산염 때문에 생성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추론으로는 왜 붉은 육류보다 가공육이 더 암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질산염과 아질산염을 빼고는 이 부분이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이 실험실 안에서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데이터를 통해 명확하게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가공육과 암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대부분 인구 전반에 퍼지는 질병에 대해 연구하는 역학(epidemiology) 분야에서 나온다. 하지만 역학자들은 사람들이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에 대해서는 상세한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무엇을 먹는지에 대한 여론 조사를 근거로 한 역학 데이터를 보면, 다량의 가공육이 포함된 식단이 높은 암 발병률로 연결된다는 점은 이제 너무나도 명확하다. 하지만 어떤 육류가 좋고 어떤 육류는 나쁜지, 그리고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이러한 데이터로는 알 수가 없다. 런던 시티 대학교의 코리나 혹스는 말한다. “연구자들은 사람들에게 동네 이탈리아 식품점에서 파는 수제 돼지고기 식품을 먹었는지, 아니면 세상에서 제일 저렴한 핫도그를 먹었는지를 물어보지 않거든요.”
질산 처리되지 않은 파르마 햄과 통상적인 베이컨을 먹었을 때의 암 발병 위험을 비교하는 연구 결과를 보고 싶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연구를 하는 역학자가 없다. 그래도 가장 근접했던 연구는 2015년 프랑스에서 진행되었다. 가공육에서 발견되는 N-니트로소 헴 철분을 먹는 것은 신선한 붉은 육류에서 발견되는 헴 철분을 먹는 것보다 대장암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높다는 사실이 이 연구에서 확인됐다.
역학자들이 사람들에게 어떤 종류의 가공육을 먹었는지 자세히 질문하지 않은 이유는, 어쩌면 질산염이나 아질산염을 사용하지 않고 대량으로 유통되는 대체 제품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이제 변화가 일어나려 하고 있다.
완전한 금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베이컨에 든 질산염과 아질산염의 위험성에 대처하는 방법은 남아 있다. 보다 정확한 정보를 밝혀내는 것이 시작일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분홍빛 고기를 덜 유해한 방식으로 만드는 방법은 이미 존재한다. 그래서 기존 방법으로 만들어진 제품이 왜 여전히 자유롭게 판매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1970년대 질산염과의 전쟁 이후에 미국 소비자들은 유럽 소비자보다 질산염에 대해 자각을 갖게 되었고, 그래서 시중에는 질산염 무첨가 베이컨이 많이 나와 있다. 글래스고대학교 건강 복지 연구소의 질 펠이 말한 대로, 문제는 미국에서 질산염 무첨가라는 라벨을 달고 팔리는 베이컨 대부분이 실제로는 질산염 무첨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런 제품들은 셀러리에서 추출한 질산염으로 만들어지는데, 이는 물론 자연 성분이긴 하지만 육류 안에서 동일한 N-니트로소 화합물을 생성한다. EU의 규제에 따르면 이런 베이컨에는 질산염 무첨가라는 라벨을 붙일 수 없다.
“제 인생을 통틀어서 이런 최악의 거짓말은 본 적이 없습니다.” 피넨브로그 아티산(Finnebrogue Artisan)의 회장인 데니스 린(Denis Lynn)의 말이다. 북아일랜드에 있는 그의 회사는 M&S를 비롯해 많은 영국의 슈퍼마켓에 소시지를 만들어서 공급하고 있다. 린은 베이컨과 햄을 다양한 종류로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그는 “질산염 없이 만드는 방법을 찾아내기 전까지는 제품을 내놓지 않았다.”
린 회장은 스페인에서 질산염을 넣지 않으면서도 완벽한 분홍색을 띠는 베이컨을 만드는 새로운 제조법이 개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번에도 헛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2009년, 식품 과학자이자 프로수르(Prosur)라는 식품 기술 업체의 대표 후안 데 디오스 에르난데스 카노바스(Juan de Dios Hernandez Canovas)는 신선한 돼지고기에 특정한 과일 추출물을 첨가하면 놀라울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분홍색이 유지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피넨브로그는 이 기술을 사용해 질산염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베이컨과 햄을 만들었고, 2018년 1월 영국에 출시했다. 이 제품들은 대형 슈퍼마켓 체인 세인즈버리(Sainsbury’s)와 웨이트로즈(Waitrose)에서는 “네이키드(Naked) 베이컨”과 “네이키드 햄”이라는 상표를 달고 판매되고 있고, M&S에서는 “아질산염 무첨가 제조”라는 라벨을 달고 판매되고 있다. M&S에서 이 제품들의 출시를 담당했던 커스티 애덤스는 “보존 처리가 되지는 않은 제품”이라고 말한다. 그보다는 과일과 채소 추출물을 주입한 소금에 절인 신선한 돼지고기에 가깝고, 기존의 베이컨보다 쉽게 상할 수 있다. 하지만 냉장고에 보관하면 크게 문제는 없다. 이 제품들은 생산 기간도 짧기 때문에, 질산염을 첨가하지 않는 다른 대안, 예를 들어 파르마 햄처럼 서서히 보존 처리되는 방식에 비해서도 훨씬 더 경제성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현재 이 베이컨은 웨이트로즈에서 1팩에 3파운드(4700원)에 판매되고 있다. 아주 저렴한 제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엄두도 못 낼 만큼 비싼 것도 아니다.
나는 M&S에서 피넨브로그 베이컨을 사서 먹어 봤다. 등심 베이컨은 약간의 과일 향과 함께 기분 좋고 부드러운 맛이었다. 정육점에서 파는 얇게 저민 가공 베이컨이 주는 질감이나 훈제의 깊은 풍미는 없었지만, 질산 처리된 고기에 대한 대안이 생긴 것을 기쁘게 생각하면서 다시 구매했다. 아마트리치아나 스파게티에 넣었는데, 가족 중 누구도 차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람들은 질산염 무첨가 베이컨이 비싸거나 독특한 제품이라고 생각하지만, 암을 유발하지 않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것이 독특한 일은 아니다. 린 회장은 과일 추출물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 프로수르 측과 처음 접촉했을 때 프로수르가 영국에서 영업한 지난 2년 동안 대형 베이컨 제조업체들이 얼마나 반응을 보였는지 물었다. 전혀 없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린 회장은 말한다. “대형 회사들 중에서 이런 방법을 원하는 곳은 전혀 없었습니다. ‘우리 회사의 다른 가공육 제품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하게 만들 겁니다’라고 말했죠.”
하지만 소비자들이 질산염이나 아질산염이 첨가되지 않은 베이컨을 얼마나 원하는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베이컨과 암을 둘러싼 소란스러운 논쟁 속에서 베이컨 샌드위치 하나를 먹는 것이 한 사람에게 미치는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가공육이 포함된 식단으로 인해 매년 3만 4000명이 죽을 수 있지만, 그런 일이 당신에게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암 연구자들에게 개인적으로 가공육을 먹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모두 약간씩 다른 대답을 들려주었다. 질 펠은 채식주의자에 가깝기 때문에 가공육을 거의 먹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프랑스의 대장암 및 육류 전문가인 파브리스 피에르(Fabrice Pierre)에게 고기를 먹는지를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네, 물론이죠. 그렇지만 항상 채소를 곁들여서 먹습니다.” [(톡사림(Toxalim) 연구소에서 진행된 피에르의 연구를 보면, 햄에 들어있는 발암 물질의 영향은 채소를 먹음으로써 어느 정도 상쇄될 수 있다고 한다.]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과 혼란이 계속되는 것은 베이컨 업계에게는 축복이었다. 질산염과 아질산염으로 보존 처리된 육류의 위험성을 성공적으로 은폐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먹을거리에 대한 충고를 회의적으로 바라본 탓이기도 하다. 베이컨에 대한 공포심에 절정에 달했던 2015년에도 많은 지성인들은 가공육을 발암 물질로 규정한 새로운 기준을 무시해도 된다고 말했다. 영양학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는 동안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수백만 명의 소비자들은 무방비 상태에 처했다. 베이컨 논란에서 가장 이상한 부분은 아무래도 대중적인 분노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모든 과학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부분은 여전히 베이컨을 오래된 친구로 아끼며 살아가고 있다.
이상적인 세계에서는 우리 모두 가공육이든 신선육이든 고기를 적게 먹을 것이다. 건강은 물론 지속 가능성과 동물 복지를 생각해서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에서는 여전히 가공육이 일반적으로 소비되며, 구운 베이컨 대신 프로슈토 디 파르마를 살 여력이 없는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안정적인 단백질 공급원이 되어주고 있다. 연구원 존 커니(John Kearney)에 따르면, 현재 선진국에서 소비되는 모든 육류의 절반가량이 가공육이다. 가공육은 흡연보다도 훨씬 더 보편적인 습관이다.
이 모든 일 때문에 실제로 피해를 보는 것은 나처럼 힙한 카페에서 가끔씩 베이컨 샌드위치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소득이 낮고, 섬유질이 많은 채소와 통곡물을 많이 섭취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장 안 좋은 영향을 받는다. 영양 불균형은 암의 또 다른 원인이고, 베이컨 섭취로 인한 해로움과 결합하면 더 큰 위험이 될 것이다. 쿠드레는 그의 책에서 서양식 가공육이 개발 도상국을 점령하면서 향후 몇 년간 수백만 명의 가난한 소비자들이 대장암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일이다.
2018년 2월, 프랑스의 유럽 의회 의원인 미셸 리바시(Michèle Rivasi)는 쿠드레와 협력하여 유럽 전체의 모든 육가공품에서 아질산염을 금지할 것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베이컨 업계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격렬하게 싸워 왔는지 떠올려 보면, 아질산염을 완전히 금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완전한 금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베이컨에 든 질산염과 아질산염의 위험성에 대처하는 방법은 남아 있다. 보다 정확한 정보를 밝혀내는 것이 시작일 것이다. 코리나 혹스가 지적하듯이, 햄과 베이컨의 위험성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정부 차원에서 열심히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간단하게는 가공육 제품에 경고 라벨을 붙이는 같은 방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베이컨에 문제를 제기할 만큼 용감한 정치인이 과연 영국 내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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